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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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음모론은 어떻게 사라지나 당신은 속고 있다. 당신이 아는 사실은 조작된 것이다. 당신이 몰랐던 그들이 은밀하게 세상사를 조작하고 있다. 흔한 음모론이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믿을 수 없다고 부정하고픈 마음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 것일지 모른다. 세상사 음모가 끝도 없다지만 당신이 음모론의 피해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미국 케이블 뉴스 방송사인 폭스는 2020년 미국 대통령선거가 조작됐다는 음모론을 퍼뜨려왔다. 투개표 결과를 조작한 당사자로 지목된 투개표 업체인 도미니언은 폭스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벌인 끝에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음모의 당사자로 지목된 불명예를 합의를 통해 해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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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야구보다 못하는 것 우리끼리 잘하는 줄 알고 어화둥둥 좋아하다가, 국제무대에 오르면 세상 부끄러운 게 야구만이 아닐 거다. 어느 분야가 어째서 그럴지 미리 안다면, 배우려는 자세로 나중에라도 잘해보자고 다짐하며 준비라도 할 텐데. 국제무대에 오르기 전에 함부로 결과를 장담하며 떠드는 자세 때문에 예정된 실패를 겪는 걸 넘어 수치스러운 행태마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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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부끄러운 문필 공화국 글값이 싸서 문제라고 한다. 인터넷 매체에 기고하는 글은 물론이고 주요 일간지에 한 바닥을 써도 품삯이 형편없다고 불만이다. 뜨거운 정치 평론이나 시론은 그나마 인사치레를 겸해서 대우를 받기도 하는데, 쿨하게 쓴 분석이나 서평은 오히려 대접이 싸늘하다. 번역은 말할 것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언론매체에 기고문을 준비하면서 조사를 많이 할수록 손해라는 인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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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언론의 다짐이 문제가 아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지난 칼럼에서 내가 언론사의 수익모형이고 지불장벽이고 말하기 전에 이용자에 대한 자료분석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쓰면서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직접 듣기도 했고 전달받은 이야기 중에 그동안 언론도 할 만큼 해 봤는데 소용없더라는 말이 있다. 비판도 아니고 변명도 아닌 그 말에 살짝 위악감이 든다. 나야말로 ‘너희들 사장이랑, 어이, 밥도 먹고 사우나도 가고, 어이, 뭐 다 했어’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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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자료기반 언론개혁 나는 늙어가는 공영방송론자다. 넷플릭스, 유튜브, 아마존 프라임의 시대가 열렸지만, 나는 아직도 시민들에게 무료로 고품질 방송을 제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고품질 방송이란 공정한 뉴스, 역사 드라마, 코미디, 국가대표 스포츠 중계, 재난 정보를 포함한다. 이런 내가 공영방송 사업자에 실망하는 이유는 내용이 공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기술적 혁신에 실패해서 디지털 역무를 제공하는 지상파 플랫폼을 만들어 내지 못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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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팩트’보다 중요한 것들 미리 써놓은 글인데 어떡하나. ‘미디어비평’ 마감 날 아침에 일어나니 이태원 압사사고 사태로 세상 참담하다. 써둔 글의 취지가 비판적이라 표현이 뾰족해서 도저히 그대로 내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새로 써야 하는데, 아침에 정신없이 읽고 본 바를 언급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어 곤혹스럽다. 독자께서는 다음 이어지는 문장들이 이런저런 고민 끝에 서둘러 마감한 꼴이라 그렇다고 양지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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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어설픈 굿판의 정치 선무당 굿판 같다. 