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동
논설실장
최신기사
-
서의동 칼럼 정권이 바뀌면 우려가 ‘괴담’이 되는 나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투기에 대한 안전성 우려를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은 ‘괴담 선동’이라고 공격한다. A신문은 지난주 ‘광기의 시간, 팩트가 협박당했다’ 기사로 15년 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때 분출했던 ‘광우병 우려’를 소환해 괴담으로 몰았다. 오염수 우려를 ‘제2의 광우병 괴담 선동’으로 등식화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 신문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광우병 우려’ 보도에 적극적이었다. A신문은 2002년 4월22일자 과학면 ‘인간 광우병-병걸린 쇠고기 먹으면 감염…사망률 100%’ 기사에서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에 걸린 사람은 결국 광우병에 감염된 소처럼 뇌에 구멍이 생겨 100% 사망하게 된다”는 국내 의대 교수의 기고를 실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나온 ‘뇌송송 구멍탁’ 구호와 일치하는 주장이다. B신문은 2007년 3월23일자 ‘몹쓸 광우병! 한국인이 만만하니’ 기사에서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을 경우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미국이나 영국인에 비해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
여적 위로와 용기를 준 ‘BTS 10년’ 초기의 K팝은 내수기반이 약해 수출주도형 성장을 해야 했던 한국 제조업과 닮았다. 1차 목표는 ‘캐시카우’로 불리는 일본 시장 진출이었다. 팬들의 구매력이 높은 일본에서 수익을 올린 뒤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는 경로가 보통이었다. 그래서 K팝 가수들에게 일본어는 필수였다. 콘서트 장에서, TV프로그램에서 일본은 한국 가수들이 일본어로 소통하는 걸 당연시했다. 관행을 깬 것은 걸그룹 ‘블랙핑크’였다. 블랙핑크 멤버들이 일본 방송에서 한국어로 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왠지 뿌듯했다. 일본이 더는 K팝의 절대시장이 아님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제는 일본 팬들이 한국어를 배운다.
-
서의동 칼럼 일본의 ‘무책임 정치’가 키운 오염수 사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는 해양투기 외에 다른 방안이 없었던 걸까.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도 포함된 일본 원자력시민위원회가 2019년 두 가지 처리 방안을 내놨다. 첫째, 10만㎥급 초대형 탱크를 지어 오염수를 장기 저장하는 방안이다. 핵종(방사성물질)의 독성이 충분히 줄어들도록 수십년 보관한 뒤 방류 여부는 다음 세대 결정에 맡기자는 것이다. 일본의 뛰어난 토목기술이라면 튼튼한 초대형 탱크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원전 북측 토사처분 예정지를 부지로 활용할 수 있다. 둘째, 오염수를 건축재료인 모르타르처럼 굳히는 방안이다. 원전 부지에 반지하 콘크리트 용기를 만들고 그 안에 오염수·시멘트·모래를 개어 굳히면 방사성물질 유출 위험을 반영구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이미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 리버 핵시설 오염수 처분에 활용되고 있다. 둘 다 1~2년이면 실행할 수 있다. 경제산업성 자문기관인 알프스소위원회가 제시한 수증기방출, 수소방출, 지하매설, 지층주입, 지하매설보다 현실성이 있다.
-
여적 하미마을 베트남 중부 도시 다낭은 ‘경기도 다낭시’로 통한다. 한국인의 인기 관광지이지만, 반세기 전 벌어진 베트남 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다낭에선 2021년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미군 수송기 바퀴에 주민들이 매달리던 것과 유사한 탈출극이 1975년 3월 말 벌어졌다. 한 달 뒤 수도 사이공(현재 호찌민)의 대통령궁이 함락돼 남베트남은 패망했다. 야경이 환상적인 다낭 근처 ‘호이안’과 옛 왕조의 수도 ‘후에’ 등에는 전쟁의 자취가 남아 있다. 후에 궁궐에선 포격으로 움푹 파인 담장이나 총탄 자국 남은 건물들이 눈에 띈다. 호이안에서 해안 따라 다낭 방향으로 3㎞ 정도 떨어진 곳에 하미마을이 있다. 1968년 2월 한국군이 베트남 주민 135명을 집단학살하고, 시신을 불도저로 훼손한 곳이다.
