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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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과학자도 시민이다 1. 모든 사람은 죽는다. 2. 나는 사람이다. 3. 따라서 나는 죽는다. 누구나 들어봤을 간단한 삼단논법의 예다. 다른 예도 들어보자. 1. 우리 모두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이다. 2. 과학자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3. 따라서 과학자도 시민이다. 우리 사회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가진다. 그중 하나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다. 시민의 부분집합으로서 과학자도 당연히 다른 이가 침해할 수 없는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다. 정치적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다른 이의 의사 표현 자체를 막거나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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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외계 생명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 광막한 우주에서 지적 생명이 우리 인류뿐이라면 이 얼마나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까?”라고 말했다. 과연 이 넓은 우주에 우리 말고 다른 지적 생명이 있을까? 현재까지 지구 밖에서 발견된 적은 없지만 많은 과학자가 생명의 출현은 우주 곳곳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이유가 있다. 지구 생명을 출현시킨 물질적 근거에 특별할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과 탄소가 중요했을 것으로 믿어지는데, 물을 구성하는 수소와 산소뿐 아니라 탄소도 우주에 지천이기 때문이다. 물이 기체 상태로만 존재할 정도로 높은 온도에서는 분자들이 빠르게 움직여 화합물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렵고, 물이 고체 상태로만 존재하는 낮은 온도에서는 분자들이 느려 화학반응 속도가 너무 느리게 된다. 결국 물이 수증기 또는 얼음으로만 존재하는 행성에서는 생명현상에 꼭 필요한 다양한 화학반응이 적절한 속도로 일어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중심별로부터 적절한 거리에 있는 행성에서만 생명이 출현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물론 적절한 거리는 생명 탄생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태양계에서도 지구뿐 아니라 금성도 적절한 거리에 있지만, 금성은 너무나도 척박한 환경이어서 생명이 탄생해 유지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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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노벨상을 받은 홉필드 연결망의 물리학 물리학자 김범준의 옆집몰리학 칼럼을 읽는 여러분, 반갑습니다! 다시 꼼꼼히 살펴보시길. 첫 번째 ‘물리’는 옳게 적혀 있지만 두 번째는 ‘몰리’라고 잘못 적혀 있다. 그런데도 이 문장에서 전혀 오류를 눈치 못 채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낫 놓고 기역 자를 떠올리고, 몰리학을 봐도 몰리학을 떠올릴 수 있는 존재다. 우리는 없는 것도 볼 수 있고, 있는데도 보지 못하는 존재다. 방금 또 내가 ‘몰리학’이라고 틀리게 적었다. 혹시 눈치채신 분? 우리 뇌는 잘못된 외부 정보를 교정해 올바로 인식할 수 있다. “1N73LL1G3NC3 15 7H3 4B1L17Y 70 4D4P7 70 CH4NG3”라는 재밌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암호 같은 기호가 이어져 있는데도 많은 이가 “INTELLIGENCE IS THE ABILITY TO ADAPT TO CHANGE”로 읽어낼 수 있다. 적힌 내용처럼,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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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과학이라는 빨간 약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인간은 자신의 삶에 절대적으로 무관심한 우주의 거대한 침묵 속에 둘러싸인 고독한 자신을 발견한다.” 과학자이자 철학자로서 큰 자취를 남긴 파스칼의 말이다. 우주나, 지구나, 숲이나, 탄소 배출로 기온이 계속 오르는 지구의 대기나, 인간에게 쥐뿔도 관심 없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발버둥치는 인간에게 우주는 아무런 답도 들려주지 않는다. 다른 우주도 있다. 이 우주의 한가운데에는 지구가 있고, 밤하늘을 가득 채운 반짝이는 뭇별은 우리를 중심으로 돈다. 땅을 적시는 비는 풍성한 수확을 위한 자연의 선물이고, 더운 여름 땀 흘린 농부를 위해 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아이가 착한 일 하면 산타 할아버지 선물을 받고 어른이 착하게 살면 다음 생에서 더 큰 보답으로 돌아온다. 