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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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국어교사모임 추천 도서지만 수업시간엔 읽을 수 없어요 어느 고등학교의 국어 교사가 학생들과 시 수업을 할 시인을 한 명 추천해 달라고 했다. 나는 내가 아는 젊은 시인 K를 추천했다. 그는 학교폭력의 아픔을 가진 사람이고, 그러한 폭력에 대한 천착을 계속 시도한다. 학교폭력 근절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아니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어서, 그와 관련한 시를 쓰고 학생들과 함께 낭송한다. 언젠가는 집 인근의 학교 정문에서 학교폭력과 관련한 자신의 시를 학생과 교사들의 등교시간에 맞추어 낭송하고 있는 그를 보고, 그의 진정성이란 의심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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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저의 서점에 와 본 분들이 계실까요 작년에 존경하는 C선생님에게 함께 글쓰기 강연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모 대기업 사원들을 대상으로 3회차. 그가 사회를 보고 내가 강의 후 함께 대담하는 방식으로 하자고 했다. 너무나 감사해서 아, 네, 선생님 물론입니다, 하고 두 손으로 전화를 받을 지경이었다. 강연비만 해도 내가 그동안 받아온 액수의 배는 되는 것이었으나 우선 그와 함께 무엇을 한다는 자체로 기뻤다. 분명 무언가 배우는 게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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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사람과 세상을 사유하다 얼마 전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좋아하는 배우와 만났다. <재벌집 막내아들>에 출연한 김신록씨였다. 진행자가 그의 수상 소감인 “저는 연극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사유한다”를 언급했을 땐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때 다른 출연자가 말했다. “이런 말은 대부분이 알아듣는 단어를 써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사유라는 단어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김신록씨는 다음부터는 ‘생각한다’로 바꾸겠다고 하면서 그 자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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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다감함과 다정함의 차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변치 않는 가치가 있다고 하면 그건 아마도 ‘동정’일 것이다. 다른 존재와 같은 정이 된다, 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오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타인을 돕는 이유도 단순히 누군가를 불쌍히 여겨서가 아니라 내가, 나의 아이가, 저런 상황이 된다면 어떨까, 하는 데서 나온다. 그만큼 누군가의 마음이 되어보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한 사람들을 보고 다정하다거나 다감하다고 말한다. 다정함, 다감함, 동정, 이러한 단어들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고 그러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나름의 기준으로 이 단어들을 정리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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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자녀의 인생을 설계하는 방법 고등학교에 강의하러 갔다가 학부모에게 들은 질문이다. 그는 아이에게 문과를 가라고 해야 할지 이과를 가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그의 삶을 설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과에 가야 입시에도 유리하고 취업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민된다는 것이었다. 그의 옆에는 그의 딸이 함께 와 있었다. 사실 나는 입시나 취업 설명회가 아니라 인문학 강의로 그들과 만났다. 내가 하는 말이 그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나도 문·이과 선택으로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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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다정함, 무정도 유정도 아닌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을 쓴 이후 북토크에서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고 항상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선함은 유약함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하긴 어린 시절부터 힘이 약한 아이들은 무언가를 잘 빼앗긴다. 싫다고 할 때마다 듣게 되는 말이 “너는 착하니까 괜찮잖아” 하는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에도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것 좀 해줘요’ 하는 부당한 요구를 하고는 실망하는 누군가들이 있다. 그러나 선한 사람만큼 단단하고 강인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들만큼 치열하게 분투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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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다정한 경쟁은 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경쟁하며 살아간다. 원하든 원치 않든 생존을 위해서 누군가와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 입시부터 취업, 그리고 이후 부의 축적과 그에 따른 지식 계급과 노동 계급으로서의 신분 상승에 이르기까지, 그 구조 안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부의 세습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어린아이에게 미리 상속해야 할 만큼 부유한 삶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중·고등학교의 일상에서도 그러한 모습은 드러난다. 매일 아침 다려진 교복을 정갈하게 입고 학교에 갈 수 있는 것 역시 그렇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부장으로 일하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교복은 보살핌의 상징이다. 교복을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데도 누군가의 대리노동이 필요하고 거기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구겨진 교복을 자신이 좋아하는 교사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들은 체육복을 입고 학교에 간다. 공부만 할 수 있는 학생과 공부도 해야 하는 학생이 내는 결과야 애초에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경쟁을 보조할 수 있는 그 환경이 한 개인과 가문의 위계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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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정보라 작가를 응원하며 정보라 작가가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퇴직금 및 수당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1년 동안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시간강사로 일했다고 한다. 매 학기 9학점의 강의를 했고 6년 동안 우수 강사로 선정되어 총장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성실하게 근속했음에도 불구하고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나도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에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시간강사로 일했다. 매 학기 6~8학점의 강의를 했고 3년 동안 강의평점 상위 10%에게 주는 우수 강사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나도 정보라 작가처럼 무엇도 보장받지 못했다. 그후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쓰고 대학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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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그게 어때서요”라고 말하는 마음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던 때, 건강보험을 보장받기 위해 1년 남짓한 시간 맥도날드에서 물류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냉동감자 박스를 나르던 것도, 그리즈트랩의 음식물 쓰레기를 걷어내던 것도, 한겨울에 냉동창고에 들어가야 했던 것도 아니다. 나를 아는 누군가와 매장에서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이 올 수도 있고 시간강사 동료들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을 납득시킬 만한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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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작가가 되고픈 청소년들에게 요즘 중·고등학교에서는 ‘작가와의 만남’을 많이 한다. 불과 20여년 전, 내가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작가라는 사람을 보는 건 대단히 희귀한 일이었다. 작가뿐 아니라 그 누구든 학교에 와서 교사 대신 교탁 앞에 서는 일이 별로 없었던 듯하다. 나는 한 번도 작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한 채로 글을 써서 밥을 먹고사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진로 적성이라든가, 창의적 체험 활동 수업이라든가, 도서관 행사라든가 하는 이유로 거의 모든 학교가 한 학기에 한 번 이상은 작가를 초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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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당신의 도정을 응원하며 가족과 함께 강원 평창에 가서 무언가 자라고 있는 밭을 지나는 길이었다. 저게 뭐지,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아홉 살 아이가 말했다. “아빠, 저거 감자야.” 같이 걷던 아내도 감자가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아이에게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보니 얼마 전 학교에서 감자를 심었다고 했다. 그는 강릉의 작은 초등학교에 다닌다. 그뿐 아니라 원주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온 아내도 감자를 바로 알아보았다. 강원도에서 산 지 20여년이 되어가면서도 감자싹과 고추싹을 구분 못하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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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네가 꿈을 꾼다면 그 시간을 내가 살게 내가 초등학생이던 1990년대에도 “너는 꿈이 뭐니” 하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어쩌면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한 모범답안은 대통령, 의사, 변호사, 교사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답하고 나면 그들은 대견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거나 용돈을 주거나 하고 곁에 선 부모님은 흐뭇하게 웃는다. 그 시절의 참 흔한 풍경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