애초에 이게 이럴 일이었나 싶으니 더욱 그렇다. 칠금령 소리 요란하고 장구재비 엇모리장단이 경쾌한데, 정작 공수를 주는 무당들의 사설이 혼란스럽다. 나라님 비속어 발언이 문제인지, 남의 나라 권력을 망령되이 불러서 문제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굿을 의뢰한 당사자야 무당의 입을 보며 애가 닳겠지만, 구경꾼들은 호기심 반 염려 반으로 이 판이 어떻게 될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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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우영우’와 기묘한 적막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그냥 보내기 어려워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그 뒷이야기들도 극중 에피소드처럼 소소한 감동을 준다. 비행기 안에서 <증인>이란 영화를 울면서 보고 문지원 작가를 찾아갔다는 제작자 이야기가 그렇다. <증인>에 나온 자폐 어린이가 성인이 된 세상 이야기를 16부작 드라마로 쓸 수 있겠다고 제작자에게 응답했다는 작가의 이야기도 있다. 오백년 된 소덕동 팽나무는 어쩐지 새로운 뉴스의 주인공이 되어 새로 얻은 천년기념물 지위를 자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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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끝나지 않는 공영방송 희비극 우리 공화국에서 지겹도록 실패를 거듭하는 제도가 여럿인데, 그중 으뜸이 공영방송이다. 뭐든 새로운 걸 좋아라 하는 우리에게 지겨움이란 악덕이다. 수틀리면 갈아치우면 된다는 식이니 바람직한 제도라고 해도 세심하게 살펴 고쳐 쓰는 데 취약하다. 우리 공영방송은 수틀리면 갈아치운다는 바로 그 논리를 따라 이리저리 차이다 이젠 기괴한 희비극의 클라이맥스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어떤 대사를 쳐야 할지도 모르는 표정인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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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이제라도 입법투쟁에 나서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24일 임신중단(낙태)이 프라이버시 권리의 일종이기에 헌법적 권리에 속한다고 보았던 1973년 로 판례를 뒤집었다. 이를 두고 미국이 퇴보하고 있다느니, 연방대법원이 어쩌다 반동의 온상이 됐느니, 인권을 외면하는 당파적 엘리트 대법관들을 어찌해야 하느니 하는 식자들의 한탄과 염려가 들린다. 그러나 이 사태는 미국 시민들이 자초한 일이며, 그것도 미국의 진보와 보수 엘리트가 경쟁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 벌어진 일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두세 번 연속해서 인민의 대표를 뽑는 일을 그르치다 보면 이 꼴이 된다. 선출된 정무관이 정치적 고려에 따라 최고위 법관을 지명하고, 선출된 입법자들이 인민의 의지를 확인하지 않고 그를 인준하면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동적 결과를 놓고 한탄하고 염려할 일이 아니라, 그렇게 일이 돌아가도록 만든 선출된 자들을 감시하고 다그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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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진보 정치의 품성과 솜씨 누가 봐도 명백한 진보 진영의 후퇴다. 민주당과 정의당 후보가 대거 낙선한 결과보다 진보의 크고 작은 텃밭에서 일찌감치 투표를 포기한 유권자가 많았다는 사실이 뼈아픈 패배다. 선거로 이기고 지는 일이야 정당의 상사다. 그러나 이번엔 상대가 잘해서 진 것도 아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부터 자중지란에 빠져 하나씩 둘씩 동지를 내쫓고 지지자를 내치다 보니, 애초에 누구를 어떻게 설득해야 이길 수 있을지 모른 채 받아든 결과라서 승패를 떠나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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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영원히 어리숙한 케이 엘리트 남이 써준 글로 출판해서 이름을 내고, 봉사 기록을 부풀려 실적을 마련하는 젊은이들이 개탄스럽다. 정말 이건 아니지 싶어 고개를 가로젓다가 개탄을 넘어 살짝 불안해진다. 혹시 우리가 알고 있는 똑똑하다는 요즘 청년들이 대개 이런 식으로 성장한 건 아닐까. 번듯한 집안에서 멀쩡하게 잘 커서 예절도 바르고 대인관계도 좋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어쩔 줄 모르며 판단이 흐려지는 케이 엘리트가 이렇게 만들어지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