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승
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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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은장도는 없다 배경은 조선시대. 침침한 등잔불 아래 여인이 바느질을 한다. 이때 느닷없이 괴한이 침입한다. 위험을 직감한 여인은 품속에서 은장도를 꺼내 제 목을 겨눈다.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은장도의 클리셰다. 진부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도 거리가 멀다. 은장도는 손가락만 한 칼 모양 장신구에서 2m 가까운 의장용 목검까지 은으로 장식한 모든 칼을 포함한다. 왕실의 관혼상제에 사용된 은장도는 목검이지만 칼집에 은을 발랐으므로 은장도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문헌에 나오는 은장도는 대부분 이 의장용 목검을 가리킨다. 과도 크기의 금속제 은장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남성용이다. 여성은 한 뼘도 안되는 초소형 은장도를 패용했다. 사극에 등장하는 그 은장도다. 원래는 옷고름에 매다는 장신구에 불과한데, 어느샌가 여기에 신화가 덧입혀졌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항상 품에 지니고 있다가 정절을 위협받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이 칼을 뽑아 자결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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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한국식 나이를 허하라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되고, 설날마다 나이를 먹는 이른바 ‘한국식 나이’를 만나이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드세다. ‘한국식 나이’의 정식 명칭은 ‘세는나이’다. 본디 동아시아 공통의 나이 셈법인데 이제 우리나라만 쓰는 탓에 서구에선 ‘코리안 에이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세는나이의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엄마 배안에서부터 나이를 세는 ‘생명 존중 사상’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근거 없는 소리다. 태아 생명권에 대한 인식은 0세부터 나이를 세는 유럽이 동아시아보다 훨씬 빨랐다. 유럽은 일찍부터 종교적 이유로 낙태를 죄악시했기 때문이다. 반면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낙태는 죄가 아니었다. 요샛말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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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노포(老鋪)의 조건 나는 서울의 한 동네에서 태어나 30년을 살았다. 이제 그곳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지만, 재개발의 광풍이 비켜간 덕택에 지금도 동네 풍경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4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른바 ‘노포’도 드물지 않다. 어머니가 나를 등에 업고 달려갔던 병원도 그대로고, 아버지 담배 심부름을 갔던 약국도 그대로다. 기업형 슈퍼마켓과 편의점의 홍수 속에서도 조그만 슈퍼마켓 하나는 살아남았다. 학교가 많아서인지 동네서점 한 곳도 아직까지는 무사하다. 비교적 자리바꿈이 심하지 않은 업종들이다. 반면, 유행에 민감한 탓인지 음식점은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중국집이나 치킨집, 빵집처럼 유행을 덜 타는 곳은 40년 전과 똑같은 간판을 걸고 영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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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공감을 강요하지 마라 인간은 원래 자기중심적인 존재다. 그렇지만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공감 가능한 사회적 존재이기도 하다. 공감은 인간의 본능이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다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비뚤어진 공감이 빚어낸 비극은 인류의 역사에서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공감은 때로 근시안적이고 불공평하며 비합리적이다. 그것은 공감의 본질적인 속성에 기인한다. 첫째, 공감은 주관적이다. 공감을 위해서는 감정의 교류, 즉 교감이 필요하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교감은 ‘서로 접촉하여 따라 움직이는 느낌’이다. 무슨 말인지 애매하다면 예문을 보자. 첫 번째 예문은 박목월의 수필이다.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주는 고요히 반짝이는 별과의 그 그윽한 교감을 읊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예문은 박완서의 소설이다. “하얀 화강암 위령탑은 하늘을 떠도는 수많은 죽은 사람들과 교감을 하고 있는 것처럼 영검스러워 보였다.” 그러니까 교감은 저 하늘의 별과도 할 수 있고, 죽은 사람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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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혐오는 죄가 없다 성리학은 인간의 감정을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일곱 가지로 분류한다. 기쁨·분노·슬픔·즐거움·사랑·미움·욕망이다. 조선의 선구적 근대 지식인이었던 최한기는 일곱 가지 감정을 ‘좋음(好)’과 ‘싫음(惡)’ 두 가지로 압축했다. 최한기에 따르면 희로애락애오욕은 모두 좋고 싫은 감정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좋아하는 감정이 약하면 기쁨, 강하면 즐거움, 누군가를 향하면 사랑이다. 싫어하는 감정이 간절하면 슬픔, 격렬하면 분노, 싫어하는 것을 피하고 좋아하는 것에 다가가고자 하면 욕망이다. 인간의 감정을 좋음과 싫음 두 가지로 보는 관점은 단순한 구도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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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오해 우리나라 사람들, 나이를 많이 따진다. 학교는 한 살 차이로 학년이 달라지니 그렇다 쳐도, 직장은 엄연히 직급이 있는데도 나이를 따진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나이부터 확인하고, 모르는 사람과 싸움이 붙어도 반드시 나오는 말이 “너 몇 살이야?”다. 나이차가 많으면 모를까,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사람들도 나이를 따진다. 이로 인해 세대 간 갈등은 물론 세대 내 갈등까지 빚어진다. 노인끼리 나이를 따지며 노약자석을 다투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청년들도 나이에 민감하다. 취업시장에서는 한 살이라도 어려야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나이 많은 신입사원을 꺼리기 때문이다. 