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과학은 폭력이 되고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최근 한국 연구진이 ‘꿈의 물질’로도 불리는 상온 상압 초전도체(LK-99)를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관련 논문 2편을 사전출판 논문 누리집 ‘아카이브’에 올렸다. 전 세계에서 관심이 폭발했고, 다른 연구자들이 검증에 들어갔다. 논문에 제시된 방식으로 합성한 물질이 동일한 초전도성을 보이는지 확인한 검증 결과는 개발 주장에 부정적이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LK-99의 “짧고 화려했던 삶이 끝났다”고 전했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여기서 검증의 핵심은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같은 결과를 얻는지 확인하는 ‘보편적 재현성’이다. 그래서 제3자 검증은 과학적 검증의 기본이며 여기에 필요한 모든 자료는 공개돼야 한다. 이렇게 보면, 지난 7월 초 나온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에 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종합보고서는 과학적 검증의 ‘종결’이 아닌 ‘시작’이다. 아직은 오염수 방출이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IAEA의 결론밖에 나온 게 없기 때문이다(보고서 v쪽). 교차 검증을 받지 않은 IAEA의 ‘일방적’ 주장만 있는 셈이다.

IAEA 검증팀에 여러 나라의 전문가가 참여했다지만 자문역으로 참여한 외부 전문가들이 제3자 검증을 대체할 수는 없다. 일본 정부가 정말 과학적 근거로 오염수를 방출하려면, 방출 설비와 오염수 시료 등 검증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개해 독립적인 외부 기관이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나 홀로’ 검증을 과학적이라고 주장할 때, 과학은 폭력이 된다.

IAEA, 책임과 함께 권위도 실종

윤석열 정부는 IAEA의 검증 결과를 존중하고 따르겠다고 한다. IAEA가 권위 있는 국제기관이니 그 결론을 믿겠다는 논리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논리다. 지식에 관한 한 과학은 모든 권위에 도전한다. 과학은 권위가 아닌 사실에 기초해 지식을 생산하고 정화하는 과정이자 노력이다.

기존의 업적으로 쌓은 권위는 존중해야 하지만, 권위가 검증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권위는 검증을 외면할 때 실추하고, 존중할 때 높아진다. 검증되지 않은 ‘권위 있는 기관’의 주장을 과학적이라며 믿음을 강요할 때, 과학은 폭력이 된다.

IAEA의 권위 자체도 문제다. IAEA가 핵에너지 사용을 “촉진하고 확산하는”(헌장 제2조) 진흥기관이라는 사실은 오염수 처리에 관한 이 기관의 권위에 강한 의구심을 품게 한다. 이미 2015년 이 기관은 오염수 해양투기를 긍정하는 견해를 밝혔다. IAEA가 행한 검증의 객관성은 존중이 아닌 검증의 대상이다. 종합보고서의 검증 방식과 내용도 IAEA의 권위를 떨어뜨린다. IAEA는 주로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가 제공한 문서의 분석을 통해 검증했다고 한다(7쪽). 일종의 간접 검증인 셈인데, 이걸 ‘IAEA’ 검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노심 용융을 5년이나 숨겼고, 2019년과 2021년에는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의 흡착 필터 파손을 숨긴 전과가 있다. 도쿄전력의 자료는 검증의 전제가 아닌 대상이다.

IAEA는 일본 정부가 검증 의뢰 전에 오염수 방출을 결정했다는 이유로 기본적 안전 원칙인 ‘정당화’(방출의 득이 실보다 커야 한다)에 관해 평가하지 않았다(18~19쪽). 2022년 3월과 10월, 오염수 시료를 3개의 탱크에서 채취했으나 이번 보고서에는 1차 시료 분석 결과만 있다. 2·3차 시료 분석과 안전성 판단에 핵심적인 환경 모니터링 결과는 2023년 하반기에 나온다고 한다(107~108쪽). 이걸 ‘종합’보고서라고 할 수 있을까. 보고서를 오염수 방출 시점에 맞췄다는 의혹이 나올 만하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핵심 설비인 알프스의 성능 검증이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깡통 검증’이다.

권위에는 책임이 따른다. IAEA는 “이 보고서의 사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결과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했다(표지). IAEA 사무총장은 오염수 방출은 “일본 정부의 국가적 결정”이며 종합보고서는 방출 정책의 “권고도 승인도” 아니라고 강조한다(iii쪽). 깡통 검증이라 그랬겠지만, 책임과 함께 권위도 실종됐다. 오염수 방출을 권고도 승인도 하지 않겠다는 이 보고서는 윤석열 정부가 오염수 방출에 동의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실종된 권위로 흠투성이 검증을 과학적이라 강변할 때, 과학은 폭력이 된다.

과학과 함께 윤리도 고려해야

과학적 검증은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우리는 삶의 문제를 과학적 합리성만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과학과 함께 상식과 윤리와 같은 다른 사안도 고려해야 한다. ‘더 안전한 처리 방법이 있는데 왜 바다에 버리지?’ ‘정말 안전하다면 일본 내에서 처리하면 되지.’ ‘우리나라는 80% 이상이 반대한다는데.’ ‘안전하다고 아무 데나 버려도 되나?’ 모두 괴담이 아닌 상식적인 우려와 의문이다. 상식이 받아들이기 힘든 ‘과학적 안전’을 강요할 때, 과학은 일상의 폭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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