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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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멈춰야 구르는 바퀴 길가에 서서 빠르게 움직이는 자동차를 본다. 직접 눈으로 보기는 어려워 믿기지 않겠지만, 빠르게 내 앞을 스쳐 지나가며 구르는 둥근 바퀴에는 매 순간 정지해 있는 딱 한 점이 존재한다. 느긋하게 굴러가는 소달구지, 빠른 자전거, 질주하는 경주용 자동차 모두 마찬가지다. 굴러가는 모든 것에는 멈춘 곳이 있다. 2차원 평면에서 가장 신기하고 독특한 도형이 바로 둥근 원이다. 원 한가운데 중심에서 바라보면 원의 둥근 곡선을 이루는 모든 점은 같은 거리에 있다. 평면 위 한 점에서 도형의 어디를 봐도 모든 점이 같은 거리인 도형은 딱 원 하나뿐이다. 정삼각형은 다르다. 중심에서 바라보면 꼭짓점이 변보다 멀다. 만약 바퀴를 정삼각형 모양으로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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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자전거 예찬 자전거를 자주 탄다. 10㎞ 거리의 직장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도 하고, 집 근처 커피숍에 갈 때도 자전거를 애용한다. 저녁을 준비하던 아내가 동네 슈퍼에서 빨리 뭘 사 오라고 한다. 자전거 탈 생각에 게으른 몸이 거실 소파에서 쉽게 일으켜진다. 자전거를 타는 게 걷는 것보다 훨씬 더 편하다는 것을 내 몸이 잘 알기 때문이다.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걷는 것과 비교하면, 자전거는 절반의 에너지 소비로 3배 이상의 속도를 낸다. 자전거의 높은 에너지 효율성은 물리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몸의 근육이 자전거 페달을 미는 역학적 일은 100%에 가까운 높은 효율로 바퀴의 회전 운동에너지로 변환된다. 걸을 때는 다르다. 팔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몸통이 좌우로 흔들리는 등, 부수적으로 낭비되는 에너지가 많다. 걸을 때는 우리 몸의 무게 중심이 위아래로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도 자전거와 다른 점이다. 중력에 거슬러 몸의 무게 중심이 위로 이동할 때 큰 에너지가 소비된다. 걷는 것은 앞으로 가기 위한 것인데도, 우리 몸은 위아래 방향의 엉뚱한 움직임으로 큰 에너지를 소비하는 셈이다. 자전거와 한 몸이 된 인간은 두 발로 걷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훨씬 더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매년 전 세계에서 1억대 이상의 자전거가 판매되는 이유, 인간의 발명품 중 자전거를 최고로 꼽는 이가 많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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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완벽한 암기는 이해와 구별할 수 없다 과학소설 작가 아서 클라크는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과학자로 30여년을 보냈고, 인공지능 관련 물리학 논문을 몇편 출판했으며, 인공지능 관련 초급 대학 강의를 맡아 가르치기도 했지만, 요즘 생성형 인공지능의 눈부신 성능은 내게도 마법 같다. 위에서 소개한 아서 클라크의 말을 비슷한 형식으로 살짝 비틀어 재밌게 표현한 글귀를 접한 적이 있다. 과학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과학과 사람들’에서 몇년 전 제작한 커피 컵에서 본, “완벽한 암기는 이해와 구별할 수 없다”라는 재밌는 문장이다. 요즘 인공지능의 엄청난 발전을 보면서 이 재밌는 글귀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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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아지랑이 요즘 날씨가 참 좋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1년 365일 이런 날씨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따사로운 늦봄이다. 어린 시절 봄은 어머니의 냉잇국으로 시작해 가려운 눈가와 재채기를 지나 시원한 열무국수로 끝났다. 요즘에는 자동차 에어컨을 켜면서 봄이 여름으로 바뀌는 계절의 변화를 불현듯 깨닫기도 한다. 햇볕으로 뜨거워진 차 안에서 어느 날 에어컨을 켜기 시작할 무렵이면 또 다른 초여름의 낯익은 풍경이 있다. 자동차 앞 유리 너머 거리의 풍경이 아른거린다. 햇볕으로 뜨거워진 도로와 앞차 지붕에서 아지랑이가 꼼지락꼼지락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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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과속 단속 경찰도 알아야 하는 순간속도 1시간에 60㎞를 가는 속도로 달리면 1분에 1㎞, 1초에 약 17m를 간다. 속도는 이처럼 거리와 시간을 함께 이용해 표시한다. 시간 단위 1분(minute)은 바빌로니아 문명의 60진법이 기원이다. 1시간을 60등분해 얻어지는 짧은 시간 조각이 1분이다. 영어 단어 minute의 어원은 라틴어 ‘pars minuta prima’다. ‘첫 번째 작은 조각’이란 뜻이다. 영단어 minute가 지금도 ‘미세한’이라는 뜻과 1분이라는 시간의 뜻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이유다. ‘분’의 한자인 나눌 분(分)에도 1시간을 나누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 흥미롭다. 1시간을 60조각으로 잘게(minute) 나눈(分) 것이 1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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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일주일은 왜 7일일까 아침에 해 뜨고 다음날 다시 해 뜰 때까지가 하루다. 지구 어디서나 오래전부터 하루라는 시간의 길이를 이용했다. 보름달부터 다음 보름달까지 몇번의 하루가 있는지 세면 약 30이다. 대부분 문명에서 한 달의 길이가 30일 정도로 정해진 이유다. 매일 아침 어느 방향에서 해가 뜨는지 살피면 365일 정도를 주기로 해 뜨는 위치가 다시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루, 한 달, 그리고 한 해의 길이는 하늘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두 천체인 해와 달이 알려준다. 또 다른 흥미로운 주기가 일주일이다. 기독교 성경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세상 만물을 6일에 걸쳐 만들어내고 다음날인 7번째 날에는 쉬었다고 적혀 있지만, 일주일이 왜 하필 7일로 구성되어야 하는지는 아무리 하늘을 관찰해도 알 수 없다. 물리학자 다카미즈 유이치의 책 <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까>에서 월화수목금토일의 순서로 반복되는 7일로 일주일이 정해진 재밌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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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지속 가능하지 않은 되먹임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얘기다. 