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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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걱정되는 요리사의 호흡기 건강 드디어 요리사의 호흡기 질환 중 폐암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2월23일, 학교 급식조리원으로 일하던 이아무개씨가 폐암으로 사망한 것은 작업과 관련된 것으로 인정했다. 그는 오랫동안 반찬을 볶고 튀기는 일을 해왔고, 이것이 폐암을 일으켰을 것으로 판정받은 셈이다. 이번 공단의 조치는 조리실의 환경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아무개씨가 일하던 학교 조리원들은 조리실의 배기시설이 문제를 일으켜서 수차례 수리와 보강을 요구했다고 한다. 질병 인정은 다행이지만 만시지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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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돈쭐을 내주자’ 요즘 누리꾼들 사이에서 ‘돈쭐을 내주자’는 캠페인(?)이 일어나고 있다. 배고픈 학생에게 선행을 베푼 치킨집 사장이 알려지면서다. ‘혼쭐’에서 온 말로, 가게가 잘되도록 물건을 많이 팔아주자는 뜻으로 쓰인다. 이런 선행은 일종의 마중물이 되곤 한다. 더 많은 식당들이 이런 좋은 일에 나설 것이다. 좋은 일이다. 다만 평소에 이런 좋은 도움을 주는 식당이 많다는 것도 알았으면 한다. 한국 뉴스만 검색해도 꽤 흔한 일이다. 외국 사례는 어떤가 하고 일본의 뉴스를 검색해보니, 나라현의 ‘겐키카레’라는 식당이 아주 흥미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손님이 식사를 하고 ‘미래 티켓’이라 이름 붙인 식권을 사서 벽에 붙여 두면 배고픈 아이들이 그 후원을 받아 카레를 사먹는다. ‘미래’라는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 아닌가. ‘히미쓰 기지’라는 식당은 노숙인, 부랑인을 위한 식사 후원사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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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천불이 나서 불을 켜는 사람들 전쟁이나 대공황만큼은 아니지만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를 맞아서 사람들이 깊은 내상을 입고 있다. 썰렁한 농담이지만, 홧술을 많이 마셔서 넘어지면 외상도 입는다. 꼭 식당업종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주변 지인들이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내·외상에 시달린다는 얘기다. 속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처방을 준다. 요즘은 약봉지 뒤에 약물의 종류·효과가 상세히 적혀 있다. 아마도 약국의 복약지도가 구두로는 부족해서 아예 활자로 박아주는 것일 테다. 몇 가지 약이 섞여 있다. 속 쓰릴 땐 당연히 제산제다. 우리가 다 아는 거다. 위장관운동제라는 것도 있다. 마지막에 이해하지 못할 약이 하나 있다. 불안감을 개선해주는 약? 약사님께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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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어묵의 추억 연전에 평양 출신 실향민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음식 기억을 듣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대동강변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간식으로 ‘오뎅’을 사먹었다는 얘기였다. 일제강점기 후반의 일이다. 오뎅은 표준어가 아니니 어묵이라고 하자. 그 어묵이 술집 안주로, 길거리 간식으로 팔린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기하게도 내 어린 시절도 비슷했다. 한강이 겨울에 얼어서 스케이트와 썰매를 지칠 수 있었다. 위험하다며 가지 말라고 하면 대안이 있었다. 서울 교외의 추수 끝난 논바닥이 스케이트장 겸 썰매장으로 바뀌었다. 업자들이 논을 빌려서 물 뿌려 시설을 갖추고 장사를 했던 것이다. 만국기도 걸어놓았다. 빙질이 나빠 넘어지고 엎어지면서도 재미있게 놀았다. 그때도 어묵은 최고의 간식이었다. 뜨끈한 국물도 같이 퍼주어서 한겨울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었으리라. 방한복이나 제대로 있었겠는가. 얼굴과 손이 얼어 터져서 쩍쩍 갈라지던 때였으니. 어묵, 떡볶이, 쇼트닝에 튀긴 핫도그가 스케이트장의 3대장 간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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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그래도 살아낸다 “거리에 사람이 없어요.” “이달 월급 나갈 돈을 마련하지 못했어요.” “오늘 매출 빵(0)원. 