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쓸모없는 ‘덩어리’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2020년, ‘우리 동네 미술’이라는 초대형 태풍이 미술계를 강타했다. 코로나19로 힘든 예술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228개 지자체가 동시 추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정부는 이 사업에 지자체 매칭 포함 약 1000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일회성으론 역대 최고였다.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건 급조된 정부 정책의 민낯과 ‘졸속’이었다. 불과 서너 개월 남짓한 시간 내 작품을 만들어야 했던 작가들과 공공미술이 뭔지도 모른 채 정부 방침에 따라 동원된 지자체 행정기관들 모두 우왕좌왕했고, 중도 포기와 사업지 변경, 기한 연장 등이 속출했다. 1개 지자체 1개 프로젝트에 각 4억원씩 배분이라는 공산주의적 발상을 토대로 한 정책이었으니 초반부터 삐걱거리는 건 당연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돈이 풀린 만큼 전국 공공공간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예술작품이 들어섰다. 마을 주택 담장과 전통시장, 해안가와 개천, 산책로 등지에 온갖 조악한 작품들이 자릴 잡았다. 하지만 시각적·정서적·미학적으로 참담한 것들이 수두룩했다. 공공성과 장소성, 지역성은 따질 것도 안 됐다. 심지어 사업 주체를 놓고 불거진 예술가들 간 갈등과 공정성 논란, 일부 작품을 둘러싼 표절·도용 논란은 정책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는 지원 정책과 창작 정책조차 구분하지 못한, ‘의미’보단 행정적 목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나타난 결과였다.

‘우리 동네 미술’은 2021년 6월 공식 종료됐다. 그러나 그때의 ‘흔적’은 현재도 남아 있다. 사회 구성원의 보편적 정서와 무관할지라도 국민 세금을 투입한 것이기에 폐기는 물론 이전마저 녹록지 않다. 덕분에(?)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시민들만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다. 공공미술이 지향해온 ‘예술이 있는 삶’은 고사하고 싫든 좋든 봐야만 하는 고통을 매일 겪고 있다.

문제는 최적의 환경에서 살아갈 시민들의 권리를 빼앗는 공공미술은 이미 존재해왔다는 점이다. 바로 건물 앞에 우후죽순 세워진 조각들이다. 이들 작품은 대중과 시대적 사안에 대해 논하는 미적 매개와는 아무 상관없다. 민주주의적 발언 및 소통의 장치라는 공공미술의 본질과도 거리가 멀다. 단지 ‘도시 속 쓸모없는 덩어리’이기 일쑤다.

한국은 약 30년 전부터 도시 환경 개선, 작가 민생고 해결 등을 위해 1만㎡ 이상 건축물을 신축 및 증축할 경우 반드시 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근거는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른 ‘건축물미술작품’의 설치에 관한 규정이다. 이 규정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만 전국적으로 2만점이 넘는다. 여기엔 다수의 ‘도시 속 쓸모없는 덩어리’들도 포함된다.

‘건축물미술작품’ 규정은 시효를 다했다. 현재는 시민들에게 미적 경험을 제공하기는커녕 이면계약, 꺾기 등의 편법을 양산하는 무대로 변질되었고, 공동체 내에서 유동 혹은 정주된 인간 존재를 미학적 의미로 되짚는 기능도 상실했다. 소수의 조형물 제작 업체와 일부 브로커, 작가들의 배만 불릴 뿐 작가 대부분의 민생고 해결에는 도움이 안 되고 있다. 설치 주체인 민간 건축주들의 사유재산을 강제한다는 사실에서도 ‘건축물미술작품’ 규정은 당장 없애야 할 악법이다.

문체부는 지금이라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과 결과를 내놔야 한다. 현행 70%인 선택적 기금제의 확대와 공공미술관리국을 신설하는 것도 좋은 방향이지만 그게 꼭 아니어도 괜찮다. 우선은 한국 공공미술이 처한 작금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개선하려는 의지와 태도 자체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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