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찬
선임기자
이미지와 텍스트와 사운드에 두루 관심이 있습니다. 단언하지 않고, 목소리 높이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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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손끝에서 살아난 ‘베토벤 소나타 17번’ 각양각색 선율 여느 때라면 친구들과 시끌벅적 웃으며 떠들 법한 아이들이 모였는데, 이날만큼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듯 고요하다. 하나같이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아이들의 얼굴엔 긴장감을 넘어 엄숙함까지 감돈다. 조별로 정해진 시간에 모인 아이들은 연주 순서를 추첨한 뒤 차례로 연습실에 들어간다. 간략히 손을 풀 수 있는 몇분간의 연습 시간이 주어진다. 연습을 마치면 무대 뒤편 대기 장소로 향한다. 앞 순서 참가자의 연주를 들으며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한 채 허공의 보이지 않는 건반을 누르며 연습하기도 하고, 손이 굳을세라 핫팩을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마침내 순서가 되면 심사위원과 참관객이 지켜보는 무대로 오른다. 지난 몇 달간 이날을 위해 수천 번 연습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1악장을 연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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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하면 고대부족이 나타나 노래하고 춤을 춘다고?···뮤지컬 ‘더 트라이브’ 거짓말을 할 때마다 낯선 고대 부족이 나타나 노래하고 춤 춘다. ‘나다운 삶’을 살지 못해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는 두 주인공은 더 큰 곤경에 빠진다. 서울시뮤지컬단 신작 <더 트라이브>는 황당한 설정으로 시작하는 뮤지컬이다. 유물복원가 조셉은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 못해 억지로 소개팅을 하는 처지다. 시나리오 작가 끌로이는 더 상업성 있는 글을 요구하는 프로듀서의 요구에 매번 계약 직전 좌절한다. 우울한 청춘이 주인공이지만, <더 트라이브>는 ‘결론은 해피엔딩’이라고 확실히 못 박은 뒤 신나게 앞으로 나아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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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연주하지 않은 연주자가 박수 받은 이유 수차례 커튼콜을 받은 연주자가 마침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관객들은 숨죽이고 긴장한 채 앙코르 곡을 기다렸다. 시간이 흘렀다. 연주자는 여전히 건반 위에 손을 얹지 않았다. 서서히 연주자의 의도와 곡명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일 저녁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다닐 트리포노프가 연주한 앙코르 곡은 ‘4분 33초’였다. 미국의 아방가르드 작곡가 존 케이지의 곡으로 1952년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가 미국 뉴욕 매버릭 콘서트홀에서 초연했다. 사실 이 곡은 ‘곡’이라 부르기 애매하다. 4분 33초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 곡이기 때문이다. 3악장으로 구성돼 있지만 시간을 재지 않는 이상 관객이 악장을 구분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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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박소영, 줄리엣 역 맡아 ‘메트’ 무대에 소프라노 박소영(38·사진)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의 구노 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역 줄리엣 역으로 공연했다. 박소영의 한국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에투알클래식은 1일 이 같은 소식을 전했다. 박소영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야니크 네제세갱이 지휘하는 메트의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에 섰다. 박소영의 공연은 줄리엣 역의 소프라노 네이딘 시에라가 시작 2시간 전 질병으로 출연을 취소하면서 이뤄졌다. 박소영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 공연일 동안 커버를 맡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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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박소영, 공연 2시간 앞두고 메트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엣으로 발탁 소프라노 박소영(38)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의 구노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역 줄리엣 역으로 공연했다. 박소영의 한국 매지니먼트를 맡고 있는 에투알클래식은 1일 이같은 소식을 전했다. 박소영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야닉 네제 세갱이 지휘하는 메트의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에 섰다. 이날 박소영의 공연은 줄리엣 역의 소프라노 나딘 시에라가 공연 2시간을 남기고 질병으로 출연을 취소하면서 이뤄졌다. 박소영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 공연일 동안 커버를 맡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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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숙 정동극장 대표 “초연 후 사라지는 수작 찾아 지원할 것” 적벽돌 건물들이 자아내는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 정동길을 걷는다. 그 한가운데 나지막한 원기둥이 전면부를 장식한 건물이 있다. 아침이 되면 커다란 나무 대문이 열린다. 아담한 마당으로 들어서면 전수천의 대형 벽화와 명창 이동백 동상이 관객을 맞이한다. 구불구불한 원형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300여 석의 아담한 공연장이 자리했다. ‘국립’이란 수식을 생각하면 국립정동극장은 작다. 공간의 의미까지 작지는 않다. 이곳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의 복원이라는 취지를 품었다. 한때 관광객을 위한 전통 공연에 치중했고, 현재는 근현대 문화예술의 출발지라는 정동의 의미를 살리는 공연을 다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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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190분간 출렁이는 도저한 슬픔의 강···창극 ‘리어’ <리어왕>은 셰익스피어 비극 중에서도 가장 처절한 작품으로 꼽힌다. 믿었던 두 딸에게 배신당한 뒤 광기에 사로잡혀 광야를 헤매는 늙은 리어의 모습은 삶의 비극성을 함축한다. 국립창극단의 창극 <리어>가 2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했다. 2년 전 초연해 ‘객석 점유율 99%’를 기록하며 호평받은 작품의 재연이다. 