이 우주는, 인간의 삶이 전 우주적인 의미가 있다고 끊임없이 우리 귀에 속삭인다. 큰 시련이 닥쳐 정말 힘들어도 이 또한 우주가 품은 원대한 계획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버텨낼 수 있다. 우주와 인간은 한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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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종단속도 떨어지는 것 중에는 날개가 없는 것도 있지만 모든 추락하는 것에는 종단속도가 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체를 떠올려보자. 장마철 500m 높이에 떠 있는 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에 중력만이 작용한다면 우리 머리에 닿을 때의 속도는 무려 초속 100m가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껏 초속 10m 정도로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를 가진다.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다른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물체는 공기 중의 수많은 기체분자를 헤집으며 아래로 움직인다. 물체가 기체분자를 아래로 밀면 기체분자는 그 반작용으로 물체를 위로 민다. 결국 수많은 기체분자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공기의 저항력이 중력 반대 방향으로 물체에 작용하게 된다. 물체가 빠를수록 기체분자가 더 빠르게 더 자주 부딪쳐 저항력이 크다. 가만히 떨어뜨리면 처음에는 물체가 그리 빠르지 않아 저항력은 작고 중력은 커서 물체의 속도가 점점 늘어나게 된다. 아래로 점점 빠르게 떨어지면서 저항력이 커지고, 종국에는 중력과 저항력의 크기가 같아지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물체에 작용하는 힘을 방향도 고려해 모두 더한 알짜 힘의 크기가 0이 된다. 뉴턴의 운동법칙은 이때 가속도가 0이 되어 물체의 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렇게 도달한 최종 속도가 바로 종단속도다. 추락하는 모든 것은 점점 빠르게 떨어지다가 결국 종단속도에 이르고 이후에는 이 속도를 계속 유지하면서 지면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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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멈춰야 구르는 바퀴 길가에 서서 빠르게 움직이는 자동차를 본다. 직접 눈으로 보기는 어려워 믿기지 않겠지만, 빠르게 내 앞을 스쳐 지나가며 구르는 둥근 바퀴에는 매 순간 정지해 있는 딱 한 점이 존재한다. 느긋하게 굴러가는 소달구지, 빠른 자전거, 질주하는 경주용 자동차 모두 마찬가지다. 굴러가는 모든 것에는 멈춘 곳이 있다. 2차원 평면에서 가장 신기하고 독특한 도형이 바로 둥근 원이다. 원 한가운데 중심에서 바라보면 원의 둥근 곡선을 이루는 모든 점은 같은 거리에 있다. 평면 위 한 점에서 도형의 어디를 봐도 모든 점이 같은 거리인 도형은 딱 원 하나뿐이다. 정삼각형은 다르다. 중심에서 바라보면 꼭짓점이 변보다 멀다. 만약 바퀴를 정삼각형 모양으로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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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자전거 예찬 자전거를 자주 탄다. 10㎞ 거리의 직장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도 하고, 집 근처 커피숍에 갈 때도 자전거를 애용한다. 저녁을 준비하던 아내가 동네 슈퍼에서 빨리 뭘 사 오라고 한다. 자전거 탈 생각에 게으른 몸이 거실 소파에서 쉽게 일으켜진다. 자전거를 타는 게 걷는 것보다 훨씬 더 편하다는 것을 내 몸이 잘 알기 때문이다.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걷는 것과 비교하면, 자전거는 절반의 에너지 소비로 3배 이상의 속도를 낸다. 자전거의 높은 에너지 효율성은 물리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몸의 근육이 자전거 페달을 미는 역학적 일은 100%에 가까운 높은 효율로 바퀴의 회전 운동에너지로 변환된다. 걸을 때는 다르다. 팔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몸통이 좌우로 흔들리는 등, 부수적으로 낭비되는 에너지가 많다. 걸을 때는 우리 몸의 무게 중심이 위아래로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도 자전거와 다른 점이다. 중력에 거슬러 몸의 무게 중심이 위로 이동할 때 큰 에너지가 소비된다. 걷는 것은 앞으로 가기 위한 것인데도, 우리 몸은 위아래 방향의 엉뚱한 움직임으로 큰 에너지를 소비하는 셈이다. 