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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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칼럼 여당, 침묵은 독이다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다시 인용해보자. 요즘 우리로선 너무나 낯설고, 또 부럽기도 해서다. 바로 미국 백악관과 행정부 고위 관리들의 ‘미친 트럼프 막아내기’ 이야기다. 첫번째 주인공은 명령에 죽고사는 군인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다. 트럼프는 2020년 5월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을 메운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대를 거론하며 “총으로 그들을 쏴버릴 수 없나. 다리든 어디든 그냥 쏘라”고 밀리에게 명령했다. 지하벙커로 피신할 만큼 트럼프가 위협을 느낀 터라, 단순히 화풀이식 명령으로 치부할 상황이 아니었다. 밀리는 발포를 거부했다. 또 그는 대선을 즈음해서는 흥분한 트럼프가 우발적으로 전쟁을 벌일 것을 염려해 중국에 두 차례 비밀전화를 했다. “우리는 중국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트럼프가 대선 결과에 불복할 기미를 보였을 때에는 평화적 이양을 위해 막후 협의를 진행했다. 트럼프와 함께 퇴임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여기에 참여했다(<분열자: 백악관의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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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칼럼 서해 피격, 이상하고 위험한 수사 세상은 온통 이태원 참사로 슬픔에 잠겨 있지만, 국방부와 군은 열흘 전 일로 침잠해 있다.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의 구속이 남긴 충격파가 작지 않아서다. 서 전 장관의 구속이 왜 군을 충격에 빠뜨렸는지, 몇개의 장면을 통해 되짚어보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되어가던 지난 7월7일, 합동참모본부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대응 과정에서 군이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밈스)의 첩보를 삭제했다는 KBS의 보도를 반박했다. 불법 삭제가 아니라 불필요한 첩보의 열람을 막기 위해 배포선을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군의 이런 주장은 결국 무시됐다. 정부는 국가정보원과 검찰, 감사원을 총동원해 수사한 끝에 지난달 22일 서 전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을 구속했다. ‘윤석열 정부의 군’의 논리를, ‘윤석열 정부의 검찰’이 깨고 관련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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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칼럼 감사원의 폭주를 멈춰라 감사원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놓고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서면 조사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측이 반발하자, 감사원은 1993년 노태우, 1998년 김영삼 전 대통령도 감사원 질문서를 받아 답변했노라고 해명했다. 두 사건을 직접 취재한 기자로서 감사원의 터무니없는 궤변과 퇴행이 씁쓸하다. 당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진실을 밝히는 데 핵심적이고도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노태우는 대규모 군수비리인 율곡사업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았고, 김영삼은 외환위기의 책임 문제가 불거져 있었다. 두 사안 모두 양 대통령이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었기에 조사는 피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진상을 밝히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거셌다. 그렇다면 이번 감사는? 감사원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직후부터 전 정권 사람 찍어내기 감사를 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를 수개월째 털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을 놓고도 국방부와 해양경찰청, 국가정보원 등 9개 기관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 감사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다. 그리고 서해 공무원 피살의 진상을 밝히는 데 문 전 대통령 조사가 핵심일까. 오히려 문 전 대통령을 딱 겨냥해 놓고 하나씩 절차를 밟아온 감사라는 느낌이 든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시간의 문제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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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칼럼 법에 갇힌 한국 정치, 윤·이가 풀어라 1997년 10월 중순, 홍사덕 정무1장관이 노란 포스트잇 한 장을 손에 쥐고 정부종합청사 10층 총리실 기자실로 들어섰다. 홍 장관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대뜸, “정치권의 일을 검찰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입을 열었다. 1주일 전, 강삼재 신한국당 의원이 김대중(DJ) 국민회의 후보의 ‘670억 비자금’설을 제기한 데 이어 관련 계좌까지 공개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김영삼(YS) 정권의 정무장관이 야당 대선 후보의 비자금 의혹 사건 수사를 해서는 안 된다니! 