세속의 재산 얘기일 리는 없지만,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는 부익부 빈익빈이 떠오른다. 예금액이 많은 사람은 금융소득이 더해져 예금이 점점 늘고, 이자를 내지 못하면 채무자의 채무는 점점 늘어난다. 늘어나면 늘어났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음에는 더 늘고, 줄어들면 줄어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다음에는 더 주는 현상이 우리 주변에 많다. 양의 되먹임 혹은 늘어나는 되먹임이라 부르는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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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행복, 애쓰지 않으면 머물 수도 없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가정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다. 돈이 없어, 병에 걸려서, 외로워서…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 행복은 어쩌면 높은 산봉우리 정상, 손바닥만 한 좁은 땅 같은 곳일지 모른다. 동쪽으로 삐끗해 한 걸음 옮기면 건강을 잃는 내리막으로 접어들고, 오랜 친구 한 명을 잃는 남쪽 방향 한 걸음으로 큰 불행이 시작될 수도 있다. 행복이라는 불안정한 산꼭대기에서 저 아래 놓인 제각각 다른 수많은 불행의 골짜기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지천이다. 어느 방향으로라도 잠깐 발을 헛디디면 굴러떨어질 수 있는 한 뼘 크기 장소가 행복이 놓인 곳이다. 지금의 행복이 앞으로의 여전한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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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마야 역법의 독특한 세계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10 천간(天干)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와 12 지지(地支)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가 함께 순서대로 되풀이하며 진행하는 방식으로 우리 선조는 해의 이름을 정했다. 지난해는 계묘년이었으니 계에서 이어지는 갑, 묘 다음의 진이 모여 올해는 갑진년이 되는 식이다. 10과 12의 최소공배수는 60이어서 갑자, 을축, 병인으로 이어지는 육십갑자는 60을 주기로 반복된다. 갑 다음은 을, 진 다음은 사여서 내년은 을사년이다. 일제가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불법적으로 박탈한 을사늑약이 120년 전이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120살까지 살면 환갑 잔치를 두 번 할 수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환갑을 축하할 기회가 딱 한 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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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겨울 외투가 두껍고 어두운 까닭 겨울이다. 두꺼운 외투로 무장하고 집을 나서니 코끝 쨍한 아침 공기가 나를 맞는다. 밤새 소복이 쌓인 눈을 뭉쳐 시린 손은 따뜻한 편의점 캔커피로 녹인다. 뜨겁고 차가운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몸으로 잘 알지만, 도대체 온도가 높고 낮은 것이 물질의 어떤 객관적인 특성에서 비롯하는지를 알게 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낸 뒤로도 거의 200년이 더 지난 다음이다. 인류는 천체의 움직임을 상당한 정확도로 예측했지만, 눈의 차가움과 커피의 따뜻함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인지는 오랫동안 몰랐다. 어쩌면 직관적 감각의 명확함이 물어야 할 질문을 떠올리는 것을 오히려 방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당연한 것도, 아니 오히려 당연할수록, 더 끈질기게 물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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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기후위기와 인류의 미래 지난 11월2일 우리나라 전역의 날씨는 마치 초여름 같았다. 무려 30도에 가까운 낮 기온을 보여준 곳도 있었고, 그날 하루 중 최저 기온이 1907년 시작된 우리나라 기상 관측 116년 역사에서 가장 높았던 곳도 여럿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올해 전 세계 곳곳에서는 이상 고온, 홍수, 그리고 대규모 산불 등의 자연 재해가 그치지 않았다. 기온이 상승하면 숲의 나무가 머금고 있는 액체 상태의 물은 기체인 수증기로 변해 나무에서 대기로 옮겨간다. 해가 떠 온도가 높아진 한낮에 아침 이슬과 안개가 사라지는 것과 정확히 같은 원리다. 결국 대기의 기온이 높아지면 숲이 건조해져 산불 규모가 커진다. 기온 상승으로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으면, 당연히 강수량이 늘어 홍수 피해가 커지고, 당연히 에너지가 커져 태풍 피해도 커진다. 태풍, 홍수, 산불의 규모는 지구의 기온 상승과 함께 커진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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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새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 어린 시절 제비는 흔히 볼 수 있는 새였다. 친구들과 골목에서 놀다 보면 제비가 낮게 날 때가 있었다. 비가 올지 모르니 빨리 집에 가라는 동네 어른 말씀에 뜀박질을 시작하면 정말로 곧 소나기가 쏟아지고는 했다. 새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것은 오랫동안 누적된 경험으로 우리 선조가 파악한 상관관계다. 하지만 새가 낮게 날기 ‘때문에’ 비가 오는 것은 아니다. 상관관계가 사실이라고 해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인 인과관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의 노벨상 수상자 숫자와 초콜릿 소비량 사이에 상당히 강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이것도 인과관계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아직 없는 이유가 한국인이 초콜릿을 적게 먹기 때문일 리는 없다. 새가 낮게 날아 비가 온 것도 아니고, 초콜릿 많이 먹어 노벨상 타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관관계 자체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명확히 관찰된 상관관계의 배후에는 이를 만들어내는 합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을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