자전거와 한 몸이 된 인간은 두 발로 걷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훨씬 더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매년 전 세계에서 1억대 이상의 자전거가 판매되는 이유, 인간의 발명품 중 자전거를 최고로 꼽는 이가 많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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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완벽한 암기는 이해와 구별할 수 없다 과학소설 작가 아서 클라크는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과학자로 30여년을 보냈고, 인공지능 관련 물리학 논문을 몇편 출판했으며, 인공지능 관련 초급 대학 강의를 맡아 가르치기도 했지만, 요즘 생성형 인공지능의 눈부신 성능은 내게도 마법 같다. 위에서 소개한 아서 클라크의 말을 비슷한 형식으로 살짝 비틀어 재밌게 표현한 글귀를 접한 적이 있다. 과학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과학과 사람들’에서 몇년 전 제작한 커피 컵에서 본, “완벽한 암기는 이해와 구별할 수 없다”라는 재밌는 문장이다. 요즘 인공지능의 엄청난 발전을 보면서 이 재밌는 글귀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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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아지랑이 요즘 날씨가 참 좋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1년 365일 이런 날씨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따사로운 늦봄이다. 어린 시절 봄은 어머니의 냉잇국으로 시작해 가려운 눈가와 재채기를 지나 시원한 열무국수로 끝났다. 요즘에는 자동차 에어컨을 켜면서 봄이 여름으로 바뀌는 계절의 변화를 불현듯 깨닫기도 한다. 햇볕으로 뜨거워진 차 안에서 어느 날 에어컨을 켜기 시작할 무렵이면 또 다른 초여름의 낯익은 풍경이 있다. 자동차 앞 유리 너머 거리의 풍경이 아른거린다. 햇볕으로 뜨거워진 도로와 앞차 지붕에서 아지랑이가 꼼지락꼼지락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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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과속 단속 경찰도 알아야 하는 순간속도 1시간에 60㎞를 가는 속도로 달리면 1분에 1㎞, 1초에 약 17m를 간다. 속도는 이처럼 거리와 시간을 함께 이용해 표시한다. 시간 단위 1분(minute)은 바빌로니아 문명의 60진법이 기원이다. 1시간을 60등분해 얻어지는 짧은 시간 조각이 1분이다. 영어 단어 minute의 어원은 라틴어 ‘pars minuta prima’다. ‘첫 번째 작은 조각’이란 뜻이다. 영단어 minute가 지금도 ‘미세한’이라는 뜻과 1분이라는 시간의 뜻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이유다. ‘분’의 한자인 나눌 분(分)에도 1시간을 나누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 흥미롭다. 1시간을 60조각으로 잘게(minute) 나눈(分) 것이 1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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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일주일은 왜 7일일까 아침에 해 뜨고 다음날 다시 해 뜰 때까지가 하루다. 지구 어디서나 오래전부터 하루라는 시간의 길이를 이용했다. 보름달부터 다음 보름달까지 몇번의 하루가 있는지 세면 약 30이다. 대부분 문명에서 한 달의 길이가 30일 정도로 정해진 이유다. 매일 아침 어느 방향에서 해가 뜨는지 살피면 365일 정도를 주기로 해 뜨는 위치가 다시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루, 한 달, 그리고 한 해의 길이는 하늘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두 천체인 해와 달이 알려준다. 또 다른 흥미로운 주기가 일주일이다. 기독교 성경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세상 만물을 6일에 걸쳐 만들어내고 다음날인 7번째 날에는 쉬었다고 적혀 있지만, 일주일이 왜 하필 7일로 구성되어야 하는지는 아무리 하늘을 관찰해도 알 수 없다. 물리학자 다카미즈 유이치의 책 <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까>에서 월화수목금토일의 순서로 반복되는 7일로 일주일이 정해진 재밌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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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지속 가능하지 않은 되먹임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얘기다. 세속의 재산 얘기일 리는 없지만,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는 부익부 빈익빈이 떠오른다. 예금액이 많은 사람은 금융소득이 더해져 예금이 점점 늘고, 이자를 내지 못하면 채무자의 채무는 점점 늘어난다. 늘어나면 늘어났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음에는 더 늘고, 줄어들면 줄어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다음에는 더 주는 현상이 우리 주변에 많다. 양의 되먹임 혹은 늘어나는 되먹임이라 부르는 효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