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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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세상 모든 것은 확률로 돌아간다 가만히 손에서 놓은 돌멩이는 아래로 떨어질까? 영화 속 유령처럼 사람이 스르륵 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 을까?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걸까? 내가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에 안 걸리는 걸까? 과학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그런데 100% 확실한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주선 안이라면 제자리에 둥둥 떠 있을 수 있으니, 아래로 떨어지는 돌멩이도 상황이 달라지면 항상 맞는 얘기는 아니다. 에너지 장벽을 입자가 스르륵 통과하는 양자터널효과를 생각하면 어쨌든 입자로 이루어진 사람이 벽을 통과할 확률이 정확히 0인 것은 아니고, 엔트로피도 항상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백신을 맞았다고 앞으로 계속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상식도 바뀌지만 ‘방향’은 있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지식이 ‘상식’이다. 손에서 가만히 놓은 돌멩이는 땅으로 떨어진다는 것, 지구가 둥글다는 것, 그리고 백신이 감염병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상식이다. 이런 상식에 많은 이가 동의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가 동의하는 것은 또 아니다. 돌멩이가 저절로 하늘로 치솟는다고 믿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지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은 지금도 간혹 있고, 다양한 생명이 진화의 과정 없이 한순간 등장했다고 믿는 사람, 전 지구적인 기온 상승이 거짓이라고 믿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나의 상식이 세상의 상식과 다르면 먼저 나의 상식을 의심해 볼 일이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옥석’구분 잘하기 이제 대통령 선거의 계절이다. 선거에서는 옥석(玉石)을 잘 구별해야 한다고 얘기하고는 한다. 값비싼 보석인 옥(玉)과 평범한 돌멩이인 석(石)을 잘 구분(區分)해야 하듯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대통령으로 누가 가장 적당한지 유심히 살펴 정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간혹 옥석구분(玉石俱焚)을 옥석을 가린다는 뜻으로 잘못 해석하지만, 원뜻은 옥과 석이 함께 아울러(俱) 탄다(焚)는 뜻이다. 옥석을 제대로 구분해 놓지 않으면 둘을 함께 망친다는 의미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어도 많은 이가 투표에 참여하기를. 옥석구분(玉石俱焚)을 피하려면 옥석을 미리 잘 구분(區分)할 일이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낙엽, 비워서 채우려는 나무의 안간힘 가을이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 캠퍼스는 가을 풍경이 정말 멋지다. 교목인 은행나무가 환한 노란빛으로 온통 꽃핀 듯 변하고 교내 여러 나무가 울긋불긋 단풍으로 색색이 물든다. 가을에 접어들어 단풍으로 물든 나무는 오래지 않아 낙엽을 떨군다. 더운 날씨가 일년 365일 이어지는 열대의 나무는 잎을 떨굴 필요 없고, 추운 날씨만 이어지는 고위도 지역 상록수는 약한 햇빛을 일 년 내내 이용하려 사시사철 푸르다. 우리 눈을 즐겁게 하는 멋진 가을 단풍은 우리나라의 적당한 위도 덕분이다. 가을날 단풍 들어 낙엽 진 나무는 다음해 봄 푸른 잎을 틔워 여름날 무성한 녹음을 다시 이룬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투명’한 세상을 기다리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깊은 물과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기 어려운 사람의 속마음을 비교한 속담이다. 사람의 몸은 물과 달라 가시광선을 투과하지 못하니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다. 물론 사람 몸이 투명해도 그 안 속마음이 눈에 보일 리 없지만. 한 길 사람 속을 보는 방법이 있다. 파장이 짧은 엑스선을 이용하면 조직마다 다른 투과율 차이를 이용해 몸 안을 흑백사진으로 볼 수 있다. 유리가 투명하다 하지만 이것도 보는 방법에 따라 다르다. 차 안에서 앞 유리를 통해 맨눈으로 원자폭탄 실험을 바라보았다는 리처드 파인먼의 일화가 기억난다. 우리가 눈으로 볼 때 이용하는 가시광선에 투명한 유리도 짧은 파장의 전자기파는 잘 투과하지 않아 가능한 일이다. 물도 그렇다. 가시광선으로 보면 투명한 열 길 물속도 자외선이나 적외선에는 불투명하다. 물의 광학적 특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태양은 가시광선 영역대에서 가장 큰 복사에너지를 지구로 보내고, 따라서 지구 식물의 광합성은 이 영역의 빛을 주로 이용한다. 또 물은 가시광선 영역의 전자기파를 잘 투과하니, 물속 식물은 태양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생명이 물에서 처음 시작할 수 있었던 과학적 근거다. 열 길 물속이나 한 길 사람이나, 한 치 두께 유리나,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투명도가 달라진다. 투명하게 잘 보려면 보는 방법을 잘 고를 일이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순환’이 만든 혁명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elestium)’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회전 혹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환을 뜻하는 영어 revolution에 해당하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 있다. 지구중심설(천동설)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지동설)로 인간이 바라본 우주의 모습이 급변하게 된 것을 과학사에서는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이라 한다. 