-
서의동 칼럼 일본은 외교합의를 잘 지켰나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후의 한·일관계는 ‘한국이 외교합의를 위반했다’는 일본의 프레임에 지배됐다. 문재인 정부는 피해갔지만 윤석열 정부는 딱 걸려들었다. ‘2018년 대법원 판결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간의 모순’(요미우리신문 인터뷰)을 참을 수 없던 윤석열 대통령은 제3자 변제 해법을 몸소 고안해 여론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시켰다. ‘한국은 국제법을 안 지키는 나라’란 주문을 4년 넘도록 외워온 끝에 일본은 승리했다. 일본 기업들은 배상 책임을 면했고, 서울을 찾은 총리는 ‘마음 아프다’는 개인 감상으로 강제동원의 사과·반성을 갈음했다. ‘국제법을 어긴 한국의 심각한 죄에 비하면 80년 전 고릿적 과오가 무슨 대수인가.’ 윤석열의 가치외교가 빚어낸 가장 스펙터클한 ‘가치전도(顚到)’다.
-
논설실장의 단도직입 “음악은 정답 없는 것들 찾아가는 작업”…고독한 우주항해와 닮았다 1977년 지구를 떠나 47년째 항해 중인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는 현재 태양계를 껍질처럼 둘러싼 ‘구름층’ (오르트 구름)을 향하고 있다. 태양계 행성 탐사 임무를 마친 뒤 2012년 태양권을 벗어나 매일 147만㎞씩 성간우주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성간물질과 방사선을 맨몸으로 맞는 바람에 제어 시스템이 고장났고 원자력 전지 성능도 저하돼 얼마나 더 달릴지는 불투명하다. 인류 운명을 짊어진 보이저호의 고독한 도전을 흥겨운 록 사운드에 담아낸 가수 윤하의 ‘오르트 구름’(2021년 발표)이 지난해 ‘사건의 지평선’에 이어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또 한 번의 ‘역주행 신화’를 써가고 있다.
-
서의동 칼럼 바이든의 미소에 속고 있다 “무너진 한·미 동맹을 재건하겠다”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국의 ‘동맹 중독’은 한층 심각해졌다. 미국 CIA가 대통령실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미국을 향한 항심(恒心)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서울 도심에 걸린 현수막엔 ‘한·미 동맹 완성’ 글귀가 선명하다. 보수층의 맹목 지지라는 고정값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좌초, 대중 여론 악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노회함이 가세한 결과다. 방위비 분담금을 한꺼번에 5배 올리며 한국을 겁박한 트럼프 대통령 때 한국에선 반미감정이 똬리를 틀었다. 대학생들은 미국대사관저 담장을 넘었다. 트럼프의 좌충우돌에 진저리가 난 한국인들은 바이든에 안도했고, 그의 미소에 저항력을 잃었다.
-
여적 오카쿠라 덴신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1862~1913)은 일본 메이지 시대의 미술평론가이자 국수주의 사상가이다. 개항기 요코하마에 살던 오카쿠라는 어릴 적부터 서양인이 개설한 영어학원에 다니며 영어를 익혔다. 도쿄대학에 입학한 뒤 미국인 미술연구가 페놀로사와 인연을 맺었고 그와 함께 일본 각지의 고사찰을 연구하면서 미술사가로 입지를 굳혔다. 러일전쟁을 전후로 자신의 저작을 해외에서 영어로 출간했다. 일본 미술·문화를 선전하는 한편, 일본의 조선 병합이 타당하다는 논리를 서구로 전파했다. 1904년 11월 미국 뉴욕에서 출판된 <일본의 각성(The awakening of Japan)>에서 오카쿠라는 “조선반도는 선사시대부터 일본의 식민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의 고고학 유적은 일본의 원시고분과 정확히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일본 왕실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동생이 조선에 정주했다고 전해진다. 그 나라의 초대 국왕 단군은 그 자식이었다고 한다”고 적었다.
