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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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예술로 품은 304명 이름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 단원고등학교와 지척인 경기도미술관은 슬픔을 함께 나누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소가 됐다. 주차장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합동분향소가 세워졌고 미술관 일부는 세월호 유가족 사무실로 쓰였다. 10번의 봄을 맞은 지금, 추모의 물결을 따라 전국 각지에서 세월호 비극을 기억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경기도미술관 역시 10주기 추념전을 마련했다. ‘우리가, 바다’(4월12일~7월14일)다. 17명(팀)의 작가 작품 40여점이 출품됐다. 조형매체와 세대는 다르지만 세월호 참사가 남긴 수많은 질문과 여전히 인양되지 못한 4월에 대한 답을 주문한다는 점에선 분모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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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광주정신이 ‘추종’인가 2년마다 개최되는 국제미술전인 베니스 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가 오는 4월20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개막한다. ‘이방인들은 어디에나’(Foreigners Everywhere)를 주제로 11월24일까지 약 7개월간 대장정을 펼친다. 본전시와 국가관 전시는 해당 비엔날레의 두 축이다. 예술총감독이 진두지휘하는 본전시에는 300명 이상의 작가(팀)가 참여한다. ‘미술 올림픽’답게 각 국가 기관에서 운영을 맡는 국가관 전시에는 한국을 포함해 90여개의 나라들이 참가해 자국의 미술 역량을 겨룬다. 제60회를 맞은 올해에는 10여개의 기획전과 30개의 병행전시도 함께한다. 기획전에선 피에르 위그, 크리스토프 뷔헬 등 유명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약 10억원의 혈세를 쓰면서까지 베니스로 날아가 전시를 치르는 광주 비엔날레를 빼면 병행전시엔 대체로 마카오미술관이나 피터 후자(미국 사진가) 재단, 루이비통 재단처럼 미술관 및 사립 예술단체들이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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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표절공장 ‘생성형 AI’ 도둑질은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짓을 말한다. 당연히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사회적으로도 부정되는 행동이다. 그래서 들키지 않도록, 몰래 한다. 그런데 ‘생성형 인공지능’(이하 AI)은 대놓고 한다. 인간 창작자들이 공을 들여 만들어놓은 데이터를 훔쳐 제 것인 양 내놓는 뻔뻔함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합당한 제재가 없거나 있다 해도 턱없이 미약하다. 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지만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것도 아니다. 아직 기준조차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작자 허락 없이 사람의 정신적 결과물을 수집해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도작(盜作)을 유도함으로써 창작생태계를 파괴하는 행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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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현대미술관에 기생하는 근대미술 웬만한 선진국과 달리 한국엔 근대미술관이 없다. 1952년 개관한 일본 도쿄의 국립근대미술관을 비롯해 19세기 작품을 집중 소장한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반백년 이상 20세기 유럽의 미술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 미국이 자랑하는 뉴욕의 근대미술관과 같은 독립적인 근대미술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술관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 근대로부터 현대가 나왔다. 영국의 현대미술관인 테이트모던은 근대미술관인 테이트브리튼에서 분리됨으로써 근·현대를 잇는 계보를 완성했고, 일본 현대미술관을 잉태한 건 도쿄와 교토의 근대미술관이었다. 그러나 우린 거꾸로 근대를 건너뛰고 현대부터 출발했다. 바로 1969년 총독부미술관 건물이었던 경복궁 별관에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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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위선적 화가들, 닮은꼴 사람들 신고전주의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나타난 예술운동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자크 루이 다비드를 꼽는다. 평생을 여러 제왕에 기생하며 호의호식한 화가다. 빼어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살아 있는 권력에는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미화하고 왜곡한 그림으로 역사를 조작했다. 1801년 그린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은 그 조작과 미화의 정점에 있다. 제목에서 보듯 그림의 주인공은 북부 이탈리아를 침략하기 위해 길을 나선 나폴레옹이다. 백마를 탄 그는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한 손을 들어 진군을 명하고 있다. 화면을 지배하는 위풍당당함과 패기는 두려움을 모르는 장군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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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검열 광풍’ 조짐에도 알맹이 빠진 유인촌과의 대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예술계와의 회합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월23일 영상콘텐츠업계 관계자들과의 첫 만남 이후 무용계, 문학계, 저작권계, 만화·웹툰 산업 종사자들과의 의견 청취 시간을 잇따라 가졌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취지다. 지난 21일엔 미술계 인사들과도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미술인들은 미술대전 개최 비용 지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요구사항을 내놨다. 미술자료집 발간 지원, 비평 매체의 원고 번역 지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우회 진입로 신설 등도 거론했다. 