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철
신부·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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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2024년 가자지구, ‘소녀가 온다’ 한 해의 끝자락,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때다. 창문 아래 빈 의자에 신문에서 오려낸 빛바랜 사진 세 장이 놓여있다. 모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진이다. 하나는 라파의 난민촌 사진이다. 한 소녀가 쪼그려 앉아 물 한 컵으로 설거지를 한다. 앞에 놓인 빈 냄비 세 개에 무엇이 있었을까? 뭘 먹기는 했을까? 소녀는 무표정하다. 무표정한 얼굴 속에 감추어진, 그 또래가 감당해서는 안 될 경험을 생각해본다. 다른 두 사진을 보니, 이스라엘이 소개령을 내린 칸유니스에서 사람들이 한밤중에 피란길에 나섰다. 머리에 이고 어깨에 짊어진 보따리가 단출하다. 짐이 줄어든 만큼 삶이 파괴되었다. 엄마 손을 잡은 아이는 다른 손으로 물 한 통을 움켜잡고 있다. 이들도 표정이 없다. 그 무표정함 속에 숨겨진 절망과 분노를 가늠해본다. 내가 사는 수녀원 뜰에서 재잘대며 마음껏 뛰노는 이곳 아이들의 모습과 겹치면 어느 한쪽이 비현실처럼 보인다.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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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용산이 입을 열면 남한은 몸을 떤다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했다. 러시아 하원은 북·러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 조약’을 비준했다. 대북전단과 오물풍선, 대북·대남확성기 방송, 평양 상공 무인기와 차원이 다른 국면이 전개되며,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이 가파르게 고조된다. 군사적 완충장치를 모두 없앤 터라 전쟁 위기감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평화가 절실하다. 평화는 힘으로 지킬 수 없는 것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하는 ‘힘에 의한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지금 전쟁 중인, 주변국 군사력을 압도하는 이스라엘과 러시아를 보라. 평화인가? 늘 경비가 삼엄한 주한 미국대사관을 보라. 평화인가? 힘에 의한 평화는 불안과 파괴의 일상을 가져다줄 뿐이다. 윤 대통령은 평화는 구걸로 지킬 수 없다고 하지만, 힘으로만 지킬 수 없는 게 또한 평화다. 힘은 한쪽이 키우면 다른 쪽도 키운다. 평화가 아니라 불안이 자란다. 평화에 힘이 필요하다면 대화는 더 필요하다. 대화는 구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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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농촌, 아픈 우리 손가락 지난 6월 말 북한산에서 손을 다쳤다. 평소 자주 다니던 익숙한 길이었는데 발이 꼬이면서 그대로 땅바닥에 엎어졌다. 다른 데는 괜찮은데 오른손 중지와 약지가 몸에 깔려 접질렸다. 자고 나니 손가락이 많이 부었다. 병원에 가니 당분간 손가락을 쓰지 않으면 괜찮아진다고 했다. 근데 그냥 뒀더니 시간이 갈수록 더 불편해졌다. 자고 나면 손가락이 뻣뻣해져 굽혀지질 않는다. 손가락을 천천히 힘껏 당겨야 겨우 주먹을 쥘 만큼 굽혀진다. 안 되겠다 싶어 다른 병원에 갔더니 인대를 다쳤는데 재활운동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거기서 일러준 대로 재활운동을 하고 나면 손가락이 조금 편해진다. 그런데 금방 다시 뻣뻣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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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빗방울달, 타오름달이 가고 거둠달이 왔다 책상에 놓인 달력을 보니 7월은 ‘빗방울달’, 8월은 ‘타오름달’로 되어 있다. 이번 여름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폭우와 폭염의 여름이 지나간다. 서울과 제주 등 전국 곳곳이 역대급 폭염으로 열대야 최장 기록을 다시 썼다. 가축은 100만마리 이상, 어류는 대량으로 폐사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프리카, 유럽, 인도와 파키스탄 등 세계 곳곳이 여름을 앓았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더울 확률이 점점 커진다. 폭염의 일상화로 여름이 재난의 때가 되고 있다. 기후재난으로 세상이 요동치는데 지금 정부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골라서 한다. 지난 7월30일 환경부는 기후위기로 인한 극한 홍수와 가뭄 등에 대비해 댐 14개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기후위기 대응댐’이라는데 실제로는 ‘기후위기 역행댐’이다. 댐 건설 과정에서 배출될 온실가스와 파괴될 자연생태계만 생각해도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댐을 건설하는 게 아니라 철거한다. 