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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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유럽의 마녀사냥은 15~18세기의 광범위한 기간에 걸쳐 이뤄졌다. 이웃들의 신고로 붙잡힌 마녀들은 특별재판소에서 이단심문관에게 죄를 추궁당하는 과정에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살아남더라도 처형되기 일쑤였다. 마녀를 가리는 기준은 야간 집회인 ‘사바트’에 참가했는지 여부였다. 사바트에서는 악마숭배, 유아살해, 인육섭취 등이 저질러졌다고 당시 사람들은 믿었다. 마녀사냥의 극성기인 1560~1660년대는 종교개혁이 한창이었다. 종교개혁의 거센 도전에 위기감을 느낀 가톨릭 교회는 중세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마녀재판과 마녀사냥에 매달렸다. 흑사병을 비롯한 감염병, 경제위기 등으로 흐트러진 민심을 다잡는 데 마녀사냥은 안성맞춤의 제의(祭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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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개성공단 폐쇄 5년 ‘유감’ 개성공단 가동 초기이던 2006년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 광저우와 선전을 시찰했다. 1979년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후 괄목상대하게 성장한 선전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저개발국의 경제특구는 초기 노동집약적 위탁가공업에서 시작해 기술집약적 산업을 거쳐 하이테크 산업으로 옮겨 가는데 선전이 그 대표 사례다. 선전과 개성은 닮은 점이 많다. 홍콩과 인접한 선전이 초기 화상(華商)자본으로 성장했듯 개성공단도 남한 기업들 투자가 자양분이다. 홍콩에서 관광객들이 버스로 1시간 거리의 선전을 찾는데, 서울 은평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개성도 관광 여건이 그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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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손정의의 ‘경계넘기’ 재일동포 기업인 손 마사요시(孫正義·64)는 고교 시절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료마가 간다>를 읽고 에도시대 말기의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에 매료됐다. 시코쿠의 하급무사였던 료마는 시대를 뛰어넘는 혜안과 지략으로 일본 근대화의 길을 연 인물이다. 료마가 탈번(脫藩·자신이 속한 제후국을 벗어남)의 결행을 통해 새 시대를 연 것처럼 손 마사요시도 16세의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오름으로써 ‘경계를 넘는’ 인생을 펼쳐갔다. 손 마사요시는 귀국 후 후쿠오카에서 ‘유니슨 월드’라는 컴퓨터 도매회사를 차렸다가 이듬해인 1981년 소프트웨어 도매, 컴퓨터 잡지 출판 등을 하는 소프트뱅크를 창립했다. 소프트뱅크는 1994년 상장 이후 1996년 야후저팬을 인수하며 성장궤도에 올랐다. 2006년에는 영국의 보다폰 일본법인을 1조7500억엔(18조원)에 인수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무모한 투자라는 초기 비판은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며 찬사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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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먹방’ 대신 배달을 해보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3일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어묵을 먹었다. 민주당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들이다. 국민의힘 나경원 예비후보는 같은 날 양천구 신월시장에서 호떡을 먹었다. 선거철임을 알리는 정치인들의 ‘먹방’ 사진들이 포털 뉴스난을 장식했다. 그런데 올해 먹방투어는 안 하느니만 못해 보인다. 코로나 시대에 예비후보와 수행원, 기자 수십명이 비좁은 시장통로에 뭉쳐 있는 것부터 우선 거슬린다. ‘국민들은 5명도 못 만나게 하면서 정치인들은 떼로 몰려다니냐’는 기사 댓글들은 틀린 게 없다. 모처럼 시장까지 와놓고 상인들과 제대로 대화하는 것 같지도 않다. 경기가 바닥이니 딱한 사정들을 꽤나 들을 법한데도 동영상을 보면 ‘어묵이 진시황 때 만들어졌다’ 따위의 ‘알쓸신잡’성 한담을 주고받는 장면만 도드라진다. 상인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긴 하지만, 왜 현장까지 와서 날것 그대로의 민생을 듣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왕정시대 민정시찰의 유습’이란 조롱을 받는 것이다. “높은 분이 왕림해 ‘밑엣것’들의 음식을 한번 잡수셔 보시고 ‘민심’을 살피신 뒤 선정을 베푸시는, 이런 세팅이죠.”(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페이스북) 시장 방문으로 ‘서민 이미지’를 만들기는커녕 ‘서민’들과의 간극만 더 벌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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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한·일 가교 이수현 20주기 일본의 전철망은 촘촘하기로 유명하다. 광역자치단체를 잇는 간선철도부터 짧은 구간을 오가는 ‘마을 전철’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플랫폼 스크린도어 설치는 2010년대 들어서야 본격화됐고, 그 전까지는 사람이 선로에 뛰어들거나 떨어지는 사고가 잦았다. 