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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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고단한 40대 인생의 대차대조표는 간단하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지만 나이를 X축, 호주머니 사정을 Y축으로 하면 ‘적자→흑자→적자’ 흐름을 보인다. 유아기나 유년기엔 돈을 벌지 못하지만 쓰기만 하므로 적자다. 노년에도 고정 수입이 없으면 자녀의 도움을 받아야 하므로 적자다. 경제 활동을 하는 중장년 시기는 소득이 소비보다 많으므로 전체적으로 흑자를 보인다. 통계청이 2021년 기준으로 작성해 27일 발표한 ‘국민이전계정’에 따르면, 태어나자마자 적자로 출발한 인생은 17세 때 3527만원으로 최대 적자를 기록한다. 대입을 앞두고 사교육 등 교육 소비가 크지만 소득은 한 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20대 중반 사회에 진출해 직장을 잡는 시기가 되면 소득이 소비보다 많아지면서 인생이 흑자에 진입하고 43세에 1792만원으로 정점을 찍는다. 이때부터 내리막길이다. 40대 후반엔 자녀 교육비 등으로 지출이 늘면서 흑자 폭이 점점 줄다가 61세부터 죽을 때까지 평균적으로 적자 인생이 이어진다. 인생 80여년 동안 흑자 기간은 30년 남짓이고, 그중에서도 40대 초·중반이 하이라이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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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폴리코노미 내년엔 전 세계에서 유독 선거가 많다. 투표에 참여하는 인원이 총 40억명에 이른다고 한다. 1월엔 대만 총통 선거가 있고, 2월엔 인도네시아 대선과 총선이 있다. 3월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선이 있다. 4월엔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5월엔 인도 총선, 6월엔 유럽의회 선거, 10월엔 브라질 지방선거가 있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미국 대선은 1월15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막이 올라 11월5일 투표가 이뤄진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한다. 하지만 기업가나 경제학자들은 그리 반기지 않는다. 시장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는 정치나 사회 이슈가 경제 현안을 압도하기 마련이다. 영국 시사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세계 경제 전망의 열쇳말로 ‘선거’를 꼽았다. 미국과 유럽 등이 선거를 치르면서 폴리코노미(Policonomy)가 전 세계적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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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공익과 거리 먼 ‘공익의 대표자’ 이선경의 <21세기에 새로 쓴 인간불평등사>를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일반적인 처벌의 형태는 ‘2인칭’이다. 피해를 입었거나 입었다고 생각하는 당사자가 가해자에게 직접 보복을 가하는 방식이다. 2인칭 처벌은 단점이 있다. 강자에게 유리하고, 불평등과 착취를 초래한다. 개인 차원을 넘어 친·인척이나 집단이 가세하면 공동체 전체가 갈등에 휩싸이고 불행에 빠져들 수 있다. 과잉 대응과 피의 보복이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명사회일수록 ‘3인칭’ 처벌이 발달한다. 당사자 아닌 제3자가 처벌하는 시스템이다. 분노 등 감정의 영향을 당사자보다 덜 받으므로 절제되고 객관적인 처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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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생태법인’ 제주남방큰돌고래 2003년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가 도롱뇽을 원고로 내세워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 중지 소송을 냈다. 이른바 ‘도롱뇽 소송’이다. 멸종위기종이자 1급수 환경지표종인 도롱뇽의 서식지 천성산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법원은 소송 당사자로서 도롱뇽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과 재판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자연물이라는 이유였다. 2018년엔 문화재청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반대하는 산양들이 소송을 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패소했다. 도롱뇽이나 산양에 법인격을 부여하고 재판을 진행할 수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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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치솟는 금값 노란 빛깔의 고체. 원자번호는 79, 원소기호는 Au. 전성(두들겨 펴기 쉬운 성질)과 연성(잡아 늘이기 쉬운 성질)이 매우 크면서도 화학 반응성은 유난히 작아 공기나 물에 부식되지 않는 금속. 고대 이집트인들이 태양의 상징으로 여기고, 최영 장군이 돌같이 여기라고 했던 것. 다름 아닌 금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금은 아주 특별한 금속이다. 부와 권력의 상징이고, 가치 저장의 수단이자 안정적인 투자의 대상이다. 금의 가치는 희소성에 있다. 