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발’ 속 논란의 광주비엔날레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격년제 국제예술행사인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7일 개막했다. 광주 일원에서 94일간 진행된다.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다. <도덕경> 78장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따왔다. ‘아무리 강한 것도 약한 물을 이기지 못한다’는 뜻으로, 유약하나 강인한 물처럼 여리면서도 강한 것이 예술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반발’ 속 논란의 광주비엔날레

전시는 절제와 세련미를 자랑한다. 현직 미술관 소속 리서치 담당자답게 이숙경 감독은 작가 79명의 다종다양한 작품들을 대체로 차분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배치했다. 다만 왜 여기에 놓였는지 모를 일부 작품은 이현령비현령에 가깝다.

전시방식에서 두드러지는 건 어떤 걸 담아도 그럴싸한 주제만큼이나 현혹되기 쉬운 기교다. 실제 많은 이들은 그 솜씨에 깜빡 넘어간다. 하지만 미술관 전시와 비엔날레가 무엇이 다른지는 스스로 증명해 보이지 못한다. 즉 비엔날레만의 역동적 파괴 모델로서의 존재성은 희미하다는 것이다.

작품의 주제 또한 식상하다.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포스트 식민주의, 생태환경, 이주민, 여성, 젠더, 인종, 신체(몸)와 정신, 전통과 근대, 역사의 환기 등은 이미 기존 예술행사들에서 숱하게 다룬 것들이다. 사적 미시사를 통한 경험과 기억의 탐구 역시 흔하다. 당장 우리 앞에 놓인 정치현실을 개탄하고 비판하며 항거하는 작업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한가해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비판적 저항은 전시장 밖에서 활발하게 전개됐다.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의 개막식 참석 여부를 둘러싼 지역 내 반발, 올해부터 2042년까지 10회에 걸쳐 약 13억원의 상금을 수여하기로 한 ‘광주비엔날레 박서보예술상’에 대한 예술가들과 시민단체의 단결된 폐지 목소리가 그 예이다.

시민사회의 반대로 무산된 김 여사의 개막식 초청은 논란의 인물을 이용해 반짝 흥행을 꾀하려던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재단의 얄팍한 속내를 드러낸 촌극이다. ‘박서보예술상’은 상(賞)으로 비엔날레의 권위를 획득하려 하거나 출범 초기부터 만들었다 없애기를 반복하며 공적 상속을 지속해 온 낡은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결과다.

이 중 탈시장적 성격의 비엔날레에 상업적 무게감이 작지 않은 작가 이름을 하나로 묶은 ‘박서보예술상’은 광주 시민의 희생이 담긴 ‘광주 정신’을 밑동으로 삼는 광주비엔날레 창립 취지와 무관한 실책이다. 사실상 박서보와 광주의 역사적 정체성 간 교집합은 없다. 광주시민모임도 “4·19혁명에 침묵하고 군부독재 정권에 순응하면서 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살아왔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광주비엔날레는 점차 구태의연해지고 있다. 1회 당시 약 160만명에 달하던 관람객은 근래 20만~30만명대로 대폭 쪼그라들었다. 베니스비엔날레의 구닥다리 형식인 국가관 및 시상제도를 도입하고, 비엔날레 특유의 도발적인 모습을 엿볼 수 없으니 당연하다. 안타까운 건 이처럼 ‘누수’가 심각한데도 정작 비엔날레 주최 측은 자각도 성찰도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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