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최신기사
-
숨 MZ세대라는 용어는 ‘폭력의 합집합’ 고등학생이던 2000년대 초반, 나는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첫 경험을 하게 된다. 1980년대생들을 N세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기의 몇 가지 CF 문구가 떠오른다. “N세대는 물을 먹지 않는다”라는 음료 광고, “N세대의 소통법”이라는 통신사의 문자 요금제 광고 등이. 그 이전까지 ‘베이비붐세대’라든가 ‘386세대’ ‘X세대’라고 한 세대가 규정되는 것을 보며 나의 세대 앞에는 어떤 알파벳이 붙을까 괜히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N은 ‘네트워크’, 그러니까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그 이후에도 나는 W세대(2002년 월드컵을 경험한 젊은 세대), M세대(2000년 이후 청년이 된 밀레니얼, 모바일에 익숙한 세대) 등으로 규정되다가, 이제는 MZ세대로 불리기에 이르렀다.
-
숨 최상급 추천의 언어 책의 뒤표지에는 대개 300자 내외의 추천사가 한두 개씩 수록되어 있다. 유명한 사람이거나 그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할 것이다. 추천사의 분량이나 비용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한 줄에 100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고 수백 자를 쓰고서도 10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한 글자에 매겨지는 가격을 감안하면 추천사는 가장 비싼 집필 활동임에 분명하다.
-
숨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 3월 초, 개학 주간이다. 주변의 학부모들은 겨울방학이 길었다고, 교사들은 그런 게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시간이란 저마다의 처지에서 지극히 상대적으로 흐르는 듯하다. 이제 2학년이 된 나의 아이도 자신의 초등학교로 간다. 그가 아침마다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나, 학교 가기 싫어”였다. 개학 첫날에도 그는 적당히 우울한 표정을 하고는 등교했다.
-
숨 원주여고 학생들을 응원하며 얼마 전 원주여고의 신문 동아리 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교훈을 개정하고픈데 동문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훈의 시대>라는 책을 쓰면서 공립고등학교의 교훈과 교가를 전수조사했고 ‘훈’이라는 언어가 얼마나 낡고 보수적인 형태로 그 구성원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있는가를 살폈다. 남학교의 ‘충성, 용기, 의리’, 여학교의 ‘순결, 고결, 정숙’과 같은 언어들. 산업화와 군부독재 시기에 만들어진 50년이 넘은 그 훈들은 그 시기의 욕망을 담고 여전히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
-
숨 그들의 명복을 빈다 나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모 지역에서 의무소방원으로 군복무했다. 소방에 대한 꿈과 로망이 있었다기보다는, 휴가가 많고 근무가 그다지 힘들지 않다는 말에 응시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방학교에서의 훈련은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만큼 힘들었다. 체력단련 시간에 수없이 들었던 “너희가 힘이 없으면 구조하러 가서 구조당한다”라는 말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역 소방서의 본서에 배치받고 난 첫날 새벽에는 세 번의 사이렌이 울렸다. 스피커에서 마이크를 톡톡 치는 소리가 나자마자, 선임들은 모두가 4층에서 1층까지 뛰어내려갔고, 몇 시간 후 돌아온 그들의 몸에서는 불냄새 비슷한 것이 났다. 물론 그날이 좀 과한 날이었다. 화재가 없는 날들이 조금 더 많았다.
-
숨 일과 삶이 조금 더 즐겁길 바라며 <대리사회>라는 책을 쓸 때만 해도 대리운전은 나에게 온전히 생계를 위한 노동이었다. 그 책이 나온 지도 5년이 지났지만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요즘도 나에게 묻는다. 요즘도 대리운전을 하고 계신가요, 하고.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한다. 하기는 하는데, 이걸 노동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
숨 아파트란 무엇인가 대리운전을 할 때, 신도시의 아파트가 목적지가 되면 걱정이 찾아왔다. ‘나가는 길을 잘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요즘의 대단지 아파트는 마치 미로 같아서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나오기 어렵다. 내가 심각한 길치인 것을 감안해야겠으나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아이의 한글 선생님도 30분 정도 수업에 늦고서 했던 말이 “새로 생긴 아파트에 갔다가 나오는 길을 못 찾아서 한참 헤맸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 복잡해진 길들은 외부와의 단절, 그리고 폐쇄를 선언한 요즘의 아파트를 그대로 보여준다. 기본 브랜드에 서브 브랜드를 덧붙이고, 거대한 정문을 세우고, 입주민이 아닌 사람이 오가는 것을 통제하고, 입주민만 이용 가능한 커뮤니티 시설을 확장해 나간다.
-
숨 메타버스 in 추석 2019년은 내가 글을 쓰는 삶을 시작한 지 4년차가 되던 해였다. 아니, 글을 쓰는 삶이라고만 하면 안 되겠다. 말을 하는 사람으로서 오히려 더 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나의 책을 읽고 나를 작가로서 초청해 주는 분들이 많았다. 주로 독서모임, 학교, 도서관, 기관 등이었고, 나는 그것이 고마워서 대개 거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시간을 맞추었다. 그해에 내가 독자들에게 받은 초청은 230건 정도였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만큼 돈을 벌어본 것이 처음이었다.
-
숨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는 공정성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젊은 세대가 경쟁에 매몰되었고 그래서 불평등의 구조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MZ세대로 명명된 젊은 세대는 공정이라는 단어에 민감하다. 모두가 알고 있듯, 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시대에 적어도 공정성이라도 담보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그들의 결을 잘 파악한, 자신도 MZ세대인 젊은 정치인이 최근에 당의 대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는 여러 의미로 흥미로울 것이다.
-
숨 두 개의 글쓰기와 말하기 작은 스타트업 대표로 살아온 지도 2년이 거의 다 되었다.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코로나19 파고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전업작가로 살아가던 때와는 달리 나 혼자만 책임지면 되는 삶이 아니다. 그 무게는 짊어지고도 여전히 잘 가늠이 안 된다. 다만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여러 경험을 하면서 여전히 배워나가고 있다.
-
숨 너의 입학식과 나의 졸업식 며칠 전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지방의 작은 초등학교는 1학년 전체 인원이 13명이라고 했다. 내가 초등학생이 된, 정확히는 국민학생이 되었던 1990년대 초만 해도 서울 마포의 모 초등학교에는 수백명이 입학했다. 한 반에 40명이 넘게 배정하고도 모두 수용할 수 없어 오전 반과 오후 반을 나눴다. 그런 풍경을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 2021년의 이 작은 입학식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
숨 유튜브 안 하세요? 작년부터 주변의 작가들을 만나면 인사치레처럼 나누던 말이 있다. “유튜브 안 하세요?” 하는 것이다. 독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유튜브 방송을 해 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해야 할 사람이어서 그렇다기보다는, 누구나 하고 있는 것 같으니 하지 않으면 괜히 뒤처지는 마음이 되거나 했던 것이다. 몇 년 전에 “우리 대리운전이나 할까…” 하는 말을 주고받기도 했는데, 그 ‘~이나’의 계보를 유튜브가 이어받은 듯하다. 물론 두 노동이 가진 무게감은 다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