으하하하.” “건물주는 월세 깎아주지 못하겠다더군요. 그러면서 ‘당신 가게가 깔세냐?’고 말합디다. 월세를 못 내니 보증금에서 까고 있거든요.” “배달, 포장 판매하려고 일회용 용기를 샀습니다. 이것도 가격이 엄청 올랐습니다.” “배달원이 배달 건수가 급증해서인지 우리 가게에 음식 가지러 제때 못 오는 경우가 많아요. 포장해둔 음식이 식고 있어요^^.” “월말 한 달 반짝 벌어서 일년 농사 벌충하는 건데. 어쩔… ” “아이엠에프(IMF) 때 생각이 납니다. 그땐 그래도 식당 경기까지 죽지는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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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김장 김장철이다. 시장에 나가보니 톡톡 튀는 살아 있는 동백하가 짝으로 들어오고 있다. 무 넣고 시원하게 국 끓여도 맛있지만, 역시 김장김치에 넣기에 제격이다. 새우젓도 많이 나와 있다. 질 좋은 놈들은 윤기가 반짝거리고 통통하다. 국내산 오젓을 그득 담아놓은 함지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수입한 것도 많다. 요즘 중국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산도 들어온다. 요즘 유행은 달이고 거른 액젓을 많이 쓴다. 김장 맛도 다이어트하고 있는 것일까. 젓갈이 걸게 들어가서 묵직하게 오는 김장김치는 확실히 적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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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오징어와 낙지 아마도 두족류나 연체동물, 해조류를 세밀하게 구분하는 건 한국이 으뜸인 듯하다. 그만큼 이 땅에서 분화된 산물이 다양하게 나온다는 뜻일 테고, 어떤 면에서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걸 찾아내던 인구 과밀 지역의 운명이었을 수도 있다. 유럽 같은 외국에서 낙지나 주꾸미, 문어를 구별하지 않는 걸 자주 봤다. 낙지나 주꾸미는 ‘작은 문어’라고 시중에서 부른다. 그러면 “문어의 새끼나 크기가 작은 문어는 뭐라고 부르냐”고 했더니 “그것도 작은 문어지”라고 대답하던 유럽 친구 요리사가 생각난다. 물론 김이나 미역, 다시마와 우뭇가사리류를 그냥 ‘해조’라고 부르는 게 유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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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사라진 우동 왕년에 중국집에 가면 선택에 어려움이 컸다. 짜장면, 간짜장면, 짬뽕, 우동이라는 면 4대 천왕이 있었기 때문이다. 울면이나 기스면까지는 대중적인 것이 아니었다. 원래 중국집에는 우동이라는 게 있을 리 없었다. 우동이야말로 일본 면이니까. 따루면이라고 부르던 음식이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에 점차 우동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듯하다. 1950~60년대 중국집 메뉴판을 찾아보면 우동(따루면大로麵)이라고 병기해 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요리업은 현지화에 빠르다. 한국에 소스가 엄청나게 많은 스파게티가 인기 있는 것도 그렇고, 피클이나 멕시코 고추절임인 할라페뇨를 주는 방식도 한국인의 기호에 맞춘 결과다. 일본식 또는 유럽식이 원조인 돈가스에 김치나 단무지를 곁들이는 방식도 비슷하다. 프랑스 현지의 화상은 프랑스인 습관에 맞추어 코스 메뉴를 팔고, 디저트를 낸다. 먹고살자면 원래 그런 법이다. 그게 현지화이고, 가변적인 문화의 특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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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상추가 금추다 고깃집에 갔더니 상추 인심이 나빠졌다. 상자에 10만원이니 20만원이니 한단다. 예상했던 대로다. 양도 적게 주는데, 품질도 시들시들하다. 제대로 된 것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주인이 풀죽은 목소리로 사과한다. 물난리든 폭염이든 잎채소들은 난리가 난다. 잎채소뿐이랴. 온갖 작물들이 애를 먹는다. 더울 땐 원래 웃자라는 잎채소들이 비싸진다. 작물이라는 게 너무 자라도 문제인 법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삭아삭하고 청신한 조직감을 잃어버리면 품질이 나빠진다. 서양음식점에서는 샐러드를 많이 파는데 값이 문제가 아니라 공급상들이 물건을 못 댄다. 폭우로 하우스가 다 쓰러지고, 밭이 초토화된 탓이다. 루콜라라는 놈이 있는데, 요즘 인기 있는 서양식당 채소다. 10여 년 전부터 널리 알려져 이제는 일반가정에서도 샐러드로 먹곤 한다. 루콜라도 종이 여럿인데, 쌉쌀한 맛이 강한 이른바 와일드 루콜라라는 건 ㎏당 10만원을 불렀다. 그나마도 물건이 없단다. 소 등심보다 비싼 값에도 살 도리가 없다. 그 루콜라를 키우는 농민을 안다. 그는 물에 젖어 썩어가는 채소들을 보며 가슴이 도려지는 것처럼 아팠다 했다. 