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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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궈차오(國潮)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서구열강의 제품들이 중국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1847년 상하이에서는 외국 상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양행(洋行)들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 24개국과 거래하고 있었다. 1890년대 들어선 상하이의 거의 모든 백화점이 양화(洋貨·외국 상품)를 판매했고, 1917년 상하이 난징루에 들어선 백화점들은 외국 상품만을 취급했다. 1890년대부터 진출한 일본 자본은 고무신 등 소비품은 물론 기계, 방직업 등으로도 진출하며 중국 경제를 잠식해갔다. 1905년 미국 정부가 재미 중국 노동자들을 차별대우한다는 보도에 중국인들이 격분하면서 미국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중국 사업가들은 공동 투자해 한커우에 밀가루 공장을 세웠다. 중국의 국산품 애용운동 궈차오(國潮)의 원조다. 중국이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일본으로부터 산둥지역의 이권을 되찾아오지 못하자 대학생들이 5·4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때도 일본 상품 불매와 국산품 소비운동이 동시에 전개됐다. 중국인들의 국산품 소비운동은 1931년 만주사변 등 정치격변 때마다 되풀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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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은하로 떠난 마쓰모토 레이지 마쓰모토 레이지(1938~2023)가 만화가의 꿈을 안고 도쿄로 상경한 것은 19세가 되던 1957년. 고속철도 신칸센이 없었던 당시 그가 살던 일본 규슈에서 도쿄까지는 열차로 꼬박 하루가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그의 대표작 <은하철도999> 주인공 철이가 탄 것과 같은 구식 좌석에 앉아 흥분에 휩싸인 채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떠올렸을 것이다. 만화가로 입지를 굳힌 1977년 마쓰모토는 오래전부터 구상해온 <은하철도999>를 ‘주간 소년킹’에 연재했다. 만화가 선풍적 인기를 끌자 이듬해 TV시리즈로도 제작됐다. <은하철도999>는 주인공 철이가 신비의 여성 메텔과 함께 영원히 죽지 않는 기계의 몸을 제공하는 별을 향해 은하열차를 타고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숫자 ‘999’는 어른이 되지 못하고 미완성인 채 마감하는 청춘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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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한국 경제 위기는 대전환의 기회…공공정책이 혁신 뒷받침해야” ‘퍼펙트 스톰’과 ‘회색 코뿔소떼’가 몰려온다. 어느 전문가가 진단한 올해 국내외 경제 상황이다. 이미 예고된 경제충격이 동시다발적으로 닥쳐오지만 사실상 속수무책이란 뜻이다. 역대급 물가 상승, 대규모 무역적자, 소비 침체, 난방비 폭등….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뉴스들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충격이 여전한 가운데 미국이 보호무역 기조를 본격화하고 유럽연합(EU)도 뒤질세라 장벽을 세우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제품의 공급망 분리가 본격화하면서 중국 비중이 큰 한국의 선택을 어렵게 한다. 지난 30여년간 세계화의 최대 수혜국이던 개방형 통상국가 한국이 중대 기로에 놓여 있다.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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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키리바시의 한국인 유해 적도 근처 태평양에 산호초로 이루어진 타라와섬.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서서히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 키리바시공화국의 수도다. 80년 전 ‘철의 폭풍’이 타라와섬에 몰아쳤다. 1943년 11월 일본군이 장악한 섬에 미군이 상륙을 시도하면서 벌어진 ‘타라와 전투’다. 과달카날 해전 승리로 태평양전쟁의 승기를 잡은 미군은 태평양의 일본군 전략거점을 하나씩 탈환한 뒤 일본 본토로 북진한다는 구상 아래 타라와섬에 3만5000명을 투입했다. 함포사격과 함재기 공습으로 주력을 파괴한 뒤 해병대를 상륙시키면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전투가 일본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수천명이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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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횡재세 ‘횡재세’는 이미 100년 전부터 주요국들에서 시행돼왔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전시이윤 원리’를 환수해 전비 조달에 기여토록 하는 횡재세를 도입했다. 미국에서도 1917년 ‘수익률 8%’를 초과하는 자산소득에 최고 80%까지 세금을 물렸다. 영국은 1997년에도 공공부문 민영화 과정에서 발생한 시세차익을 환수하기 위해 횡재세를 도입했다. 일본도 2004년 미국계 펀드 리플우드가 공적자금 370억달러가 투입된 신세이은행 주식을 사고팔아 막대한 차익을 거두고도 세금 한 푼 내지 않게 되자 횡재세인 ‘신세이(新生) 조항’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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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43년 만의 참배 5·18 이듬해 입학한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이었다. 매주 한차례 성경수업을 담당하는 전도사 선생님은 어깨가 떡 벌어진 특전사 출신이었다. 5월 어느날 수업 도중 불쑥 광주 이야기를 꺼냈다. 5·18 당시 진압군으로 광주에서 겪은 경험담이었다. 평소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어쩔 수 없이 총을 쏴야 했다”며 미간을 일그러뜨리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또렷하다. 2019년 출범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광주 현장에 있던 장병들에게 주목했다.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2만351명 중 1800여명을 접촉해 200명으로부터 증언을 이끌어냈다. 가해자를 만나 증언을 이끌어내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할 말 없다’는 한마디로 통화가 끊기거나 “내 주소를 어떻게 알고 왔느냐”며 문전박대를 당하는 건 예사였다. 인사차 건넨 명함이 눈앞에서 구겨지기도, 개에게 물리기도 했다. 