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화
한신대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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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반여성주의자가 반남성주의자다 이상한 일이었다. 민주화 시기를 겪은 세대의 사회의식 외엔 난 그다지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직장인으로서의 삶만으로 충분히 고달팠고, 친분 있는 이들 다수도 그러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과 촛불 정국으로 사회가 분열될 때, 서로의 생각은 비슷했다. 함께 분노했고, 울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소녀 시절 친구들도, 존경하고 친했던 직장 선배·동료들도 오랜만에 만나 같은 생각을 나눴다. 평생 서로의 정치관에 대해 물었던 적도, 알았던 적도 없는 이들이었다. 이상한 일은 SNS에서도 계속된다. 10년 가까이 온라인에서 교류하며 인간적 매력에 끌려 꾸준히 소통해 온 이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이 미투가 터졌을 때, 평소 지지정당을 떠나 분별력 있는 판단과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소 보수적일 수 있는 나이, 아들 가진 엄마나 남성의 이기심을 보여줄 법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또 무슨 일일까. 재기와 지성이 넘치거나 따스하고 지혜로운 모습에 반해 끌렸지, 정치의식으로 친해진 이들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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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패싱, 내가 나일 수 없는 세계 아름답고도 처연한 영화 한 편을 봤다. 레베카 홀 감독의 <패싱(Passing)>이다. ‘할렘 르네상스’라 불리던 1920년대 흑인 문화의 부흥기. 그러나 차별만은 여전히 엄혹하던 시절의 뉴욕. 백인 행세를 할 수 있을 만한 외모를 가진 두 흑인 여성의 다른 삶이 충돌하며 일어나는 비극적 사건을 다룬다. 관계의 빛과 그림자, 선망과 질투, 허위의식 같은 내밀하고 심층적인 서사에 인종과 계급, 젠더성 같은 무게 있는 주제가 고혹적으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늘 정치·사회적 시선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다소 투박한 흑인 여성 클리셰에서 벗어나 섬세한 지성과 관능미를 가진 여성들이 등장하는 파격 또한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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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대한민국은 IS도 변하게 한다 지역 사회 이슬람 유학생들의 사원 건설을 둘러싼 갈등 소식을 듣는다. 외로운 이국 땅에서 마음 기댈 작은 공간 마련조차 저항에 부딪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반대하는 시민들을 무조건 이문화 혐오집단으로 질타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낯선 문화에 대한 경계는 자기보호를 위한 본능에 가깝다. 9·11을 기점으로 벌어진 무차별 테러들도 공포스러운데, 최근 아프가니스탄 사태마저 경악할 뉴스투성이였다. 또한 발전한 한국의 사회적 에티켓에 못 미치는 행위 같은 현실적 고충들도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갈등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글로벌 국가가 되고 있다.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 역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국 학생이 더 적어 외국인들에게 차별받는 곳조차 생겼다는 기사도 접한다. 세계 어느 곳이든 발전하는 국가나 지역이라면 ‘다민족 다문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한국 역시 그 빛과 그늘 모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단일민족의 신화가 깨지는 것이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라면 방법은 하나다. 교류하고 학습하며 공생의 방법을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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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자넨 아직도 사람을 믿나 별다른 연고가 없는 한 무리의 인간. 출구 없이 펼쳐지는 죽음의 서바이벌. 이런 상황에서 필연코 일어나는 이전투구를 숨겨진 인간 본성의 통찰인 양 냉소하는 논리는 단조롭다. 동물계 포유강 영장목의 한 종일 뿐인 생물체가 위험 상황에서 자기 보호 행위에 몰두하는 것은, 인간만의 비열한 특징이라기보다 자연법칙에 가깝다. 극단의 상황 논리로 인간의 잔혹성과 상호불신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대척점엔 거울 논리라 할 만한 사례 역시 존재한다. 