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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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나의 장인에게 나의 장인은 평생 농사를 지어온 사람이다. 강원도에서도 시골이라고 할 만한 면소재지에서 약간의 논과 밭을 일구며 산다.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던 날에는 마침 나무를 하러 간 참이라고 했다. 직접 장작을 패서 난방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올 때까지 농가 특유의 그 툇마루 같은 데 앉아서 나를 향해 짖는 두 마리의 누렁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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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장 맛있었던 찹쌀떡 한 개 이맘때가 되면 몇 년 전 대리운전을 하다가 손님으로 만났던 50대 남성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던 그날에도 나는 일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오후 7시쯤 이른 시간에 서울 관악구에서 경기 안양시로 가는 콜이 나왔다. 손님을 만나 인사를 하고,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고, 이제 5분 후면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었다. 그때 뒷좌석에 앉아 있던 그가 “저어, 기사님 이것 좀 드세요”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찹쌀떡이었다. 그는 “제 딸이 오늘 수능을 봤어요. 이거 안양에서 제일 유명한 찹쌀떡인데 맛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그 떡을 받아들었다. 일을 하다 보면 종종 먹을 것을 건네주는 분들이 있다. 어차피 잘 먹으면서 하는 일은 아니니까 고맙고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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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응원받을 자격 돌아보면, 나는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내가 작가 김민섭으로든, 개인 김민섭으로든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그들은 나의 책을 읽고 여기저기에 읽은 티를 내주었고, 내가 하는 일들에 어떤 식으로든 함께해 주었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응원하는 사람 2000명이 있다면 창작자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작가뿐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모든 개인이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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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원격강연, 모니터 너머의 얼굴들 몇 년 전 맥도날드에서 물류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주일에 세 번, 정해진 요일 아침마다 큰 탑차가 들어왔다. 거기에 이 도시가 이틀 동안 소비할 햄버거 재료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것을 내리고, 검수하고, 건자재실로 옮기고, 유통기한별로 정리하고, 그날 사용할 물건들을 옮기고, 버려야 할 것들을 버렸다. 모두 하는 데 아침 7시부터 점심까지 꼬박 5시간이 걸렸다. 집에 가서 씻고 대학의 강의실로 가거나 연구실로 가거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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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나는 시민이다 얼마 전부터 하루에 몇㎞씩 뛰고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 원래는 체중감량을 위해서였다. 실제로 최근 100일 동안 18㎏ 정도를 감량했으니까 그럭저럭 성공한 셈이다. 처음에는 1㎞를 간신히 뛰었지만 5㎞를 웃으면서 뛸 수 있게 되었고, 얼마 전에는 쉬지 않고 10㎞를 뛰었다. 이제는 그렇게 뛸 수 있게 된 나의 몸이 예쁘고 대견해서 계속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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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몰래 함께 뛰어요 몇 년 만에 이 지면의 프로필 사진을 바꾸었다. 100일 동안 대략 18㎏(82㎏→64㎏)을 감량했으니까, 이만하면 사진을 바꾸는 것이 맞다. 어디가 아팠다든가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한 것은 아니다. 살이 너무 찐 것 같아 건강이 걱정되어 헬스장을 찾았고 거기에서 다음과 같은 안내를 보았다. ‘100일 동안 가장 많이 체중을 감량한 사람에게 이러저러한 상품을 줍니다.’ 정확히는 지방을 0.1㎏ 감량하면 +1점, 근육을 0.1㎏ 증량하면 +1.5점, 하는 식이었다. 동기부여가 되겠지 싶어서 그 챌린지에 참가했고, 얼마 전 내가 1등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근육은 1㎏쯤 늘었고 지방은 15㎏쯤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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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야구를 좋아하는 그냥 아저씨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주말이면 동네 뒷산인 성미산 약수터에서 친구들과 야구를 했다. 