종이와 잉크만 있으면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화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금값을 보면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경제가 좋을 땐 자금이 주식으로 옮겨가지만, 불안할 땐 금에 몰린다. 금과 달러화의 움직임은 반대다. 달러가 약세면 금값이 오르고, 달러가 강세면 금값은 내린다. 금값과 미국 국채 금리도 똑같이 반대 흐름을 보인다. 미 국채는 이자를 받을 수 있어 금리가 높으면 금 투자의 이점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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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대입 제도는 왜 이렇게 자주 바뀌나 복지나 경제 정책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고물가에 민생을 지원하기 위한 유류세 감면만 해도 수조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그런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유권자의 환심을 살 것 같은 정책이 있다. 바로 대학입시 개편이다. 전 국민의 관심사인 입시는 사회적 파급력이 막강하다. 크고 작은 문제가 늘 발생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학생들은 공부가 힘들고, 학부모들은 사교육비에 허리가 휜다. 서남수·배상훈 공저 <대입제도>에 따르면 1945년 이후 굵직한 입시제도 개편만 24회에 이른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대입제도 개편의 순기능은 매우 제한적이다. 시작은 거창하지만, 과정은 혼란스럽고,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공정성을 중시하면 획일적인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하게 되고, 다양한 전형 요소를 도입하면 불공정 논란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절대평가를 하면 성적 부풀리기가 우려되고, 상대평가는 학교를 전쟁터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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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검사 탄핵소추 국무총리 해임건의안과 제1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21일 헌정 사상 처음이자 수십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헌법적 사건이 국회에서 한꺼번에 일어났다. 이날 가결된 검사 탄핵소추안도 그중 하나다. 소추된 이는 안동완 수원지검 안양지청 차장검사이고, 탄핵 추진 사유는 안 검사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인 유우성씨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보복 기소’했다는 것이다. 2004년 탈북한 유씨는 2011년부터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동생을 통해 국내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긴 혐의로 2013년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검찰이 제출한 국가정보원 증거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자 2014년 5월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소속이던 안 검사는 유씨를 불법 대북송금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이미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사안을 다시 끄집어내 재판에 넘긴 것이다. 대법원은 2021년 10월 검찰의 공소 제기가 위법하다고 판단하고 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 후 유씨는 안 검사와 지휘 라인인 김수남 전 검찰총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 등을 공소권 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안 검사 등을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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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정권 말기 같은 공직 사회 세상이 어수선하고 혼탁하다. 극한 대결을 보이는 정치권도 문제지만 공직 사회의 민심 이반도 심각하다. 전임 정부에서 일깨나 한 공무원들은 감사원 감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다. 원래 일을 하지 않던 공무원들은 늘 그렇듯 납작 엎드려 있다. 관가 분위기가 정권 말기 같다. 요즘처럼 기획재정부가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게 보인 적이 없다. 경제와 민생 위기에도 공무원들이 일을 하지 않을 핑곗거리는 널려 있다. 여야 대치로 예산안의 정부 원안 처리는 꿈도 꾸지 못한다. 과거 예산실은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밤샘 작업을 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건전 재정’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고 있으니 업무량은 물론이고 고민 자체가 줄었다. 세제실이나 경제정책국 등도 일하겠다는 의욕이 안 보인다. 국회 입법이나 야당 설득이 필요한 정책은 불가능하다고 지레 판단한 듯하다. 기재부가 올해 경기 예측을 제대로 못해 발생한 세수 결손 규모가 59조원, 국민 1인당 118만원꼴이다. 그런데도 사과나 반성이 없다. 온통 빨간불인 생산·소득·물가 지표를 보는 것도 무섭지만 이런 기재부의 태도가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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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매력적인 오답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9월 모의평가가 6일 치러졌다.