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최신기사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내일을 위해 투표했습니다 16일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그동안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세 차례 ‘조사위원회’가 꾸려져 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히려고 했으나 아직도 명확한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현재 침몰 원인은 ‘좌초설’(암초 등에 부딪혀 침몰), ‘외력설’(잠수함 충돌 등 외력으로 침몰), ‘내인설’(복원력 부족과 기관 고장으로 침몰)이라는 세 가지 가설로 남았다. 하지만 배가 왜 그리 빠르게 기울어 침몰했는지는 분명해졌다. 첫째, 증개축. 전시실을 짓고 선실을 늘리느라 세월호의 무게는 원래보다 239t 늘었고 선박 복원력은 줄었다. 이윤 때문이다. 둘째, 화물 과적과 ‘고박’ 불량. 세월호의 화물 적재량은 987t인데 당시 2214t을 실었고 화물 상당수가 제대로 묶이지 않았다. 선원들의 부주의 탓도 게으름 탓도 아니다. 고박장치를 설치하면 갑판 바닥을 많이 차지해 화물 적재량이 줄기 때문이다. 배가 기울자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며 침몰을 재촉했다. 수사 과정에서 관행이라는 진술이 나왔는데, 결국 이윤 때문이다. 이윤에 눈먼 운항으로 304명이 한순간에 깊은 바닷속으로 쓸려 들어갔다.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봄, 농자천하지대본 지난 4일 대구 군위군 부계초등학교. ‘나홀로’ 신입생이 분홍색 가방을 메고 교실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사진으로 봤다. 마음이 짠하다. 나홀로 입학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올해 신입생이 아예 없는 초등학교도 전국에 157곳이나 된다. 우리나라 저출생의 현실이다. 여기에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된다. 국가소멸 위기라며 걱정들이다. 땅·농, 생명 아닌 자본 논리로 재 저출생과 고령화가 심각한 사회 현안으로 불거지기 훨씬 전의 농촌, 도시로 사람들이 빠져나갔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통계청의 ‘2022년 농림어업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농가인구는 전체 인구의 4.2%인 216만6000명이다. 전년 대비 5만명이 줄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49.8%로 전체 고령인구 비율 18.0%의 거의 3배다. 하지만 이렇게 늙고 쪼그라드는 농촌을 걱정하는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다. 나는 국가소멸보다 농촌소멸이 더 걱정스럽다.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방을 비우며, 퇴직 단상 요즘 학교에 있는 내 방을 비우고 있다. 책을 옮기고, 나누고, 치우니 이달 말에 정년퇴직이라는 걸 실감한다. 삶에 작은 매듭 하나가 더해지고, 이제 나도 노년에 들어섰음을 새삼 깨닫는다. 자연스레 뒤를 돌아보고 앞을 내다본다. 돌아보니 강의실 안팎으로 좋은 인연이 많았다. 가톨릭 동아리 학생들, 학내 자치 공간과 대안 문화를 고민했던 생활도서관 ‘단비(일단은 비빌 자리)’와 학교 청소노동자와 연대했던 ‘맑음’에서 만났던 학생들이 떠오른다. ‘민들레 장학금’과 매 학기 따뜻한 차로 학생들과 함께하던 청소노동자들도 생각난다. “(중국의 양명학자) 이탁오는 사제가 아니라 사우 정도가 좋다고 합니다. 친구가 될 수 없는 자는 스승이 될 수 없고 스승이 될 수 없는 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신영복 <담론>) 세월이 흐르며 점점 친구처럼, 동지처럼 다가오는 학생들이 있다. 고맙고 기쁜 일이다.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이재, 곧 죽습니다’ 새해, 우리는 한 해를 시작하며 나름의 결심을 한다. 삶이 우리가 하는 크고 작은 여러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면, 좋은 삶은 결국 좋은 선택에 달렸다. 누구나 좋은 선택을 원한다. 좋은 선택은 당위와 자기 이익이 양립하면 쉽지만 상충하면 어렵다.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군자는 ‘의’를, 소인은 ‘이’를 잣대로 선택한다. ‘의’와 ‘이’가 맞서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면서도 개인의 유불리에 걸려 넘어지는 수가 많다. 지난 연말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은 견리망의(見利忘義)도 ‘이’가 ‘의’를 앞서는 현실을 가리킨다. 안타깝게도 견리망의는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심해진다.