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홍민
논설위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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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누구를 위한 ‘헌법 정신’인가 ‘검사 윤석열’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계기는 2013년 10월 열린 국회 국정감사였다. 박근혜 정권 시절 당시 증인으로 나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 수뇌부가 압력을 행사했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던 의원들을 향해 말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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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반복되는 ‘부조리극’ 언제쯤 막 내릴까 가끔씩 만나 속마음을 터놓곤 하던 동창으로부터 며칠 전 전화가 왔다. 대충 안부를 묻고 나더니 그가 한마디 툭 던졌다. “요새 나라 돌아가는 꼴이 우리 대학 다닐 때 같아….” 장황한 설명이 뒤따랐지만 그 친구의 얘기는 시위를 통제하고 노조를 탄압하는 행태가 1980년대와 비슷하다는 내용으로 요약됐다. 군 출신과 안기부가 장악했던 요직이 검찰로 대체됐을 뿐, 언론 길들이기나 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에 ‘색깔론’을 씌우는 걸 보면 ‘전두환 시대’로 퇴행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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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어느 노동자의 죽음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간한 ‘2022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은 1만3195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36명꼴로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았다는 얘기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4.1명(연령표준화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1위다. 2017년까지 리투아니아에 이어 2위였지만 2018년을 기점으로 1위에 오른 뒤 불명예의 자리에 계속 눌러앉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의 누군가 삶을 등지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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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국민이 ‘실험 대상’인가 일본에서 과로사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였다. 노동자가 장시간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거나 무리하는 바람에 돌연사하는 일이 늘어나면서다. 나보다는 조직을 우선하는 사회 분위기, 거품 붕괴로 구조조정이 잇따르면서 일손이 부족해져 업무량이 가중된 게 원인이었다. ‘일 중독’이 칭찬받는 이상한 기업문화도 과로사를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 일본어로 과로사를 뜻하는 ‘카로시(Karoshi·かろうし)’란 단어가 2002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될 정도였다. 상황이 악화되자 일본 정부는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면밀한 조사와 검토를 거쳐 2014년 11월 뇌출혈, 심혈관 질환에 따른 사망뿐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까지도 과로사에 포함시킨 ‘과로사 등 방지대책추진법’을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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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국민은 피곤하다 물가안정은 역대 정부가 공히 역점을 쏟은 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1970~1990년대 경제 부처는 물론 관공서를 총동원해 물가잡기에 나서곤 했다. 일선 공무원을 중심으로 단속반을 구성하고 음식점·서비스업소를 직접 찾아가 일제단속을 했다. 가격이나 요금을 과다하게 올리면 행정지도를 하고 이에 불응하면 위생검사와 세무조사에 들어가는 등 제재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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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닥공’ 정부 최강희 감독은 극단적인 공격 축구를 선호하는 사령탑이다. ‘닥공’(닥치고 공격)으로 상징되는 그의 축구는 화끈한 공격 전술로 일관한다. 이는 ‘골을 내주지 않으려고 수비 중심의 플레이를 펼치다 보면 경기 내용이 나빠진다’는 그의 축구 철학에서 비롯됐다. 교체카드 대부분은 공격 자원을 투입하는 데 소모한다. 최 감독은 전북 현대의 지휘봉을 잡은 뒤 ‘닥공’을 앞세워 팀을 6차례나 K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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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건 더 큰 잘못 도쿄특파원 시절이던 2009년 일본의 한 경제인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미쓰비시UFJ리서치&컨설팅 이사장으로 있던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嚴)란 사람이었다. 오부치 게이조 내각(1998~2000) 때 총리자문기관인 경제전략회의의 핵심 멤버로 참여한 나카타니는 일본의 구조개혁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가 쓴 책 한 권이 현지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던 게 인터뷰하게 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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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윤석열 정부는 시민을 지킬 수 있을까 꽃다운 청춘들이 쓰러졌다. 8년 전 세월호의 아픔이 완전히 아물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생명들이 또 허망하게 삶을 마감했다. 이번에는 서울 도심 한복판 이태원이었다. 모처럼 즐기러 나간 핼러윈 축제는 ‘악몽’으로 변했다. 숨이 턱 막혔다. 20대와 10대인 두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가족을 잃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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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윤석열차’는 오늘도 달린다 2015년 프랑스에선 신년 벽두부터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불붙었다. 그해 1월7일 파리에 있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테러를 저질러 12명이 사망한 사건이 계기였다. 테러는 샤를리 에브도가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만평을 게재한 것이 발단이 됐다. 샤를리 에브도는 풍자에 성역을 두지 않고 도발적인 비판을 해온 매체로 잘 알려져 있다. 무함마드를 형상화하는 일체의 행위를 죄악시하는 이슬람의 입장에서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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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빈곤은 정의의 문제다 ‘달동네’는 1960~1970년대 가난의 대명사였다. 높은 곳에 동네가 자리잡고 있어 달이 잘 보인다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산업화에 따른 대규모 이농으로 도시에 몰려든 주민들이 산비탈이나 고지대에 모여 다닥다닥 붙어살던 곳이었다. 달동네는 싼값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터전이자 생존 공동체이기도 했다. 정신없이 쓸려들어온 도시생활의 각박함 속에서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줄 이웃의 따뜻한 정도 있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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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다” ‘영혼 없는 공무원.’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인 2008년 1월3일 국정홍보처의 인수위원회 업무보고 때 등장한 이후 대중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린 표현이다. 한 인수위원이 전 정부의 언론정책을 비판하자 김창호 당시 국정홍보처장이 “우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라고 말하면서다. ‘위에서 하라면 할 수밖에 없으니 우린 아무 죄가 없다’는 자조(自嘲)나 다름없었다. 다음날 김 처장은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 한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했다며 “관료는 어느 정부에서나 그 정부의 철학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파장은 가라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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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대통령의 ‘말’에 대하여 일본의 정치인 아소 다로(麻生太郞)는 ‘실언 제조기’로 유명하다. 총리 시절인 2009년 총선을 앞두고 젊은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소득이 적으면 가정을 꾸려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많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오자 “돈 없으면 결혼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빈축을 샀다. 한번은 의사들의 지방근무 회피 현상에 대해 “(의사들 중에는) 사회적 상식이 꽤 결핍된 사람들이 많다”고 해 자민당 지지기반인 의사단체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저출생·고령화는) 아이를 안 낳는 쪽이 문제” “지구온난화 덕에 홋카이도 쌀이 맛있어졌다”는 등 아소의 막말은 잊을 만하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