
서의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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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한·일관계 바뀌려면…독일의 아데나워 같은 지도자 일본서 나와야” 일본 쓰쿠바대학 도쿄캠퍼스에서 국제 비즈니스 MBA프로그램의 국제 정치경제학 교수로 일했고, 퇴직 후에는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대 일본에 관해 저술한 책으로 여러 상을 받았고, ‘뉴리퍼블릭’ ‘내셔널인터레스트’ ‘뉴레프트리뷰’ 등에 기고하고 있다. 교수가 되기 전에는 투자은행가로 활동했고, 부르킹스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내기도 했다. ‘아시아태평양저널: 일본포커스’의 코디네이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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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투 코리아’ 방안, 공론화할 만하다 윤석열 정부가 내년에 30주년을 맞는 정부 공식 통일방안(민족공동체 통일방안) 개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일간지가 보도하자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일단 부인했으나 어떤 형태로든 손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화해·협력을 거쳐 남북연합을 구성한 뒤 최종 통일로 가자는 3단계 통일방안이 대북압박을 선호하는 윤석열 정부 성에 찰 리도 없다. 윤 정부는 집권 이후 한·일관계 복원을 서둘러 한·미·일 군사 준동맹화 기틀을 다졌다. 한반도에서 한·미·일과 북·중·러의 전선을 구축하는 ‘외교 새틀짜기’가 일단락되자 남북관계 재규정 작업에 손대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때 거의 사라진 ‘통일’이 ‘평화’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불안하다. 윤 정부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은 포장을 뜯어내면 ‘흡수통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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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역사의 외투’가 아득히 멀어져갔다 소련은 한국전쟁의 지도와 지원을 담당했지만, 정작 전쟁기간 내내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전투병의 북한 파병은 물론 군사고문단의 전투 참가를 금지했고, 북한의 공군력 지원 요청도 외면했다. 북한의 남침 직후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소련이 출석하지 않은 것은 전쟁의 최대 미스터리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소련의 불참으로, 유엔군 창설이 결의되면서 전쟁 판도가 바뀌었다. 후일 발굴된 서한에서 스탈린은 체코슬로바키아 고트발트 대통령에게 “중국의 참전으로 미국을 아시아에 묶어놓으면 유럽 사회주의를 강화시킬 시간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전쟁의 승패보다 유럽에서의 사회주의 강화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지만 사후 합리화에 가깝다. 스탈린의 본심이 한국전 개입을 국제사회에 드러내기를 꺼렸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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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군사합의, 부침 있어도 평화 안전핀 역할…뽑힐 위기” 윤 정부, ‘대북 정책’ 이념적 접근여권 신원식 등 ‘폐기 거론’ 우려지뢰 제거, 남측이 선제 추진 제안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로 당사자의 개입 능력은 줄어들고 지정학적 비극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토론회 - 지속 가능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에서 최근의 한반도 정세를 이같이 진단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심연북한연구소와 더불어민주당 평화안보대책위원회, 박병석 전 국회의장이 주최하고 경향신문이 후원한 이날 토론회에서 김 전 장관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북핵 문제의 악화와 복잡성으로 협상 성과가 국내 정치적 성과를 보장할 수 없는 딜레마가 존재하고, 동북아시아에서 미·중 갈등으로 우선순위가 외교가 아니라 군사로 전환됐다”면서 “윤석열 정부 또한 대북정책을 국내 정치화하고 이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그 결과가 한반도 문제에서 당사자인 한국의 개입능력의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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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백지신탁 불복 소송 공무원은 헌법 제7조 규정처럼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다.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례·증여·향응을 주거나 받을 수 없도록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업무 과정에서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해충돌이 규율되지 않으면 정부는 부패한다.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시행 중인 ‘주식 백지신탁’ 제도는 고위공직자의 3000만원 초과 보유 주식을 금융기관에 맡겨 60일 안에 처분토록 하고 있다. 이 제도를 규정한 공직자윤리법은 1978년 제정된 미국 정부윤리법이 모델이다. 195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재정 관련 이해충돌 이슈가 논란된 걸 계기로 고위공직자들이 자발적으로 주식을 백지신탁한 것이 기원이다. 관행이 먼저 정착된 뒤 추후 입법화된 것이다. 한국의 백지신탁 대상이 주식으로 한정돼 있는 반면 미국은 채권·부동산·펀드까지 포함해 광범위하게 규율한다. 