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부재와 집단사고

조홍민 사회에디터

1961년 4월 J F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 붕괴를 위한 작전을 승인했다. 쿠바인 망명자 1500여명을 중심으로 병력을 편성해 쿠바를 침공,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린다는 계획이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마이애미 군사기지에서 이들을 훈련시켜 게릴라전에 투입하고 공중지원을 통해 피그스만을 건너 공격하기로 했다. 케네디는 게릴라가 상륙하면 쿠바 내부에서 호응이 있을 것이란 CIA의 보고를 철석같이 믿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망명자 부대는 해안에 상륙하자마자 곧바로 발견돼 맹렬한 반격을 받고 궤멸됐다. 쿠바 내 호응은 없었다. ‘피그스만 침공’은 미국 역사상 가장 처참한 실패 사례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다.

당시 케네디의 참모들은 뛰어난 지성과 검증된 능력을 가진 쟁쟁한 인물들이었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천재이자 미 공군의 ‘시스템 분석 귀재’로 불린 로버트 맥너마라가 국방장관, 록펠러재단 이사장 출신의 딘 러스크가 국무장관이었다. 34세에 하버드대 문리대학장에 올랐던 맥조지 번디는 국가안보회의(NSC)를 지휘했다. 빠른 두뇌회전과 열정으로 뭉친 미국 최고의 엘리트가 케네디를 보좌했지만 이들의 판단은 틀린 것으로 결론났다.

여러 명의 똑똑한 사람이 모여 내린 결정은 매우 옳고 현명할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피그스만 침공’과 같이 여러 역사적 사례에서 입증됐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집단사고’(groupthink)라는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재니스에 따르면 집단사고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의 성원들이 어떤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 경향’이다. ‘잘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바탕으로 이견 없이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다른 이에게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또는 보상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만장일치에 도달하려는 이런 사고의 경향은 시간을 절약해주는 효과가 있지만 중요한 결정에서는 아예 잘못된 결론으로 이끌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 1년 반 동안의 행보를 짚어보면 ‘집단사고’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달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는 대표적 사례다. 두세 표도 아니고 무려 90표 차나 났는데도 투표일 직전까지 “근소한 표차로 선전” “2차 투표에서 역전”과 희망 섞인 얘기들만 흘러나왔다. 이미 여러 곳에서 부산의 유치가 어려울 것이란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드라마틱한’ 뒤집기를 장담했다. 하지만 참패였다. 윤 대통령은 유치 실패 후 ‘예측이 많이 빗나갔다’고 인정하면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참모와 각료들이 이길 것이란 낙관론에 사로잡히는 ‘집단사고’에 빠진 나머지 처음부터 잘못된 판세 예측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얘기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사우디가 유리하다는 정보가 많았지만 대통령이 워낙 강력하게 밀어붙이다보니 부정적 내용이 차단됐을 가능성도 나온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도 그랬다. 국민 대다수가 여당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으나 참모들이 낙관론 속에 ‘승리 예상’ 보고를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윤 대통령이 선거 패배 후 격노했다는 후문은 이를 뒷받침한다.

참모들이 집단사고에 빠지는 1차적 책임은 ‘소통부재’에 있다.

윤 대통령의 독선과 툭하면 화부터 내는 불같은 성격은 제대로 된 소통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다른 의견을 내거나, ‘노’(No)라고 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런 상황은 어떤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회의나 논의를 ‘답정너’로 몰고 간다.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얘기다. 쓴소리를 싫어하는 대통령에게 누가 반대 의견을 내놓을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윤 대통령 주변의 요직은 그의 뿌리나 다름없는 검찰 출신 인사로 다 채워놓았다. 검사들의 ‘엘리트 의식’ ‘선민의식’은 집단사고로 치닫기 딱 좋은 여건이다. 엑스포 개최나 보궐선거 정도의 사안이라면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른다. 외교와 안보, 중요 경제정책과 같이 국민의 안위와 실생활에 직결되는 문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참모들이 집단사고에 빠지지 않으려면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 소통을 강조하지만 왜 소통이 안 되는지, 스스로에겐 아무 문제가 없는지 먼저 되돌아봐야 한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조홍민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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