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옛날에 내 친구가 초등학교 때 축구선수를 했는데 한번은 감독이 선수들을 끌고 라이벌 학교 뒷산으로 데려가더란다. 그 산에서 가리킨 것은 학교 구석에 젖소가 풀을 뜯는 작은 울타리였다.

“너희들도 우승을 하면 우유를 마실 수 있다!”

당시 지방 대회의 우승 상품이 젖소였고,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높이려 일부러 보여준 장면이라는 얘기였다. 운동장에서 그 학교 선수들이 꿀꺽꿀꺽 우유를 한 병씩 독차지하고 먹는 모습을 묘사할 때는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친구네 학교는 우승을 못했고 젖소도 타지 못했다.

어릴 때 읽은 한 프랑스 소년소설의 백미도 도시에 나가 개고생을 한 주인공이 젖소를 사서 고향에 개선하는 것이었다. 젖소는 달걀-병아리-암탉으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이전 근검정신의 정점이기도 했다. 젖소 다음은 없었다. 젖소 마릿수가 달라질 뿐이었다. 물론 그 이후에는 아마 젖소 대신 토지가 그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땅을 사라!

서울 교외에 젖소를 보러가는 유치원 프로그램이 있었다. 젖소란 풍요, 전원, 낙원의 상징이니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제품의 생산원이기도 하고. 한데 실제 젖소를 본 아이들 중 다수가 울더란다. 꺼멓고 얼룩덜룩하고 무엇보다 덩치가 아주 크기 때문에 무서워했다고 한다. 나도 이탈리아의 젖소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세상에나. 그 덩치와 늘어진 젖의 무게감이 상상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 종은 홀스타인이다. 젖을 짤 수 있는 종은 지구상에 아주 많지만 홀스타인은 국제품종이고 독점에 가까운 종이다. 홀스타인은 하루 100ℓ 가까이 젖을 짤 수도 있다. 상상하기 어려운 양이다. 우유 맛이 좋은 종은 여럿 있다는데 우리는 평생 홀스타인 말고는 다른 우유를 마셔보지 못하고 죽는다. 한우도 당연히 과거에는 젖을 짜서 먹는 사람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이미 한우 우유를 먹었다는 여러 기록이 있다. 타락죽이라는 우유죽도 왕실과 경화세족, 부자들의 상에 올랐다. 조영석이라는 화가가 그린 우유를 짜는 그림도 남아 있다(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그림 속의 소는 얼룩소가 아니고 한우다. 우유는 당시 약처럼 취급되었다. 맛있는 걸 숨기려고 할 때 보통 ‘할아버지 약’이라고들 하는데, 아마도 그런 것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왕이 몸이 아프면 약을 달이듯 우유를 끓여 바쳤다. 인종은 12대왕으로 불과 6개월 남짓 재위했을 정도로 허약했다. 그는 우유를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도 유당분해효소가 부족했을까. 한국인의 상당수는 이 효소가 적어서 생우유를 잘 못 먹는다.

인구 감소의 여러 여파는 엄청난 높이로 몰아치고 있다. 소비가 대폭 줄어들고 당연히 우유도 덜 마실 것이다. 한국은 축산을 크게 장려했다. 소 놓아 기를 초지도 적고 사료가 모자란 나라인데도 우유 생산량은 크게 늘어났다. 배가 고파 편의점에서 단팥빵과 흰우유 한 팩을 사먹는데, 이런저런 생각에 우울해졌다. 우유도 이제 먹을 사람이 거의 없는 나라가 된다는데 뭐가 기쁘겠는가.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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