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의 변천사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1980년대까지,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본산은 신촌과 이태원이었다. 헤비메탈과 블루스 등이 주요 장르였다.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하여 신촌이 과밀화되면서 임대료는 치솟고 거리는 번잡해졌다. 과거 신촌 문화에 향수를 가진 이들이 홍대앞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하드록과 헤비메탈 대신 얼터너티브와 펑크 등 당시로서는 최신 음악이 흐르는 그곳에 역시 그런 음악을 좇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비슷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면 그 음악을 하고 싶은 법. 원래 음악 술집이었던 ‘드럭’ ‘스팽글’ 같은 곳에서 공연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곳의 ‘죽돌이’들이 밴드를 만들고 역시 단골 손님들을 상대로 무대에 섰다. 크라잉넛, 노브레인, 델리스파이스, 언니네이발관 등 이른바 ‘인디 1세대’의 탄생이었다. 홍대앞 밴드들은 그전의 헤비메탈 밴드들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단지 장르뿐만 아니라 활동하는 태도의 차이였다. 그들은 유명곡을 카피하는 대신 처음부터 자작곡 위주로 공연했다. 관객들 역시 카피곡보다 자작곡에 더 큰 반응을 보였다.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 같은 노래들이 그렇게 탄생했다.

[문화와 삶]인디의 변천사

언론은 이 새로운 흐름에 주목했다. 새로운 지역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음악, 거기에 ‘새로운 비주얼’이 있었다. 긴 머리와 가죽 점퍼 대신 뾰족뾰족 세운 머리에 염색을 하고 광장시장에서 산 구제 옷에 체인을 매달고 다니는 홍대앞 스타일은 ‘그림’도, ‘이야기’도 됐기 때문이다. 홍대앞이 아니면 문화부 기자들이 쓸거리가 없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연일 언론에 홍대앞이 등장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디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한국 인디의 출발이었다.

1세대 등장 이후 1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홍대앞의 모습도, 음악의 흐름도 계속 바뀌었다.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하여 라이브클럽을 대신하여 댄스클럽이 홍대앞 상권의 주도권을 잡았다. 골목골목의 주택가에는 카페들이 속속 들어섰다. 음반 시장이 몰락하면서 기존에 라디오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들도 라이브클럽으로 무대를 옮겼다. 이런 상황 속에서 펑크와 얼터너티브가 중심이었던 인디에도 다양한 장르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루시드 폴, 허밍 어반 스테레오 등 포크부터 라운지까지 여러 색채의 음악들이 꽃처럼 만개한 것이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등 대형 음악 축제들이 생겨난 것도 그들의 활동 무대를 넓히는 요인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세대 교체가 일어났다. 장기하와얼굴들, 국카스텐, 검정치마, 브로콜리너마저 등의 신인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다시 한번 커다란 파도를 만들어냈다. 인디 르네상스라 불리기 충분했다. 스마트폰이 우리 삶을 바꿔 놓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지금, 인디는 과거의 마니아적 음악에서 라디오, 공연 친화적 음악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공격적 성향 대신 따뜻한 소리가 주를 이룬다. 최근에도 볼빨간사춘기, 신현희와 김루트, 멜로망스, 혁오 등의 뮤지션들이 차트를 누빈다. 스마트폰의 플레이 리스트 한구석을 당당하게 차지한다. 주말마다 열리는 각종 음악 페스티벌 무대를 채운다. 활동 무대도 홍대앞을 넘어 방송을 비롯, 전국 각지의 축제를 누비고 있다. SNS에서 ‘발견’되는 음악은 아이돌보다는 자기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다.

이런 음악가들의 존재는,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책임진다. 아이돌이 어느 순간부터 K팝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나서 한국 대중음악은 내수상품에서 수출상품이 됐다. K팝이 해외시장을 활보할수록, 음악을 하려는 어린 친구들은 기획사에 들어가야만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인디 음악, 즉 자기 자신의 음악을 스스로의 감성으로 표현하는 이들이 그 착각을 막아준다. 새로운, 그리고 다른 꿈을 꾸게 해준다. 미국 영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뿐 아니라 선댄스 독립영화도 존재하기에 산업적, 예술적 상상력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화적으로 풍성한 사회에 필요한 건 언제나 더 많은 다양성이다. 대중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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