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민
경향신문 기자
경향신문기자 겸 그림작가 김상민, 경향신문에 생각그림 연재와 일러스트레이션 작업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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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생각의 가지 생각이 끝도 없이 뻗어 나갑니다. 사랑, 돈, 집, 차, 여행, 가족, 꿈, 미래, 과거, 우주…. 생각이 가지에 가지를 치며 점점 더 넓게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처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멍하니 생각만 하다 귀중한 시간들이 사라져 버립니다. 다시 정신 차리고 이리저리 뻗어 있는 생각들을 접고 접어 정리를 해봅니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세상에 발을 디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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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뻥 뚫린 구멍 점점 말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메신저와 e메일로 웬만한 의사소통은 이루어지고, 얼굴 보고 대화하거나 전화로 말할 기회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전화로 말하기보다는 문자가 편하고, 직접 말하기보다는 메신저로 주고받는 것이 더 편해졌습니다. 사람들은 네모난 화면에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들으며, 입을 꾹 다문 채 손가락만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말해야 할 때, 말하고 싶을 때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제 퇴화한 입은 뻥 뚫린 깊은 구멍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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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빙산의 조각 따뜻한 겨울이 지나고 짧은 봄이 찾아오자마자, 여름이 된 듯합니다. 노랑, 빨강, 분홍색 꽃들은 더운 바람에 휘날려 떨어져버리고, 그 자리에는 다양한 초록색 나뭇잎이 자라났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시간은 사라져버리고, 꼬여버린 지구의 시간은 여름과 겨울만 남아버렸습니다. 남극의 빙산은 녹아내리고, 사막에는 장대비가 내립니다. 거대한 빙산은 뜨거워진 바닷물 속에서 조각나 사라지고, 작은 섬나라는 뜨거운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지구를 위해, 나를 위해, 내 아이를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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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무표정 입꼬리의 크기, 눈썹의 각도, 주름의 깊이, 눈동자의 크기와 방향, 얼굴색의 차이 등. 이런 미묘한 변화로 나의 감정이 표현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나의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데 그게 잘되지 않습니다. 화가 나면 나도 모르게 눈썹은 찌푸려지고, 주름은 깊어집니다. 당황할 때는 얼굴이 붉어지고, 땀이 나며, 눈동자는 춤을 춥니다. 내 속마음을 숨기고 태연한 듯 있고 싶지만, 야속한 내 얇은 껍데기는 내 속마음도 모르고 솔직하게 나의 감정을 표현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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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사람들 말소리 가만히 혼자 앉아 있어도 오만가지 소리가 다 들려옵니다. 바람, 새, 나뭇잎, 음악, 차 지나가는 소리들…. 이런 소리들은 그냥 흘려들을 수 있지만, 사람들 말소리는 그냥 흘러가지가 않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쫑긋하게 합니다. 그냥 조용히 머리를 비우고 멍하니 있고 싶은데, 사람들의 하루 일과와 사랑이야기, 정치 성향, 술 먹고 풀어놓는 신세 한탄까지 다 듣게 됩니다. 내 고민도 산더미인데, 다른 사람들의 고민까지 듣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시끄러운 음악으로 보호막을 치고 다시 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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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자연스럽게 저 초록색 나뭇잎처럼 자연스럽게 살고 싶습니다. 따스한 햇볕과 시원한 물만으로도 쑥쑥 크고 싶습니다. 피곤하면 쉬었다가, 힘이 날 땐 또 있는 힘껏 뛰어오르며 바람 따라 물 따라 자연스럽게 가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앉아서 감상하고, 바람 불면 꽃향기 따라 멀리 떠나고 싶습니다. 내 몸이 자연이 되고, 자연이 내가 되어 자연스럽게 살다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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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봄처녀 다시 봄이 왔습니다. 너무나 긴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었습니다. 봄이 오면서 예쁜 색들도 다시 돌아왔습니다. 죽은 듯한 나뭇가지에도 초록색 새순이 자라나고, 칙칙한 진녹색 잎 위로 예쁜 연두색 아기잎이 자라났습니다. 사람들도 무거운 검정옷을 집어넣고 예쁜 색 옷을 꺼내 입습니다. 봄처럼 예쁜 모습으로, 봄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봄처럼 다시 시작하는 각오로 새 계절을 맞이해봅니다. 봄이 다시 돌아오면서 예쁜 색들도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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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수족관 알록달록 예쁜 수족관에서 왔다갔다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예쁜 물고기가 있습니다. 아무리 최신식, 초대형 수족관이라 해도 그들이 살던 넓은 바다와는 비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물고기는 잡혀서 억지로 좁은 수족관에 있는 것이지만, 난 왜 나만의 거대한 수족관을 스스로 만들어놓고 저 물고기처럼 왔다갔다 하고 있는 걸까요?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더 넓은 곳으로 갈 수 있는데, 난 무엇 때문에 나만의 유리벽을 만들어놓고 이곳에 갇혀서 살고 있는지? 어느 날 다시 용기가 생긴다면 힘찬 꼬리짓으로 저 높은 유리벽을 뛰어넘어 저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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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불꽃처럼 불꽃같은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짧고 강력하게, 한 번에 확 타올랐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기억하게 만들고, 또 나를 잊어버리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모아 멋진 성과를 내고, 그 뒤 조용히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가늘고 길고 조용히 그리고 아주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릴 때 가졌던 그 뜨거웠던 불꽃은 이제 작은 불똥이 되어 내 가슴속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다시 한번 내 가슴속 작은 불꽃에 불을 지펴 크게 한번 터트릴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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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행운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거 같습니다. 내 앞 모든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초록불로 변하고, 역에 들어서자 전동차가 도착합니다. 빈자리가 없어 서 있는데 앞 좌석 학생이 바로 뛰어내립니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고, 카톡을 확인하니 기다려온 상품이 오늘 도착한다고 합니다. 아침부터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리고, 날씨 또한 아주 화창하고 좋습니다. 혹시 몰라 어젯밤 꿈을 생각하며 로또 한 장을 사봅니다. 그리고 이번주 내내 좋은 꿈을 꾸며 행운이 오기를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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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웃음 화가 나더라도 그냥 웃어 봅니다. 혼자 있어도 실없이 웃어 봅니다. 너무 좋은 일이 생기면 더 크게 웃어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감정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웃을 일은 점점 더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억지로라도 자주 웃다 보면, 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먼저 미소 짓고, 먼저 인사하고, 먼저 말을 걸어보며 더 좋은 하루를 만들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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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정신줄 멀리 날아가 사라져버릴까 봐, 바람이 빠져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릴까 봐. 조심조심 나의 정신줄을 꽉 잡아봅니다. 수많은 생각과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기억이 머릿속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오래된 기억들은 저 멀리 사라지고, 잊고 싶은 사람들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립니다. 이 무서운 시간 속에서 나의 정신줄을 단단히 잡고서 잊고 싶지 않은 기억과 소중한 사람과 좋은 생각들을 꽉 잡아매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