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스마트폰 뱅크런

오창민 논설위원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라라의 실리콘밸리은행 본점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라라의 실리콘밸리은행 본점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뱅크런’은 은행(bank)에 돈을 찾기 위해 달려간다(run)는 의미다. 은행이 부실하다는 소문이 나면 창구는 예금을 빼내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된다. 현금자동입출금기 앞에도 예금자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그런데 뱅크런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은행으로 달려가는 사람은 소수이고 스마트폰을 통해 예금 인출 경쟁이 벌어진다. 가상통화 급락 과정에서 발생하는 ‘코인런’은 더 심하다. 돈을 찾으러 갈 물리적 공간은 물론 하소연을 들어줄 직원조차 없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초고속으로 파산한 배경에 스마트폰이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분석했다. SVB의 유동성 위기가 실리콘밸리 업자들이 많이 쓰는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전파되자 사람들은 곧바로 스마트폰 뱅킹앱에 접속해 터치 패드 두드리기 경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불과 36시간 만에 420억달러(약 55조원)가 빠져나갔다. 아주 잠깐이라도 뉴스를 놓치거나 디지털 금융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돈을 찾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뱅크런의 얌체족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SVB 회장 그레그 베커는 파산 직전 360만달러 상당의 지분을 매각했고 직원들은 그사이 성과급을 챙겼다고 한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뱅크런 당시 대주주와 정치인, 지역 유지들이 은행 영업정지 전날 밤 돈을 빼내간 것을 연상시킨다. 세월호 선장과 같은 사람들이다.

위기가 금융시스템 전체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조 바이든 정부가 대응에 나섰다. SVB에 고객이 맡긴 돈을 전액 보증하고 유동성이 부족한 금융기관에 자금을 대출하기로 했다. 미 정부의 신속한 조치 덕분에 국내 금융시장도 진정되는 분위기다. 13일 코스피지수는 오르고 원·달러 환율은 20원 넘게 하락했다. 그래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SVB 붕괴 이후 시그니처은행이 폐쇄되는 등 미국에서는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가 예금자 보호 제도를 두고 있다. 한국은 은행 파산 시 예금보험공사가 원금과 이자를 합쳐 1인당 5000만원까지 지급한다. 말은 ‘예금자 보호’지만 실은 뱅크런을 막아 은행을 보호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때문에 거래 은행의 부실 여부까지 매일 신경써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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