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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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봄날의 봄볕 내가 사는 수원에는 ‘인문 공동체 책고집’이 있다. 책고집 대표 최준영 선생님은, 노력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의 구석진 그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인문학의 가치를 알리려 꾸준히 고집스럽게 애써온 이다. 올해 책고집은 ‘인문학 강좌, 곁과 볕’을 전국 곳곳에서 진행한다. 얼마 전 강사로 참여하는 분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글과 삶의 모습을 보며 늘 존경하던 한 분이 ‘곁과 볕’이 ‘곁과 빛’이었다면 이 자리에 오지 않으려 했다며 좌중을 웃게 만들고는, 곧 사람의 온기를 전하는 것은 빛이 아니라 볕이라는 의미 있는 얘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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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통계학으로 살펴보는 음모론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둥근 지구 사진을 보여주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증거도 이들의 강한 신념을 바꾸기 어렵다. 진화는 거짓이라는 주장도 비슷하다. 명확한 온갖 증거도 창조론자의 신념을 꺾기 어렵다. 찾을 때까지 노력하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증거 사이의 빈틈을 찾고, 그것도 어려우면 진화의 증거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선거 결과가 자신이 이전에 확신했던 것과 크게 다르니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는 주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정이 없었다는 것을 명확히 보이지 못했으니 부정이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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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과학자도 시민이다 1. 모든 사람은 죽는다. 2. 나는 사람이다. 3. 따라서 나는 죽는다. 누구나 들어봤을 간단한 삼단논법의 예다. 다른 예도 들어보자. 1. 우리 모두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이다. 2. 과학자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3. 따라서 과학자도 시민이다. 우리 사회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가진다. 그중 하나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다. 시민의 부분집합으로서 과학자도 당연히 다른 이가 침해할 수 없는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다. 정치적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다른 이의 의사 표현 자체를 막거나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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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외계 생명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 광막한 우주에서 지적 생명이 우리 인류뿐이라면 이 얼마나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까?”라고 말했다. 과연 이 넓은 우주에 우리 말고 다른 지적 생명이 있을까? 현재까지 지구 밖에서 발견된 적은 없지만 많은 과학자가 생명의 출현은 우주 곳곳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이유가 있다. 지구 생명을 출현시킨 물질적 근거에 특별할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과 탄소가 중요했을 것으로 믿어지는데, 물을 구성하는 수소와 산소뿐 아니라 탄소도 우주에 지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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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노벨상을 받은 홉필드 연결망의 물리학 물리학자 김범준의 옆집몰리학 칼럼을 읽는 여러분, 반갑습니다! 다시 꼼꼼히 살펴보시길. 첫 번째 ‘물리’는 옳게 적혀 있지만 두 번째는 ‘몰리’라고 잘못 적혀 있다. 그런데도 이 문장에서 전혀 오류를 눈치 못 채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낫 놓고 기역 자를 떠올리고, 몰리학을 봐도 몰리학을 떠올릴 수 있는 존재다. 우리는 없는 것도 볼 수 있고, 있는데도 보지 못하는 존재다. 방금 또 내가 ‘몰리학’이라고 틀리게 적었다. 혹시 눈치채신 분? 우리 뇌는 잘못된 외부 정보를 교정해 올바로 인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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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과학이라는 빨간 약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인간은 자신의 삶에 절대적으로 무관심한 우주의 거대한 침묵 속에 둘러싸인 고독한 자신을 발견한다.” 과학자이자 철학자로서 큰 자취를 남긴 파스칼의 말이다. 