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정부가 외면한다고 언론도 따라 하나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후보자 문제로 파행을 거듭하다가 결국 후보자가 사퇴하는 결말을 맞았다. 청문회장에서 성평등 정책과 관련된 부처의 비전 등에 대한 논의는 진행되지도 못했다. 정책의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장관 후보자가 우리 사회의 성차별 해소를 위한 정책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물론 외려 성평등 정책 전담 부처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는 안을 제외하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부처는 존속하게 되었지만, 사실상 성평등 정책을 수립·시행하는 부처의 핵심 기능을 수행하지는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러 시민단체들이 지적하고 비판해온 바와 같이, 여성과 성평등 관련 의제는 주요 정책 과제에서 삭제되는 중이며, 각종 예산 삭감에 따라 소수자 보호와 구조적 성차별 해소를 위한 사업 역시 축소되었다.

저출생 현상을 비롯한 한국의 위기 상황 원인이 일차적으로 구조적 성차별 문제에 있다는 것은 다수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와 같다. 생식 건강, 경제 참여와 기회, 교육 성취, 정치 참여에서의 성별 간 격차를 조사하는 세계경제포럼 성격차지수 조사 결과 지난해(99위)보다 하락하여 105위에 그쳤다. 성격차지수의 경우, 201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격차를 좁혀가고 있었던 추세가 꺾인 것이며, 특히 여성의 경제 참여 수준에서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인식 수준에서도 급격한 퇴행이 감지된다. 지난 6월 발표된 유엔개발계획(UNDP)의 젠더사회규범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적 성차별적 인식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정치나 경제 참여 영역은 주로 남성의 영역이라는 주장, 교육은 남성이 먼저 받아야 한다는 주장, 가정폭력을 정당화하는 주장에 동의하는 비율이 높고, 시계열적으로 볼 때 지난 10년 동안 세계 추세와 반대로 성평등 인식 수준이 낮아지는 경향을 나타냈다. 구조적 차별로 인한 성별 간 격차, 그리고 이를 당연시하는 성차별적 인식, 여성의 참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성평등 정책이 요구되며, 누적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현 정부에서는 저출생 문제의 원인이 혼자 사는 것을 행복하게 다루거나, 육아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는 미디어 콘텐츠에 있다는 일차원적 진단만을 제시하는 등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 성평등의 필수적인 구조적 차별 해소와 관련한 정부 대책에 비판적 질문이 적극적으로 제기되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언론 보도에서도 성평등과 여성 관련 의제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정부가 장기적 국정 과제 목표에서 성평등 관련 의제를 전혀 제시하지 않고, 여성가족부가 성평등 정책 조정 기능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 출처의 보도 아이템이 없는 것도 이러한 보도량 축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한편으로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이후 우리 언론에서 젠더 이슈와 성평등 관련 주제가 늘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 사회의 변화를 기록하고 또 성평등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사회적 담론을 구성하려는 시도였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그저 ‘젠더 갈등’이라는 이름으로 정쟁화되어 포털 중심의 뉴스 서비스 환경에서 클릭 유도를 통한 수익 확보에 좋은 갈등 소재로만 활용했다는 혐의가 짙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현 정부가 성차별 문제 해소에 대해 전혀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정부의 무능을 그대로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돌봄, 젠더 기반 폭력, 노동 문제 등 현 정부가 외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차별 해소를 위한 정책 의제를 언론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공론화해야 할 필요성이 다시 한번 제기되고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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