늘 상류사회를 동경하던 지인이 있었는데, 간절함에 우주가 도왔는지 부자와 결혼하여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싸다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욕구에 못 미치는 환경 때문이었을까. 늘 사회에 부정적이던 그이가, 결혼 후 갑자기 대한민국은 너무 좋은 나라라고 해서 놀랐었다. 부자들과 사귀어 보니 봉사 모임도 많고 예의 바른 이들도 많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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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우리 집에 벤자민 버튼이 산다 “엄마~ 도대체 왜 침대 위에 물건들을 올려놓는 거예요. 좀 깔끔하게 쓰시면 안 돼요? ”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던 엄마와 올해 합가를 했다. 독거노인의 삶이 걱정스러워 결정했는데, 한두 달은 많이 힘들었다. 이해 안 되는 생활방식들로 자주 부딪쳐서다. 방과 침대에 늘 온갖 물건이 늘어져 있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어느 날 “이제는 물건 찾는 것도 쉽지 않아. 어디에 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금세 잊어버리니 가까운 곳에 놓아두는 거야”라며 넋두리처럼 말씀하셨다. 기억력이 점차 쇠퇴하는 것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지 생각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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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그들의 분노는 어디에서 왔을까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작가가 있다. 내용은 흐릿해졌지만 밤새워 가슴 설레며 읽어 내려가던 20대의 추억만은 선명하다. 문단의 황제와 같았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독자를 실망시키며 관심에서 멀어져 갔는데, 점차 시대착오적인 보수성이 노출되어서였다. 그의 문학에서 가족사 속 몰락한 양반 계급에 대한 짙은 향수를 느낀 이가 나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의 삶을 이념적 잣대 하나로 손쉽게 재단하거나, 진보와 보수를 선악 개념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세계도 모든 이들의 삶의 속도가 같을 수 없고, 각자의 인생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진보도 액셀과 브레이크가 공존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변화에 역행하며 시대와 불화하는 극단적 보수화의 문제는 늘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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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누구도 공정하지 못한 세계에서 남동생은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입학 며칠 후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한다. “엄마, 선생님이 반장하래. 나 반장 안 하면 안 돼?” 이 얘기는 종종 소심했던 과거에 대한 농담거리였는데, 발달 공부를 하며 알게 되었다. 성장기 아이들에 있어서 연·월령 차이는 신체, 심리, 학습 등 많은 면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심리학자 로저 반슬리의 발견은 그 사례로 유명하다. 캐나다 남부의 메이저 주니어리그 하키팀의 이력을 보고 있던 그는 에이스 선수들 상당수가 1~3월생이라는 특이점을 포착한다. 온타리오 지역 하키팀 명부를 모두 정리해 다시 확인했는데도 결과는 같았다. 1월생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다음이 2월생 다시 3월생 순이었다. 11월생에 비해 1월생은 5배 이상이었다. 캐나다 하키팀은 1월1일을 기준으로 선발팀을 구성했고, 9~10세 사이의 소년들에게 월령 차이는 결코 무시 못할 실력 차이를 안겨주어서다. 캐나다 하키팀만의 특수 사례도 아니었다. 7월31일이 선발기준인 미국 메이저리그는 8월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9월1일인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9~11월생이 6~8월생에 비하여 2배 가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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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타인의 고통에 기생하는 사람들 5월의 광주는 문전성시였다. 여야 지도부들이 앞다퉈 국립5·18묘지를 참배했고, 진상규명 및 학살자 처벌과 관련된 공약을 언급했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렸다 하고 어떤 이는 무릎도 꿇었다 한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 벌써 일백번이라도 사과하고 반성했어야 마땅한데 이제야 첫걸음을 뗐다”며 사죄했다 한다. 각자의 진심을 함부로 가늠하거나 폄훼할 수는 없다. 