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나의 게으른 텃밭 일지 내가 사는 수녀원 마당 한쪽에 텃밭이 있다. 지난봄, 나도 농사를 좀 지어볼 요량으로 밭 한 이랑을 얻었다. 폭 50㎝, 길이 4m 정도의 작은 밭에 상추와 아욱과 흰 당근 씨앗을 심고, 토마토 모종 5주도 밭 가장자리에 심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껏 다른 사람 농사를 도왔지 ‘내 밭’에 거름 주고 씨 뿌린 건 처음이다. 텃밭을 드나드니 몇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겨울을 빼곤 거의 매일 아침저녁 집 근처 공터의 텃밭에 나가셨고 현관에는 언제나 삽, 호미, 곡괭이 같은 흙 묻은 농기구가 있었다. 아버지는 상추, 파, 감자, 들깨, 배추, 무 등 여러 가지 작물을 기르셨고 가을엔 김장해서 자식들에게 나눠줄 만큼 소출도 상당했다. 벼는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풍성한 소출은 농사 경험보다 아버지가 밭에 들인 정성 덕분이었을 것이다. 텃밭에 대한 아버지의 지극정성을 떠올리니 내 생애 첫 번째 텃밭의 결실에 대한 호기심은 컸지만 기대는 이내 접었다.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팔레스타인을 더 많이 이야기하자 “존재가 저항이다(To exist is to resist).” 2014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베들레헴에 갔다. 예수 탄생 성지라 들렀지만, 지금껏 기억에 남는 건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잿빛 콘크리트 분리장벽과 거기 쓰인 절규의 그라피티다. 1948년 건국 이후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땅 대부분을 무력으로 점령한 이스라엘, 대항 수단이 자신들의 존재뿐인 팔레스타인. 지난달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계기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의 존재마저 지우겠다는 듯, 연일 폭탄을 퍼부었다. 학교, 난민촌, 심지어 병원도 가리지 않는다. 이미 가자지구에서 죽은 사람이 1만명을 넘었고, 그중에서 아이들이 절반에 이른다. 유엔 구호 직원도 100명 넘게 죽었다. 이스라엘은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미국은 공범이다.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직접, 민주주의 할까요? 아침저녁 선선한 기운이 돌며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간다. 그렇다고 내년이면 더 뜨거워질 이 여름을 잊어선 곤란하겠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7월이 역대 가장 더운 달이라고 했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가 들끓는 시대가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곳곳의 가뭄과 산불과 폭우는 갈수록 기후재난이 심해진다는 방증이다. 가뭄에 곡물이 말라죽고 병충해가 급증하니 기후위기는 곧 밥상의 위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나라 정부가 내놓는 기후 대책은 미봉책뿐, 근본적인 대책은 찾기 힘들다. 기후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잠들었다. 정부도 국회도 무관심한 우리나라가 ‘기후 악당’ 국가로 복귀하는 건 시간문제인 듯하다.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과학은 폭력이 되고 최근 한국 연구진이 ‘꿈의 물질’로도 불리는 상온 상압 초전도체(LK-99)를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관련 논문 2편을 사전출판 논문 누리집 ‘아카이브’에 올렸다. 전 세계에서 관심이 폭발했고, 다른 연구자들이 검증에 들어갔다. 논문에 제시된 방식으로 합성한 물질이 동일한 초전도성을 보이는지 확인한 검증 결과는 개발 주장에 부정적이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LK-99의 “짧고 화려했던 삶이 끝났다”고 전했다. 여기서 검증의 핵심은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같은 결과를 얻는지 확인하는 ‘보편적 재현성’이다. 그래서 제3자 검증은 과학적 검증의 기본이며 여기에 필요한 모든 자료는 공개돼야 한다. 이렇게 보면, 지난 7월 초 나온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에 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종합보고서는 과학적 검증의 ‘종결’이 아닌 ‘시작’이다. 아직은 오염수 방출이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IAEA의 결론밖에 나온 게 없기 때문이다(보고서 v쪽). 교차 검증을 받지 않은 IAEA의 ‘일방적’ 주장만 있는 셈이다.