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민주주의 할까요?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아침저녁 선선한 기운이 돌며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간다. 그렇다고 내년이면 더 뜨거워질 이 여름을 잊어선 곤란하겠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7월이 역대 가장 더운 달이라고 했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가 들끓는 시대가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곳곳의 가뭄과 산불과 폭우는 갈수록 기후재난이 심해진다는 방증이다. 가뭄에 곡물이 말라죽고 병충해가 급증하니 기후위기는 곧 밥상의 위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나라 정부가 내놓는 기후 대책은 미봉책뿐, 근본적인 대책은 찾기 힘들다. 기후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잠들었다. 정부도 국회도 무관심한 우리나라가 ‘기후 악당’ 국가로 복귀하는 건 시간문제인 듯하다.

전에는 가뭄이나 폭염이 심해지면 기후 관련 보도가 자주 나왔는데, 올해는 관련 보도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하도 ‘용산’ 쪽에서 문제가 많이 터져 기후 문제는 묻혀버린 것 같다. 우리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피해자가 반대하는데도 국내 재단에 의한 ‘제3자 변제’를 밀어붙인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를 옹호하더니 급기야 반대 세력과 싸울 수밖에 없다고 위협한다. 일본의 오염수 방출로 인한 우리 어민의 피해는 우리 돈으로 보상한단다. 무난히 진행되던 해병대원 순직 사건 수사는 대통령실의 외압 정황으로 평지풍파에 휩싸였다. 친일파 군인 백선엽을 띄우고 독립군 홍범도 장군을 묻으며 역사전쟁을 벌인다. 실체도 모호한 ‘반국가 세력’과 생경한 ‘공산전체주의’를 들고나와 이념전쟁을 벌인다. 대만 문제를 거론해 중국을,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시사해 러시아를 자극한다. 미국 장단에 맞춘 일방적인 ‘한·미·일 협력체제’로 북·중·러의 결속을 부추긴다. 신냉전의 선봉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높인다.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갈 사안들을 들쑤시는 통에 긴급한 사회적 의제가 뒷전에 묻힌다.

‘민’은 거리서 민주주의 살려내

기후위기는 민주주의의 문제다. 우리 국민의 80%가량이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인식한다. 헌법 제1조가 천명하듯 우리나라는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니 국민적 관심사인 기후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 현실은 민주주의의 위기다. 권력을 위임받은 자가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독단으로 움직이면 대의민주제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때 주권자인 국민이 가만히 있으면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민’이 ‘힘’을 행사하는 정치 체제다. 개인은 힘이 없지만, 개인이 모이면 힘이 있다. 결집한 개인들이 바로 ‘민’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에서 집회와 시위는 불가침의 권리이자 자유다. 집회로 발생하는 피해와 불편은 최소화하되 감내할 것이지 집회의 금지나 제한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집회에 위법이 발생하면 그때 처리할 일이지 결과를 예단해서 집회를 제한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견해다. 이를 뻔히 알면서도 권력의 눈치를 보며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게 우리나라 경찰이다.

우리나라의 ‘민’은 대의민주제가 고장 나면 거리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살려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 박근혜 국정 농단에 대한 주권자의 저항과 극복은 모두 거리에서 시작했다. 집회는 ‘민’이 힘을 행사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실천과 체험의 현장이다. 그래서 ‘민’의 권력을 위임받고도 민의를 무시하는 권력자는 집회와 시위를 싫어하고 폄훼한다. 그래서 윤 대통령은 “경찰과 관계 공무원들은 불법 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을 하라고 독려한다. 여당은 “물대응으로는 난장 집회를 못 막는다”며 강경 대응을 주문한다. 경찰청장은 “불법 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는 집회를 불허”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이들은 ‘민’이 두렵다. 그래서 경찰청은 수사·치안 관련 예산을 줄여 ‘차벽 트럭’을 신형으로 교체한다.

‘기후행진’서 민의 힘 보여줘야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역사적인 ‘워싱턴 행진’에서 인종차별 없는 세상의 건설을 호소했다. 안타깝게도 킹 목사의 꿈인 평등 세상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제 매년 9월이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은 정의로운 기후 대책을 요구하며 행진한다. 하지만 기후정의의 꿈도 아직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먼 길을 줄이려면 많은 사람이 모여 ‘민’의 힘을 드러내야 한다. 지난 2일의 ‘전국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와 4일의 ‘공교육 멈춤의 날’ 집회에서 혼자서는 미약한 ‘검은 점’들이 수없이 모이자 ‘검은 너울’이 되었다. ‘민’은 힘이 있다.

오는 23일 오후 2시에 ‘기후정의행진’이 있다. 많이 모일수록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은 커진다. 이날, 함께 모여 걸으며 ‘민’의 힘을 보여줄까요? “직접, 민주주의 할까요?”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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