유 장관은 “가능하다” “싹 다 바꾸겠다”며 호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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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인천아트플랫폼’의 폭력적 현실 인천 중구에 위치한 ‘인천아트플랫폼’은 1종 미술관 및 공공공연장으로 등록된 복합문화공간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세워진 일본우선주식회사와 삼우인쇄소, 금마차다방, 대한통운 창고 등을 리모델링한 건축물에는 예술인 창작공간과 전시장, 공연장, 생활문화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역사 보존, 원도심 활성화, 예술 진흥이라는 목적을 안고 2009년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은 지난 10여년간 동시대 예술 창작과 유통, 향유의 중심이었다. 부재한 시립미술관의 소임을 대신해 300만 시민의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켰고, 창작 저변 확대에도 기여했다. 그 결과 현재는 국내 대표적 예술 산실로 자리 잡았다. 쇠락하는 중구 구도심을 활성화시킨 일등 공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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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사과’의 수난 예술의 역사에서 ‘사과’만큼 인기 있는 소재도 드물다. 많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들이 남긴 작품 중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을 법한 것들도 적지 않다. 사과 세 개(각각 정숙·청순·사랑을 뜻한다)를 쥔 여신을 그린 라파엘로의 ‘삼미신’을 비롯해, 최초의 정물화로 꼽히는 카라바조의 ‘과일바구니’,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사과로 얼굴을 가린 마그리트의 ‘사람의 아들’, 입체주의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통용시킨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등이 그렇다. 사과에 관한 한 진심인 작가도 있다. 바로 100점이 넘는 사과작품을 남긴 폴 세잔이다. 살아 있는 지각을 강조한 그는 오랜 시간 서양 회화사를 지배해온 원근법, 명암법 등의 전통적인 제작방식과 사물의 상징체계에서 벗어나 대상의 본질을 연구하고 존재성을 부여함으로써 현대미술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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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아트페어의 속성 아트페어(Art Fair)는 미술품을 거래하는 장(場)이다. 스위스의 유명 아트페어인 아트바젤과 투자은행 UBS가 지난 4월 발표한 ‘2023년 미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대면 아트페어는 346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만 얼추 100개의 아트페어가 있다. 이 정도면 ‘아트페어 공화국’이라 해도 무방하다. 아트페어는 18세기 이후 본격화한 자본주의 경제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무대다. 성과는 매출에 있다. 예술작품 판매를 통한 수익 창출이 목적이다. 존재 이유 역시 ‘장사’를 잘해 돈을 많이 버는 것에 있다. 국내 최고의 아트페어인 키아프 서울(한국국제아트페어)과의 공동 개최를 위해 올해 두 번째로 한국을 찾은 프리즈 서울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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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차라리 ‘AI 관장’이 낫다 미술관은 매체적·기호적·언어적 공간이자, 세상의 일부인 예술작품을 가장 기술적·효용적으로 드러내는 표상의 장소다. 미술관 종사자들은 그곳에서 수많은 시각 텍스트들을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재현한다. 소장과 전시로 보다 많은 이들이 재현된 서사 구조와 서술 전체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그들의 일이다. 예술가들이 생성한 텍스트를 재해석함으로써 삶과 예술 간 관계를 다시 돌아보도록 하는 것이 미술관 종사자들의 직무라면, 미술관장의 주요 역할은 다양하게 병치되어 있는 그 관계 중에서 특수한 요소를 선택하는 데 있다. 당대 예술이 처한 미적 가치판단의 불가능성 앞에서 일정한 방향과 좌표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관장의 업무다. 다만 여기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미술의 경향과 흐름을 알아야 할뿐더러 미학적·미술사적 지식과 현장 경험도 풍부해야 한다. 물론 관장에겐 미술관 행정 수장으로서의 책무도 부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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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쇼를 하라’ 2007년 ‘똑같은 걸 하느니 차라리 죽지’라는 다소 도발적인 카피를 내세운 텔레비전 광고가 있었다. 끊임없는 변화로 이동통신의 지각변동을 꿈꾸는 기업과 건강한 상호 소통적 메시지를 경쾌하면서도 파격적으로 풀어낸 백남준의 예술과 버무린 한 통신회사의 ‘쇼(SHOW)를 하라’이다. 이 광고에는 3D작업으로 부활한 고 백남준을 비롯해 ‘물고기 하늘을 날다’ 등의 작품들 속에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생전의 모습이 담겼다. 1003개의 모니터로 구성된 ‘다다익선’을 포함해 권위에의 저항 및 모든 격식에 대한 도전을 상징하는 ‘피아노 부수기(총체 피아노)’와 같은 전위예술 역시 주요 장면으로 삽입됐다. 이 중 시청각을 넘어 감각까지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한 ‘피아노 부수기’는 도래할 영상시대의 다면성을 반영하는 장치였다. ‘파괴를 통한 창조’라는 백남준의 예술행위를 빌려와 기존 이동통신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렸음을 알리기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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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한국 실험미술’의 귀환 우리에게도 예술이란 무엇인지 자문하면서 당대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던 시절이 있었다. 정치·사회에 만연한 불의에 저항하며 예술로 새로운 역사쓰기를 시도한 1960~1970년대다. ‘현대작가초대전’ 등이 열린 1957년을 한국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지만, 보다 급진적 조형 실험이 이뤄진 시기는 1960년대다. 배경은 반체제·반문화적 사회변혁운동인 68혁명을 비롯한 ‘프라하의 봄’ 등의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국제흐름의 직간접적 경험에 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어진 국내 정치적·사회적 혼란도 실험미술의 불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