우주나, 지구나, 숲이나, 탄소 배출로 기온이 계속 오르는 지구의 대기나, 인간에게 쥐뿔도 관심 없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발버둥치는 인간에게 우주는 아무런 답도 들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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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종단속도 떨어지는 것 중에는 날개가 없는 것도 있지만 모든 추락하는 것에는 종단속도가 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체를 떠올려보자. 장마철 500m 높이에 떠 있는 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에 중력만이 작용한다면 우리 머리에 닿을 때의 속도는 무려 초속 100m가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껏 초속 10m 정도로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를 가진다.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다른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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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멈춰야 구르는 바퀴 길가에 서서 빠르게 움직이는 자동차를 본다. 직접 눈으로 보기는 어려워 믿기지 않겠지만, 빠르게 내 앞을 스쳐 지나가며 구르는 둥근 바퀴에는 매 순간 정지해 있는 딱 한 점이 존재한다. 느긋하게 굴러가는 소달구지, 빠른 자전거, 질주하는 경주용 자동차 모두 마찬가지다. 굴러가는 모든 것에는 멈춘 곳이 있다. 2차원 평면에서 가장 신기하고 독특한 도형이 바로 둥근 원이다. 원 한가운데 중심에서 바라보면 원의 둥근 곡선을 이루는 모든 점은 같은 거리에 있다. 평면 위 한 점에서 도형의 어디를 봐도 모든 점이 같은 거리인 도형은 딱 원 하나뿐이다. 정삼각형은 다르다. 중심에서 바라보면 꼭짓점이 변보다 멀다. 만약 바퀴를 정삼각형 모양으로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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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자전거 예찬 자전거를 자주 탄다. 10㎞ 거리의 직장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도 하고, 집 근처 커피숍에 갈 때도 자전거를 애용한다. 저녁을 준비하던 아내가 동네 슈퍼에서 빨리 뭘 사 오라고 한다. 자전거 탈 생각에 게으른 몸이 거실 소파에서 쉽게 일으켜진다. 자전거를 타는 게 걷는 것보다 훨씬 더 편하다는 것을 내 몸이 잘 알기 때문이다.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걷는 것과 비교하면, 자전거는 절반의 에너지 소비로 3배 이상의 속도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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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완벽한 암기는 이해와 구별할 수 없다 과학소설 작가 아서 클라크는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과학자로 30여년을 보냈고, 인공지능 관련 물리학 논문을 몇편 출판했으며, 인공지능 관련 초급 대학 강의를 맡아 가르치기도 했지만, 요즘 생성형 인공지능의 눈부신 성능은 내게도 마법 같다. 위에서 소개한 아서 클라크의 말을 비슷한 형식으로 살짝 비틀어 재밌게 표현한 글귀를 접한 적이 있다. 과학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과학과 사람들’에서 몇년 전 제작한 커피 컵에서 본, “완벽한 암기는 이해와 구별할 수 없다”라는 재밌는 문장이다. 요즘 인공지능의 엄청난 발전을 보면서 이 재밌는 글귀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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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아지랑이 요즘 날씨가 참 좋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1년 365일 이런 날씨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따사로운 늦봄이다. 어린 시절 봄은 어머니의 냉잇국으로 시작해 가려운 눈가와 재채기를 지나 시원한 열무국수로 끝났다. 요즘에는 자동차 에어컨을 켜면서 봄이 여름으로 바뀌는 계절의 변화를 불현듯 깨닫기도 한다. 햇볕으로 뜨거워진 차 안에서 어느 날 에어컨을 켜기 시작할 무렵이면 또 다른 초여름의 낯익은 풍경이 있다. 자동차 앞 유리 너머 거리의 풍경이 아른거린다. 햇볕으로 뜨거워진 도로와 앞차 지붕에서 아지랑이가 꼼지락꼼지락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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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과속 단속 경찰도 알아야 하는 순간속도 1시간에 60㎞를 가는 속도로 달리면 1분에 1㎞, 1초에 약 17m를 간다. 속도는 이처럼 거리와 시간을 함께 이용해 표시한다. 시간 단위 1분(minute)은 바빌로니아 문명의 60진법이 기원이다. 1시간을 60등분해 얻어지는 짧은 시간 조각이 1분이다. 영어 단어 minute의 어원은 라틴어 ‘pars minuta prima’다. ‘첫 번째 작은 조각’이란 뜻이다. 영단어 minute가 지금도 ‘미세한’이라는 뜻과 1분이라는 시간의 뜻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이유다. ‘분’의 한자인 나눌 분(分)에도 1시간을 나누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 흥미롭다. 1시간을 60조각으로 잘게(minute) 나눈(分) 것이 1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