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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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도시 재생과 ‘공공미술’ ‘도시 재생’이란 1차적으론 쇠퇴한 지역을 개선하여 물리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도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도시(지역)를 만들자는 것이다. 궁극적으론 사회·경제·환경·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촉진함으로써 도시와 인간 삶의 가치를 새롭게 극대화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도시 재생의 최근 개념은 도시의 역사적 의미와 인문학적 범주는 물론, 개발이 아닌 재생의 관점에서 행해지는 새로운 환경적·공간적·문화적 생태까지 아우른다. 그리고 공공의 장에서 대중과 시대적 사안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촉매로서의 가능성을 안은 공공미술은 그 인문학적, 미학적 가치와 의미를 촉발하는 데 있어 중요 매개임을 의심받지 않는다. 특히 공공미술에 내재된 ‘문화적 공공성’은 예술과 삶에 대한 근본을 묻고 사회적 문제에 관한 대안 제시를 통해 문화적 어젠다 창출을 주요 영역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도시 재생이 추구하는 도시와 지역사회 활성화에 가장 부합하는 장치다. 이처럼 공공미술은 인류가 대응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도시공간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자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과 쟁점이 교차하는 사회적 소통의 매제(媒劑)란 점에서 도시 재생의 필연적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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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저 너머’는 어디인가 인간 두개골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해’(2007)는 죽음과 사치, 불멸의 욕구를 담았다. 투명한 아크릴 상자에 실제 상어를 넣은 그의 또 다른 작품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1991)은 인간의 죽음이란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예술가 소피 칼은 어머니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기록한 작품 ‘포착할 수 없는 죽음’(2007)으로 죽음이 갖는 개인적, 보편적 의미에 대해 물었다. 멕시코의 테레사 마르골레스는 시신을 씻기는 데 사용된 20ℓ의 혼합물을 공기 중에 뿌리는 설치작업 ‘Aire(Air)’(2003)를 통해 죽음을 물리적, 감각적 수준에서 체험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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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비평계의 붕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이 열릴 때마다 한국관 취재기자단을 선발한다. 다수의 기자를 추첨 방식으로 뽑아 왕복 항공료와 숙박에 필요한 경비를 세금으로 전액 지원한다. 이에 비평계 일각에선 비평가들도 해당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내비친다. 개인적으론 반대다. 말이 좋아 지원이지, 총 3건의 기사를 필수로 작성해야 한다는 등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조건도 탐탁지 않은 데다 대체로 홍보를 목적으로 하기에 객관적이며 심층적인 평가와 개선점 파악을 우선하는 비평의 직무와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한 문화적·예술적 기록 면에서도 주고받음이 정해진 지원은 안 받느니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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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권력 향해 진실 말하는 용기 전쟁과 기후위기, 난민과 환경파괴, 탈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유산 등은 비엔날레들의 단골 주제다. 여성과 소수자,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인종, 이주, 인권, 노동, 생태 등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베니스비엔날레는 물론이고 한국의 광주비엔날레도 마찬가지다. 주최 도시와 전시의 규모는 제각각이지만 내용 면에선 오십보백보다. 그 이유는 오늘날의 사회가 직면한 글로벌 위기와 도전 과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자 변함없이 논의해야 할 화두라는 것이다. 그러나 비엔날레 간 차별성이 없다는 비판도 감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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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장삿속’ 퐁피두 ‘맞장구’ 부산시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 구입 예산은 형편없다. 해마다 들쑥날쑥하지만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립현대미술관조차 50억원 안팎이다. 지자체 산하 공립미술관들은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다. 많아야 10억원대이고 수억원에 불과한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예산으론 어지간한 작품 한 점도 사기 어렵다. 2022년 기준 작품 구입비로 5억원이 편성된 부산시립미술관이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32억원에 팔린 김환기 작품 ‘05-Ⅳ-71#200 우주’를 소장하려면 무려 26년치 예산을 모아야 한다. 글로벌 미술관을 표방하지만 1만점이 조금 넘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90%가 국내 작품인 것도 ‘궁핍’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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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한국의 나오시마’가 나오려면 둘레 16㎞에 불과한 일본 세토(瀨戶) 내해의 작은 섬 ‘나오시마’(直島)는 1990년까지만 해도 폐기물로 뒤덮인 쓰레기 섬이었다. 구리제련소가 배출하는 아황산가스를 피해 주민들조차 떠나가던 황무지였다. 그런 그곳에 1987년부터 ‘예술’이라는 옷을 입혔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세계 최초의 지하미술관인 지추(地中)미술관을 비롯해 독특하고도 자연친화적인 미술관을 섬 곳곳에 세웠고 클로드 모네, 이우환, 쿠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 카렐 아펠, 데이비드 호크니와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앉혔다. 모두 장소 특정적인 건축물과 미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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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예술에서의 ‘나’의 경험 돈 매클레인의 ‘빈센트(Vincent)’는 누구나 알고 있는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주제로 한 곡이다. 