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최신기사
-
미디어세상 ‘젠더 갈등’의 원칙 보도에 목마르다 ‘젠더 갈등’이라는 용어가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일단 이렇게 지칭되는 현상, 즉 성별 간의 성평등에 대한 인식 격차, 온라인 공간에서의 적대가 극화되는 데 책임을 져야 할 주체 중 하나로 언론이 꼽히곤 한다. 표현의 문제로 성차별 문제의 의미를 축소하고, 하위문화적인 온라인 공간에 떠도는 각종 표현을 공적으로 부각하여 이를 논란이라고 부르는 보도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최근 대통령 선거 보도 국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대선 보도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취재를 바탕으로 하는 사실 확인과 교차 검증, 정책에 대한 숙의를 가능하게 하는 정보 제공을 하지 않고 오로지 속보성이 저널리즘의 최우선 가치인 것처럼 경쟁하고 있다. 단일 취재원 중심 보도를 양산하는 것, 더 나아가 특정 인물의 SNS 메시지를 그대로 게시하는 기사가 늘어나면서 문제는 더 커진다.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의 SNS 메시지를 분석과 논의 없이 전달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유도하는 양상이 이번에도 나타나고 있다.
-
미디어세상 차별금지법 필요성, 언론이 보여줘야 이제 사람들이 유튜브나 SNS를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 경우가 더 많다고는 하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은 여전히 전통적 미디어인 텔레비전, 신문이 제공하는 뉴스이다. 뉴스가 되면서 사회적 의제가 되고, 이에 대한 여러 생각과 의견들이 교환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찾게 된다. 미디어의 보도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들, 시민의 삶과 관련된 것에 대한 공중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빌 코비치와 톰 로젠스틸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공적 토론을 위한 공간을 제공해야 하며, 사회의 중요한 사안들을 시민의 삶과 관련지어 사고할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안한 바 있다.
-
미디어세상 이젠, ‘너절한 연애’ 직시해야 요즘 독자들은 언론에서 교제 폭력(데이트폭력)에 대한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안전이별’이 청년 여성들 간 주요 공유 키워드가 된 2010년대 이후로, 교제 폭력 신고 건수가 날로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발생한 교제 폭력 사건의 경우 폭력의 양상이 급격하게 심화된 경우가 많아 언론의 주목도가 더욱 높아졌다. 교제 폭력과 같이 이전에는 사소하게 여겨지거나 개인적 문제로 치부되던 것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바라보고 해결책을 함께 도모하는 데 언론의 역할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교제 폭력 보도는 이러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여러 유형의 폭력 사건을 보도하는 데 있어 과거로부터 관행적으로 반복되어 온 ‘그림’이 있다. 대표적인 ‘그림’은 범죄자 연행 시점에서 화면 안으로 내밀어지는 수많은 마이크, 이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범죄자를 비난하는 주변의 격앙된 목소리, 하나라도 더 취재해야 하기에 다급하게만 들리는 기자의 질문들이다.
-
미디어세상 ‘성폭력 2차 가해’ 무기 쥐여 주는 언론들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은 잘 만들어진 보도 가이드라인이다. 미투 운동 상황에서 언론이 우리 사회의 성차별 구조를 인식하면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윤리적으로 보도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성폭력 사건 보도에서 해당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것을 당부하는 목소리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보도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어 가이드라인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에 대한 고민이 커지는 상황이다.
-
미디어세상 ‘공격적 댓글’ 해법, 플랫폼이 찾아라 댓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다양하다. ‘드루킹’ 사건 이후 댓글은 조작이 가능하니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개인의 의견이 자유롭게 표현되어 여론의 지표가 된다는 생각도 여전하다. 최근 들어서는 댓글의 공격적인 특성이 야기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 여성 중심으로 구성된 콘텐츠의 댓글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발화를 하는 창작자의 개인 계정이나 작품란 등에 ‘좌표찍기’의 형태로 다수의 이용자가 창작자를 공격하는 댓글을 게시하여 창작자의 표현을 위축시키려 하면서 자신의 공격은 표현의 자유로 포장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
미디어세상 ‘민식이법 놀이’서 놓친 사실확인 언론의 사실 확인 관행은 저널리즘 윤리와 책임의 핵심 논제이다. 별다른 사실 확인 없이 특정 출입처나 보도자료에만 의존하는 받아쓰기 기사 작성,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일부 사실만 부각하는 선택 편향성, 심지어 특정한 사실을 언론 스스로 만들어내는 관행이 대표적인 지적사항들이다. 온라인 저널리즘 환경이 구축되고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글이나 SNS 메시지를 유일한 정보원으로 삼아 손쉽게 작성된 기사들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온라인 공간의 발화도 언론 보도의 주요 정보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보도하고자 한다면 일차적으로 사실의 교차 확인이 필요하다. 가장 기초적인 취재 작업 없이, 온라인 공간에서 밈(meme)으로 떠도는 정보나 대중적 정서를 단순 인용 보도를 통해 사실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는 미확인 사실을 사실로 확인하고 승인하는 효과를 낳는다.
