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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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의 단도직입 “음악은 정답 없는 것들 찾아가는 작업”…고독한 우주항해와 닮았다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 본명은 고윤하, 1988년생. 16세인 2004년 일본에서 먼저 데뷔한 뒤 2006년부터 국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파워 보컬과 감성 보컬 양쪽의 장점과 이미지를 두루 갖춰 록, 발라드, 재즈, R&B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가수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3월 발표한 ‘사건의 지평선’이 역주행하면서 각종 음악차트를 석권했고, 제37회 골든디스크어워즈, 제32회 서울가요대상,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 등 6개 상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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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바이든의 미소에 속고 있다 “무너진 한·미 동맹을 재건하겠다”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국의 ‘동맹 중독’은 한층 심각해졌다. 미국 CIA가 대통령실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미국을 향한 항심(恒心)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서울 도심에 걸린 현수막엔 ‘한·미 동맹 완성’ 글귀가 선명하다. 보수층의 맹목 지지라는 고정값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좌초, 대중 여론 악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노회함이 가세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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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오카쿠라 덴신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1862~1913)은 일본 메이지 시대의 미술평론가이자 국수주의 사상가이다. 개항기 요코하마에 살던 오카쿠라는 어릴 적부터 서양인이 개설한 영어학원에 다니며 영어를 익혔다. 도쿄대학에 입학한 뒤 미국인 미술연구가 페놀로사와 인연을 맺었고 그와 함께 일본 각지의 고사찰을 연구하면서 미술사가로 입지를 굳혔다. 러일전쟁을 전후로 자신의 저작을 해외에서 영어로 출간했다. 일본 미술·문화를 선전하는 한편, 일본의 조선 병합이 타당하다는 논리를 서구로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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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대북 강경책 펴다 북·일 접근 땐 한국 소외…미·일 일변도 벗어나야”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도쿄대 대학원 총합문화연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도호쿠(東北)대, 국민대를 거쳐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전후 일본의 정치와 외교를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문맥에서 추적·분석하고,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와 평화운동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강제동원 등 한·일관계 현안에 대해 꾸준히 발언해왔다.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제자다. 저서로는 <기지국가의 탄생-일본이 치른 한국전쟁> <아베 시대 일본의 정치와 외교-보수정치가 주도하는 국가혁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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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궈차오(國潮)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서구열강의 제품들이 중국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1847년 상하이에서는 외국 상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양행(洋行)들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 24개국과 거래하고 있었다. 1890년대 들어선 상하이의 거의 모든 백화점이 양화(洋貨·외국 상품)를 판매했고, 1917년 상하이 난징루에 들어선 백화점들은 외국 상품만을 취급했다. 1890년대부터 진출한 일본 자본은 고무신 등 소비품은 물론 기계, 방직업 등으로도 진출하며 중국 경제를 잠식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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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은하로 떠난 마쓰모토 레이지 마쓰모토 레이지(1938~2023)가 만화가의 꿈을 안고 도쿄로 상경한 것은 19세가 되던 1957년. 고속철도 신칸센이 없었던 당시 그가 살던 일본 규슈에서 도쿄까지는 열차로 꼬박 하루가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그의 대표작 <은하철도999> 주인공 철이가 탄 것과 같은 구식 좌석에 앉아 흥분에 휩싸인 채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떠올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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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한국 경제 위기는 대전환의 기회…공공정책이 혁신 뒷받침해야”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노트르담대, 영국 케임브리지대, 일본 리쓰메이칸대를 거쳐 1998년부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개혁적 시각에서 한국 경제의 발전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으며 경제 성장, 소득 분배, 경제 민주화 등 분야에서 정책 대안을 제시해 왔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생활방역위원회 등에서 정책 자문을 했다. 2019년 발표한 ‘전환적 뉴딜’ 보고서가 ‘한국판 뉴딜’ 정책의 밑거름으로 평가받아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유종일의 진보 경제학> <경제119> <위기의 경제> <경제 민주화가 희망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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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키리바시의 한국인 유해 적도 근처 태평양에 산호초로 이루어진 타라와섬.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서서히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 키리바시공화국의 수도다. 80년 전 ‘철의 폭풍’이 타라와섬에 몰아쳤다. 1943년 11월 일본군이 장악한 섬에 미군이 상륙을 시도하면서 벌어진 ‘타라와 전투’다. 과달카날 해전 승리로 태평양전쟁의 승기를 잡은 미군은 태평양의 일본군 전략거점을 하나씩 탈환한 뒤 일본 본토로 북진한다는 구상 아래 타라와섬에 3만5000명을 투입했다. 함포사격과 함재기 공습으로 주력을 파괴한 뒤 해병대를 상륙시키면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전투가 일본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수천명이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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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횡재세 ‘횡재세’는 이미 100년 전부터 주요국들에서 시행돼왔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전시이윤 원리’를 환수해 전비 조달에 기여토록 하는 횡재세를 도입했다. 미국에서도 1917년 ‘수익률 8%’를 초과하는 자산소득에 최고 80%까지 세금을 물렸다. 영국은 1997년에도 공공부문 민영화 과정에서 발생한 시세차익을 환수하기 위해 횡재세를 도입했다. 일본도 2004년 미국계 펀드 리플우드가 공적자금 370억달러가 투입된 신세이은행 주식을 사고팔아 막대한 차익을 거두고도 세금 한 푼 내지 않게 되자 횡재세인 ‘신세이(新生) 조항’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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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43년 만의 참배 5·18 이듬해 입학한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이었다. 매주 한차례 성경수업을 담당하는 전도사 선생님은 어깨가 떡 벌어진 특전사 출신이었다. 5월 어느날 수업 도중 불쑥 광주 이야기를 꺼냈다. 5·18 당시 진압군으로 광주에서 겪은 경험담이었다. 평소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어쩔 수 없이 총을 쏴야 했다”며 미간을 일그러뜨리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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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평양 폭격’ 사진 공개 한국전쟁 시기 미군 공중폭격에 대해서는 민간지역 폭격을 부정하는 주장과 초기부터 무차별 폭격이 이뤄졌다는 주장이 맞서왔다. 한국전쟁 연구자 김태우는 두 ‘신화’를 벗겨내기 위해 미 국립문서보관소와 미공군역사연구실 문서 10만장을 뒤졌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미 공군 조종사의 ‘일일임무보고서’였다. 일일임무보고서는 미군 지도부에 의해 검열되지 않은 1차 사료여서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였다.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창비)으로 2013년 출간된 연구에 따르면 미군은 전쟁 초기 군사목표에 한정한 ‘정밀폭격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당시 전폭기는 항속거리가 짧아 목표지역에서 정찰 후 폭격을 수행하기 어려웠고, 전폭기를 안내하는 전술항공시스템은 불안정했다. 조종사들은 단시간 내에 육감과 우연, 자의적 판단에 의해 표적을 식별·공격해야만 했다. 오폭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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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자문단 공화국 참여정부는 ‘위원회 공화국’으로 불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위원회에 힘을 실으면서 김대중 정부 때보다 60%가 많은 579개 위원회가 만들어지자 나온 비판이다. 그러나 위원회 숫자는 진보·보수 정부 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가 초기에 431개까지 줄였으나 말기에 505개로 늘어났고, 박근혜 정부 때는 554개 위원회가 활동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좀 더 늘어난 622개였다. 정부 위원회는 정책 결정에서 전문성 보완과 사회적 합의 도출을 목적으로 한다. 의견수렴이 지연되거나 행정 독주를 추인하는 부작용도 없지 않지만 공정성 확보, 이해관계 조정 등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위원회는 ‘행정 민주화’의 지표이기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