극한 호우 시대에 댐은 홍수를 막는 게 아니라 물폭탄이 될 수 있다. ‘송곳 폭우’니 ‘띠 장마’니 하며 국소적으로 퍼붓는 비에 댐 같은 경직된 인공물은 갈수록 효과가 떨어진다. 4대강이 그렇듯, 댐이 물의 흐름을 막으면 녹조가 창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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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불법파견, 그래도 되는 사람은 없다 지난 6월24일 일어난 화성의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폭발화재 사고는 ‘사회적’ 참사다. 개인 탓이 아니라 사고의 개연성이 있는 구조나 관행(아리셀은 불법파견)을 사회가 방치해서 일어났기에 ‘사회적’이다. 사회적 참사는 사고가 나도록 방치한 사회를 고발하고 반성을 촉구한다. 우리 사회는 반성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고는 반복한다. ‘유령노동’ 현실 앞, 안전은 사라져 당장 40명이 사망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와 38명이 사망한 2020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가 떠오른다. 당시에 지목된 문제점은 대략 이렇다. 안전교육을 하지 않았다, 스프링클러와 방화 셔터를 잠가 놓았다, 화재경보기를 꺼놓았다, 대피로와 방화문을 폐쇄했다. 위험물질 리튬에 대해 교육하고 정기적으로 비상 대피 훈련을 했다면, 대피로가 있었다면, 작업장과 리튬전지 보관 장소를 분리했다면, 아리셀에서 한순간에 23명이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사의 뇌관은 모두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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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금강, 자연 그대로 흐르라 집에서 가까운 정릉천에 청둥오리가 산다. 봄이 되자 겨우내 보이지 않던 오리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수컷밖에 보이질 않더니, 5월 하순쯤 되자 그동안 알을 품느라 보이지 않던 암컷들이 새끼를 데리고 엄마가 되어 나타났다. 엄마 오리는 연신 고개를 돌려 주위의 안전을 확인하고 먹이가 있는 쪽으로 새끼 오리들을 이끈다. 간혹 다른 오리가 새끼들 쪽으로 접근하면 서슴없이 다가가 거침없이 밀어낸다. 엄마 주위를 맴도는 주먹만 한 크기의 새끼들은 앙증맞기 짝이 없다.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오리 가족을 바라본다. “어머, 어쩌면 좋아.” “와, 쟤네 좀 봐.” 사람들은 새끼들이 뒤뚱거리는 모습에 안타까워하고 엄마를 재바르고 야무지게 따라가는 모습에 감탄하며 모두 무사하게 자라나길 바란다. 험한 세상에 갓 태어난 작고 여린 생명에 대한 애틋한 마음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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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제22대 국회, 무엇을 할 것인가? 제22대 국회는 시작부터 파행이다. ‘헌정사상 첫 야당 단독 국회 개원’이란 기록도 세웠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당분간 ‘반쪽 국회’가 불가피할 것 같다. 그런데 이렇듯 첨예하게 대립하는 여야가 ‘민심’에서는 완전히 일치한다. 민심을 받들겠다는 건 한결같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민심은 무엇일까? 이들은 민심이 무엇일까 생각은 해봤을까? 민심은 ‘윤심’도 ‘명심’도 아니다. ‘단일대오’는 더더욱 아니다. 민심은 다양해서 서로 경합하고 충돌한다. 이걸 모른 척하고 되뇌는 ‘민심’은 추상명사가 되어 허공에서 맴돌다 사라진다. 이게 정치인들이 뜻하는 민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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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무위당 장일순에 길을 묻다 우리는 덫에 걸렸다. 우리나라의 극도로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은 여기가 얼마나 살기 힘든 곳인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연말에 나온 한국은행 보고서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에 따르면 초저출산의 근원은 청년이 느끼는 높은 ‘경쟁압력’과 ‘불안’에 있다. 경쟁과 불안은 동전의 양면이다. 낮은 출산율은 높은 자살률과 관계된다. 실제로 1992~2005년 자살자 수는 3.3배 늘었고 출산율은 1.76명에서 1.08명으로 줄었다. 자살이 많은 나라에서 아이를 많이 낳을 리 없다.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경쟁은 자연의 질서와 같다는 거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본격적인 등장에서 보듯이 경제 여건이 어려울수록 경쟁은 더 심해진다. 그래서 국가 소멸 위기라며 호들갑을 떨지만, 정부나 정치권은 과도한 경쟁을 해소하는 노력보다는 ‘돈’에 치중한다. 아이 하나에 이런저런 현금성 혜택을 주겠다는 거다. 