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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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청량리시장은 건재하다 냉면 계절이다. 요즘엔 일반 식당에서 여름 별식으로 주로 콩국수를 팔지만 예전에는 냉면이 많았다. 열무냉면, 육수냉면을 내놓았다. 열무냉면이라야 담근 열무에 계란 반쪽, ‘다시다’를 듬뿍 넣어 만든 달콤한 국물에 손으로 뜯어 넣는 공장 면이 대부분이었다. 육수냉면도 거의 비슷해서, 열무 대신 매운 양념을 듬뿍 얹어먹는다는 점만 달랐다. 가게 앞 평상에 아주머니들이 앉아서 면이 잘 떨어지라고 손으로 비비던 장면이 선명하다. 최근에 청량리시장을 갔더니,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한 그릇에 5000원. 싸다고 냉면이 아니더냐. 소고기 곤 육수가 아니라고 괄시할 것이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장은 가장 싼 것을 공급한다. 아직 힘을 잃지 않은 청량리시장은 그 몫을 충분히 해내고 있었다. 반찬 일고여덟 가지에 찌개까지 주고 6000원 하는 백반집, 보리밥과 간단한 찬을 내고 4000원 받는 집, 짜장면이 고작 3000원인 중국집, 맥주와 소주를 3000원밖에 안 받는 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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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별점 테러와 식당의 운명 별점 테러. 특정 식당에 다수의 소비자가 고의로 낮은 점수를 주어 평균점수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말한다. 보통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많이 회자되는 말로 공분을 살 만한 사건을 저지른 목표에 대해 응징 효과를 기대하고 일으키는 작업이다.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이들이 주로 쓰는 용어이기도 하다. 불매운동과 같이 벌이기도 하며, 순기능도 상당히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별점은 다양한 장르에서 쓰이지만 대부분 식당 등 외식업종이 해당된다. 각종 온라인 포털이나 배달앱에는 리뷰를 별점(또는 점수)으로 매기도록 유도하고 있다. 리뷰가 결과적으로 식당의 수준을 높이고, 소비자가 소비 행위를 할 때 충분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므로 장점이 매우 크다. 리뷰란 원래 평가하는 텍스트를 의미하지만, 바쁜 세상에 긴 리뷰를 쓰기도 힘들고 하니 별점으로 간단히 평가를 압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뜻밖의 일도 많이 생긴다. 별점이 ‘벌점’이 되어버린다. 너무 높거나 낮은 점수를 주면 평균점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평가 글은 괜찮은데 별점은 2개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아주 좋다는 취지로 글을 썼는데 별점이 3개밖에 안 되기도 한다. 별점과 평가 감정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포털과 배달앱에서 명쾌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이다. 별점은 보통 1~5개(이 사이에 0.5개씩 세분화되어 있기도 하다)를 매기는데, 식당을 평가할 수 있는 요소는 생각보다 많아서 혼란이 일어난다. 요소마다 점수의 배분도 주관적이다. 실제로 평판이 나쁘지 않은 많은 식당들이 갑자기 별 1개(또는 0.5개)를 받기도 하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는 소비자의 글을 보면 맛보다는 직원의 태도 등 서비스 문제나 의사소통에서 오는 불만 때문에 혹평을 하게 되었다는 걸 분석해낼 수 있다. “별 하나도 아깝다”는 말도 자주 나온다. 이는 시스템상 별 1개가 최소라 어쩔 수 없이 그리 되었으나, 실은 그것에 못 미친다는 리뷰어의 분노를 표현한 셈이다. 식당 평가의 주요 구성요소인 맛과 서비스는 상당히 주관적인 면이 있는데, 리뷰 별점이 갖는 한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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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경북에도 해녀가 있다 미역이며 다시다, 톳, 우뭇가사리에 김 같은 걸 우리는 보통 해조류로 구분하고 즐겨 먹는다. 한국처럼 해조를 자세하게 종류를 나눠서 식용하고 있는 나라는 없을 듯하다. 서양 세계에서는 오랫동안 종 구분도 없이 그냥 ‘해조’라고 불렀다. 학술적으로는 개별성이 있었지만, 일반 민중은 거의 먹지 않으니 이름도 구체성이 적었다. 오죽하면 서양에서는 김을 ‘노리’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스시 열풍을 타고 일본어 이름이 전해진 것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한국의 김밥이 주목받고 있다. 