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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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세상의 ‘마찰’ 보며, 떠올리는 미래의 폭주 자연에는 딱 네 종류의 상호작용이 있다. 해 주위를 도는 지구의 운동은 중력이 만들고, 겨울날 차문 손잡이의 짜릿함은 전자기력 때문이다. 서로를 강하게 밀치는 전자기력을 이기고 양성자 여럿이 오밀조밀 원자핵 안에 모여 있을 수 있는 것은 강한 핵력 덕분이다. 강한 핵력이 없다면 원자핵도, 원자도, 세상의 온갖 물질도, 그리고 나도 없다. 한편, 약한 핵력은 원자핵을 다른 원자핵으로 바꾸는 과정에 관여한다. 수소가 만나 헬륨으로 바뀌는 태양의 핵융합도 약한 핵력으로 가능하다. 초여름 따가운 햇볕은 약한 핵력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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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경험, 겪고 나면 달라진다 듣고 읽어 알기는 어려워도 직접 겪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겪은 과거의 경험은 머릿속 어딘가에 각인되어 나를 바꾼다. 우리 각자뿐 아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도 그렇다. 함께 겪은 모두의 경험은 우리 사회를 바꾼다. 1980년 광주, 2014년 세월호 등이 그렇다. 겪고 나서 마주한 세상은 겪기 전과 달라진다. 여럿이 공유한 시공간의 한곳에서 함께 겪은 것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빚어낸다. 나나 우리나 겪고 나면 달라진다. 과학에도 경험이 중요하다. 뉴턴의 운동법칙 F=ma 수식을 외우고 있다 해서 고전역학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론을 먼저 설명하고 구체적인 상황에 이를 적용해 문제를 직접 풀어보는 경험을 꼭 갖도록 하는 것이 대학교 물리학 수업의 기본이다. 다양한 상황에 이론을 고민하며 적용해보는 경험을 겪고 나서야 물리학 고수가 된다. 모든 학문이 마찬가지다. 치열하게 겪는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깨달음의 순간이 불현듯 찾아온다. 알려면 먼저 겪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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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질량 작을수록 쉽게 움직이고 쉽게 멈춘다 같은 힘으로 밀어도 쉽게 움직이는 물체와 잘 움직이지 않는 물체가 있다. 커다란 바위는 아무리 밀어도 꿈쩍하지 않지만, 크기가 작은 바위는 조금은 움직일 수 있고, 이보다 더 작은 돌멩이는 슬쩍 밀어도 쉬이 움직인다. 힘으로 밀 때 물체가 안 움직이려고 뻗대는 정도가 물리학의 질량이다. 물질의 양이 많으면 질량도 크다. 작은 당구공이 커다란 볼링공보다 쉽게 움직이는 이유다. 질량이 큰 물체가 가만히 정지해 있으면 밀어도 잘 움직이지 않고,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추기도 어렵다. 멈춰 있다 움직이거나, 움직이다 멈추거나, 물체의 운동 상태가 변한다. 물체가 현재의 운동 상태를 지속하려는 경향을 관성이라고 한다. 질량이 바로 관성의 척도다. 질량이 클수록 관성이 크고, 운동 상태의 변화에 더 강하게 저항한다. 질량이 커 처음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 나중에 멈추기도 어렵고, 쉽게 움직이는 것이 쉽게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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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진동수가 같아야 공명도 크다 아이 그네를 밀어주던 때가 생각난다. 그네는 앞으로 갔다가 내가 있는 뒤쪽으로 다시 돌아온다. 다시 앞으로 막 움직일 때 그네를 미는 것이 좋다. 이렇게 반복하면 그네는 점점 더 높이 오르고 아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이보다 내가 더 즐거웠던 시간이다. 이렇게 그네를 밀어주는 것은 물리학의 ‘공명’과 관계가 있다. 함께 울린다는 뜻이어서 우리말로 ‘껴울림’이라 한다. 그네 밀기의 원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3초에 한 번 그네가 다시 다가오면 3초에 한 번 밀면 된다. 3초보다 짧은 간격이면 그네가 다가올 때 밀게 되어 팔이 아프고 그네의 속도는 오히려 줄어든다. 3초보다 긴 간격으로 밀면 그네가 이미 저 앞에 있어 허공에 대고 헛수고를 하게 된다. 그네가 한 번 왕복하는 시간을 ‘주기’라고 한다. 그네의 주기는 내가 밀든 말든 여전히 3초다. 내가 미는 동작의 주기(3초)를 그네의 주기(3초)와 같게 하면 진폭이 점점 커진다. 껴울림에는 이처럼 두 시간 주기가 있다. 외부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주기 3초, 그리고 외부에서 반복적으로 어떤 일을 해주는 주기 3초다. 