자본주의 사회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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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내일을 위해 투표했습니다 16일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그동안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세 차례 ‘조사위원회’가 꾸려져 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히려고 했으나 아직도 명확한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현재 침몰 원인은 ‘좌초설’(암초 등에 부딪혀 침몰), ‘외력설’(잠수함 충돌 등 외력으로 침몰), ‘내인설’(복원력 부족과 기관 고장으로 침몰)이라는 세 가지 가설로 남았다. 하지만 배가 왜 그리 빠르게 기울어 침몰했는지는 분명해졌다. 첫째, 증개축. 전시실을 짓고 선실을 늘리느라 세월호의 무게는 원래보다 239t 늘었고 선박 복원력은 줄었다. 이윤 때문이다. 둘째, 화물 과적과 ‘고박’ 불량. 세월호의 화물 적재량은 987t인데 당시 2214t을 실었고 화물 상당수가 제대로 묶이지 않았다. 선원들의 부주의 탓도 게으름 탓도 아니다. 고박장치를 설치하면 갑판 바닥을 많이 차지해 화물 적재량이 줄기 때문이다. 배가 기울자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며 침몰을 재촉했다. 수사 과정에서 관행이라는 진술이 나왔는데, 결국 이윤 때문이다. 이윤에 눈먼 운항으로 304명이 한순간에 깊은 바닷속으로 쓸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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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봄, 농자천하지대본 지난 4일 대구 군위군 부계초등학교. ‘나홀로’ 신입생이 분홍색 가방을 메고 교실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사진으로 봤다. 마음이 짠하다. 나홀로 입학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올해 신입생이 아예 없는 초등학교도 전국에 157곳이나 된다. 우리나라 저출생의 현실이다. 여기에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된다. 국가소멸 위기라며 걱정들이다. 땅·농, 생명 아닌 자본 논리로 재 저출생과 고령화가 심각한 사회 현안으로 불거지기 훨씬 전의 농촌, 도시로 사람들이 빠져나갔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통계청의 ‘2022년 농림어업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농가인구는 전체 인구의 4.2%인 216만6000명이다. 전년 대비 5만명이 줄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49.8%로 전체 고령인구 비율 18.0%의 거의 3배다. 하지만 이렇게 늙고 쪼그라드는 농촌을 걱정하는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다. 나는 국가소멸보다 농촌소멸이 더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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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방을 비우며, 퇴직 단상 요즘 학교에 있는 내 방을 비우고 있다. 책을 옮기고, 나누고, 치우니 이달 말에 정년퇴직이라는 걸 실감한다. 삶에 작은 매듭 하나가 더해지고, 이제 나도 노년에 들어섰음을 새삼 깨닫는다. 자연스레 뒤를 돌아보고 앞을 내다본다. 돌아보니 강의실 안팎으로 좋은 인연이 많았다. 가톨릭 동아리 학생들, 학내 자치 공간과 대안 문화를 고민했던 생활도서관 ‘단비(일단은 비빌 자리)’와 학교 청소노동자와 연대했던 ‘맑음’에서 만났던 학생들이 떠오른다. ‘민들레 장학금’과 매 학기 따뜻한 차로 학생들과 함께하던 청소노동자들도 생각난다. “(중국의 양명학자) 이탁오는 사제가 아니라 사우 정도가 좋다고 합니다. 친구가 될 수 없는 자는 스승이 될 수 없고 스승이 될 수 없는 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신영복 <담론>) 세월이 흐르며 점점 친구처럼, 동지처럼 다가오는 학생들이 있다. 고맙고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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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이재, 곧 죽습니다’ 새해, 우리는 한 해를 시작하며 나름의 결심을 한다. 삶이 우리가 하는 크고 작은 여러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면, 좋은 삶은 결국 좋은 선택에 달렸다. 누구나 좋은 선택을 원한다. 좋은 선택은 당위와 자기 이익이 양립하면 쉽지만 상충하면 어렵다.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군자는 ‘의’를, 소인은 ‘이’를 잣대로 선택한다. ‘의’와 ‘이’가 맞서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면서도 개인의 유불리에 걸려 넘어지는 수가 많다. 지난 연말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은 견리망의(見利忘義)도 ‘이’가 ‘의’를 앞서는 현실을 가리킨다. 안타깝게도 견리망의는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