바쁜 일상에 기념일에라도 내려가 심기일전하려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알고 있다. 중대한 선거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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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고마워요! 미스 마플, 여정, 오스카 계획보다 추억담이 많아진다. 나이 탓일 게다. 남다른 포부나 원대한 꿈을 가져본 적 없는 평범한 인생이 하루하루 저물어가지만, 그럼에도 종종 장래희망이라며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 있다. 65세쯤 되어 세상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꿈이다. 의외의 꿈에 사람들은 묻는다. 왜 65세냐고. 딱히 이유는 없다. 그저 살아온 경험 속에서 그 나이쯤 되어야 인생을 알 것 같아서다. 물론 그간에도 지식과 기술, 사회적 역할이 있었지만 쉼없이 공부해도 여전히 삶은 어렵고 생각과 행동엔 늘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65세 무렵쯤엔 스스로를 조금은 인정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나름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진도 범위를 체크하는 수험생 같은 마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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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화이트 타이거, 선의와 위선의 우화 숨겨진 수작인 인도 영화 <화이트 타이거>는 요즘 말로 뼈를 때리는 잔혹극이다. 피와 살점이 난무해서가 아니다. 잔혹한 기득권자, 좌파를 가장한 부패한 권력자, 비천한 자, 비겁한 지식인 모두의 추악함이 한 치의 관용 없이 날것으로 드러나서다. 은유와 풍자가 버무려진 <기생충>은 차라리 낭만적이었다고 할 만큼, 닮은 듯 다른 결을 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발람은 인도의 최하층민이다. 좀 더 나은 인생을 꿈꾸지만 공고한 신분사회 속에서의 삶은 가혹하기만 하다. 무능하고 속물적인 가족들은 도움은커녕 발목만 잡는다. 타고난 영리함으로 기회를 잡아 부호 집안에 기사로 들어가는데, 그들이 발람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 정서로는 참고 보기 힘들 만큼 모욕적이고 폭력적이다. 계급사회에 길들여져 당연히 감수하는 발람 주위에 독특한 인물이 등장한다. 어려서부터 미국 사회에서 생활해온 둘째 아들 아쇽과 아내다. 두 사람은 발람을 대하는 집안 사람들의 비인간적인 태도에 분노하며 그를 친구처럼 대하려고 애쓴다. 굴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인생을 개척하라는 진심 어린 조언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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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나라가 너무 시끄럽다. 역동적인 국가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몇 년은 유난히 밝혀지는 중대사건도 많다. 주요 공직자, 권력자들의 미투 사건이 그러했고 날마다 올라오는 연예·스포츠계의 폭력 사건도 그렇다. 신의 영역으로 군림하던 재벌가나 가진 자들의 갑질, 위선적 비리 행위도 더욱 자주 도마에 오른다.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경악할 뉴스는 왜 이다지도 많은지, 묻어둔 지뢰 터지듯 연이은 사건·사고 속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LH 부동산 투기 의혹은 어떤가. 사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비밀 아니었던가. 그들의 수사를 두고 내부감사를 하네, 검찰에 맡겨야 하네 갑론을박하지만 그 역시 국민들의 실소만 자아낸다. 개탄하는 여야 정치인, 검찰부터 국토부, 지자체 의원들까지 몇 명이나 이 문제에서 투명할까. 어느 조직에 맡긴들 제대로 수사가 될지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이 국민들의 심정이다. “아! 정말 문제투성이 나라야”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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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그대 다시는 서울로 가지 못하리 신상의 변화로 새로운 집을 찾는 중인데, 소문으로 접하던 부동산시장의 살풍경을 온전히 체감하고 있다. 아파트값 10억원은 더 이상 강남이나 강북 노른자위 지역의 일이 아닌 지 오래다. 변두리의 소형 아파트도 7억~8억원이고, 교통과 생활 여건이 무난하면 10억~15억원이 되어 있다. 서울 부동산 급등의 도미노 여파로 직장 가까운 경기도의 아파트 단지도 신축은 10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부동산 앱을 검색해가며 발품을 팔고 있지만, 온라인 정보보다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 세상 탓인지, 내 탓인지 자괴감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