두 주기가 맞아 진폭이 점점 커지는 것이 껴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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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물리학의 단열, 세상 속 단절 어릴 때 사용한 유리 보온병을 기억한다. 안쪽 유리병을 바깥 유리병이 둘러싸고 있는데 둘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었다. 둘 사이의 안쪽 면은 거울처럼 도금해놓기도 했다. 바닥에 떨어지면 잘 깨져 낭패를 본 적도 많았다. 왜 유리 보온병은 잘 깨졌을까? 얼굴을 비춰 볼 수도 없는데 왜 거울처럼 도금을 했을까? 온도가 다른 두 물체를 딱 붙여 놓으면 온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열이 전달된다. 높은 쪽의 온도는 내려가고 낮은 쪽의 온도는 올라간다. 결국 둘의 온도가 같아지는 열평형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온도가 다른 두 물체를 붙여 놓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아니, 온도가 더 높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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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세상 모든 것은 확률로 돌아간다 가만히 손에서 놓은 돌멩이는 아래로 떨어질까? 영화 속 유령처럼 사람이 스르륵 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 을까?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걸까? 내가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에 안 걸리는 걸까? 과학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그런데 100% 확실한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주선 안이라면 제자리에 둥둥 떠 있을 수 있으니, 아래로 떨어지는 돌멩이도 상황이 달라지면 항상 맞는 얘기는 아니다. 에너지 장벽을 입자가 스르륵 통과하는 양자터널효과를 생각하면 어쨌든 입자로 이루어진 사람이 벽을 통과할 확률이 정확히 0인 것은 아니고, 엔트로피도 항상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백신을 맞았다고 앞으로 계속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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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상식도 바뀌지만 ‘방향’은 있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지식이 ‘상식’이다. 손에서 가만히 놓은 돌멩이는 땅으로 떨어진다는 것, 지구가 둥글다는 것, 그리고 백신이 감염병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상식이다. 이런 상식에 많은 이가 동의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가 동의하는 것은 또 아니다. 돌멩이가 저절로 하늘로 치솟는다고 믿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지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은 지금도 간혹 있고, 다양한 생명이 진화의 과정 없이 한순간 등장했다고 믿는 사람, 전 지구적인 기온 상승이 거짓이라고 믿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나의 상식이 세상의 상식과 다르면 먼저 나의 상식을 의심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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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옥석’구분 잘하기 이제 대통령 선거의 계절이다. 선거에서는 옥석(玉石)을 잘 구별해야 한다고 얘기하고는 한다. 값비싼 보석인 옥(玉)과 평범한 돌멩이인 석(石)을 잘 구분(區分)해야 하듯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대통령으로 누가 가장 적당한지 유심히 살펴 정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간혹 옥석구분(玉石俱焚)을 옥석을 가린다는 뜻으로 잘못 해석하지만, 원뜻은 옥과 석이 함께 아울러(俱) 탄다(焚)는 뜻이다. 옥석을 제대로 구분해 놓지 않으면 둘을 함께 망친다는 의미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어도 많은 이가 투표에 참여하기를. 옥석구분(玉石俱焚)을 피하려면 옥석을 미리 잘 구분(區分)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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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낙엽, 비워서 채우려는 나무의 안간힘 가을이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 캠퍼스는 가을 풍경이 정말 멋지다. 교목인 은행나무가 환한 노란빛으로 온통 꽃핀 듯 변하고 교내 여러 나무가 울긋불긋 단풍으로 색색이 물든다. 가을에 접어들어 단풍으로 물든 나무는 오래지 않아 낙엽을 떨군다. 