일본 철도는 정시운행이 잘 지켜지지만, 인명사고가 많은 노선에선 열차가 서서 낭패 보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사고의 절반 이상이 ‘자살’이라는 사정을 고려하면 가볍게 불평할 수만은 없다. 2005년부터 10년간 철도 자살 사건은 6000건에 달했다. 2001년 1월26일 저녁에도 한 취객이 선로에 뛰어들었다. 도쿄 도심을 순환하는 JR야마노테선의 신오쿠보역이다. 플랫폼에 있던 일본인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당시 47세)와 유학생 이수현씨(26세)가 취객을 구하러 뛰어들었으나 열차를 피하지 못해 3명 모두 숨졌다. 이씨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역 구내에는 그를 기리는 추모패가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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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북한 지도자 직함 미·중 갈등이 신냉전으로 치닫던 지난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국과 중국 지도자에 대한 호칭 격하(格下)운동이 벌어진 바 있다.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PRC)이나 ‘차이나’ 대신 ‘중국 공산당’으로, 시진핑 국가주석을 ‘주석(president)’이 아니라 ‘총서기(general secretary)’로 부르는 식이다. 총서기는 시진핑 주석이 겸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직함이다. 대중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 운동을 확산시켰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 권위주의 체제를 비판하려는 일종의 ‘색깔공세’였다. 운동은 꽤 조직적이어서 지난해 5월 발간된 백악관의 대중전략 리포트에는 시진핑 주석의 직함이 모두 ‘총서기’로 표기됐다. 미 의회 공화당 의원들은 공문서에서 시 주석을 ‘president’로 표기하는 것을 금지하는 ‘적 명칭 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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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국가보안법 놔두고 ‘표현의 자유’ 외치나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누명을 썼다가 지난 25일 대법원 판결로 7년 만에 무죄가 확정된 홍강철씨는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받은 경험을 묻자 “1주일이 아니라 하루도 버티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가 갇힌 독방은 안에서는 열 수 없는 구조였고, 폐쇄회로(CC)TV가 24시간 감시했다. 구치소에 머물며 검찰에 가서 조사받는 방식과 달리, 생활공간과 조사공간이 동일할 경우 피조사자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한다. 실상이 폭로되면서 조사기간이 단축되고, 독방 수용은 폐지됐다. 국가정보원법 개정으로 대공수사권도 3년 뒤 경찰로 이관된다. 하지만 국정원이 탈북인들을 조사하는 기본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홍씨 변호인인 장경욱 변호사는 “이대로라면 국정원의 간첩 생산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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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깜깜이’ 예산 소소위 국회가 지난 2일 본회의에서 558조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깜깜이’ 심사와 나눠먹기 증액이 되풀이됐다. 지역구 민원이 집중되는 국토교통위, 농림축산해양위, 산자위 등을 중심으로 증액 요구가 쇄도하면서 상임위 예비심사에서만 정부 예산안보다 9조6000억원이 불어났다. 예결위에서는 예산안 제안설명→전문위원 검토보고→종합정책질의→부별 심사 또는 분과위원회 심사→예산안 조정소위 심사→찬반토론의 순서를 거쳐 예산안을 확정한다. 예결위 의원만 50명에 이르다 보니 본격 심사는 여야 의원 15명으로 구성된 예산안 조정소위가 맡는다. 하지만 심사 막바지 국면이 되면 ‘소(小)소위’로 불리는 비공식 협의체가 등장해 최종 조율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올해에는 정성호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인 박홍근(민주당)·추경호(국민의힘) 의원 등 3인이 소소위를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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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이란의 반등 “수십년의 긴장과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외교와 조정, 협력을 보여주는 결정”(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으로 평가된 2015년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이란 핵합의)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으로 파기 수순에 돌입했다. 이란을 적대국으로 돌리고 페르시아만을 중심으로 중동을 갈라 친미 진영을 결집시키자는 것이 트럼프 중동정책의 핵심이다. 이란을 파트너로 삼으려던 오바마의 중동정책을 거꾸로 세운 것이다. 지난 9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바레인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아브라함 협정’ 체결로 이 구상은 급진전했다. 이스라엘은 최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걸프지역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극비 방문했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운신의 폭을 넓혔다. 