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아이들을 보며 평화를 생각한다 지난해 가을부터 서울 성북구 정릉 근처의 한 수녀원에서 지내고 있다. 이 수녀원의 뜰을 근처 여러 어린이집에 개방하고 나서 아이들이 여기에 자주 찾아온다. 아름드리나무와 예쁜 꽃이 어우러진 뜰은 꽤 넓은 데다 잔디가 깔려 있어 아이들 놀기에 안성맞춤이다. 아이들이 신나게 웃으며 뛰노는 걸 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수녀원에서 조금 걸어가면 산책할 때 자주 찾는 정릉천이 나온다. 북한산 기슭의 정릉천은 작지만 아기자기하다. 여름이 되니 개울물에 들어가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자주 본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 첨벙첨벙 물고기를 쫓는 아이들, 도시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이 풍경은 얼마나 정겨운지. 모두 일상의 평화가 주는 선물이다.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김종철은 이렇게 말했다 25일은 ‘녹색평론’을 창간한 김종철 선생의 3번째 기일이었다. 마침 요즘 방사능 오염수 투기 논란이 뜨거울 때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후에 선생이 쓴 글들을 다시 찾아보았다. “정부와 핵산업 관련자들은 언제나 방사능 피해를 축소하고 은폐한다. …방사성 물질이 대기와 바닷물에서 희석되면 아무 걱정할 것 없다는 설명은 과학적이라기보다 다분히 정치적”이다. 오염수 논쟁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과학적’이란 말이 ‘정치적’으로 들리는 건 일본과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 탓이다. 자연의 질서와 현상은 ‘객관적’이지만 그것을 탐구하는 과학은 객관적일 수 없는 사람과 기관이 수행한다. 과학적 검증에 신뢰가 중요한 까닭이다.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환경부 장관과 생물다양성 지킴이 ‘목도령’ 지난 22일 생물다양성의날을 맞아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한겨레’에 글을 기고했다. 한 장관은 “최초의 생물다양성 지킴이 ‘목도령’을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생물다양성의 중요성과 보존을 강조했다. 말이야 백번 맞는 이 말은 그러나 올해 환경부 장관으로서 자신의 행보를 조금이라도 성찰했다면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성찰 능력이 없는 ‘일차원적 인간’ ‘자발적 복종’의 인간이 아니라면 그렇게 처신하고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한 장관은 생물다양성 감소가 “먹이사슬의 붕괴” “야생동물 매개 질병의 확산” “생물자원의 상실” 같은 중대한 피해를 낳는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시장이 우리를 구할 수 있을까? 지난달 유엔 세계기상기구(WMO)가 공개한 ‘2022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를 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이 관측 역사상 가장 더웠다. 1970년 이후 빙하 두께는 30m가량 줄었고, 해수면 상승 속도는 최근 10년 동안 2배 빨라졌다. 모두 지구온난화로 일어난 결과인데,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15도 높아졌다. 기상이변도 심해져 지난해 동아프리카는 가뭄으로, 파키스탄은 대홍수로, 유럽과 중국은 폭염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2021년 기준 23억명이 식량위기를 겪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놀라운 사실이 울리는 경고에 놀라지 않는다. 위기가 일상이 되었는지 기존 삶의 방식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개발’은 여전히 힘이 세다. 지난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사회간접자본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기준을 총 사업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완화하는 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가결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도로, 철도, 항만 건설 같은 ‘선심성 개발사업’을 쉽게 만들려는 양대 정당의 짬짜미라는 비판으로 법안 처리는 미뤄졌지만, 기회만 되면 처리할 태세다. ‘기후변화영향평가 제도’는 시행 반년 만에 유명무실해졌다. 석유화학 공장 같은 온실가스 대량 배출 시설이 평가 대상에서 빠진 탓이다. 가덕도 신공항과 제주 제2공항도 유예 조치로 평가를 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