-
미디어세상 ‘속도’보다 중요한 건 ‘사실 확인’ 포털서비스를 통해 뉴스를 보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기사의 속도가 강조되고 있다. 속도가 중요해지다 보니 취재 없는 기사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개인 SNS 메시지 혹은 온라인 커뮤니티 자료를 그대로 기사화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언론이 갈등과 적대를 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상업적 수익을 위해 이를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특히 ‘젠더 갈등’ 주제가 그러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5월 GS25 포스터를 둘러싼 언론 보도가 주요 정보원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용하면서 커뮤니티에 게시된 게시물을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쳤으며 사실 확인이나 추가 취재 등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들어 언론이 해당 논란을 특정한 방향으로 틀을 지우며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를 키우는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
미디어세상 여성 정치인에 쏟아지는 ‘논란 보도’ 여성이 정치의 장에 들어설 때, 종종 언론에 의해 전문성을 갖춘 정치인이 아닌 셀러브리티처럼 다루어지곤 한다. 여성 정치인의 능력이나 의제가 외모나 패션에 대한 언급에 밀려 사소하게 다루어지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러한 구태는 여전히 반복되는 중이다. 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적극적인 의정 활동 및 정당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청와대에도 여성 청년비서관이 발탁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발탁이 불공정하다면서 비서관의 학력과 외모, 경력을 폄하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 자사 SNS에 여성을 대상화하여 등급을 나누는 표현을 동원하여 비난하기도 했다. 기성 언론의 성차별적 인식이 자극과 주목을 추구하는 SNS의 문법과 만나면서 생기는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
미디어세상 노동 기사, 의제 구성의 필요성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령 입법 예고가 임박했다. 입법 예고를 앞두고 산업재해와 노동 현장의 안전 문제에 대한 보도가 이전보다 증가하고 있다. 노동 관련 보도의 비보도, 비의제화 관행에 비춰보면 보도량 증가 자체가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노동문제 보도 프레임이 노동자 입장과 사용자 입장으로 양분될 것 같지만, 실제 분석들에 따르면 보수 언론의 노동 의제 누락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즉 노동 인권이나 산업 현장의 안전 문제는 그동안 보수 언론을 통해서는 아예 의제화되지 않았다. 지난 12일 발표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모니터링 보고서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간혹 보도를 하는 경우는 사용자 입장만이 크게 부각된다. ‘공장이 멈추면 손해가 생기고 우리 경제 성장에 해악을 끼친다’는 낡은 프레임이 반복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
미디어세상 젠더 균형, 미디어가 해야 할 일 지난 3월,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를 발간하였다. 세계신문협회의 이니셔티브인 ‘위민인뉴스(WIN)’의 발간물을 번역하여 싣고, 우리 현실에서 미디어와 성평등 문제에 대해 어떤 문제가 개선되어야 할지를 권김현영 교수와의 대담 및 한겨레 젠더데스크의 경험을 통해 풀어내었다. 이 가이드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젠더 균형을 갖춘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는 미디어는 왜곡된 세계관을 확산시킨다. (중략) 이러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명시한 부분이다. 언론이 성차별적 고정 관념의 유포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직 차원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짚어낸 것이다.
-
미디어세상 사유리와 정상가족 신화 방송인 사유리씨가 KBS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제작진은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영웅이라는 의미로 슈퍼맨”이라면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유리씨가 육아를 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전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유리씨의 출연을 반대하는 청원이 진행 중이라는 뉴스가 온라인 공간에서 공유되기 시작했다. 우선 이 뉴스의 필요성과 의미에 대해서부터 따져 물어야 할 것 같다. 뉴스 등장 당시 청원 인원은 1000명대에 불과했다. 뉴스를 통해 청원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으로 번졌다. 애초 논란거리가 아닌 사안을 장사 수단으로 삼은 언론이 만든 논란이었다.
-
미디어 세상 차별을 시정할 기회조차 못 얻는 사회 채 4주도 안 되는 기간 트랜스젠더 3인의 부고가 전해졌다. 언론에 의해 조명되지 않은 죽음 또한 많았을 것이다. 2017년 오마이뉴스에 실린 무지개인권연대 운영위원 기린의 글 제목은 ‘축제 아니면 장례식, 우린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였다. 대구·경북 ‘차별금지법 제정연대’가 구성되었던 시점에 올라온 글이었다. 그리고 2021년 3월 현재. 한 유력 정치인의 입을 통해 “퀴어축제 보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의 권리”라는 말이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아 장례식이 어이지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사는 이미 천만 가까운 관객이 본 성소수자 전기 영화를 방송하면서 주인공이 성소수자임을 드러내는 장면을 ‘국민 정서’를 이유로 삭제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 학생 보호 내용이 포함된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혐오세력에 직면하고 있다. 작년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지난 13년간의 발의와 마찬가지로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 속에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