이란과 중동의 패권을 다퉈온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수교한다면 중동구도가 ‘반이스라엘 동맹’에서 ‘반이란 동맹’으로 재편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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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바이든의 전략적 인내’ 없게 하려면 ‘미국 오바마 정부 초기 북한이 쏜 미사일 한 방이 전략적 인내를 초래했다’는 인식에는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은하 2호’를 발사한 것은 2009년 4월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 특별연설을 하기 몇 시간 전이었다. 세계의 시선이 프라하에서 일제히 평양으로 쏠리며 체면이 구겨지자 오바마의 대북 태도가 일거에 경직됐다. 그런데 북한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한·미 양국은 북한 급변사태 대비 ‘작전계획5029’를 구체화한다. 한·미 군수뇌부는 ‘북한 정권교체’를 공공연히 거론했다.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공개석상에서 “북한에 대한 전면전, 북한의 불안정 사태, 정권교체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고도 했다. 잔뜩 날이 선 북한은 2009년 3월 북·미 장성급 회담에서 키리졸브 훈련 중단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연례적인 방어 훈련’이라며 일축했다. 훈련 실시에 북한은 로켓 발사로 대응했다. 임기 초반의 ‘강 대 강’ 대치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태도가 얽히며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빠르게 탄력을 잃었다. 당시 북한의 권력승계를 위한 정치적 필요도 있었지만, 한·미연합훈련이 로켓 발사에 안성맞춤의 빌미가 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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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북한의 금연법 한국 사회에서도 1980년대까지는 사람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 사무실은 물론이고 집집마다 안방에 큼직한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시내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워댔다. 하지만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 제정으로 흡연에 대한 법적 규제가 도입되기 시작했고,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가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금연이 급물살을 탔다. 북한의 금연운동도 그다지 늦은 편은 아니다. ‘던힐’을 즐겨 피우던 애연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1년 담배를 끊은 것을 계기로 흡연의 폐해가 지적되기 시작했고, “담배는 심장을 겨눈 총과 같다”는 식의 금연 포스터가 곳곳에 걸렸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2005년 ‘담배통제법’을 제정해 병원이나 진료소, 열차, 버스 등 대중교통 시설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한국의 금연클리닉에 해당하는 ‘금연연구보급소’가 설치되고 니코틴반창고(금연패치) 같은 금연보조제도 개발됐다. 세계보건기구(WHO) 조사에 따르면 수치상 북한 남성의 흡연율은 2006년 54.8%에서 2016년 37.3%로 크게 낮아졌다. ‘고난의 행군’ 이후 경제 활동에 나서면서 여성들의 발언권이 높아진 것이 남성들의 무절제한 흡연문화를 바꾸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북한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여전히 흡연 장면이 공개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담배 사랑이 각별해 금연이 얼마나 실효를 거두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에서는 담배연기를 ‘남자의 늠름한 향기’라고 할 정도로 흡연이 남성성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담배는 남성우위의 권위주의 사회에 어울리는 기호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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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사람 잡는 UPH(unit per hour) 1936년에 공개된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주인공 리틀 트램프(찰리 채플린 역)는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하는 제품의 나사를 조이는 것이 업무다. 잠시 쉬려 해도 사장이 텔레스크린에 등장해 호통친다. 일에 치인 트램프는 모든 사물을 조이려는 강박증에 걸려 한바탕 소동을 벌이다 정신병원에 끌려간다. 컨베이어 벨트는 조립생산 방식(assembly line)을 구현하기 위해 고안됐다. 미국 미시간주의 포드 자동차 공장(하이랜드 파크)은 4층에서 시작된 작업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자동차가 점차 완성되는 구조로 설계됐다. 노동자들은 제자리를 지키며 할당 업무만 완수하면 되는 방식으로 노동효율을 극대화했다. 포드 자동차의 모델 T는 이런 방식을 통해 730여분의 조립시간이 93분으로 단축됐다. 테일러리즘, 포디즘 등 과학적 경영관리법은 시간·동작연구를 바탕으로 설계한 표준작업량을 도입해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인간을 기계의 일부로 전락시켰다는 비판, 노동자들에 대한 불신에 기초한 ‘저신뢰 체제’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