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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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독립영웅 흉상 철거와 ‘캠프 데이비드 정신’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은 한국이 일본의 안보위기 때 지원해야 하는 근거를 만들어놨다. ‘3국 신속 협의 공약’에 따라 한국은 중·일 간 센카쿠열도, 러·일 간 쿠릴열도 갈등이 벌어질 경우 일본 편에 서야 한다. 그 역의 경우도 성립하는데 남북, 한·중 갈등에 자위대가 개입하는 것이다. 공약에는 ‘협의’라는 표현을 썼지만 미국은 하위 파트너와의 합의문에 ‘의무’를 명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강제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 -
서의동 칼럼 한·미 동맹 70주년에 등장한 트루먼 동상 일본 패전 이후 미국은 일본인들의 저항을 우려해 천황제를 유지하는 대신 그 권위를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한정했다. 일본의 ‘국체(國體)’는 보존됐지만, 그 대가로 대미종속 구조가 확립됐다.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로 회복한 주권을, 같은 날 맺은 미·일 안보조약으로 미국에 헌납했다. 이후 70여년간 미국은 신성불가침의 권위였고, 미국이 그어놓은 선을 넘는 이는 누구라도 거세됐다. 미국을 앞질러 중국과 수교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방침을 미국과 협의 없이 발표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대표적이다.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의 말대로 일본의 진짜 국체는 상징 천황제가 아니라 미·일동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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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정권이 바뀌면 우려가 ‘괴담’이 되는 나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투기에 대한 안전성 우려를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은 ‘괴담 선동’이라고 공격한다. A신문은 지난주 ‘광기의 시간, 팩트가 협박당했다’ 기사로 15년 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때 분출했던 ‘광우병 우려’를 소환해 괴담으로 몰았다. 오염수 우려를 ‘제2의 광우병 괴담 선동’으로 등식화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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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위로와 용기를 준 ‘BTS 10년’ 초기의 K팝은 내수기반이 약해 수출주도형 성장을 해야 했던 한국 제조업과 닮았다. 1차 목표는 ‘캐시카우’로 불리는 일본 시장 진출이었다. 팬들의 구매력이 높은 일본에서 수익을 올린 뒤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는 경로가 보통이었다. 그래서 K팝 가수들에게 일본어는 필수였다. 콘서트 장에서, TV프로그램에서 일본은 한국 가수들이 일본어로 소통하는 걸 당연시했다. 관행을 깬 것은 걸그룹 ‘블랙핑크’였다. 블랙핑크 멤버들이 일본 방송에서 한국어로 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왠지 뿌듯했다. 일본이 더는 K팝의 절대시장이 아님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제는 일본 팬들이 한국어를 배운다. -
서의동 칼럼 일본의 ‘무책임 정치’가 키운 오염수 사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는 해양투기 외에 다른 방안이 없었던 걸까.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도 포함된 일본 원자력시민위원회가 2019년 두 가지 처리 방안을 내놨다. 첫째, 10만㎥급 초대형 탱크를 지어 오염수를 장기 저장하는 방안이다. 핵종(방사성물질)의 독성이 충분히 줄어들도록 수십년 보관한 뒤 방류 여부는 다음 세대 결정에 맡기자는 것이다. 일본의 뛰어난 토목기술이라면 튼튼한 초대형 탱크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원전 북측 토사처분 예정지를 부지로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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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하미마을 베트남 중부 도시 다낭은 ‘경기도 다낭시’로 통한다. 한국인의 인기 관광지이지만, 반세기 전 벌어진 베트남 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다낭에선 2021년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미군 수송기 바퀴에 주민들이 매달리던 것과 유사한 탈출극이 1975년 3월 말 벌어졌다. 한 달 뒤 수도 사이공(현재 호찌민)의 대통령궁이 함락돼 남베트남은 패망했다. -
서의동 칼럼 일본은 외교합의를 잘 지켰나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후의 한·일관계는 ‘한국이 외교합의를 위반했다’는 일본의 프레임에 지배됐다. 문재인 정부는 피해갔지만 윤석열 정부는 딱 걸려들었다. ‘2018년 대법원 판결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간의 모순’(요미우리신문 인터뷰)을 참을 수 없던 윤석열 대통령은 제3자 변제 해법을 몸소 고안해 여론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시켰다. ‘한국은 국제법을 안 지키는 나라’란 주문을 4년 넘도록 외워온 끝에 일본은 승리했다. 일본 기업들은 배상 책임을 면했고, 서울을 찾은 총리는 ‘마음 아프다’는 개인 감상으로 강제동원의 사과·반성을 갈음했다. ‘국제법을 어긴 한국의 심각한 죄에 비하면 80년 전 고릿적 과오가 무슨 대수인가.’ 윤석열의 가치외교가 빚어낸 가장 스펙터클한 ‘가치전도(顚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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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의 단도직입 “음악은 정답 없는 것들 찾아가는 작업”…고독한 우주항해와 닮았다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 본명은 고윤하, 1988년생. 16세인 2004년 일본에서 먼저 데뷔한 뒤 2006년부터 국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파워 보컬과 감성 보컬 양쪽의 장점과 이미지를 두루 갖춰 록, 발라드, 재즈, R&B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가수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3월 발표한 ‘사건의 지평선’이 역주행하면서 각종 음악차트를 석권했고, 제37회 골든디스크어워즈, 제32회 서울가요대상,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 등 6개 상을 휩쓸었다. -
서의동 칼럼 바이든의 미소에 속고 있다 “무너진 한·미 동맹을 재건하겠다”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국의 ‘동맹 중독’은 한층 심각해졌다. 미국 CIA가 대통령실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미국을 향한 항심(恒心)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서울 도심에 걸린 현수막엔 ‘한·미 동맹 완성’ 글귀가 선명하다. 보수층의 맹목 지지라는 고정값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좌초, 대중 여론 악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노회함이 가세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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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오카쿠라 덴신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1862~1913)은 일본 메이지 시대의 미술평론가이자 국수주의 사상가이다. 개항기 요코하마에 살던 오카쿠라는 어릴 적부터 서양인이 개설한 영어학원에 다니며 영어를 익혔다. 도쿄대학에 입학한 뒤 미국인 미술연구가 페놀로사와 인연을 맺었고 그와 함께 일본 각지의 고사찰을 연구하면서 미술사가로 입지를 굳혔다. 러일전쟁을 전후로 자신의 저작을 해외에서 영어로 출간했다. 일본 미술·문화를 선전하는 한편, 일본의 조선 병합이 타당하다는 논리를 서구로 전파했다. -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대북 강경책 펴다 북·일 접근 땐 한국 소외…미·일 일변도 벗어나야”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도쿄대 대학원 총합문화연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도호쿠(東北)대, 국민대를 거쳐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전후 일본의 정치와 외교를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문맥에서 추적·분석하고,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와 평화운동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강제동원 등 한·일관계 현안에 대해 꾸준히 발언해왔다.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제자다. 저서로는 <기지국가의 탄생-일본이 치른 한국전쟁> <아베 시대 일본의 정치와 외교-보수정치가 주도하는 국가혁신> 등이 있다. -
여적 궈차오(國潮)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서구열강의 제품들이 중국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1847년 상하이에서는 외국 상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양행(洋行)들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 24개국과 거래하고 있었다. 1890년대 들어선 상하이의 거의 모든 백화점이 양화(洋貨·외국 상품)를 판매했고, 1917년 상하이 난징루에 들어선 백화점들은 외국 상품만을 취급했다. 1890년대부터 진출한 일본 자본은 고무신 등 소비품은 물론 기계, 방직업 등으로도 진출하며 중국 경제를 잠식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