더운 날씨가 일년 365일 이어지는 열대의 나무는 잎을 떨굴 필요 없고, 추운 날씨만 이어지는 고위도 지역 상록수는 약한 햇빛을 일 년 내내 이용하려 사시사철 푸르다. 우리 눈을 즐겁게 하는 멋진 가을 단풍은 우리나라의 적당한 위도 덕분이다. 가을날 단풍 들어 낙엽 진 나무는 다음해 봄 푸른 잎을 틔워 여름날 무성한 녹음을 다시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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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투명’한 세상을 기다리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깊은 물과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기 어려운 사람의 속마음을 비교한 속담이다. 사람의 몸은 물과 달라 가시광선을 투과하지 못하니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다. 물론 사람 몸이 투명해도 그 안 속마음이 눈에 보일 리 없지만. 한 길 사람 속을 보는 방법이 있다. 파장이 짧은 엑스선을 이용하면 조직마다 다른 투과율 차이를 이용해 몸 안을 흑백사진으로 볼 수 있다. 유리가 투명하다 하지만 이것도 보는 방법에 따라 다르다. 차 안에서 앞 유리를 통해 맨눈으로 원자폭탄 실험을 바라보았다는 리처드 파인먼의 일화가 기억난다. 우리가 눈으로 볼 때 이용하는 가시광선에 투명한 유리도 짧은 파장의 전자기파는 잘 투과하지 않아 가능한 일이다. 물도 그렇다. 가시광선으로 보면 투명한 열 길 물속도 자외선이나 적외선에는 불투명하다. 물의 광학적 특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태양은 가시광선 영역대에서 가장 큰 복사에너지를 지구로 보내고, 따라서 지구 식물의 광합성은 이 영역의 빛을 주로 이용한다. 또 물은 가시광선 영역의 전자기파를 잘 투과하니, 물속 식물은 태양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생명이 물에서 처음 시작할 수 있었던 과학적 근거다. 열 길 물속이나 한 길 사람이나, 한 치 두께 유리나,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투명도가 달라진다. 투명하게 잘 보려면 보는 방법을 잘 고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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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순환’이 만든 혁명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elestium)’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회전 혹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환을 뜻하는 영어 revolution에 해당하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 있다. 지구중심설(천동설)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지동설)로 인간이 바라본 우주의 모습이 급변하게 된 것을 과학사에서는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이라 한다. 태양이 중심인 행성 운동의 순환(revolution)이 만든 혁명(revolution)이다. 머리를 들어 올려본 하늘에는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것이 많다. 밤에 본 달의 모습은 약 한 달을 주기로 다시 반복한다. 우리가 한 달을 한 달이라고 하는 이유다. 유심히 관찰하면 해가 아침에 뜨는 방향과 정오에 바라본 해의 높이는 일 년을 주기로 또 규칙적으로 되풀이된다. 우리가 한 해를 한 해라고 하는 이유다. 봄에 씨 뿌려 가을에 거두는 농사도 그렇다. 올해 뿌린 씨가 작년 뿌린 씨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봄에 뿌린 씨가 무럭무럭 자라 가을에 거두는 벼의 모습도 한 해를 주기로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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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주체 많은 물리학자의 생각에는 공통점이 있다. 객체와 주체는 투명한 유리창으로 나뉘고, 내가 본다고 유리창 너머 객체의 상태가 변할 리 없다고 믿는다. 주체와 독립된 객체로서의 대상이 있고, 주체의 인식은 객체의 객관적인 속성을 충실히 반영한다는 믿음이다. 내가 보나 안 보나 달은 규칙적으로 모습이 바뀌고, 뉴턴 이전에도 사과는 지금과 똑같은 방식으로 땅으로 떨어졌다. 세상 속 주체의 위치를 비우고 그곳에 무엇을 놓아도 우주에는 바뀌는 것이 전혀 없다. 내가 보지 않아도 달은 그곳에 있다. 주체-객체 독립성이라는 나의 오랜 확신이 요즘 줄어들고 있다. 확률의 주관성을 말하는 베이지언(Bayesian) 통계학의 부상, 시간의 흐름이 주체의 인식 능력의 한계에서 비롯할 가능성, 관찰 주체가 정보를 얻는 과정을 고려하는 정보엔진, 그리고 우주론의 인류원리까지. 과학은 여러 분야에서 점점 더 주체를 발견하고 있다. 물리학의 자연법칙에도 주체의 자리가 정말 있는 것일까? 난 요즘 현기증이 날 정도로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