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홍민
논설위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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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반구천 암각화 바위나 동굴 벽에 그려진 그림은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예술 흔적이다. 흔히 암화(바위그림)라고 부른다. 바위를 캔버스 삼아 윤곽을 그린 뒤 색을 입힌 건 암채화, 돌이나 쇠로 바위를 쪼아 형상을 드러낸 것은 암각화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암각화만 발견됐다. 특정한 형상이 새겨진 일반 암각화 유적이 37곳, 윷판이 새겨진 253개의 윷판형 암각화가 60곳에서 보고됐다. 이 바위그림들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다. 풍요와 비를 빌던 기도였고, 삶의 기록이자 의례였다. 바위에 새겨진 선 하나, 점 하나는 그 시대 사람들이 하늘에 띄운 간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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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김건희의 ‘휠체어 퇴원’ ‘휠체어’ 하면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1942~2018)가 떠오른다. 21세 때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전신이 마비된 그는 생전에 거의 모든 시간과 일상을 전동 휠체어에 의지해 살았다. 전동 휠체어와 특수 장치는 그가 강의실·연구실과 대중 앞에서 자유롭게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가 됐고, 천체물리학 천재의 지적 탐구와 탁월한 업적을 이어가는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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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로스쿨과 음서제 고려·조선시대 관직 채용 제도 중에 ‘음서제’가 있다. 고위 관직 자손이나 친인척은 과거시험 없이도 관직에 오를 수 있는 특권을 준 것이다. 음서를 통해 벼슬길에 오르는 이는 보통 하급 관리로 임용됐지만, 세습적 특권 보장과 신분제 고착화로 조선 후기엔 사회적 문제로도 불거졌다. 오늘날 음서제와 종종 비교되는 게 2009년 출범한 ‘로스쿨’이다. 대학 졸업생이 진학하는 이 3년제 법학전문대학원을 마쳐야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부여된다. 국내 25개 로스쿨 수업료(입학금 제외)는 지난해 평균 1450만원(사립대 1700만원, 국공립대 1075만원)이고, 가장 비싼 고려대는 1950만원이었다. 고액의 등록금 외에 입시 컨설팅과 사교육, 정보력, 로펌 인턴십까지 더해져 로스쿨이 특정 계층, 특히 법조인 가문 출신 자녀에게 유리해졌다는 뒷얘기가 끊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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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더는 미룰 수 없는 검찰개혁 1980~2000년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현 반부패부)는 권력층 부패를 단죄했다.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대기업 총수, 정치인, 고위 공무원 등 거물들이 잇따라 수사 대상이 되면서 많은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표적수사 시비를 불러일으켜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대표적 사례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다. 당시 중수부는 무리한 수사와 언론플레이로 여론을 자극했고, 결국 참담한 비극으로 이어졌다. 수사의 본질보다 정치적 목적이 앞섰고, 검찰 스스로가 정권의 도구임을 자처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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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문과침공 시쳇말로 ‘문과를 전공한 사실에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시대’다. 기초적인 과학지식을 몰라 죄송하고, 취업 시장에서는 이과 출신만 찾기에 죄송하단다. 그래서 등장한 말이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이다. 청년들이 내뱉는 자조적인 이 말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라 문과생의 체념이 담긴 현실적 언어가 됐다. 수많은 문과 졸업생은 취업 시장에서 소외되고, 사회는 점점 ‘문과무용론’을 당연시하는 기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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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노 킹스’ 시위 미국은 14일 완전히 상반된 두 쪽으로 갈라졌다. 한쪽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79번째 생일과 미 육군 창설 25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열병식이 열렸고, 다른 한쪽에서는 2기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가장 큰 반트럼프 물결인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가 펼쳐졌다. 이날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콘스티튜션 애비뉴에는 병력 6700명과 150대의 군용 차량, 50대의 항공기, 최신 전차들이 줄지어 행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발의 예포 속에 등장했고, 군중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마치 대통령 개인의 권위를 국가 행사로 포장한 듯한 장면이었다. “적들이 미국인을 위협하면 우리 군이 그들을 철저히 몰락시킬 것”이라는 트럼프 연설은 군의 역할을 초월한 절대권력자의 언어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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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완전체 BTS 2018년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을 때다. ‘병역 특례’ 문제가 불거졌다. “국위를 선양한 대중문화 예술인들도 올림픽에서 메달 딴 운동선수처럼 병역을 면제해줘야 한다”는 주장과 “병역 의무 앞에서는 예외가 없다”는 원칙론이 맞섰다. 2020년 BTS 히트곡 ‘다이너마이트’가 세계 시장을 강타하자 여론이 다시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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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이 세웠다. 그래서 스스로를 ‘이민자의 나라’라고 자부한다. 17세기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넌 이래, 아메리카 대륙은 희망을 품고 도착한 사람들의 터전이 됐다. 각기 다른 삶과 배경과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언어·문화와 신념을 나누며 살아왔다. 미국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멜팅폿(melting pot)’이란 표현도 다양성과 융합을 상징한다. 서로 다른 인종·민족·문화가 하나의 용광로에서 녹아 미국이란 공동체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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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투표 못하는 사람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재외국민 선거지만, 한때 해외에 체류하는 국민은 투표할 수 없었다. 1967년 파독 광부와 간호사 등 해외에 나간 국민들을 위해 ‘해외 부재자 투표 제도’가 도입됐다가 1972년 유신체제 선포와 함께 폐지됐다. 그러곤 32년의 긴 세월이 흘러서야 재외국민 참정권이 2004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되살아났다. 공직선거법의 재외선거 배제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이라면 어디에 있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헌법 정신이 다시 자리 잡았다. 2009년 재외국민 선거 제도가 정식 도입됐고, 2012년 제19대 총선부터 시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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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윤석열 이후’를 묻는 시민들에게 치열한 대선 레이스에 집중하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풀려나 활개 치며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한데 매우 불편하다. 내란 혐의를 받는 부하들은 구속 수감된 채 재판을 받는데, 정작 우두머리는 차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서 출퇴근하듯 오가며 법정에 선다. 파면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착각한다. 등 떠밀려 탈당하면서도 일말의 반성이나 사과도 없다.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고도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처럼 개 끌고 산책하고, 영화 보러 다닌다. 울화가 치미는 것은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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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5·18기념식장서 쫓겨난 인권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는 2001년 11월 독립 국가기관으로 출범한 이후 한국 사회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군 인권 보호 강화, 노동 인권 개선, 사회적 약자 인권 증진, 국제 인권 기준 도입 등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호주제 폐지 의견을 비롯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개선, 국가보안법 폐기 권고, 사형제 폐지 의견 표명 등 각 분야에서 구체적인 의견과 권고를 냄으로써 인권 향상에 진일보한 결과물을 얻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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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이제 6명 남았다 14살의 어린 나이에 중국의 위안소로 끌려가 3년 동안 참혹한 고초를 겪었던 이옥선 할머니(97)가 지난 11일 세상을 떠났다. 한평생 고통의 기억을 품고 살았지만, 끝내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는 듣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이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가운데 생존자는 단 6명만 남았다. 평균 연령은 95.6세에 달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하나둘 잊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