중장년층의 재취업이 어려운 것도 나이 따지는 문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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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퓨전한복과 꼰대적 시선 ‘퓨전 한복’의 고궁 무료 입장을 폐지하겠다는 종로구청의 방침을 둘러싸고 찬반이 팽팽하다. 찬성하는 쪽은 국적불명의 한복이 전통을 파괴한다고 주장하고, 반대하는 쪽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꼰대’ 발상이라며 맞서고 있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꼰대 맞다. 한때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금지하고, 염색머리와 캐주얼한 출근 복장을 고깝게 보는 꼰대들의 화살이 한복을 겨눈 결과다. 두발과 복장은 자유지만 한복은 전통이니 지켜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전통 한복이란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전통 한복이라고 부르는 옷은 정확히 말해 조선 후기 한복이다. 조선시대 여성 한복 저고리는 후기로 갈수록 기장이 짧아지고 소매가 좁아진다. 치마는 풍성한 볼륨을 선호하는 추세가 두드러진다. 짧고 타이트한 저고리에 볼륨 있는 치마를 매칭한 ‘상박하후(上薄下厚)’ 스타일은 조선 후기에 대유행을 이루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전통 한복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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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중국 전국시대에 양포(楊布)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흰옷을 입고 외출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양포는 흰옷에 흙탕물이 튈까 봐 여벌로 갖고 있던 검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집에서 기르는 개가 주인도 몰라보고 마구 짖는 것이었다. 주인이 집을 나갈 때는 분명 흰옷을 입었는데, 집에 돌아온 사람은 검은 옷을 입었으니 주인이 아니라고 여긴 모양이다. 양포는 주인도 몰라본다고 화를 내며 개를 때리려고 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양포의 형 양주(楊朱)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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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표창원 의원님께 제 직장이 의원님 지역구에 있어서인지 우연히 의원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중국집이었지요. 칸막이도 없는 홀 한가운데서 의원님이 일행과 식사하고 계셨습니다. 손님들이 흘끔거려도 개의치 않으셨지요. 사인을 부탁하거나 사진을 찍는 손님은 없었지만, 의원님이 인기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식당 손님들은 한마음으로 의원님을 배려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 국회의원이라는 자부심마저 감도는 것 같았습니다. 특권의식에 찌든 의원들의 모습에 익숙해서인지, 소탈한 의원님의 모습은 참신하게 느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원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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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병자사지(兵者死地) 만 18세가 되는 남성 전원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나라가 있다. 일부는 이런저런 이유로 빠져나가지만, 대부분은 선고를 피하지 못한다. 극악무도한 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다. 신체 건강한 남성으로 태어난 게 죄라면 죄다. 다행히 형이 즉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감옥에 갇힐 뿐이다. 수감생활은 2년 남짓에 불과하며,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갓 성인이 된 젊은이에게는 황금같은 시간임에 분명하다. 수감생활을 마치면 사회로 복귀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출소 후 8년까지 사형 선고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행여 잊어버릴까 봐 해마다 며칠씩 이들을 모아놓고 상기시켜 주기도 한다. 지난 65년간 이 나라에 대규모 사형 집행은 없었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집행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원히 없을 수도 있고,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대충 짐작이 가는가. 대한민국의 병역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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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다섯 군대의 전투 <반지의 제왕> 속편 이야기가 아니라 이번 지방선거 이야기다. <한서(漢書)>에 따르면 군대는 다섯 가지가 있다. 의로운 군대 의병(義兵), 침략에 대응하는 응병(應兵), 분노를 참지 못하는 분병(忿兵), 탐욕에 눈먼 탐병(貪兵), 교만에 빠진 교병(驕兵)이다. 이 다섯 군대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진단하기에 적절한 비유로 보인다. 굳이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를 끌어올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향후 정치권의 전망과 과제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첫째, 의병은 대의명분이 있는 군대다. 치열한 전장에서 대의명분 따위 아무 소용없는 것 같지만, 전쟁에는 반드시 명분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의 의병은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내세운 후보들이다. 이들의 대의명분에 공감한 유권자들은 기꺼이 표를 던져 힘을 보탰다. 보수의 텃밭에서 거둔 의병의 승리는 그래서 소중하다.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선전한 의병들도 박수 받아 마땅하다. 명분만 있으면 져도 진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역할이다. “의병은 왕좌를 차지한다(兵義者王).” 지역정당에 안주하겠다면 모르겠지만 정권을 잡으려면 지역주의 극복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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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좋아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신문고가 처음 설치된 것은 1401년(태종 1년)이다. 억울한 백성이 국왕에게 직접 호소할 길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남용을 막기 위해 이런저런 제한을 두다보니 서울 사는 양반이 아니면 이용하기 어려웠다. 민의를 전달한다는 원래의 의도는 퇴색하고, 신문고는 백 년도 못 가서 폐지되고 말았다. 신문고를 대신하여 민의를 전달한 것이 상언(上言)과 격쟁(擊錚)이다. 상언은 일종의 진정서이다. 국왕의 비서실 승정원이 접수하여 해당 관청으로 내려보내 처리한다. 절차가 복잡하여 접수가 어려운 데다 온건한 탓인지 별다른 조처 없이 종결되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