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라는 윤석열 대통령 지시 이후 첫 실전 연습이다. 사교육을 받아야 풀 수 있는 고난도 문제를 내면 안 되고, 그렇다고 변별력 확보에 실패해도 안 되니 수능 출제진 고충과 부담이 컸을 것이다. 교사들 얘기로는 ‘다음 중 적당한 것을 고르시오’보다 ‘적당하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라는 식으로 문제를 내면 정답률이 낮아진다. 정답을 1~5번 가운데 어디에 배치하느냐도 중요하다. 같은 문제라도 답안을 ‘4번’에 배치했을 때 정답률이 낮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조삼모사’다. 조금 모르면 3번, 아예 모르면 4번으로 찍으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이걸 금과옥조로 여기면 곤란하다. 고난도 문항이 집중적으로 배치되는 수학이나 과학탐구의 마지막 2~3개 문제는 수험생들이 곧잘 ‘3번’으로 나란히 찍어 3번을 제외한 1·2·4·5번으로 답을 분산 배치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문항 순서를 바꾸는 방법도 있다. 어려운 문제를 전반부에 배치하면 전체적으로 체감 난도가 상승하고 평균 점수도 하락한다. 시험 볼 때 쉬운 문제부터 풀라고 훈수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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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공교육 멈춤의 날 전국의 교사들이 오는 9월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하고, 학교 재량휴업과 단체 연가를 추진 중이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숨진 교사의 49재를 맞아 사건이 벌어진 학교와 국회 앞에서 추모 집회를 열기 위해서다. 초등교사 온라인 커뮤니티인 인디스쿨의 설문조사 결과 참여 의사를 밝힌 교사는 25일 현재 8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관리직인 교장과 교감도 600명이 넘었다. 공무원의 집단행동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교사는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은 있지만 단체행동권은 없다. 교육부는 엄벌 방침을 밝혔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아이들의 학습권을 외면한 채 수업을 중단하고 집단행동을 하는 불법 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국방이나 치안이 멈추면 안 되는 것처럼 공교육이 단 하루라도 중단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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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가난한 개미, 부자 베짱이 더운 날씨에도 개미는 쉬지 않고 일한다. 베짱이는 그런 개미를 비웃으며 나무 그늘에서 노래를 부르고 낮잠을 잔다. 겨울이 되자 개미는 쌓아둔 식량 덕에 풍족하게 살지만 베짱이는 쫄쫄 굶는다.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에는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사람은 잘살고, 당장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게으르며 소비에 열을 올린 사람은 가난하게 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현실은 개미처럼 사는 사람이 가난한 경우가 많다. 땡볕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농민들,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새벽 버스에 몸을 싣는 사람들, 모두들 열심히 일하지만 가난을 벗어나기 어렵다. 가난하기 때문에 더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처지인지도 모른다. 반면 베짱이는 놀아도 계속 잘살기만 한다. 남들이 일하는 평일에 골프를 쳐도 통장에는 매달 이자가 쌓이고 임대료와 주식 배당금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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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10세 영재의 과학고 자퇴 만 10세에 서울과학고에 입학했던 백강현군이 1년도 안 돼 학교를 그만뒀다. 백군은 4년 전 초등학교에 들어가 지난해 중학교 과정을 마친 뒤 올해 서울과학고에 조기 입학했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보였던 그가 지난 18일 돌연 자퇴 사실을 알렸다. 백군은 유튜브 채널에 “문제를 푸는 기계가 돼가는 자신을 보게 됐다”며 같은 학급 형과 누나들에게 이별의 아쉬움을 전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백군의 아버지가 “어린 강현이 감당하기 힘든 놀림과 학교폭력을 겪었다”고 주장해 파장이 일고 있다. 팀 과제를 할 때 면박을 주거나 ‘하루 종일 말 걸지 않기’ 등으로 백군이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는 것이다. 백군 아버지는 아들이 자퇴 영상을 공개한 뒤 같은 학교 학부모로부터 받았다는 e메일도 공개했다. ‘영상을 내리지 않으면 아이가 학교에서 꼴찌를 하고 전 과목에서 한 문제도 못 풀었다는 걸 알리겠다’는 내용이다. 그 학부모는 백군이 사배자(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으로 합격했고,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킬 것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