홍 장관은 며칠 뒤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홍 장관은 한 공청회에 참석해 “여야가 비자금 문제에 정직하게 접근함으로써 검찰이 정치에 개입하는 사태를 막고, 선거를 통해 국민이 심판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자금 폭로를 중단하고 정책 대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 말이 과연 YS의 뜻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저런 주장이 관철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하지만 며칠 뒤 검찰 수사는 미뤄졌고, DJ는 39만표(1.6%포인트) 차로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를 물리쳤다. 과연 당시 검찰이 비자금 수사를 했다면, DJ 시대가 열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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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칼럼 윤 대통령, 검찰과 절연해야 산다 윤석열 대통령, 요즘 귀가 무척 간지러울 것 같다. 윤 대통령 당선에 앞장선 언론들까지 비판 대열에 가세해 더 이상 말 보태기도 민망하다. 그야말로 시민이 나라와 대통령을 걱정하는 형국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급락하는 속도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더 위험한 것은 추락의 구조와 요인들이다. 지금은 윤 대통령과 정부, 당이 한꺼번에 위기에 빠져든 여권의 총체적인 혼돈이다. 셋 중 어느 한쪽도 추락 속도를 늦출 능력이 없다. 노무현 정부는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도 이런 정도는 아니었다. 윤 대통령이 앞세운 ‘공정과 상식’은 이미 허언이 되었다. 취임사에서 비판한 우리 사회의 ‘반지성주의’ 행태를 스스로 시연하고 있다는 비판은 진보진영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경찰 제도에서부터 탈원전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간여하는 전 분야에서 퇴행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하다 하다 1980년대 용공 조작 및 프락치 공작의 공포까지 되살렸다. 친·인척과 부인 김건희 여사의 지인, 그리고 상대방에게 독설만 날릴 줄 아는 극우 인사들을 대통령실에 줄줄이 들여놓은 것은 차라리 가볍다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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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칼럼 전진의 시대, 후진(後進) 정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어도 국정을 잘 모르는 만큼 윤석열 정부가 조심은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사회 전 분야에서,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역진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첫 조각에서 장관급 인사가 4명이나 탈락한 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청문회도 거치지 않은 인물을 임명함으로써 최소한의 절차까지 허물어뜨렸다. 시민들이 어떻게 만들고 강화시켜온 인사청문회인데…. 그러니 김건희 여사의 사적 동행이나 6촌의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기용이 거리낄 리 없다. 경찰의 중립화도 책임총리제 약속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빨리 후진할 수 있는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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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칼럼 윤석열식 법치주의 윤석열 대통령에게 법치주의는 집권 논리의 근간이다. 검찰총장 시절 추미애 법무장관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에 의해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야당의 대선 후보로 부상했다. 총장직을 사퇴하는 날에도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외쳤다. 당선된 후에도 수시로 법치주의를 앞세운다. 윤 대통령에게 법치주의는 처음이자 끝이다. 법치는 법에 의한 통치(rule of law)를 뜻한다.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 규정이 지배하는 국가원리이다. 그래서 진정한 법치라면 그 집행자가 아니라 행위의 원천인 규정과 시스템만 보여야 한다. 그리고 명확하게 제정된 법규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집행하는 사람이나 대상에 따라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 심지어 최고권력자 자신도 똑같이 적용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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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칼럼 '윤핵관' 위에 ‘검핵관’ 오래전 정부 부처들 사이에도 계급이 있다는 농담조 ‘부처 분류법’을 들은 적이 있다. 내용인즉슨, 자기 조직의 수장도 못 내는 부처가 맨 아래에 있고, 그 위로 자기네 조직의 수장 정도는 내는 부처, 그리고 그것을 넘어 남의 부처에 장까지 내는 부처가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뇌리에 남은 것을 보면 이 분류법에 꽤나 공감했던 모양이다. 그 공직자는 첫번째 부류의 대표로는 교육부를, 그리고 마지막 끗발 있는 부처로는 법무부와 국방부를 꼽았다. 국방부를 예로 든 것으로 볼 때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끝난 지 아주 오래되지는 않았던 시기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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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칼럼 윤석열, 노(NO)를 허하라 최고권력의 권한 행사는 늘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만하면 비판 여론을 따르겠거니 하지만 어김없이 기대를 무너뜨린다. 