채권·부동산 보유 역시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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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독립영웅 흉상 철거와 ‘캠프 데이비드 정신’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은 한국이 일본의 안보위기 때 지원해야 하는 근거를 만들어놨다. ‘3국 신속 협의 공약’에 따라 한국은 중·일 간 센카쿠열도, 러·일 간 쿠릴열도 갈등이 벌어질 경우 일본 편에 서야 한다. 그 역의 경우도 성립하는데 남북, 한·중 갈등에 자위대가 개입하는 것이다. 공약에는 ‘협의’라는 표현을 썼지만 미국은 하위 파트너와의 합의문에 ‘의무’를 명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강제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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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한·미 동맹 70주년에 등장한 트루먼 동상 일본 패전 이후 미국은 일본인들의 저항을 우려해 천황제를 유지하는 대신 그 권위를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한정했다. 일본의 ‘국체(國體)’는 보존됐지만, 그 대가로 대미종속 구조가 확립됐다.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로 회복한 주권을, 같은 날 맺은 미·일 안보조약으로 미국에 헌납했다. 이후 70여년간 미국은 신성불가침의 권위였고, 미국이 그어놓은 선을 넘는 이는 누구라도 거세됐다. 미국을 앞질러 중국과 수교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방침을 미국과 협의 없이 발표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대표적이다.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의 말대로 일본의 진짜 국체는 상징 천황제가 아니라 미·일동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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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정권이 바뀌면 우려가 ‘괴담’이 되는 나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투기에 대한 안전성 우려를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은 ‘괴담 선동’이라고 공격한다. A신문은 지난주 ‘광기의 시간, 팩트가 협박당했다’ 기사로 15년 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때 분출했던 ‘광우병 우려’를 소환해 괴담으로 몰았다. 오염수 우려를 ‘제2의 광우병 괴담 선동’으로 등식화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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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위로와 용기를 준 ‘BTS 10년’ 초기의 K팝은 내수기반이 약해 수출주도형 성장을 해야 했던 한국 제조업과 닮았다. 1차 목표는 ‘캐시카우’로 불리는 일본 시장 진출이었다. 팬들의 구매력이 높은 일본에서 수익을 올린 뒤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는 경로가 보통이었다. 그래서 K팝 가수들에게 일본어는 필수였다. 콘서트 장에서, TV프로그램에서 일본은 한국 가수들이 일본어로 소통하는 걸 당연시했다. 관행을 깬 것은 걸그룹 ‘블랙핑크’였다. 블랙핑크 멤버들이 일본 방송에서 한국어로 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왠지 뿌듯했다. 일본이 더는 K팝의 절대시장이 아님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제는 일본 팬들이 한국어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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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일본의 ‘무책임 정치’가 키운 오염수 사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는 해양투기 외에 다른 방안이 없었던 걸까.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도 포함된 일본 원자력시민위원회가 2019년 두 가지 처리 방안을 내놨다. 첫째, 10만㎥급 초대형 탱크를 지어 오염수를 장기 저장하는 방안이다. 핵종(방사성물질)의 독성이 충분히 줄어들도록 수십년 보관한 뒤 방류 여부는 다음 세대 결정에 맡기자는 것이다. 일본의 뛰어난 토목기술이라면 튼튼한 초대형 탱크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원전 북측 토사처분 예정지를 부지로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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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하미마을 베트남 중부 도시 다낭은 ‘경기도 다낭시’로 통한다. 한국인의 인기 관광지이지만, 반세기 전 벌어진 베트남 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다낭에선 2021년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미군 수송기 바퀴에 주민들이 매달리던 것과 유사한 탈출극이 1975년 3월 말 벌어졌다. 한 달 뒤 수도 사이공(현재 호찌민)의 대통령궁이 함락돼 남베트남은 패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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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일본은 외교합의를 잘 지켰나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후의 한·일관계는 ‘한국이 외교합의를 위반했다’는 일본의 프레임에 지배됐다. 문재인 정부는 피해갔지만 윤석열 정부는 딱 걸려들었다. ‘2018년 대법원 판결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간의 모순’(요미우리신문 인터뷰)을 참을 수 없던 윤석열 대통령은 제3자 변제 해법을 몸소 고안해 여론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시켰다. ‘한국은 국제법을 안 지키는 나라’란 주문을 4년 넘도록 외워온 끝에 일본은 승리했다. 일본 기업들은 배상 책임을 면했고, 서울을 찾은 총리는 ‘마음 아프다’는 개인 감상으로 강제동원의 사과·반성을 갈음했다. ‘국제법을 어긴 한국의 심각한 죄에 비하면 80년 전 고릿적 과오가 무슨 대수인가.’ 윤석열의 가치외교가 빚어낸 가장 스펙터클한 ‘가치전도(顚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