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굿판’ 뒤에는 누가 있는가

김택근 시인·작가

눈을 들어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사는 세상이 이런 곳인 줄 몰랐다. 온통 광기가 번득이고 살기(殺氣)가 자욱하다. 거대한 불길이 지구를 삼키고 있는데도 인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데도 곳곳에서 마스크를 벗자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갈고닦아서 새천년으로 끌고 온 이성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시대의 현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은 공중에 산산이 흩어지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독설은 땅 위에서 펄떡거린다.

김택근 시인·작가

김택근 시인·작가

나라 안에서도 어이없는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고 있다. 전광훈이라는 예수 장사꾼이 광화문광장에서 벌인 저주의 굿판은 우리가 얼마나 왜소한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코로나19는 당국이 자랑했던 K방역망을 뚫고 창궐하고 있다. 그럼에도 교단의 목사들은 말이 없다. 세속에 젖어서 안락하게 살고 있는, 잘나가는 목사들은 전광훈을 나무랄 수 없다. 자신을 왕처럼 섬기는 ‘돈 잘 내고, 말 잘 듣는’ 신도들이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죄 많은 가진 자에게는 천국을, 죄 작은 서민에게는 지옥을 배달하면 교회는 부흥하고 찬양은 우렁차다. 우람한 성전과 수많은 신도를 바라보면 이런 왕국을 건설한 스스로가 대견하다. 그러하니 거룩한 예배를 집전하다 간혹 눈물짓는다.

예수님은 으뜸이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 하셨다. 하지만 ‘성공한 목사’는 지금 누리는 복락이 자신의 기도를 하느님이 가납(嘉納)하신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신 또한 특별한 존재이다. 신도들에게도 끊임없이 기복신앙을 주입시킨다. 기복신앙은 하느님에게 특혜를 달라는 것이다. 나만, 우리만 행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우리끼리 잘살아보자”는 목사의 주문에 신도들은 무조건 아멘을 외친다. 목사직은 권력이다. 지금은 ‘목회자 독재’ 시대이다.

“신앙은 의심의 어둠을 거쳐 새벽처럼 동이 튼다. 의심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우지 않은 사람은 믿음의 새벽을 맞이할 자격이 없다.”(김근수 <슬픈 예수>) 질문하지 않는 자에게 어찌 간절함이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한국교회에서 근원을 향한 의심과 질문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신도들은 목사가 시키면 광장을 점령하고 말씀이 아닌 구호를 외친다. 교회 밖으로 나와 세상을 향해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 그 앞에서 진리를 따져 묻는 신도들, 십자가를 지고 시대를 건너는 목회자가 보고 싶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광주 5·18묘역을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영령들에게, 또 광주시민에게 늦게 와서 죄송하다며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런데 집권여당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이를 조롱하고 비난했다. 허윤정 대변인은 “화제 전환용”이라 했고 정청래 의원은 빌리 브란트를 흉내 낸 것이라며 “전두환의 부역자”라 독설을 퍼부었다. 화제 전환용이면 어떻고 흉내를 내면 어떤가. 또 전두환 부역자이면 어떤가. 그동안 광주민주화항쟁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가로막고 있던 무리의 수장이 무릎 꿇고 사죄했음은 사건이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폄하하며 여기저기서 정략적 발언들만 쏟아내고 있다. 이를 걸러서 정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뇌부도 그저 조용하다. 호남은 민주당의 땅이 아니다. 호남의 지지를 받고 또 호남을 사랑하는 정당이라면 김 위원장의 사과를 진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통합당이 이후에 5·18항쟁에 관해 다른 말이 나올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정략적 술수로 바라보면 그 또한 같은 술수에 불과하다. 이런 논평이 나오기를 바랐다. “김종인 위원장의 진심 어린 사과는 광주민주화항쟁의 진상을 규명하는 첫걸음이다. 통합당의 각성과 김 위원장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위대한 민주항쟁이 제자리를 찾는 여정에 동참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제 그간 미뤄왔던 관련 법안도 야당과 협의해서 조속하게 처리하겠다.”

둘러보니 믿을 구석이 없다. 저주의 굿판 뒤에는 부패한 종교, 방향을 잃은 정치, 무능한 공권력이 있다. 인자(仁者)는 자취를 감추고, 회초리를 든 어른도 보이지 않는다. 성찰에서 우러나온 겸손이 보이지 않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맹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독설들만 난무하고 있다. 설익은 것들이, 날것들이 우리를 천박하고 저급한 사회로 밀어 넣고 있다. 세상은 이대로 무너질 것인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자들이 실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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