작가도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기는 했으나 사실은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리틀야구를 배우는 친구들보다 야구도 그럭저럭 잘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야구를 TV로만 보고 가끔 야구장에 가서 치맥을 하는, ‘야구를 좋아하는 그냥 아저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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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서로 외롭지 않은 출판의 방식 작가는 글을 쓰고 독자는 그의 글이 책으로 묶여 나오기를 기다린다. 한 권의 책이 완성되는 데 있어 작가의 역할은 적극적, 독자의 역할은 수동적이다. 출판사와 인쇄소와 도매상과 서점과 물류사의 손길이 더해져 한 권의 책이 전해지면, 독자는 그때부터 리뷰를 쓴다든가 작가를 만나 독서모임을 한다든가 하고, 그 이전까지는 그저 ‘이 작가의 다음 책은 어떤 것이고 언제쯤 나올까’ 궁금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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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재난 긴급생활비 신청서에서 찾은 ‘일상의 재난’ 얼마 전 서울시 재난 긴급생활비를 신청하러 갔던 A가 나에게 카톡을 보내왔다. 신청하면서 몹시 화가 났다고 했다. 담당자와 직접 대면하는 방식이니까 공인인증서나 액티브X에 고통받을 일도 없었을 텐데, 평소 예민한 성격인 그가 무엇에 불편을 느꼈나, 우선 들어나 보기로 했다. A는 자신이 찍었다는 신청서 양식의 사진을 보내면서 나에게 잘못된 부분을 찾아보라고 했다. 신청서에는 ‘서울시 재난 긴급생활비 신청서’라는 제목이 있고, 그 밑에 세대주 정보와 가족사항을 적는 난이 있고, 신청사유 ‘코로나19로 인한 생계 위기’라고 적혀 있고, 타 제도의 지원을 받았는지 여부를 표시하는 난이 있었다. 어디 오타라도 있나, 띄어쓰기라도 잘못되었나 하고 살펴보다가 도무지 찾기 어려워서 “아니, 선생님, 그래서 뭐가 문제입니까” 하고 묻자, 그는 가족사항란(사진)을 자세히 보라고 했다. -
숨 누가 정치를 해야 하는가 몇년 전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쓰고 대학에서 나왔을 때가, 마침 20대 총선을 4개월쯤 앞둔 시점이었다. 그때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정당에서 연락 안 왔어요?” 하고 많이 물었다. 나의 이야기가 그럭저럭 화제가 된 시점이었다. 그러면 “저 같은 사람에게 무슨… 정치는 잘 모르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라고 답했다. 나와는 멀다고, 정확히는 나와는 멀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투표도 때마다 하고 남들만큼의 정치적 입장도 가지고 있지만, 의결권을 가진 당사자가 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사실 국회가 아니라 구의회에 앉아 있는 나를 떠올리는 일조차도 민망했다. 나보다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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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나는 당신이 적당히만 궁금하다 내가 대학원생이던 2010년 즈음에, 학과의 남자 후배 몇이 도움을 얻으러 온 일이 있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 무언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들에게 “괜찮으면 언제 술 한잔 같이해요”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나에게 “네 선배, 같이 커피 한 잔 마셔요”하고 답했다. 단호하고도 세련된 방식의 거절이었다. 나는 그들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아, 내가 뭔가 실수를 했나, 대학원생이 학부생을 괜히 부담스럽게 했나’하고 몹시 외로워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나에게 “우리 커피 언제 마실까요?”하고 찾아왔다. 나중에 그들에게 물어보니 그들 역시 나와 친해지고 싶었다고 했다. 다만 1980년대생인 나와 1990년대생인 그들의 언어가 달랐던 것이다. 술과 커피, 이 알코올과 카페인 음료가 가진 서로의 거리만큼 그들과 나 사이는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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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마음이 감염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 친하게 지내는 S 작가님이 3월에 한 달 동안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다녀온다고 했다. 그의 설레는 목소리를 들은 것이 지난가을이니까, 코로나19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때였다. 얼마 전 그에게 여행 준비는 잘하고 있는지 묻자 그는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라면서, 여행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도 수는 적지만 확진자들이 있고 공항을 오가는 동안 잠복기에 있는 누군가들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보다도 동양인으로서 받을 차별이 두렵다고 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동양인이 운영하는 초밥집에 낙서테러가 일어났다고 하고,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욕설과 조롱을 듣는 일이 많아졌다고도 한다. 프랑스의 숙소에서 예약 취소를 통보해 올 것 같다고도 하는 그는, 더 이상 가을의 설레던 모습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