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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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비생명, 생명 그리고 죽음 나는 살아있지만 내 몸을 구성하는 원자는 살아있지 않다. 살아있지 않은 단순한 여럿이 모여 서로 연결하고 결합해 창발하는 대표적 현상이 생명이다. 빅뱅 직후 우주에는 복잡한 것 하나 없이 단순한 것만 가득했다. 쿼크가 모여 양성자와 중성자가 되고 이들이 전자와 짝지어 원자가 되었다. 다음에는 원자들이 모여 분자가 되고 여러 분자가 길게 이어져 생명체를 이루는 다양한 화합물이 만들어졌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잠과 꿈 우리 삶의 거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긴 시간, 우리는 언뜻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상태로 인생을 낭비한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외부 세상을 인식하지 못해 공격에 취약하고, 음식을 먹지도, 책을 읽지도,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다. 바로, 매일 밤 잠잘 때 우리 모두 겪는 일이다. 잠도 신기한데 꿈은 더 기이하다. 내 몸은 여전히 침대 이불 속에 머무는데, 꿈속의 나는 싸우고 뛰고 날아다닌다. 게다가 내가 하늘을 난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는 사실 자체를 꿈속에서는 깨닫지 못한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과학과 무한 첫술에 배부를 리 없지만, 밥 한술 뜨는 것을 여러 번 계속하다보면 배가 부르다. 사과 하나 먹고 또 하나를 먹으면 두 개의 사과를 먹은 것이듯,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더하기 전 하나보다 더 크다. 꼭 그런 것은 아니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외가 있기는 하다. 1+1=2지만 0+0=0이어서 크기 없는 0을 서로 더한다고 크기가 0보다 커질 리 없다. 아무리 여러 술 떠도 배가 차지 않는 숟가락은 빈 숟가락일 수밖에. 같은 둘을 더하면 처음 하나보다 커진다는 것은 0을 제외하면 다른 반례가 없는 절대적 진리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두 발로 서는 인간 이상희 교수의 책 <인류의 기원>에서 저자는 초기 인류를 다른 생물종과 구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두발걷기라는 얘기를 들려준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며 다른 영장류와 갈라진 이들이 우리 인류의 선조가 되었다. 지웅배 교수가 최근 출간한 책 <우리는 모두 천문학자로 태어난다>에서 저자는 우리 인간은 두 발로 서게 되자 고개를 위로 들어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인류와 천문학이 함께 탄생한 셈이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짜릿한 겨울 결혼 전 막 연애를 시작할 때 택시 뒷자리에 아내와 나란히 앉았던 기억이 있다. 급커브를 돌 때 몸이 한쪽으로 쏠려 아내 팔에 닿으면 온몸이 감전된 듯 짜릿했다. 저 앞에 커브 길이 보이면 일찌감치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결혼한 지 이미 30년도 더 지난 요즘도 가끔 짜릿할 때가 있다. 특히 겨울에. 플라스틱 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머리카락이 빗을 따라 위로 딸려 올라가고 가전제품 상자를 뜯다 부서진 작은 스티로폼 조각은 바지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추운 겨울의 물리학 추운 겨울 두툼한 외투를 입고 길을 나선다. 입에서는 흰 입김이 나오고 언 길이 미끄러워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긴다. 언 손은 마주 비벼 녹이고 버스를 기다리며 몸을 웅크린다. 우리 모두 겨울날 자주 겪는 일이다. 이런 일상의 경험에도 속속들이 물리학의 원리가 담겨 있다. 여름에 안 보이는 입김이 겨울에는 보이는 이유, 겨울옷이 두꺼운 이유, 손을 마주 비비면 잠깐 손을 녹일 수 있는 이유, 얼음이 미끄러운 이유, 모두 물리학이다. 작은 것의 물리학이 우리의 겨울 일상을 만들어 낸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시간의 화살 50대가 저물어가는 요즘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흐른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쏜살같다고 표현하듯, 미래로만 흐르는 시간을 우리는 날아가는 화살에 자주 비유한다. 쏜살같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시간의 화살은 미래를 향한다. 노화에 대한 나의 주관적 경험이 시간의 화살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물에 떨어뜨린 작은 잉크 방울은 널리 고르게 퍼질 뿐, 다시 작은 방울로 모이지 않는 것을 떠올려보라. 시간의 화살은 주관적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봐도 같은 객관적 사실로 보인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천지 차이를 없앤 뉴턴 100년 전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가 작은 입자의 세상을 설명하는 양자역학을 처음 만들어냈다. 