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사지(兵者死地)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만 18세가 되는 남성 전원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나라가 있다. 일부는 이런저런 이유로 빠져나가지만, 대부분은 선고를 피하지 못한다. 극악무도한 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다. 신체 건강한 남성으로 태어난 게 죄라면 죄다. 다행히 형이 즉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감옥에 갇힐 뿐이다. 수감생활은 2년 남짓에 불과하며,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갓 성인이 된 젊은이에게는 황금같은 시간임에 분명하다.

수감생활을 마치면 사회로 복귀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출소 후 8년까지 사형 선고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행여 잊어버릴까 봐 해마다 며칠씩 이들을 모아놓고 상기시켜 주기도 한다. 지난 65년간 이 나라에 대규모 사형 집행은 없었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집행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원히 없을 수도 있고,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대충 짐작이 가는가. 대한민국의 병역 현실이다.

징병은 사형 선고, 군대는 감옥, 전쟁은 사형 집행과 다름없다. 이 땅의 군복무자는 현역 2년, 예비군 8년 동안 언제일지 모를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와 같은 신세다. 1953년 정전협정 이래 65년간 전면전이 없었다는 사실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1997년부터 20년 넘게 사형 집행이 없었던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라고 해서 사형수가 마음 편히 지내겠는가.

지나친 비유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군복무를 국가에 헌납하는 2년간의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군복무자가 국가에 헌납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생명’이다. 가혹행위나 안전사고로 인한 비전투 손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또한 심각한 위협이긴 해도 군대의 본질은 아니다. 어쩌면 군복무를 마친 사람조차 자각 못할지도 모르지만, 군복무는 나의 생명결정권을 국가에 양도하는 행위다. 군인은 죽음을 강요받을 수 있는 직업이다. 군인이 24시간 목에 걸어야 하는 시신확인용 인식표의 싸늘한 감촉은 그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병자사지(兵者死地)’, 군대는 죽는 곳이다. 이것이 군대의 본질이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스스로의 존속을 위해 국민의 생명을 요구하다니, 부조리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이 누리는 모든 것이 그 부조리에 바탕하고 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국민 대다수가 그 부조리에 가담하고 동조하는 이유다. 이 세상에 전쟁이 사라지고 따라서 군대가 필요 없어지는 그날까지, 이 부조리의 끝없는 순환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를 마련하라고 판결했다. 이미 다양한 형태의 대체복무가 시행되고 있는 만큼, 양심적 사유로 인한 대체복무 역시 허용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본다. 아마 군복무자들도 군복무를 죄악시하는 사람과 함께 복무하고 싶지는 않으리라. 유사시 그들을 믿고 의지하며 생사를 같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차라리 다른 형태로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동안 국가는 군복무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놓고 대가 없는 희생을 강요해 왔다. 따지고 보면 ‘신성한 병역 의무’는 근대 국민국가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그 환상을 깨뜨렸다. 병역은 본디 국가와 국민의 계약에 불과하다. 이 점은 징병제의 원형인 병농일치제(兵農一致制)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병농일치제는 병역 의무와 토지 분배를 연동한다. 다산 정약용은 병농일치제를 이상적인 병역제도로 간주했다. “군대는 죽는 곳이다. 따라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이익을 주어야 죽음을 피하려는 마음을 돌릴 수 있다.” <경세유표>에 나오는 말이다. 군대에 가면 죽고, 가지 않으면 산다. 토지가 있으면 살고, 없으면 죽는다. 아무도 군대에 가기를 원하지 않지만 누구나 토지를 원한다. 그래서 군대에 가는 대가로 토지를 주었다. 공동체의 존속과 안녕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얻었던 것이다.

국방부는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수준에서 대체복무자의 복무기간을 결정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대체복무가 아무리 길고 힘들어도 군복무와 형평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어떻게 ‘징벌’할지 궁리해봤자 소용없는 짓이다. 병역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군복무자의 후진적인 복무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산 타령은 듣고 싶지 않다. 예산이 없으면 국방부 청사를 팔고 천막을 치는 퍼포먼스라도 해서 의지를 보일 일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예비군 훈련이나 민방위 소집에 가면 틀어주는 영상물에 꼭 나오는 말이 있다. “군대는 백년 동안 쓰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다산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말이다. 다산의 발언을 인용하여 군대의 존재 의의를 강조하는 국방부는 혜택을 주어야 군대에 간다는 다산의 또 다른 발언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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