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홍민
논설위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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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콘클라베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는 라틴어의 cum(함께)과 clavis(열쇠)의 합성어인 ‘쿰 클라비’(cum clavis)에서 유래했다. 선거인단인 추기경들이 모여 외부와 차단된 투표장인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문을 걸어 잠그고 차기 교황을 뽑는 회의를 뜻한다. 비밀이 철칙같이 지켜져 추기경들은 교황 선출 시까지 외부와 절대 소통할 수 없다. 800년에 걸쳐 거의 변함없이 지켜져온 선출 절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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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비문엔 프란치스코만…” 2013년 3월13일 열린 콘클라베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새 교황으로 선출됐다. 박수갈채 속에서 브라질의 우메스 추기경이 그를 따뜻하게 포옹하며 말했다.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십시오.” 그때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의 머릿속에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가톨릭 수도회인 작은형제회 설립자이자 ‘가난한 자들의 벗’으로 칭송받은 성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였다. 교황직 수락 의사를 밝힌 후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프란치스코’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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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다 끝났다고? 아직은 아니야 윤석열이 파면되기만 하면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 착각이었다. 12·3 내란부터 지난 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기까지 123일 동안 불면의 밤을 버텨왔는데도 바뀐 게 없다. 탄핵의 ‘약발’은 며칠 가지 못했다. 대통령 자격을 상실한 윤석열은 일주일을 관저에서 뭉개더니 마치 환영식에 나온 개선장군처럼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사저로 돌아갔다. 주먹을 불끈 쥐고 지지자들을 향해 웃어 보이는 모습은 지난달 서울구치소 석방 장면을 빼다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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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김연경의 ‘해피엔딩’ 김연경은 늘 ‘최초’였고 ‘최고’였다. 한국 여자배구의 간판이자, 세계가 인정한 레전드다. 국제배구연맹(FIVB)은 김연경을 가리켜 “10억분의 1(의 선수)”라고 평가했고, 지오반니 귀데티 전 세르비아 감독은 “축구로 치면 리오넬 메시 이상”이라고 극찬했다. ‘배구여제’ 김연경이 ‘정상에 오른 뒤 은퇴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코트에 작별을 고했다. 김연경이 이끈 흥국생명은 지난 8일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 정관장과의 최종 5차전에서 3 대 2로 승리하며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5개 세트 모두 2점 차로 갈린 명승부였다. 역대 두 번째 만장일치로 챔프전 MVP에 뽑힌 김연경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은퇴한다”면서 “마지막 경기에서의 내 모습을 팬들이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정상에서 은퇴하게 돼 정말 좋다”며 웃었다. 스포츠 스타의 라스트댄스가 해피엔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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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논술의 전범, 헌재 결정문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지난 4일 인천 안남고 1학년 학생들은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를 생중계로 지켜봤다. 헌법을 짓밟은 대통령이 파면되는 역사적 순간을 TV로 목도하고, 민주주의 의미를 새겨보는 ‘계기교육’을 체험한 것이다. 계기교육은 교육 과정에 없는 소재나 주제를 교육할 필요가 있을 때 진행하는 비정규 수업이다. 시청 후 학생들은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이 학교처럼, 전국 10개 시도에서 ‘윤석열 탄핵’ 계기교육이 학교 재량으로 이어졌다. 박수가 터진 교실도 많았고, 진지한 작문·토론도 이어지면서 ‘살아있는’ 민주주의 교육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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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광기에 죽어가는 가자 어린이들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갑자기 떨어진 미사일에 맞았고,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는 폭격에 집이 무너져 엄마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하얀 천에 덮인 주검들 앞에서 살아남은 가족은 통곡하고, 안치소에서 어린 딸의 얼굴을 확인한 아버지는 오열했다. 휴전을 파기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습을 재개하면서 ‘지옥도’가 다시 펼쳐졌다. 많은 어린이가 무너진 건물에 깔려 숨졌다. 현장을 목격한 기자는 “이 참극을 설명할 단어가 없다”고 전했다. 19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보건부 발표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격으로 가자의 민간인 436명이 사망했고 이 가운데 183명이 어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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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꽃샘폭설 자고 일어나니 눈 세상이었다. 