-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대북 강경책 펴다 북·일 접근 땐 한국 소외…미·일 일변도 벗어나야” 일제 강제동원 피해 배상금을 국내 기업 돈으로만 지급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해법’에 대해 일본 주장을 전면 수용한 굴욕 해법이자 외교참사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는 대규모 비판집회가 열렸고, 양금덕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제3자 변제’를 거부하기로 했다. 일본에선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이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말로 가해 사실 자체를 부인하며 찬물을 끼얹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16~17일 일본을 방문한다. 여론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한·일관계 복원’을 향해 돌진하는 형국이다.
-
여적 궈차오(國潮)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서구열강의 제품들이 중국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1847년 상하이에서는 외국 상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양행(洋行)들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 24개국과 거래하고 있었다. 1890년대 들어선 상하이의 거의 모든 백화점이 양화(洋貨·외국 상품)를 판매했고, 1917년 상하이 난징루에 들어선 백화점들은 외국 상품만을 취급했다. 1890년대부터 진출한 일본 자본은 고무신 등 소비품은 물론 기계, 방직업 등으로도 진출하며 중국 경제를 잠식해갔다. 1905년 미국 정부가 재미 중국 노동자들을 차별대우한다는 보도에 중국인들이 격분하면서 미국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중국 사업가들은 공동 투자해 한커우에 밀가루 공장을 세웠다. 중국의 국산품 애용운동 궈차오(國潮)의 원조다. 중국이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일본으로부터 산둥지역의 이권을 되찾아오지 못하자 대학생들이 5·4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때도 일본 상품 불매와 국산품 소비운동이 동시에 전개됐다. 중국인들의 국산품 소비운동은 1931년 만주사변 등 정치격변 때마다 되풀이됐다.
-
여적 은하로 떠난 마쓰모토 레이지 마쓰모토 레이지(1938~2023)가 만화가의 꿈을 안고 도쿄로 상경한 것은 19세가 되던 1957년. 고속철도 신칸센이 없었던 당시 그가 살던 일본 규슈에서 도쿄까지는 열차로 꼬박 하루가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그의 대표작 <은하철도999> 주인공 철이가 탄 것과 같은 구식 좌석에 앉아 흥분에 휩싸인 채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떠올렸을 것이다. 만화가로 입지를 굳힌 1977년 마쓰모토는 오래전부터 구상해온 <은하철도999>를 ‘주간 소년킹’에 연재했다. 만화가 선풍적 인기를 끌자 이듬해 TV시리즈로도 제작됐다. <은하철도999>는 주인공 철이가 신비의 여성 메텔과 함께 영원히 죽지 않는 기계의 몸을 제공하는 별을 향해 은하열차를 타고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숫자 ‘999’는 어른이 되지 못하고 미완성인 채 마감하는 청춘을 의미한다.
-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한국 경제 위기는 대전환의 기회…공공정책이 혁신 뒷받침해야” ‘퍼펙트 스톰’과 ‘회색 코뿔소떼’가 몰려온다. 어느 전문가가 진단한 올해 국내외 경제 상황이다. 이미 예고된 경제충격이 동시다발적으로 닥쳐오지만 사실상 속수무책이란 뜻이다. 역대급 물가 상승, 대규모 무역적자, 소비 침체, 난방비 폭등….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뉴스들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충격이 여전한 가운데 미국이 보호무역 기조를 본격화하고 유럽연합(EU)도 뒤질세라 장벽을 세우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제품의 공급망 분리가 본격화하면서 중국 비중이 큰 한국의 선택을 어렵게 한다. 지난 30여년간 세계화의 최대 수혜국이던 개방형 통상국가 한국이 중대 기로에 놓여 있다.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