이들의 뒤를 이어 20세기 물리학의 발전을 주도한 다음 세대의 훌륭한 물리학자들이 있다. 헬륨의 초유체 현상에 대한 연구로 196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러시아의 위대한 물리학자 레프 란다우도 이 중 하나다. 란다우에 얽힌 재밌는 일화가 전해진다. 물리학자답게 란다우는 선배 과학자의 업적의 위대함을 수학에 등장하는 로그값을 이용해 숫자로 표현했다. 100은 10의 제곱이어서 로그값이 2이고 1000은 10의 세제곱이어서 로그값이 3이다. 이처럼 로그값으로 1의 차이가 나면 원래값의 차이는 무려 10배가 된다. 로그의 척도를 쓰는 지진의 규모도 마찬가지여서, 규모 7인 지진에 비해 규모 8인 지진의 진폭은 무려 10배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여름이 더워지는 이유 지구가 태양에 더 가까워져서 여름이 더운 것일까? 그렇지 않다. 길쭉한 타원 모양인 공전 궤도에서 여름이 아닌 겨울에 오히려 지구가 태양에 더 가깝다. 태양이 가까워서 여름이 더운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태양까지 거리가 가까워 한낮이 아침저녁보다 기온이 높을 리도 없다. 그럼 해가 중천에 뜬 한낮이 더 더운 이유는 무얼까? 추운 겨울날 꽁꽁 언 손을 난롯불에 녹일 때 우리는 손바닥을 난로를 향해 펼친다. 난로에서 에너지를 싣고 방출되는 전자기파의 진행 방향과 손바닥이 정확히 수직일 때 손바닥의 단위면적에 입사되는 에너지가 최대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같은 면적의 지면에 태양이 지구로 보낸 전자기파가 전달하는 복사 에너지는 햇빛과 지면의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머리 위에 해가 있을 때 단위면적당 지면에 도달하는 햇빛의 양이 가장 많고 해가 지평선 위에 낮게 떠 있을 때 단위면적당 지면에 도달하는 햇빛의 양이 적다. 한낮이 뜨거운 이유는 거리가 아니라 각도 때문이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입자도 파동도 없는 양자의 세상 책상 위 탁구공을 떠올려보라. 우리는 저곳에 탁구공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탁구공 같은 물리학의 입자는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 다음에는 퐁당퐁당 던진 돌이 만든 물결이 호수 위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물결 같은 물리학의 파동은 넓게 펼쳐져서 위치를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입자와 파동은 정말 다르다. 탁구공 하나 옆에 하나를 더 두면 두 개다. 하나, 둘, 셀 수 있는 물리학의 입자는 1+1=2를 만족한다. 파동은 다르다. 오르락내리락 위아래로 진동하며 움직이는 파동에서 가장 높은 곳을 마루, 가장 낮은 곳을 골이라고 한다. 마루와 마루 사이의 거리가 파장, 마루와 골 사이 수직 방향 거리의 절반이 진폭이다. 파장과 진폭이 같은 두 파동이 한 곳에서 만날 때 마루와 마루가 만나면 둘이 더해져 진폭이 두 배가 되지만, 마루와 골이 만나면 서로 상쇄해 진폭이 0이 된다. 이처럼 파동은 1+1이 2가 되는 보강간섭을 보여줄 수도 있고, 1+1이 0이 되는 상쇄간섭을 보여줄 수도 있다. 요즘 인기 있는 소음 제거 헤드폰도 상쇄간섭을 이용한다. 헤드폰 밖 소음을 잠깐 녹음했다가 위아래가 뒤집힌 꼴로 출력해서 소음의 크기를 크게 줄인다. 소리가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라 가능한 일이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선거와 ‘함께 지성’ 동양의 고전 <서경(書經)>에 “천시자아민시 천청자아민청(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이라는 글귀가 있다. 하늘(天)이 보는(視) 것은 우리(我) 평범한 민중(民)이 보는 것에서 비롯(自)하고, 하늘이 듣는(聽) 것도 민중이 듣는 것에서 비롯한다는 뜻이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바로 그 얘기다. 라틴어 글귀 “복스 포풀리, 복스 데이(Vox populi, Vox dei)”도 민중(populi)의 목소리(vox)가 곧 신(dei)의 목소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보고 듣는 것은 몸 밖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말하는 것은 우리 머릿속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동서양 모두 오래전부터 평범한 이들이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하늘과 신에 견줄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책으로 본 세상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과학책을 읽을 일이 많지만 역사나 철학책도 좋아하고, 소설에 흠뻑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도 많다. 직접 차를 운전하면 30분, 버스로는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 갈 때는 망설임 없이 늘 버스를 탄다. 흔들리는 차에서 글을 읽어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 복을 타고났다. 책 읽으며 보낸 버스 1시간이 운전대를 잡고 보낸 30분보다 짧다. 내게 책은 순간이동 장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