꽃샘추위가 찾아온 18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 폭설이 쏟아졌다. 봄을 알리는 절기인 춘분을 코앞에 두고 곳곳에 대설특보가 내려졌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과 울산, 광주는 ‘가장 늦은 대설특보’ 기록을 15년 만에 갈아치웠다. 3월 중순에 추위와 폭설이 한꺼번에 찾아온 건 영하 40도의 찬 공기를 머금은 강한 소용돌이가 북극에서 내려오고, 그 소용돌이의 중심이 한반도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린 강북구는 11.9㎝의 적설량을 기록했고, 경기 남양주와 이천, 의정부 등에는 10㎝가 넘는 눈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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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봄’이 오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각본대로 흘러갈 것 같던 ‘탄핵심판 드라마’가 예상을 살짝 비켜갔다. 구치소에서 ‘대통령직 파면’ 통보를 받을 줄 알았던 윤석열이 풀려났다. 구속 기간 산정 문제로 석방됐을 뿐인데도 내란 우두머리는 개선장군인 양 득의양양했다. 웃음기 띤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고 간간이 주먹을 불끈 쥐거나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탄핵 반대 세력은 ‘왕의 귀환’이라며 반겼다. 윤석열은 석방 직후 낸 메시지를 통해 “불법을 바로잡아준 재판부 결단”에 감사하고,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에 따라 공무를 수행하다 고초를 겪는 분들의 석방을 기원한다”고 했다. 위헌적 비상계엄으로 나라를 결딴낸 데 대한 사과는 없었다. 많은 시민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이 모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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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트럼프의 ‘직거래 외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는 눈은 다면적이다. 막말 잘하고 허세에 찌든 정치인이란 비판과 영리하고 계산이 치밀한 사람이란 평가가 뒤섞인다. 예측이 힘들고, 냉온탕을 오가는 말이나 행동의 맥락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익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란 데는 견해가 일치한다. 집권 2기 트럼프의 외교 정책에서는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난다. 그에겐 ‘내 편, 네 편’은 없고 오로지 ‘거래’만 있다. 그동안 미국이 지켜온 보편적 가치·규범 존중이나 동맹과의 협력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로 인해 서방의 단일대오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러시아와 직거래 담판을 시작한 것 역시 트럼프식 외교의 대표적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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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박사 ‘백수’ 지난해 최악의 청년실업 문제로 골치를 앓던 중국에서 ‘란웨이와(爛尾娃)’란 신조어가 유행했다. 직역하면 ‘썩은 꼬리를 가진 아이’라는 의미로, 고등교육을 받았는데도 끝 무렵이 좋지 않음을 뜻한다. 이 말은 ‘짓다 만 아파트’ ‘마무리가 좋지 않은 집’이란 뜻의 ‘란웨이러우(爛尾樓)’에서 유래했다. 자금부족으로 시공이 중단돼 방치되거나 미분양된 아파트에 빗대 화려한 스펙을 지니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고학력자를 가리킨다. 이들은 부모에게 기대 생계를 꾸리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낮은 임금의 일자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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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1.5인자’ 머스크 권력은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수직적인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속성상 부자나 형제지간이라 해도 나눌 수 없다. 혹여 권력자가 이런저런 이유에서 자신의 힘과 권한을 나눠주다간 2인자가 어느새 권력자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최고권력자와 2인자 사이엔 늘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돼왔다. 물론 철저하게 몸을 낮춰 권력자를 모신 2인자들도 있다. 대표적 인물이 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다. 그는 평생 마오쩌둥 밑에 있었지만 굴종에 가까운 처신으로 1인자를 모셨다. 그 덕택에 숙청을 피해가며 27년간 국무원 총리 자리를 지켰다. 반대로 비참한 말로를 겪은 2인자도 적지 않다. 린뱌오 국방부장은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 실패로 궁지에 몰렸을 때도 변함없이 그를 지지했다. 그 공로로 후계자에 지목됐지만, 권력투쟁 와중에 마오의 의심을 피하지 못한 채 비행기로 도주하다 몽골 사막에 추락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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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플라스틱 빨대 2019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선대본부장인 브래드 파스케일은 종이 빨대로 음료를 마시던 도중 짜증이 밀려왔다. ‘몇 모금 마시지도 않았는데 눅눅해지고 금세 찢어지다니…’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아이디어 하나가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트럼프 로고를 새긴 플라스틱 빨대를 선거 캠페인에 도입해보면 어떨까.’ 지지자들에 보낸 e메일에서는 ‘음료를 마실 때 젖으면서 흐물흐물해지고 이상한 맛이 나는 종이 빨대’에 대한 반감을 자극했다. ‘진보적인 종이 빨대는 쓸모없다’며 환경 문제를 우선 가치로 두는 민주당 조롱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