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민
경향신문 기자
경향신문기자 겸 그림작가 김상민, 경향신문에 생각그림 연재와 일러스트레이션 작업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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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순정만화 삭막한 도시 한가운데로 바람이 몰려옵니다. 바람 따라 향긋한 꽃향기와 바스락거리는 꽃잎들이 날아옵니다. 따스한 햇살 아래 멍하니 앉아서 온몸으로 새로운 계절을 느껴봅니다. 예뻤던 옛 추억과 눈앞에 보이는 예쁜 연인들을 보며,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내 감정을 느껴봅니다. 마음은 화려했던 젊은 시절 그대로인데, 겉모습은 이제 그저 옛날 추억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순정만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 속에 명랑만화 같은 한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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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봄구경 며칠 전까지만 해도 눈과 우박이 쏟아졌었는데 갑자기 여름이 되어 버렸습니다. 날짜 계산을 잘못한 봄꽃들이 바쁘게 피어났습니다. 거리에는 하얀 벚꽃비가 쏟아지고, 라일락 향기와 사람들의 미소가 퍼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짧은 봄꽃을 구경하려 모여들었지만, 겨울과 여름이 교차하는 날씨에 꽃들처럼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꽃구경 나온 사람들의 옷차림도 패딩부터 반팔 반바지까지 극과 극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봄은 왔지만, 봄을 느낄 시간도 없이 강한 겨울과 여름이 힘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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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당근이세요? 당근~ 당근~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과의 어색한 만남입니다. 다 당근이시죠? 서로 어색한 인사를 하며 어서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싶어 합니다. 재빨리 물건을 대충 확인하고, 후다닥 현금이나 휴대폰으로 물품 대금을 지급합니다. 눈도 못 마주치고 꾸벅 인사를 하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빠른 걸음으로 갈라섭니다. 그리고 한숨 돌리고 나서야 물건을 꼼꼼히 살펴봅니다. 누구에게는 필요 없고, 누구에게는 필요한 물건을 사고파는 중고장터. 낯선 사람들을 만날 일이 없어진 이 시대에, 첨단 기술이 만들어주는 타인과의 새로운 연결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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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불면증 이제는 좀 편하게 모든 것을 잊고, 아무 생각도 없이 겨울잠 자듯 길고 깊은 잠을 자고 싶습니다. 피곤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불면의 시간들이 밤을 더 길게 만들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누웠지만, 온갖 생각들과 고민들이 머릿속에서 돌아다닙니다. 이것이 나의 공상인지, 아니면 그냥 꿈인지 알 수도 없고. 그런 생각들과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다 잠이 깨지만, 아직 밤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잠을 자려고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보지만, 역시나 머리만 아파 오고 또 그렇게 날이 밝아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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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여행 끝도 시작도 없는 넓은 바다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싶습니다. 가슴이 터질 듯이 질주하고, 온몸이 부서질 때까지 날아올라 보고 싶습니다. 지구별에서 제일 크고 힘센 고래처럼 천천히 보고 생각하고 느끼며 여행을 떠나보고 싶습니다. 앞뒤, 좌우, 위아래 끝도 없는 바다와 하늘을 누비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조그만 네모 화면으로 세상을 구경하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떠날 날을 준비하며 조금씩 계획을 세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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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죽음과 생명 앙상한 뼈만 남은 것 같던 가지에서 다시 생명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연초록 새순과 새하얀 목련, 노란 개나리, 분홍 진달래, 빨간 홍매화까지. 꿈틀꿈틀 강인한 생명력으로 긴 겨울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잠깐 한눈판 사이, 잠시 겨울을 즐기는 사이 어느덧 봄은 우리 가까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나쁜 것들도 슬금슬금 다시 기어 나오고 있습니다. 더 이상 커지기 전에, 더 이상 망가지기 전에, 빨리 이 나쁜 싹들을 모조리 잘라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튼튼하고 멋지게 큰 나무 그늘 밑에서 쉬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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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한마음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저마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나이도, 성별도 모두 다르지만,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이곳에 모였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지? 왜 아직도 결정이 나지 않는지?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지? 나쁜 짓을 한 사람은 편하게 집에 누워 있고, 착한 사람들은 왜 이 추운 길바닥에 나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저질러 놓은 사람은 뒤에 숨어 있고, 순진한 사람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고 있습니다. 빨리 이 답답하고 지루한 겨울을 끝내 버리고, 따뜻하고 희망찬 봄날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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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배영 물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봅니다. 온몸에 힘을 빼고 한숨 크게 들이쉬며 흔들리는 물결에 내 몸을 맡겨 봅니다. 찰랑거리는 물방울들이 내 귓가에서 속삭이고, 내 볼에서 춤을 춥니다. 귀엽게 떠 있는 뭉게구름은 하늘을 더 높고 파랗게 만들어 줍니다. 물결 따라 흔들거리는 나의 몸과 마음을 느껴보며, 조금씩 팔다리를 흔들어 서서히 움직여 봅니다. 내 손가락 발가락 사이로 흐르는 물을 느끼면서, 앞으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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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새롭게 바꿔보자 새롭게 모든 것을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처럼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고 모양도 새롭게 바꾸고, 평소 안 입던 옷도 입어봅니다. 새롭게 뜨고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요즘 유행하는 음식도 먹어봅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에도 도전해봅니다. 새 학기, 새봄을 느끼며 새롭게 마음을 먹어봅니다. 좀 더 달라진 나를, 좀 더 나아진 나를 기대해봅니다. 우선 겉모습만이라도 바꾸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나의 앞길을 개척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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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어색한 미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용기가 안 날 때 그냥 씨익 웃어 봅니다. 딱히 할 말이 없을 때도 그냥 씨익 웃어 봅니다. 화가 날 때도 한숨 크게 들이쉬고 씨익 웃어 봅니다. 어색한 침묵보다는 어색한 미소가 더 낫고,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찡그리고 있는 얼굴보다는 어색한 미소라도 짓고 있는 게 좀 더 나아 보입니다. 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니 상대방도 같이 씨익 웃어 보입니다. 그러곤 같이 활짝 웃어 봅니다. 웃으면 복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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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잘생긴 사람 젊었을 때 외모에 그다지 신경 안 쓰고 살았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모두 다 잘 꾸미고 다닙니다. 남자들도 파마하고 화장하고 옷과 시계, 가방·신발 같은 액세서리 등에도 신경을 씁니다. 알 없는 안경에 자연스러운 파마머리, 추운 날씨에도 멋진 롱코트와 명품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젊은 남자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역시나 예쁜 여자친구. 서로 해맑게 웃으며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저도 오래간만에 좀 신경써서 꾸며 입고, 아내 손을 잡고 성급한 봄 나들이를 떠나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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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그림 웃는 연습 사진 찍을 때마다 좀 웃어보라고 합니다. 나름 웃고 있었는데…, 다시 좀 더 크게 입을 벌려 웃어봅니다. 그러나 어색하고 억지로 입만 웃고 있는 모습입니다.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해봅니다. 생각날 때마다 그냥 입꼬리를 올려봅니다. 자기 전 눈을 감고 행복한 생각을 하며 웃어봅니다. 생각날 때마다 행복하고, 예쁘고, 즐거운 상상을 하며 뜬금없이 실실 웃어봅니다. 이렇게 웃는 연습을 하다 보면 정말 웃을 일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