최고권력의 이런 속성은 임기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용산 이전도, 한동훈 법무장관 지명도 그랬다. 그런데 윤 당선인은 한동훈 지명을 파격이 아니라고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큰 파격으로 국민을 놀라게 하려는 걸까. 윤 당선인에게 한동훈은 그냥 측근이 아니다. 윤석열 광주지검 검사와 한동훈 대전지검 천안지청 검사는 2003년 10월 대검 중수부 대선자금 수사팀에서 처음 만난다. 2002년 대선에 즈음해 5대 재벌이 여야 정치권에 불법 자금을 제공한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수사 좀 한다는 특수통 검사들을 죄다 모았대서 드림팀으로 불렸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선자금으로 각각 823억원, 113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정치인 30여명과 기업인 20여명이 기소됐다. 기업인들은 물론 정치권까지 검찰에 납작 엎드린 시절이었다. 당시 마흔세 살의 윤석열, 서른 살의 한동훈 검사가 정치인과 기업인들을 어떻게 보았을지 짐작이 간다. 이후 두 사람은 2006년 ‘현대·기아차 비자금 사건’ 수사팀을 거쳐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수사팀장과 팀원으로 일한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통상의 검사 선후배가 아니었다. 2017년엔 서울중앙지검에서 지검장과 특별수사를 총괄하는 3차장검사로, 2년 뒤엔 검찰총장과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수직 승진해 손발을 맞췄다. 그리고 대선 한 달 후인 지난 13일 윤 당선인은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최소 3단계를 뛰어넘은 파격적 기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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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칼럼 국민의힘, 한 번이라도 뜨거워보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7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후보자들은 물론 관리하는 쪽도 기본적인 채비조차 못하고 있다. 선거를 치르려면 출마 지역구와 의원 정수부터 정해야 하는데 출발점에서 막혔다. 출마자들은 자기가 출마할 지역구가 어디까지인지, 2명을 뽑는 곳이 될지 4명이 될지 알 수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다. 최악의 ‘깜깜이 선거’는 물론이고 자칫 후보들이 선거법 위반사범이 될 위험마저 있다. 국회가 광역의원·기초의원 선거에 대한 규정을 고치는 일을 하지 못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선거구 획정을 위한 법정 시한(선거 180일 전)을 3개월이나 넘겨놓고도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이날도 헛바퀴만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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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칼럼 최악의 대선에서 차악의 기준 찾기 다음달 10일 자정을 넘어선 어느 시점, 누군가는 대선 승리를 선언할 것이다. 그리고 외칠 것이다. “통합의 정치를 통해 국가를 한 단계 도약시키겠다”고. 그러나 당선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 외침은 이미 공허해진다. 그 말을 믿을 시민이 절반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갈등과 투쟁의 시간은 시작된다. 승리한 쪽은 통합 약속을 저만치 뒤로 미뤄놓을 것이다. 승리의 전리품을 넘길 생각은 꿈도 꾸지 않을 것이다. 혹여 당선자 측이 통합을 말해도 실행 가능성은 없다. 통합은 그 필요성을 뼛속까지 절감하고 실행 의지를 다지고, 실행 계획까지 세워도 쉽지 않다. 하물며 입에 발린 말로 하루아침에 약속한다고 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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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칼럼 이재명과 못다 한 실용외교 토론 열흘 전 한국편집인협회가 주최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외교안보 담당 패널로 나섰다. 패널들의 모든 질문에 이 후보는 망설임 없이 답변했다. 외교안보에 대해서도 자신의 언어로 능숙하게 공약을 설명해, 정책의 대강은 확실히 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캠프 내 전문가들로부터 매일 현안에 대해 보고받는다는 말이 와닿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론회를 마친 후 이 후보의 답변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이 후보는 자신의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 방침에 대해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며 국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특정한 원칙을 경직되게 적용하면 발이 묶인다”고 했다. 실용외교의 핵심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 이익을 찾아가는 것일 수밖에 없다. 혈맹이라는 안보동맹국 미국과 경제적 사활을 쥐고 있는 최대 교역국 중국 사이에서 끝없이 양해와 양보를 얻어가며 균형점을 찾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좇는 것과 다르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도 안전이 보장된 길이 아니다. 유연하게 움직이면서도 미·중 모두에 ‘한국이 안 된다면 안 되는 것’으로 인식시키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 무엇이 바로 원칙이다. 이 후보는 원칙을 정해놓으면 국익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다. 실용에도 분명히 원칙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외교의 좌표를 잡아놓고, 그때 상황에 맞게 조금씩 자세를 조정하는 게 실용이다. 부초처럼 마냥 떠다니다 모두로부터 믿을 수 없는 국가로 낙인찍히면 그보다 더 큰 국익 손실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