연출·안무 정영두, 극작 배삼식, 작창·음악감독 한승석, 작곡 정재일 등 해당 분야 최고 수준 창작진의 협업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첫째 딸 거너릴, 둘째 딸 리건의 아첨에 속은 리어가 말로 애정 표현을 못 하는 셋째 딸 코딜리어를 내치는 익숙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충직한 신하 글로스터가 둘째 아들의 음모에 속아 첫째 아들을 오해하는 대목도 그대로다. 리어가 미친 뒤, 글로스터가 두 눈을 잃은 뒤에야 진실을 깨닫는다는 흐름도 같다. 배삼식은 원작 줄거리에 큰 변형을 주는 대신, ‘천지불인’(天地不仁·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다)이라는 노자의 철학을 끌어들여 세상사의 잔혹함을 말한다. 원작을 가족 내 권력 다툼으로 발생한 비극으로 해석하지 않고, 손에 쥔 한 줌 권력이 영원한 줄 아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들춰내며, 알량한 지위를 벗겨내면 ‘그림자’ 뿐인 사회적 인간의 조건을 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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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쿠르 사냥꾼’ 트리포노프가 말하는 콩쿠르의 장점과 단점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다닐 트리포노프(33)가 4월 내한공연을 펼친다. 프로그램이 독특하다. 1일(롯데콘서트홀)엔 ‘Decades(데케이드)’란 부제로 1900~1980년대 작곡된 현대 곡들을 연주한다. 2일(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엔 ‘Hammerklavier(함머클라비어)’란 부제로 모차르트, 베토벤 등 보다 정통적인 곡을 들려준다. 트리포노프의 도전적인 면모를 보고 싶은 관객은 1일, 베토벤의 역작 ‘함머클라이버’를 듣고 싶은 관객은 2일을 택하면 된다. 트리포노프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트리포노프는 ‘데케이드’ 프로그램은 “나 자신에 대한 실험”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창 시절에는 주로 고전, 낭만, 바로크 시대의 레퍼토리에 많은 중점을 두었다. 이번에 제가 선보일 작품들에서는 한 세기 동안 각각의 다른 작곡가들이 피아노라는 악기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치 그 이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베르크의 소나타, 프로코피예프의 ‘풍자’, 코플랜드의 변주곡, 메시앙의 ‘아기 예수의 입맞춤’, 슈톡하우젠의 ‘피아노 소품’, 존 애덤스의 ‘차이나 게이트’ 같이 실연으로 들을 기회는 적지만 “각각의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독창적인 작품들의 집합체”를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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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러시아 혁명 위해 책 읽은 지식인 스탈린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무엇일까. ‘개인 숭배’를 강조하고 ‘피의 숙청’을 단행하며 인민 수십만명을 죽음에 빠트린 무자비한 독재자 아닐까. 이 모든 행동에서 지적인 ‘독서’나 ‘책’을 연상하긴 어렵다. 소련 외교와 군사정책, 스탈린 체제 전문가인 제프리 로버츠 코크대 역사학 명예교수는 “독서에 몰두하고 자기계발에 적극적이었던 스탈린은 평생 책을 열광적으로 모았다”고 전한다. 스탈린 사망 당시 그의 장서는 2만5000권의 책과 정기간행물, 팸플릿 등으로 구성됐다. 책을 그저 모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스탈린은 이 책들을 열정적으로 읽고 주석을 달고 분류했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글들을 가장 열심히 읽었지만, 카우츠키,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등 스탈린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글도 읽었다. 심지어 독일의 비스마르크나 영국의 처칠 같은 부르주아 정치가들도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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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추모비, 학전 터에 그대로 남는다 학전 소극장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광석 추모비와 <지하철 1호선> 원작자(극작가 폴커 루드비히·작곡가 비르거 하이만) 흉상이 학전 폐관 이후에도 현재 자리를 지킨다. 학전은 28일 이 같은 내용을 알렸다. 1991년 3월 15일 개관해 33년간 대학로 공연문화의 정신이었던 학전은 지난 14일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운영을 멈췄다. 현판은 31일 철거되지만 이후에도 김광석 추모비와 학전의 대표작인 <지하철 1호선> 원작자 흉상은 남는 것이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에는 총 20회 공연에 가수 33팀, 배우 92명이 참여했으며 3128명의 관객이 전회 객석을 매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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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교화시설의 로미오와 줄리엣···매튜 본 신작 국내 초연 매튜 본이 안무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5월8~19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한국 초연된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가 쓰고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한 작품이다. 본은 이 작품을 근미래 청소년 교화시설 배경으로 재창조해 2019년 초연했다. 새하얀 타일로 된 벽, 경비원들의 규율과 통제가 삼엄한 ‘베로나 인스티튜트’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힌 청소년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아슬아슬 이어진다. 본은 약물, 트라우마, 우울증, 학대, 성 정체성 등 청년 세대가 마주한 문제들을 묘사하며 ‘MZ 세대를 위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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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테너 자루스키 “이 미친 세상에서 ‘마태수난곡’으로 3시간의 단절 경험하길” 프랑스 출신의 세계 최정상 카운터테너 필리프 자루스키(46)가 한국에 온다.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마태수난곡’에서 노래하기 위해서다. 바흐의 ‘마태수난곡’은 종교음악 최고 걸작이자 바로크의 위대한 유산으로 꼽힌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린 이 곡은 바흐 서거 이후 잊혔다가 초연 후 100년이 지난 1829년 20세 청년 멘델스존이 발굴해 무대에 올려 널리 퍼졌다. 다만 전곡 연주에 3시간 가까이 걸리고, 고악기를 다루는 연주자가 많지 않아 실연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다. 자루스키는 고음과 중음이 모두 자연스럽고 감정 표현력도 좋은 가수다. 17세기 이탈리아 음악부터 재즈까지 레퍼토리도 넓다. 2014년과 지난해 내한해 한국 관객을 만난 적이 있다. 자루스키는 e메일 인터뷰에서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콘서트에서 영성과 아름다운 음악을 느끼는 것은 관객에게 매우 중요하다”며 “3시간 동안 앉아 침묵을 지키며 미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