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최신기사
-
미디어세상 정부서 ‘여성’ 지운다고 언론도 따라서 하나 그저 한 단어이고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라고 해도, 어떤 표현을 쓰는가에는 사건과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 구조가 담겨 있다. 또한, 특정 표현이나 용어가 반복됨에 따라 고정관념 등이 재생산될 수 있다. 정책 용어라고 하면 더욱 그렇다. 정책 대상이 어떤 사람들이고, 해당 정책이 어떤 목적으로 시행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자, 정부가 어떤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여성가족부폐지저지와 성평등정책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전국행동(여성가족부폐지저지 전국행동)’에서 최근 현 정부의 정책 용어에서 여성이 지워지고 있음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지난 11월, 제3차 양성평등정책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여성가족부는 계획 내 ‘여성폭력’ ‘젠더폭력’ ‘성별에 기반한 폭력’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모두 ‘폭력’으로 대체하여 비판을 받았다. 더 나아가, 여성가족부폐지저지 전국행동은 2022년 지자체 선거 이후 국민의힘에서 장을 배출한 다수의 지자체에서 부서 및 정책, 사업명에서 여성을 지우고 가족, 출산, 인구, 행복 등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여성청소년가족과’를 ‘인구가족과’로 변경한 것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는 단지 용어의 교체이거나, 혹은 대상을 확대한 것이 아니다. 여성을 인구로 치환하는 것은 문제적이다. 현재의 인구 문제에 대한 대응에서 성차별 개선이 핵심이라는 점은 수차례 지적되어 온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확인하고 개선하기 위해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여성 개개인의 인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사회 규범과 구조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구 문제로 여성과 가족의 문제를 환원하면 이를 여성 개개인의 출산 의지 문제로 돌리게 된다.
-
미디어세상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여성 탓’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이 0.79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비혼, 비출산을 결심하는 청년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언론을 통해 계속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청년 여성들의 결정이 이기적이라는 비난도 종종 들린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 여성들이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서 결혼 시장에서 밀려난 청년 남성들의 분노를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언론을 통해 유포되는 일도 있었다. 미디어에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을 행복하게 보여주는 것은 나쁜 프로그램이고 미성년자 시기부터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게 된 어머니를 보여주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발언까지 나왔다.
-
미디어세상 속보 전쟁과 뒷북 자성은 왜 반복될까 지난 10월29일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다수의 시민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끼고,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며 공적 책임을 다하기를 촉구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우리가 믿었던 공동체의 가치와 이상, 즉 모두가 안전하게 공적 공간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 훼손된 것에 대한 슬픔과 분노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회적 재난에서 공적 애도가 중요해진다.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 대한 위로와 부상자의 쾌유를 비는 기원을 건네면서 이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정부의 책임을 묻고, 시민의 입장에서 어떤 공동체적 실천이 필요한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사회적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공적 애도를 위해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짚어볼 수 있다.
-
미디어세상 ‘논란’이 되면서 폭 좁아진 ‘성평등 논의’ 2022년 개정 교육과정안에 대한 논의에서 다시 한번 ‘성평등’ 용어가 쟁점이 되고 있다. 어떻게 실질적으로 성평등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로 나가야 하는데 멈추게 되는 일이 반복된다. ‘성평등’은 지워야 하고, ‘양성평등’이 맞는 말이며 성소수자를 포함하는 성평등 교육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공청회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동성애 반대’ ‘젠더 교육은 안 된다’란 발언 등으로 회의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연구진에 대한 공격적 발언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성평등 용어, 사회적 소수자의 배려와 같은 헌법적 가치에 대한 교육 내용에 집중적 공격과 비난이 이어졌으며 이는 온라인 공론장 공간 역시 마찬가지여서 특정한 내용의 댓글이 반복 게시되면서 여론을 호도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
미디어세상 우리에게 내재된 인종차별적 시선, 씁쓸하다 드라마에서 타국을 음식명으로 대표하면서 비하적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미권 드라마에서 ‘kimchi’를 대사에 포함할 때, 이는 음식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다.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경멸의 표시이거나, 아시안 문화를 통칭하여 모욕하는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통상 단지 유머였을 뿐이라면서 재치있는 말장난 정도로 수용된다. 한국 드라마 <빅 마우스>에서 태국의 음식명을 상대방을 모욕하기 위한 대사에 포함한 것 역시 같은 경우일 것이다. 한국 드라마의 수용이 초국적이고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터라, 방영 당일 태국의 드라마 시청자들이 관련한 SNS 메시지를 다수 남기기도 했다. 한국 문화의 수용이 OTT 및 기타 기술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 문화의 차이에 대한 존중이 부족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미디어세상 보도 방식 개선 없인 댓글 해법 없다 언론인권센터는 지난 6월30일 “ ‘2차 피해’ 유발하는 보도의 문제점: 성범죄, 아동학대 보도를 중심으로”라는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성범죄 및 아동학대 사건 보도에서라도 댓글란을 폐지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번 토론회에서 제기된 핵심적 문제는 댓글로 인한 2차 피해 문제로, 특히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댓글에 생각 없이 게시하고, 더 나아가 피해자를 비난하고 모욕하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댓글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폐지가 더 낫다는 제안이 그렇게 과격하게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뉴스 댓글을 비롯한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타인의 권리 침해, 혐오 표현으로 인한 사회적 악영향 문제가 계속 지적되고 있다. 뉴스 댓글이 필요한 이유로 공론장의 필요성, 언론에 대한 시민의 감시 역할, 정보를 공유하는 기능 등이 언급되어왔지만, 이러한 공적 이익을 따져 보기에는 댓글로 인한 인권 침해가 훨씬 더 심각하다는 인식이 댓글란 폐지 주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
미디어세상 성소수자를 보지 말고 성소수자 차별을 보라 서울시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대해 과다한 노출을 금지하고 청소년 유해 물품을 판매하거나 전시하면 안 된다는 제한을 두어 조건부로 장소 사용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퀴어 문화 축제는 이렇게 ‘저속하여 다수에게 피해를 끼치며’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라는 틀 안에서 논의되곤 한다. 이는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방송에 등장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재현은 품위가 없다거나,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제한되어 왔다. 2015년 <선암여고 탐정단>에 등장한 여성 청소년 성소수자의 재현은 방송심의규정 중 ‘품위 유지’와 ‘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에 대한 조항’ 등을 근거로 법정 제재를 받았다. <보헤미안 랩소디>에 나타난 주인공의 성적 지향과 관련된 묘사를 방송국이 자체 편집한 것은 작년의 일이다. 최근 OTT 채널을 중심으로 성소수자가 주역인 예능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청소년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우려된다면서 해당 프로그램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등장하고 있다.
