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장도는 없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배경은 조선시대. 침침한 등잔불 아래 여인이 바느질을 한다. 이때 느닷없이 괴한이 침입한다. 위험을 직감한 여인은 품속에서 은장도를 꺼내 제 목을 겨눈다.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은장도의 클리셰다. 진부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도 거리가 멀다.

[역사와 현실]은장도는 없다

은장도는 손가락만 한 칼 모양 장신구에서 2m 가까운 의장용 목검까지 은으로 장식한 모든 칼을 포함한다. 왕실의 관혼상제에 사용된 은장도는 목검이지만 칼집에 은을 발랐으므로 은장도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문헌에 나오는 은장도는 대부분 이 의장용 목검을 가리킨다. 과도 크기의 금속제 은장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남성용이다. 여성은 한 뼘도 안되는 초소형 은장도를 패용했다. 사극에 등장하는 그 은장도다. 원래는 옷고름에 매다는 장신구에 불과한데, 어느샌가 여기에 신화가 덧입혀졌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항상 품에 지니고 있다가 정절을 위협받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이 칼을 뽑아 자결했다는 것이다.

은장도 신화는 한마디로 허구다. 우선 목숨 걸고 정절을 지키는 여성은 과거에도 극히 일부였다. 양반 중심의 역사 연구가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에 눈을 돌리면서 밝혀진 사실이다. 게다가 칼로 찔러 죽는 건 조선시대 사람들이 선호한 자살 방법이 아니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해서 머리도 깎지 않는 사람들이 몸에 상처를 내서 죽기를 달가워할 리 없다.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칼을 이용한 자살 사례는 드문 편이다.

칼을 이용한 자살이 드물었던 또 다른 이유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칼로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기는 어렵다. 여성의 힘으로는 더욱 어렵다. 1748년 전주의 박씨 여인은 남편이 죽자 자살을 결심하고 칼로 목을 찔렀다. 목에 구멍을 세 개나 내는 바람에 방 안이 피바다가 되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박씨는 유언까지 남기고 이틀이 지나서야 숨이 끊어졌다(한경소, <박열부전>).

1792년 경북 영천의 황씨 여인은 남편과 아들을 잃고 자살을 결심했다. 작은 칼로 목을 찔렀지만 날이 무뎌 들어가지 않았다. 한참을 씨름하고서야 비로소 칼날이 목에 들어갔다. 곁에 있던 어린 딸은 어머니가 무슨 짓을 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피가 흐르자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이를 발견한 사람들이 급히 칼을 뽑고는 입에 물을 흘려넣었다. 상처를 통해 물이 흘러나올 정도로 중상이었지만 역시 죽지는 않았다. 황씨는 한참을 괴로워하다 이튿날이 되어서야 숨을 거두었다(김약련, <속열녀전>). 사람 목숨은 한없이 약하면서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여인들의 이야기는 <신속삼강행실도(新續三綱行實圖)>에 자세하다. 이 책에 실려 있는 724명의 열녀 가운데 칼로 자살한 사람은 24명에 불과하다. 급박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사용한 칼이 무엇인지 일일이 밝히지는 않았지만, 확인 가능한 것은 무기 아니면 부엌칼이다. 은장도를 사용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위급 상황을 대비해 칼을 소지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경북 경산의 여종 덕지(德之)와 충남 은진의 여종 지지(芷芝)는 남편이 죽은 뒤 항상 칼을 품속에 넣고 다녔다. 여종이 값비싼 은장도를 갖고 있을 턱이 없으니, 부엌칼 따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들은 정절을 지키기 위해 칼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표창을 받았다. 누구나 은장도를 지니고 있었다면 열녀로 인정했을 리 만무하다.

<신속삼강행실도>는 조선전기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조선후기에는 달라졌을까? 이혜순 교수의 <한국의 열녀전>은 조선후기 열녀전을 집중 수록한 책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열녀 85명 중 칼로 자살한 사례는 5명 남짓에 불과하다. 모두 시골의 가난한 여인이므로 그들이 사용한 칼 역시 은장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은장도로 자살한 사례를 한 건도 찾을 수 없다.

칼을 항상 소지하고 있다가 여차하면 그걸로 찔러 죽겠다는 생각은 우리의 전통적 정서와 거리가 멀다. 은장도 신화는 일본의 가이켄(懷劍)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가이켄은 일본의 무사 집안 여인이 호신용으로 소지한 단검이다. 일본 전통혼례의 필수품으로 보통은 ‘오비’라고 하는 기모노의 허리띠에 꽂는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체로 은장도보다는 큰 편이다. 그러나 조선 여성이 입는 한복에는 이만 한 단검을 보관할 곳이 없다. 한 뼘도 안되는 칼 모양 장신구를 옷고름에 매다는 게 고작이다.

은장도로 자결하는 여인의 모티브는 일제강점기 소설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에는 일본 소설을 번안한 작품이 많았다. 칼을 숭배하는 그들의 정서도 자연히 수입되었다. 어쩌면 그들의 화끈한 칼부림에 매료된 나머지 은장도에 가이켄의 이미지를 덧입힌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장신구에 불과했던 조선시대 은장도가 오늘날에 와서 살상무기로 둔갑한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오늘도 사극 속의 여인들은 품에서 은장도를 꺼내 제 목을 겨눈다. 사극의 고증을 문제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은장도의 클리셰는 정절이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왜곡된 성의식을 재생산한다. 아울러 우리의 정체성과 역사인식마저 왜곡할 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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