몇 푼의 보상금을 받을지는 몰라도, 그의 마음과 재정을 위로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같은 자연재해라도 그나마 폭염이라면 과일들은 피해가 적거나 농익어서 맛이 좋아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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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체리여서 놀랐다 예전 초등학교 앞엔 행상들이 많이 몰려왔다. 병아리 장수에 해삼과 멍게 리어카, 온갖 야바위꾼들과 과일 행상도 등장했다. 선생님들은 종례를 하며 몇 가지 당부를 하곤 했는데 “복숭아 사먹지 말라”는 말씀도 있었다. 솎아낸 풋복숭아 먹고 배탈 나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복숭아는 여름이 완전히 무르익어서 땡볕에 시달릴 무렵에 나와야 제맛이었다. 그 농익은 백도, 황도의 향기가 아찔할 정도로 시장에 가득 차던 날들이 있었다. 이제는 그런 향이 시장에도 마트에도 드문 것 같다. 혹자는 제철을 모르는 과일이라 향도 적다고들 한다. 과일에 제철 없어진 지 오래다. 자두-복숭아-포도-사과-감으로 이어지는 전통의 순서(?)가 없어졌다. 품종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런 순서는 계절감으로 살아가던 오랜 인간의 관습과 맞아떨어졌다. 어른들이 이제 무얼 먹을 철이네, 하시면 어김없이 시장에 그 작물이 나오곤 했으니까. 이젠 수입과일과 마구 뒤섞여 제철의 과일이 무언지 아이들은 알 수도 없다.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에서 과일들이 쏟아져 나와 그렇기도 하다. 남반구인 칠레산 포도가 대표적인데, 당최 이 ‘글로벌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얼 계절로 알고 살아가는지 모를 일이다. 며칠 전에 약간의 경악이 내게 밀려왔다. 내 몸이 “아, 체리가 먹고 싶군” 하고 반응한 것이었다. 자두도, 수박도, 복숭아도 아니고 체리라니. 이맘때 미국산 워싱턴체리가 수입되어 많이 풀리는데, 그걸 몇 해고 먹었더니 몸이 먼저 기억한 셈이다. 이제 과일의 기억도 수입인가 싶어 입맛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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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노동자에게 ‘고봉밥’이란 “정부가 1981년 1월부터 요식업소의 밥그릇을 바꾸도록 지시했으나 실행상의 어려움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밥그릇을 바꾸기도 힘들고, 손님들이 밥의 양이 적다고 더 요구하므로 곤란을 겪고 있다.” 1981년 서울의 주요 신문들이 보도한 기사가 대략 이렇다. 이미 1970년대에 정부와 서울시는 주발 또는 사발로 대표되는 밥그릇을 ‘공기’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쌀이 부족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쌀 증산, 쌀 소비 억제(밀가루 공급)라는 투트랙 전략으로 쌀 부족을 해결하려 했다. 흥미로운 건 밥공기의 크기까지 정해주었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에는 지름 11.5㎝에 높이 7.5㎝였고, 1980년대 들어 더 줄여서 지름 10.5㎝에 높이 6㎝짜리 그릇을 쓰도록 강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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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재난지원금의 바른 예 예전에 기본소득 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악플이 주렁주렁 달렸다. 세금 퍼주기냐, 근로의욕을 감소시킨다, 심지어 공산당이냐는 말도 들었다. 어제 한 인터뷰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기본소득을 언급했다. 심지어 “절대 민주당이 (기본소득 헤게모니를) 가져가게 두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른바 보수에서도 기본소득을 강력하게 말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기본소득 하면 먼 나라 얘기 같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한데, 실은 우리는 이미 정치 성향이나 여야를 막론하고 기본소득에 찬성하고 그걸 받아 쓰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바로 기본소득의 일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기본소득이라고 명명한 지자체도 있다. 자금의 성격이 그렇다. 재산이 몇 조원 되는 재벌도 국민이니까 받는다. 재산이나 판정 기준 따위는 없다. 그게 기본소득의 보편적 취지와 같다. 다만 이번 건은 일회성이고, 기본소득은 지속적인 지급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게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