태양이 중심인 행성 운동의 순환(revolution)이 만든 혁명(revolution)이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주체 많은 물리학자의 생각에는 공통점이 있다. 객체와 주체는 투명한 유리창으로 나뉘고, 내가 본다고 유리창 너머 객체의 상태가 변할 리 없다고 믿는다. 주체와 독립된 객체로서의 대상이 있고, 주체의 인식은 객체의 객관적인 속성을 충실히 반영한다는 믿음이다. 내가 보나 안 보나 달은 규칙적으로 모습이 바뀌고, 뉴턴 이전에도 사과는 지금과 똑같은 방식으로 땅으로 떨어졌다. 세상 속 주체의 위치를 비우고 그곳에 무엇을 놓아도 우주에는 바뀌는 것이 전혀 없다. 내가 보지 않아도 달은 그곳에 있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논문 지금껏 적지 않은 수의 물리학 논문을 썼다. 그래도 여전히 무척 어렵다. 과학 논문을 펼치면 제목과 저자 목록 바로 아래에 ‘초록’이라고 불리는 논문 요약부분이 보인다. 다른 이의 논문을 살펴볼 때 나는 먼저 초록을 잠깐 읽는다. 초록이 재밌으면, 본문을 꼼꼼히 읽기 시작한다. 제목과 함께 논문 저자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 초록일 수밖에. 지금까지 본 가장 재밌는 초록 1등은 바로 ‘Abstract’ 아래에 적힌 딱 하나의 문장이었다. “Yes, but some parts are reasonably concrete.” “네, 추상적인 것 맞아요. 그런데 논문 일부분은 그래도 어느 정도 구체적이랍니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 초록을 읽고 웃음을 터뜨렸다. ‘논문 초록’이라는 뜻과 ‘추상적인’이라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는 영어 단어 ‘Abstract’를 가지고 한, 논문 저자들의 작은 농담이다. 과학자도 사람이다. 논문으로 가끔 장난도 친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이해 “그럴 수도 있지. 다 이해해.” 실수한 사람을 위로할 때 하는 말이다. 사정을 헤아려 보니 당신의 행동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가 내가 당신을 이해한 순간이다. 이해했다고 해서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내가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은 또 아니다. 동의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해’의 영어 단어 ‘understand’에는, 겸허한 마음으로 당신이 있는 곳 아래(under) 서는(stand) 것이 올바른 이해의 자세라는 뜻이 담겼다. 상대보다 낮은 곳에 한 번씩 번갈아 서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위아래 구별 없이 나란히 함께 서 있는 장면이 이해가 이루어진 다음의 모습이다. 어쩌면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둘 사이 교감과 공감의 출발점이 될 공통의 나무 그늘을 찾았다는 뜻일 수 있다. 그 아래에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한 우산 아래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걷는 모습이 ‘이해’의 모습이다. 한 나무, 한 우산 아래 함께 나란히 서는 것이 서로의 이해를 위한 출발점이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꼼짝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영화에서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할 때 자주 등장하는 대사다. 몸을 조금만 움직이는 모양을 우리는 ‘꼼짝’이라고 한다. 용의자가 주머니에서 꺼내는 것이 신분증일 수도, 권총일 수도 있다. 어떤 행동도 허락하지 않는 “꼼짝 마”로 불확실성의 여지를 아예 없애는 것이 낫다. 물리학자인 내게 ‘꼼짝’의 크기는 위치 정보의 불확실성이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음모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에 나오는 이야기다. 기장이 운항 중 깜빡 졸아 비행기 사고가 났다.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꾸벅 존 바로 그 기장을 처벌해 조종간을 맡기지 않는 것만으로 장차 다른 기장이 조는 것을 모두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운항 일정이 과도해 휴식시간을 갖기 어려웠던 것은 아닌지 살피고, 역할분담의 장벽이 높아 부기장이 기장을 돕지 못한 것은 아닌지를 조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책임자를 찾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책임질 누군가를 찾아 처벌하고는,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넘어가는 상황이 이어지면 똑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꼰대 세상에는 두 종류의 꼰대가 있다. 꼰대라는 것을 아는 꼰대와 그것도 모르는 꼰대. 두 번째가 더 문제다. “오늘 저녁은 내가 쏜다. 아무거나 다 시켜! 난, 짜장면!”을 외치는 직장 상사와 비슷하다. 훌쩍 50대 중반에 들어선 나도 물론 꼰대다. 주변 대학 교수 중 꼰대가 특히 많다. 꼰대에도 중증과 경증이 있다면, 교수는 분명한 중증 꼰대다. 법원 판사, 병원 의사도 마찬가지다. 정보 비대칭성이 커 상대가 반박하거나 토 달기 어려운 직업일수록 꼰대가 되기 쉽다. 가만히 속으로 삭이며 틀린 말을 참고 들어줄 뿐인데, 상대가 가만히 있으니 자기가 옳은 말만 한다고 믿는다. 결국 꼰대라는 안정적인 고정점(stable fixed point)에 도달한다. 꼰대가 많은 회의는 코미디 코너 ‘봉숭아 학당’을 닮았다. 자기 의견이 옳다고 믿으며 회의를 시작한 모든 꼰대는, 회의가 끝나면 자기 의견이 정말로 옳다고 생각한다. “회의 중 결정할 수 없으니, 이 문제를 논의하는 위원회를 만든다”가 꼰대 회의 대개의 결론이다. 꼰대 중에는 스스로의 영토를 넓은 시공간으로 무한 확장하는 이도 등장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고 어느 영역에서나, 항상 자기가 옳다고 믿는 꼰대 대마왕.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해결사를 자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