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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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가족’의 현재와 미래 5월은 가정의달이다. 5일은 어린이날이었고, 8일은 어버이날이었다. 21일은 부부의날이다. 이 5월에는 누구나 한번쯤 가족을 돌아본다. 나의 경우 가족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이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내가 기억하는 우리 세대 가족의 초상은 이처럼 시리다. 마음 아픈 풍경이 먼저 소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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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4·7 재·보선과 2022년 대선 4·7 재·보궐 선거가 긴 여운을 남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지난해 총선과는 반대의 결과였다. 여당 참패, 야당 압승이었다. 민심이 1년 만에 역전했다. 우리 정치는 이만큼 역동적이다. 둘째, 내년 3월9일 대선의 전초전이었다. 정치 지형이 보수 대 진보의 경쟁 국면으로 변화했다. 이 국면은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파국적 균형’의 성격을 드러낸다. 만일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면, 또 한번 격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2주 가까이 선거 분석들이 쏟아졌다. 나 역시 선거가 치러진 주말 KBS 심야토론에 패널로 참여해 의견을 내놓았다.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에 대한 분노가 직접적 원인이었다면, ‘내로남불’이라 불리는 정부와 여당의 ‘선택적 공정’에 대한 심판이 배경적 원인을 이뤘다. 집이라는 현실적 삶의 주요 조건과 신뢰라는 정치적 행위의 기본 조건이 이중적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선거 전략이나 캠페인만으로 중도층의 이반을 만회하기란 처음부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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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2) 시대정신은 단수일까, 아니면 복수일까. 1945년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시대정신은 ‘나라 만들기’를 위한 경제성장의 산업화 시대정신에서 정치·사회발전의 민주화 시대정신으로 이어졌다. 민주화 시대까지 시대정신은 단수였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민주화 시대일까. 어떤 이는 민주화 시대라고 보고, 다른 이는 민주화 이후의 시대라고 파악한다. 한편에선 경제민주화 등 민주화 과제가 미완이기에 민주화 시대가 지속된다고 엄호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민주화가 갖는 유토피아적 에너지가 소진됐기에 민주화 이후 시대가 열렸다고 강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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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 (1) 정확하게 1년 후, 2022년 3월9일에는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대선 국면이 열리는 시간이다. 우리나라에서 대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당장 시대란 이름을 붙이는 것은 대통령 이름이다. 21세기에 들어와 노무현 시대, 이명박 시대, 박근혜 시대가 있었고, 현재는 문재인 시대가 진행되고 있다. 이 시대와 대선은 곧바로 시대정신을 생각하게 한다. 시대정신이 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비전이라면, 대선은 이 시대정신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을 이뤘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내건 시대정신은 낡은 정치 청산이었고, 2007년 이명박 후보가 내건 시대정신은 선진일류국가였다. 2012년 박근혜 후보가 내건 시대정신은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였고, 2017년 문재인 후보가 내건 시대정신은 적폐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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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시인 김수영 탄생 100년을 기억하며 사회학을 공부해온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인은 김수영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민주화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이들은 김수영으로부터 결코 작지 않은 감성적·정신적 세례를 받았다. 바로 올해는 김수영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김수영은 1921년 11월27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김수영의 문학적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나의 전공을 넘어서는 일이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자유의 지식인’으로서의 김수영이다. 김수영은 자유주의자다. 스스로 밝혔듯 김수영은 우파나 좌파가 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의 분방한 상상력과 예민한 자의식은 부국강병을 중시하는 우파나 사회혁명을 강조하는 좌파와는 태생적으로 어울리기 어려웠다. 자신의 사회적 활동을 펼쳤던 1945년 광복에서 1960년대 후반까지 김수영은 우리 지성사에서 이채로운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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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통합의 두 가지 조건 먼저 이 칼럼은 어떤 편향을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통합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고, 그 의미를 반추해 보고 싶은 게 이 글을 쓴 이유다. 그 생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통합은 갈등과 짝하는 개념이다. 