고흐의 작품을 기리기 위한 노래로, 고통 속 고독한 삶을 살았던 그의 생애를 담고 있다. 내게 ‘빈센트’는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첫 계기였다. 감수성 예민하던 고등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이 불러준, 그 감미로운 목소리에 실려 귀로 전해지던 연민 어린 가사가 아니었다면 미술비평가로 살아가는 지금의 나는 아마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간신히 구한 작업실에서 혼자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1980년대 말, 스스로의 선택에도 의문과 불안이 가시지 않던 당시 접한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은 막연함에서 벗어나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품게 한 내 인생의 두 번째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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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평범한 악인 묵직한 파장을 일으키는 영화가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유대계 영국인 조너선 글레이저가 감독·각본을 맡았다. 10여년 전 한국에도 출판된 <런던 필즈(London Fields)>의 저자 마틴 에이미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의 주인공 루돌프 회스는 나치 장교다. 아내 헤트비히를 포함한 가족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 옆 사택에 거주한다. 이들의 집에는 아름답게 꾸민 정원과 온실, 수영장까지 딸려 있다. 그들 스스로 ‘낙원’이라 부르는 그곳에서 지인들과 평화롭게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파티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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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한국 미술계의 시급한 과제 한국 미술계는 장단기 계획 아래 논의할 부분들이 상당하다. 시급한 과제도 산적했다.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며 창작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AI’도 그중 하나다. 육체노동의 보완에서 인지 영역으로 확장된 AI는 급기야 자발적 능동학습을 통한 인간 고유의 의식과 영감, 감정을 흉내 내는 단계로까지 이르렀다. 이쯤 되면 미술계를 포함한 문화예술계는 인공지능이 촉발한 예술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심도 있는 토의절차를 밟아야 한다. 지나치게 헐값인 예술인 보수에 대한 문제도 있다. 대표적인 게 평론가 원고료다. 약 한 달 내외의 시간이 투입되는 정신적·육체적 노동의 대가치곤 국공립미술관을 포함한 미술 관련 공공기관들의 평론비는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작년 10월 광주비엔날레는 30만원의 평론비를 비평가들에게 제시했고, 지난 4월 전북도립미술관이 밝힌 평론비 역시 25만원에 불과했다. 이 정도면 거의 착취에 가깝다. 특정인, 특정기관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매해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예산을 사용하면서도 정작 평론가들에겐 ‘0원’에 근접한 실질임금과 문화권력이라는 이미지를 교환해온 그들의 습관은 사실상 평론계 붕괴의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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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예술로 품은 304명 이름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 단원고등학교와 지척인 경기도미술관은 슬픔을 함께 나누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소가 됐다. 주차장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합동분향소가 세워졌고 미술관 일부는 세월호 유가족 사무실로 쓰였다. 10번의 봄을 맞은 지금, 추모의 물결을 따라 전국 각지에서 세월호 비극을 기억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경기도미술관 역시 10주기 추념전을 마련했다. ‘우리가, 바다’(4월12일~7월14일)다. 17명(팀)의 작가 작품 40여점이 출품됐다. 조형매체와 세대는 다르지만 세월호 참사가 남긴 수많은 질문과 여전히 인양되지 못한 4월에 대한 답을 주문한다는 점에선 분모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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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광주정신이 ‘추종’인가 2년마다 개최되는 국제미술전인 베니스 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가 오는 4월20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개막한다. ‘이방인들은 어디에나’(Foreigners Everywhere)를 주제로 11월24일까지 약 7개월간 대장정을 펼친다. 본전시와 국가관 전시는 해당 비엔날레의 두 축이다. 예술총감독이 진두지휘하는 본전시에는 300명 이상의 작가(팀)가 참여한다. ‘미술 올림픽’답게 각 국가 기관에서 운영을 맡는 국가관 전시에는 한국을 포함해 90여개의 나라들이 참가해 자국의 미술 역량을 겨룬다. 제60회를 맞은 올해에는 10여개의 기획전과 30개의 병행전시도 함께한다. 기획전에선 피에르 위그, 크리스토프 뷔헬 등 유명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약 10억원의 혈세를 쓰면서까지 베니스로 날아가 전시를 치르는 광주 비엔날레를 빼면 병행전시엔 대체로 마카오미술관이나 피터 후자(미국 사진가) 재단, 루이비통 재단처럼 미술관 및 사립 예술단체들이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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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표절공장 ‘생성형 AI’ 도둑질은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짓을 말한다. 당연히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사회적으로도 부정되는 행동이다. 그래서 들키지 않도록, 몰래 한다. 그런데 ‘생성형 인공지능’(이하 AI)은 대놓고 한다. 인간 창작자들이 공을 들여 만들어놓은 데이터를 훔쳐 제 것인 양 내놓는 뻔뻔함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합당한 제재가 없거나 있다 해도 턱없이 미약하다. 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지만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것도 아니다. 아직 기준조차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작자 허락 없이 사람의 정신적 결과물을 수집해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도작(盜作)을 유도함으로써 창작생태계를 파괴하는 행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