-
미디어세상 여성의 공적 참여 비용이 폭력 감수는 아니다 지난 3월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가 여성 기자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된 보고서는 최근 5년간 이러한 괴롭힘이 높은 비율로 증가하고 있고, 어떤 기사를 쓰거나 상관없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에 노출되는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언론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최소한의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는 보도를 남발하는 데 대한 시민의 비판이 필요하다. 그러나 비판이라기보다 모욕과 비하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괴롭힘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기자의 성별에 따라 괴롭힘의 정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이 보고서는 특정 주제 즉 페미니즘이나 소수자 관련 주제를 작성하는 기자들에 대한 괴롭힘이 더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
미디어세상 이분법 넘어 공론의 장 열어야 지난 14일 ‘2022 국제성소수자 혐오반대의날(IDAHOBIT) 공동행동’ 집회가 열렸다. 해당 집회의 주요 구호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였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을 국회 앞에서 이어가고 있으며, 미류 활동가와 이종걸 활동가의 단식 일수는 34일차를 넘어섰다. 차별금지법을 향한 이 같은 요구는 최근의 일이 아닌, 15년째 이어온 말 그대로의 숙원이다. 이번 국회에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만, 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 개최라는 출발점에도 들어서지 못한 채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
미디어세상 왜 언론이 나서 차별을 정당화하는가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제시하고, 논증을 통해 이해관계의 합리적 조정을 도출하는 공론장의 이상을 언론이 매개하는 방식 중 대표적인 것이 토론이다. 그런데 이처럼 토론을 통한 공론장 모델에 던져진 질문 중 하나는 “모두가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는가?”였다. 페미니스트 이론가 낸시 프레이저는 공론장 모델이 가정하는 참여의 권리에 배제된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배제되었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의의 기초가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언론이 공론장의 구성에 해악을 미쳐 궁극적으로 정의의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공론장에 참여하여 낸 고유한 목소리를 언론의 틀에 따라 특정한 부분만 인용하여 편견을 재창출하는 경우이다. JTBC <썰전 라이브>를 통해 이루어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위에 관한 토론 내용을 보도하는 기사 중 하나가 ‘시민의 불편’을 중심으로 구조화된 것이 바로 이러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토론에 참여한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의 말 중에서도 이제까지 언론이 이 사안을 대해온 방식, 즉 시민의 불편과 장애인의 권리를 대립적으로 배치했던 틀에 맞는 부분을 채택하여 강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도는 언론이 배제된 자들에게 목소리를 제공하였다는 명분은 챙기면서 그 자신의 목소리로 발화된 정의의 요구를 우리 사회가 경청하기 어렵게 만든다.
-
미디어세상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왜 그리 하는지 국가인권위원회의 2021년 온라인 혐오표현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언론이 혐오표현을 확대 조장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49.6%에 이른다. 이는 언론이 특정한 ‘혐오표현’을 사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논란이라는 이름으로 차별적 인식을 정당화하고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고정관념과 편견에 기대어 손쉽게 기사를 양산한 데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여러 가지 사례에서 이러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얼마 전 서울교통공사가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이 보도를 하면서 ‘교통 약자를 이길 상대로 상정하고 있으니 논란이 생길 전망’이라고 논평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 결국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논란으로 표상하는 것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논의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이 사안에서 언론이 책임져야 할 것이 남아 있다. 언론은 실제로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위가 법을 어기는 이기적인 행위로 우리 사회에 해가 되는 일이라고 보도해 왔다. ‘여론전’이라는 말은 이미 언론과의 상호작용을 가정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조응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동원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여러 의견 중에서도 동료 시민의 권리를 부정하는 관점만 시민의 의견이라며 보도하여 ‘여론’을 형성한 것은 언론 보도이다.
-
미디어세상 온라인 폭력, 개념 되짚고 ‘방지법’ 마련해야 김인혁 선수와 BJ 잼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이버렉카 유튜브 채널 규제가 어려운 현실이 드러나 온라인 폭력 방지법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이제까지 온라인 규제에 대한 인식은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하는 규제는 정당하지만 성인의 표현의 자유는 포괄적으로 보호한다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021년 호주가 ‘온라인 안전법’을 제정하면서 세계 최초로 성인에 대한 온라인 학대와 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을 포함하였다는 것을 강조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현재의 온라인 폭력·학대 문제를 심각하게 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는 아동청소년 보호라는 틀 속에서만 사고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