아마도 이제부터는 ‘김’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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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걱정되는 요리사의 호흡기 건강 드디어 요리사의 호흡기 질환 중 폐암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2월23일, 학교 급식조리원으로 일하던 이아무개씨가 폐암으로 사망한 것은 작업과 관련된 것으로 인정했다. 그는 오랫동안 반찬을 볶고 튀기는 일을 해왔고, 이것이 폐암을 일으켰을 것으로 판정받은 셈이다. 이번 공단의 조치는 조리실의 환경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아무개씨가 일하던 학교 조리원들은 조리실의 배기시설이 문제를 일으켜서 수차례 수리와 보강을 요구했다고 한다. 질병 인정은 다행이지만 만시지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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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돈쭐을 내주자’ 요즘 누리꾼들 사이에서 ‘돈쭐을 내주자’는 캠페인(?)이 일어나고 있다. 배고픈 학생에게 선행을 베푼 치킨집 사장이 알려지면서다. ‘혼쭐’에서 온 말로, 가게가 잘되도록 물건을 많이 팔아주자는 뜻으로 쓰인다. 이런 선행은 일종의 마중물이 되곤 한다. 더 많은 식당들이 이런 좋은 일에 나설 것이다. 좋은 일이다. 다만 평소에 이런 좋은 도움을 주는 식당이 많다는 것도 알았으면 한다. 한국 뉴스만 검색해도 꽤 흔한 일이다. 외국 사례는 어떤가 하고 일본의 뉴스를 검색해보니, 나라현의 ‘겐키카레’라는 식당이 아주 흥미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손님이 식사를 하고 ‘미래 티켓’이라 이름 붙인 식권을 사서 벽에 붙여 두면 배고픈 아이들이 그 후원을 받아 카레를 사먹는다. ‘미래’라는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 아닌가. ‘히미쓰 기지’라는 식당은 노숙인, 부랑인을 위한 식사 후원사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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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천불이 나서 불을 켜는 사람들 전쟁이나 대공황만큼은 아니지만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를 맞아서 사람들이 깊은 내상을 입고 있다. 썰렁한 농담이지만, 홧술을 많이 마셔서 넘어지면 외상도 입는다. 꼭 식당업종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주변 지인들이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내·외상에 시달린다는 얘기다. 속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처방을 준다. 요즘은 약봉지 뒤에 약물의 종류·효과가 상세히 적혀 있다. 아마도 약국의 복약지도가 구두로는 부족해서 아예 활자로 박아주는 것일 테다. 몇 가지 약이 섞여 있다. 속 쓰릴 땐 당연히 제산제다. 우리가 다 아는 거다. 위장관운동제라는 것도 있다. 마지막에 이해하지 못할 약이 하나 있다. 불안감을 개선해주는 약? 약사님께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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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어묵의 추억 연전에 평양 출신 실향민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음식 기억을 듣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대동강변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간식으로 ‘오뎅’을 사먹었다는 얘기였다. 일제강점기 후반의 일이다. 오뎅은 표준어가 아니니 어묵이라고 하자. 그 어묵이 술집 안주로, 길거리 간식으로 팔린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기하게도 내 어린 시절도 비슷했다. 한강이 겨울에 얼어서 스케이트와 썰매를 지칠 수 있었다. 위험하다며 가지 말라고 하면 대안이 있었다. 서울 교외의 추수 끝난 논바닥이 스케이트장 겸 썰매장으로 바뀌었다. 업자들이 논을 빌려서 물 뿌려 시설을 갖추고 장사를 했던 것이다. 만국기도 걸어놓았다. 빙질이 나빠 넘어지고 엎어지면서도 재미있게 놀았다. 그때도 어묵은 최고의 간식이었다. 뜨끈한 국물도 같이 퍼주어서 한겨울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었으리라. 방한복이나 제대로 있었겠는가. 얼굴과 손이 얼어 터져서 쩍쩍 갈라지던 때였으니. 어묵, 떡볶이, 쇼트닝에 튀긴 핫도그가 스케이트장의 3대장 간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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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그래도 살아낸다 “거리에 사람이 없어요.” “이달 월급 나갈 돈을 마련하지 못했어요.” “오늘 매출 빵(0)원. 으하하하.” “건물주는 월세 깎아주지 못하겠다더군요. 그러면서 ‘당신 가게가 깔세냐?’고 말합디다. 월세를 못 내니 보증금에서 까고 있거든요.” “배달, 포장 판매하려고 일회용 용기를 샀습니다. 