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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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인식 바꾸는 ‘동시대 공공미술’ 도시 빌딩 앞이나 공원, 광장과 같은 공공장소 어딘가에 조각 따위를 세워 놓는 ‘건축 속 공공미술’과 ‘공공장소 속의 미술’이 여러 건조물을 장식하는 수단 혹은 일상에서의 미술 향유를 위한 수동적 시각 덩어리로 존재한다면 ‘동시대 공공미술’은 훨씬 능동적이다. 감상자로 머물던 시민들은 행위주체로 새롭게 위치하며, 예술가들과 함께 미술의 언어로 어떻게 사회 전체의 이익과 요구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목적 자체도 다르다. 건축 및 공공장소 속 미술이 심미성을 전부로 삼는 반면, 동시대 공공미술은 민주주의적 실천 방식을 바탕으로 한 문화공동체 구현과 미술을 통한 ‘사회 변화’에 방점을 둔다. 이 때문에 관련 미술가들은 사회·정치·경제·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발언한다. 그리고 작가와 시민들에 의해 구현된 작품들은 단순한 ‘인지’를 넘어 세상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제안하며 행동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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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반발’ 속 논란의 광주비엔날레 격년제 국제예술행사인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7일 개막했다. 광주 일원에서 94일간 진행된다.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다. <도덕경> 78장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따왔다. ‘아무리 강한 것도 약한 물을 이기지 못한다’는 뜻으로, 유약하나 강인한 물처럼 여리면서도 강한 것이 예술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전시는 절제와 세련미를 자랑한다. 현직 미술관 소속 리서치 담당자답게 이숙경 감독은 작가 79명의 다종다양한 작품들을 대체로 차분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배치했다. 다만 왜 여기에 놓였는지 모를 일부 작품은 이현령비현령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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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도시 속 쓸모없는 ‘덩어리’ 2020년, ‘우리 동네 미술’이라는 초대형 태풍이 미술계를 강타했다. 코로나19로 힘든 예술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228개 지자체가 동시 추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정부는 이 사업에 지자체 매칭 포함 약 1000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일회성으론 역대 최고였다.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건 급조된 정부 정책의 민낯과 ‘졸속’이었다. 불과 서너 개월 남짓한 시간 내 작품을 만들어야 했던 작가들과 공공미술이 뭔지도 모른 채 정부 방침에 따라 동원된 지자체 행정기관들 모두 우왕좌왕했고, 중도 포기와 사업지 변경, 기한 연장 등이 속출했다. 1개 지자체 1개 프로젝트에 각 4억원씩 배분이라는 공산주의적 발상을 토대로 한 정책이었으니 초반부터 삐걱거리는 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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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엿가락 법과 부조리 2016년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사고로 숨진 19세 비정규직 노동자 김모군, 2018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24세의 김용균씨, 2021년 전신주 위에서 전기연결 작업 중 고압전류에 감전돼 세상을 떠난 30대 예비 신랑. 이들 모두는 냉혹하고 불합리한 시스템에 떠밀려 삶을 접어야 했던 청년들이다. 위험의 외주화와 전가된 감정노동에 노출된 채 일상을 견뎌야 했던 자들이면서 누군가의 영혼을 갈아서라도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먹이사슬에 희생된 젊은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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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윤범모 관장은 죄가 없다 국고에 납입해야 할 수익금 3200만원을 직원들의 격려금으로 돌렸다. 공식 유튜브 계정이 해킹됐는데도 상급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엔 보고도 안 했다. 일부 직원은 시간 외 근무수당을 부당 수령하고, 자의적 수의계약으로 일반경쟁 원칙을 위반하는 등 제멋대로 경영했다. 심지어 고용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 예술가들이 받아야 할 고용보험법상 혜택(구직급여 등) 수혜를 차단한 사례도 있다. 위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 3년간 벌어진 일이다. 문체부는 9일 이 같은 내용의 ‘국립현대미술관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2년 10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진행한 기관 운영과 주요 사업에 대한 감사에서 발견한 위법·부적절 업무처리는 모두 16건에 달한다. 회계질서 문란, 작품관리 소홀, ‘갑질’ 등 다양하게 망라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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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예술은 ‘시대’를 잊어선 안 된다 영국의 현대미술 전문지 ‘아트리뷰(ArtReview)’는 매해 12월쯤 ‘파워 100’ 명단을 선정·공개한다. 작가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등 미술 관련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파워 100’은 2002년 시작되었으며 전 세계 문화예술계 인물들, 그들의 활동과 영향력 등을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눈에 띄는 건 서열처럼 비치는 순위가 아니라 ‘파워 100’의 선정 기준이다. 권위와 역사를 자랑하지만 작가의 평판 정도로 봐도 무방한 여타 매체들과 달랐던 때문이다. 일단 ‘아트리뷰’는 예술활동의 지속성을 토대로 1년간 국내외 미술계 가교 역할 및 작가 발굴·지원 등에 힘쓴 글로벌 예술인에 주목한다. 작품의 미학적 성과와 미술사적 비중도 무게 있는 척도다. 한국처럼 미술시장에서 작품이 얼마나 팔렸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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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예술인 복지, 온 길과 갈 길 2012년 11월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됐다. 