그래도 돌아서며 문틈에 명함을 끼워놓고 연락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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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평양 폭격’ 사진 공개 한국전쟁 시기 미군 공중폭격에 대해서는 민간지역 폭격을 부정하는 주장과 초기부터 무차별 폭격이 이뤄졌다는 주장이 맞서왔다. 한국전쟁 연구자 김태우는 두 ‘신화’를 벗겨내기 위해 미 국립문서보관소와 미공군역사연구실 문서 10만장을 뒤졌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미 공군 조종사의 ‘일일임무보고서’였다. 일일임무보고서는 미군 지도부에 의해 검열되지 않은 1차 사료여서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였다.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창비)으로 2013년 출간된 연구에 따르면 미군은 전쟁 초기 군사목표에 한정한 ‘정밀폭격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당시 전폭기는 항속거리가 짧아 목표지역에서 정찰 후 폭격을 수행하기 어려웠고, 전폭기를 안내하는 전술항공시스템은 불안정했다. 조종사들은 단시간 내에 육감과 우연, 자의적 판단에 의해 표적을 식별·공격해야만 했다. 오폭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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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자문단 공화국 참여정부는 ‘위원회 공화국’으로 불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위원회에 힘을 실으면서 김대중 정부 때보다 60%가 많은 579개 위원회가 만들어지자 나온 비판이다. 그러나 위원회 숫자는 진보·보수 정부 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가 초기에 431개까지 줄였으나 말기에 505개로 늘어났고, 박근혜 정부 때는 554개 위원회가 활동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좀 더 늘어난 622개였다. 정부 위원회는 정책 결정에서 전문성 보완과 사회적 합의 도출을 목적으로 한다. 의견수렴이 지연되거나 행정 독주를 추인하는 부작용도 없지 않지만 공정성 확보, 이해관계 조정 등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위원회는 ‘행정 민주화’의 지표이기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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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35층 룰’의 퇴장 중세 서양에선 교회의 첨탑이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15세기 벨기에의 세속도시 브뤼헤에서 옷감 제작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높이 108m 종탑이 인근 성 도나투스 대성당보다 높았던 게 유일한 예외다. 도시에 종교건물보다 높은 세속건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서는 데는 그 이후로 4세기가 더 걸렸다. 19세기 후반 철골공법 도입과 엘리베이터 개량이 이뤄지며 마천루 시대가 열렸다. 미국 뉴욕의 수리공이던 엘리샤 오티스가 안전 브레이크를 도입한 엘리베이터를 1853년 세계박람회에서 선보인 것을 계기로 고층빌딩 건축 열풍이 불었다. 20세기 전반까지 뉴욕의 스카이라인은 극적으로 변모했다. 크라이슬러빌딩,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상징하며 개발도상국들의 본보기가 됐다. 한국은 그 대열의 선두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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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학현학파 경제학은 부(富)와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현실과 유리된다. 주류 경제학은 부에 치우쳐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사람들이 경제학에서 멀어지는 이유다. 그 역시 경제학자인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의 비판이 통렬하다. “경제학은 일반인이 이 분야를 들여다보는 것을 꺼리게 만들어 영역보존을 하는 데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둔 학문이다.” 한국 대학의 경제학과는 유독 계량과 통계에 치우쳐 있다. 교수의 압도적 다수가 미국 유학파인 것과 무관치 않다. ‘합리적 인간’을 전제로 한 추상적 이론에 현실을 꿰맞추다보니 예측도 잘 맞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 세계는 보수를 받지 않거나 임금이 높지 않은 분야의 노동이 사회 유지에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드러냈다. 노동의 가치와 사회적 공헌이 노동시장에서 받는 보수에 비례한다는 경제학 이론은 허구다. 사람을 중심에 세우지 않으면 경제학의 ‘쓸모’는 더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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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4·3과 미국 1948년 ‘제주 4·3’이 격화되자 미군정은 4월17일 모슬포에 주둔 중인 국방경비대 9연대에 진압을 명령했다. 그러나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우익단체인 서북청년회와 경찰의 도민 탄압이 사태의 도화선이라 보고, 평화적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김 중령은 4월28일 남로당 제주위원회 조직부장이자 무장대 군사총책 김달삼과 만나 72시간 안에 전투를 중지하고 무장해제와 하산이 이뤄지면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는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미군정 사령관 하지는 협상 결과를 무시했다. 사흘 뒤인 5월1일 발생한 오라리 마을 방화사건은 무력진압의 신호탄이 됐다. 미군정과 경찰은 오라리 방화를 무장대 소행으로 조작했지만, 우익청년단이 저지른 일로 후일 밝혀졌다. 미군정은 24군단의 123통신사진파견대가 불타는 마을을 비행기까지 띄워 촬영한 영상물 ‘제주도의 메이데이’를 공개했다. 강경진압의 기획에 미군정이 다각도로 간여한 정황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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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노동혐오 일본의 혐한(嫌韓)이 어떤 건지는 영화 <GO>를 보면 감이 잡한다. 재일한국인 주인공이 일본인 여학생과 사귀다가 ‘한국인’임을 털어놓자 여학생은 선을 긋는다. “한국인은 피가 더럽대. 아빠가 가까이하면 안 된댔어.” 영화 <기생충>에서 박 사장이 운전사로 고용한 기택에게선 정체 모를 냄새가 난다. 박 사장은 아내에게 말한다. “선을 넘을 듯 말 듯하면서 안 넘어. 그런데 냄새가 선을 넘지.” 혐오는 꺼림칙한 것에 대한 거부반응이다. 어떤 대상이 몸 안으로 들어와 자기를 더럽힐지 모른다는 느낌과 이어진다. 차별에는 이성이 개입하지만 혐오는 감각적이다. 뭔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모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