이것도 가격이 엄청 올랐습니다.” “배달원이 배달 건수가 급증해서인지 우리 가게에 음식 가지러 제때 못 오는 경우가 많아요. 포장해둔 음식이 식고 있어요^^.” “월말 한 달 반짝 벌어서 일년 농사 벌충하는 건데. 어쩔… ” “아이엠에프(IMF) 때 생각이 납니다. 그땐 그래도 식당 경기까지 죽지는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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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김장 김장철이다. 시장에 나가보니 톡톡 튀는 살아 있는 동백하가 짝으로 들어오고 있다. 무 넣고 시원하게 국 끓여도 맛있지만, 역시 김장김치에 넣기에 제격이다. 새우젓도 많이 나와 있다. 질 좋은 놈들은 윤기가 반짝거리고 통통하다. 국내산 오젓을 그득 담아놓은 함지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수입한 것도 많다. 요즘 중국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산도 들어온다. 요즘 유행은 달이고 거른 액젓을 많이 쓴다. 김장 맛도 다이어트하고 있는 것일까. 젓갈이 걸게 들어가서 묵직하게 오는 김장김치는 확실히 적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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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오징어와 낙지 아마도 두족류나 연체동물, 해조류를 세밀하게 구분하는 건 한국이 으뜸인 듯하다. 그만큼 이 땅에서 분화된 산물이 다양하게 나온다는 뜻일 테고, 어떤 면에서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걸 찾아내던 인구 과밀 지역의 운명이었을 수도 있다. 유럽 같은 외국에서 낙지나 주꾸미, 문어를 구별하지 않는 걸 자주 봤다. 낙지나 주꾸미는 ‘작은 문어’라고 시중에서 부른다. 그러면 “문어의 새끼나 크기가 작은 문어는 뭐라고 부르냐”고 했더니 “그것도 작은 문어지”라고 대답하던 유럽 친구 요리사가 생각난다. 물론 김이나 미역, 다시마와 우뭇가사리류를 그냥 ‘해조’라고 부르는 게 유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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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사라진 우동 왕년에 중국집에 가면 선택에 어려움이 컸다. 짜장면, 간짜장면, 짬뽕, 우동이라는 면 4대 천왕이 있었기 때문이다. 울면이나 기스면까지는 대중적인 것이 아니었다. 원래 중국집에는 우동이라는 게 있을 리 없었다. 우동이야말로 일본 면이니까. 따루면이라고 부르던 음식이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에 점차 우동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듯하다. 1950~60년대 중국집 메뉴판을 찾아보면 우동(따루면大로麵)이라고 병기해 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요리업은 현지화에 빠르다. 한국에 소스가 엄청나게 많은 스파게티가 인기 있는 것도 그렇고, 피클이나 멕시코 고추절임인 할라페뇨를 주는 방식도 한국인의 기호에 맞춘 결과다. 일본식 또는 유럽식이 원조인 돈가스에 김치나 단무지를 곁들이는 방식도 비슷하다. 프랑스 현지의 화상은 프랑스인 습관에 맞추어 코스 메뉴를 팔고, 디저트를 낸다. 먹고살자면 원래 그런 법이다. 그게 현지화이고, 가변적인 문화의 특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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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상추가 금추다 고깃집에 갔더니 상추 인심이 나빠졌다. 상자에 10만원이니 20만원이니 한단다. 예상했던 대로다. 양도 적게 주는데, 품질도 시들시들하다. 제대로 된 것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주인이 풀죽은 목소리로 사과한다. 물난리든 폭염이든 잎채소들은 난리가 난다. 잎채소뿐이랴. 온갖 작물들이 애를 먹는다. 더울 땐 원래 웃자라는 잎채소들이 비싸진다. 작물이라는 게 너무 자라도 문제인 법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삭아삭하고 청신한 조직감을 잃어버리면 품질이 나빠진다. 서양음식점에서는 샐러드를 많이 파는데 값이 문제가 아니라 공급상들이 물건을 못 댄다. 폭우로 하우스가 다 쓰러지고, 밭이 초토화된 탓이다. 루콜라라는 놈이 있는데, 요즘 인기 있는 서양식당 채소다. 10여 년 전부터 널리 알려져 이제는 일반가정에서도 샐러드로 먹곤 한다. 루콜라도 종이 여럿인데, 쌉쌀한 맛이 강한 이른바 와일드 루콜라라는 건 ㎏당 10만원을 불렀다. 그나마도 물건이 없단다. 소 등심보다 비싼 값에도 살 도리가 없다. 그 루콜라를 키우는 농민을 안다. 그는 물에 젖어 썩어가는 채소들을 보며 가슴이 도려지는 것처럼 아팠다 했다. 몇 푼의 보상금을 받을지는 몰라도, 그의 마음과 재정을 위로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같은 자연재해라도 그나마 폭염이라면 과일들은 피해가 적거나 농익어서 맛이 좋아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