예술인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이 제기된 1980년대 이후 약 30년 만에 이룬 결과다. 이 법은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복지 지원을 통한 예술인들의 창작활동 증진과 예술 발전에의 이바지를 목적으로 한다. 같은 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만들어졌다. 예술인 복지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이다. 예술인의 사회보장 확대 지원을 비롯해 복지 지원, 권익보호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담당한다. 예술인복지법의 의미는 법을 통해 예술인을 정의하고 그들의 권리와 지위를 처음으로 제도화했다는 것에 있다. ‘예술을 업(業)으로 삼는 예술인’을 법이 정하는 복지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지속 가능한 창작환경을 도모하며, 대국민 대상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 재단 설립의 의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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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독백에 머문 ‘부산비엔날레’ 비엔날레는 응집력과 설득력을 지닌 자기 지시적 언어의 집합체인 ‘담론’을 통해 지구촌 공동체의 삶을 변화시키는 역동적 파괴의 모델로서 자리해야 한다. 대중과의 호흡을 전제로 복잡한 사회 속 틈을 제시하고, 인류 앞에 놓인 과제들을 ‘공동의 목소리’로 혁파할 수 있는 ‘정지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문화시설인 미술관 전시와 다른 비엔날레만의 특징이다. 하지만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한국의 거의 모든 비엔날레(3년마다 개최되는 트리엔날레 포함)는 담론 생성에 무관심하거나 능력이 안 된다. 20개가 넘는 비엔날레가 격년으로 열리지만 대부분은 본령인 현실과 제도에 대한 비판적 논쟁의 장과는 무관하다. 변별력 없는 광경에 막대한 혈세를 쏟아붓는 공허한 관변행사이자 지자체 홍보수단으로 전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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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듣기 싫은 것을 말할 권리 윤석열 대통령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늘 ‘자유’를 강조해왔다. 그들의 여러 말과 글을 보면 자유 신봉자처럼 비칠 정도다. 실제 윤 대통령의 연설에서 가장 자주 출현하는 단어는 자유다. 지난해 6월의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부터 지난달 20일 진행된 유엔총회 연설까지 총 4번의 연설에서 자유는 모두 111번이나 언급됐다. 박 장관은 지난 5월 장관 취임식에서 ‘자유정신’을 내세웠다. 그가 말한 자유정신은 기존 가치목록으로부터의 해방과 새로운 자유의 쟁취로 풀이된다. 문화예술 주무부처의 장으로서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흔들림 없이 행동하고 표현할 수 있는 예술창작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박 장관의 자유에 대한 애착은 과거 글에서도 곧잘 발견된다. 중앙일보 대기자 시절인 2019년 4월 작성한 ‘문재인 정부는 자유를 어떻게 기억하는가’라는 제목의 글과 2018년 10월 월간중앙에 기고한 ‘자유는 역사를 연출한다’는 글이 그런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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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기대 못 미쳐, 기로에 선 키아프 쇄국은 깨졌다. 글로벌 무한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향후 어떤 설계와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글로벌 페어로 자리할 수도, 아니면 외국 유수 페어의 위성 행사로 전락할 것이 자명해졌다.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사진)의 공동개최 얘기다.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지난 5일과 6일 각각 폐막했다. 6일 주최 측에 따르면, 두 행사를 찾은 관람객은 각 7만여명으로 나타났다(누적방문 기록 제외). 매출 규모는 프리즈의 경우 수천억원에 달하는 반면, 키아프는 지난해 수준인 700여억원으로 추정된다. 프리즈의 10분의 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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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국립현대미술관 ‘갈지자 행보’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은 개관 50주년 기념전으로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를 마련했다. 한국 근현대기 100년사를 다룬 3개관 통합기획의 방대한 전시였다. 그러나 윤범모 관장 임명 첫해 야심차게 진행한 이 전시는 얼마 못 가 진·위작 및 복제본 의혹이 불거졌고 미술관은 공신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실제 당시 덕수궁관에 전시된 만해 한용운의 회갑연 시는 인쇄 복제본이었으나 외부에서 의문을 표하기까지 미술관은 까맣게 몰랐다. 독립운동가의 글씨 또한 위작 의심을 받아 전시 중 교체됐다. 이로 인해 도록까지 다시 제작해야 했다. 국립미술관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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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세계에 한국 미술을 심는 작가들 한국의 국공립 미술관은 언제부터인가 시장에서 몸값 높은 작가들의 알리바이나 만들어주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비엔날레의 다수는 서구의 방법론을 끝없이 답습하는 낡은 행사로 추락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숫자만 많지 의미적이진 않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우수한 시각 예술가를 양성할 수 있는 정책마저 변변한 게 없다. 비참함을 억누르곤 얼마나 가난한지를 증명해야 알량한 몇 푼의 지원금을 쥘 수 있고, 취향에 읍소하는 ‘상품 생산자’들을 세금으로 뒷받침하는 게 예술경영이라 여기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한국 미술의 건강한 성장을 견인하는 데에는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형식과 언어로 무대를 확장해가고 있는 예술가들이 있다. 미술계에선 흔히 양혜규, 신미경, 서도호, 방혜자, 김수자, 이불 등을 꼽는다. 그러나 세계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작가들은 이보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