오늘날 갈등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노사갈등을 포함한 계급갈등, 이념·세대·지역갈등 그리고 인종갈등 등으로 나뉜다. 이러한 갈등들을 완화하거나 해소하는 게 바로 통합이다. 대체적으로 갈등이 심각한 나라일수록 갈등에 상응하는 통합에 대한 요구가 높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현대사회가 기본적으로 갈등사회라는 점이다. 현대사회에서 개인 및 집단의 가치와 이익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갈등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문제의 핵심은 이런 다원적 가치와 이익을 둘러싼 갈등을 적절히 조정하는 데 있으며, 통합 역시 이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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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2021년의 시대정신 1929년 대공황에 맞서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정부가 제시한 뉴딜의 비전은 ‘3R’이다. ‘구제(Relief), 회복(Recovery), 개혁(Reform)’이 그것이다. 이 3R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선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 가운데 맨 앞에 놓인 구제는 의학적 구제와 경제적 구제로 나뉜다. 의학적 구제는 백신 보급이 관건이다. 올겨울까지 대다수 나라들이 백신 보급을 완료함으로써 2년 동안 갇혀 있던 팬데믹의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날 것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1월4일 현재 9000만명에 가까운 확진자는 올해 1억명을 훌쩍 넘길 것이고, 200만명에 육박하는 사망자 역시 300만명에 가까이 도달할 것이다. 어느 나라든 백신 보급이 신속히, 원활히 이뤄져야 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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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코로나19 팬데믹의 사회학 2020년 올해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60년에 태어난 내게 지구적 차원에서 이 팬데믹만큼 강렬한 사건은 없었다. 2008년 금융위기도 이에 필적하진 못했다. 상점 문이 닫히고, 학교 문이 닫히고, 공공시설 문이 닫히고, 급기야는 누군가 만나고 싶다는 마음의 문까지 닫히는 것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팬데믹은 우리 인류 삶의 제도적 터전인 국가를 완전히 뒤흔들었다. 어느 나라든 경제적 방역을 위한 ‘21세기판 뉴딜’을 소환했고, 이 뉴딜을 위한 ‘강한 정부’를 요청했다. 나아가 강한 정부는 고색창연한 민족주의를 호명했고, 이 민족주의는 글로벌 거버넌스를 무력화시켰다. 의학적 방역과 경제적 방역은 물론 통합을 위한 사회적 방역과 안전을 위한 심리적 방역까지, 이 모든 대처들에 가장 효율적인, 그리고 최후의 보루는 당연히 ‘강한 정부, 유능한 국가’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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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포퓰리즘과 팍스 아메리카나의 미래 미국 대선을 눈여겨봤다.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포퓰리즘의 미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표적인 포퓰리스트 정치가이기에 대선의 결과가 포퓰리즘의 미래를 엿보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미래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는 국가적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것이기에 대선의 결과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미래를 전망하게 할 것이라고 역시 생각했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하여. 선거 직전 나는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그럭저럭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결과는 아주 팽팽했다. 바이든 후보와 트럼프 후보 모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7000만표 이상 획득했다. 선거 직후 출구조사를 살펴보면, 이념적·인종적·지역적·종교적 균열이 너무도 분명했다. 미국은, 영국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주조한 개념인 ‘한 국민(one nation)’이 아니라 ‘두 국민(two nations)’으로 이뤄진 나라처럼 보였다. 대선 결과가 함의하는 바는 트럼피즘, 즉 트럼프식 포퓰리즘이 쇠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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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역사학자 김용섭을 추모하며 14년 전의 일이다. 2006년 제49회 전국역사학대회에서는 ‘우리 시대의 역사가를 말한다’라는 주제의 콘퍼런스가 열린 적이 있었다. 동양사학의 민두기, 서양사학의 민석홍과 함께 국사학의 이기백과 김용섭 학문에 대한 후학들의 평가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서양사학자 김기봉은 ‘“모든 시대는 진리에 직결돼 있다” : 한국 역사학의 랑케, 이기백’을 통해 이기백의 국사학을 분석하고, 국사학자 윤해동은 ‘‘숨은 신’을 비판할 수 있는가? : 김용섭의 ‘내재적 발전론’’을 통해 김용섭의 국사학을 조명했다. 한국 역사학의 ‘랑케’와 ‘숨은 신’이라는 비유가, 김기봉과 윤해동의 평가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내겐 적절하고 타당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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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성평등과 분단시대 사회학자’ 이효재를 기억하며 이효재 선생님이 10월4일 세상을 떠났다. 선생님으로부터 적잖이 배움을 받은 사회학의 후학으로서 선생님의 삶과 학문을 기억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선생님의 이론과 사상에 대해 두 번 글을 썼다. 하나는 경향신문에 2013~2014년 연재한 ‘우리 시대 사상의 풍경’에서 선생님의 페미니즘을 살펴본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국일보에 2018~2019년 연재한 ‘100년에서 100년으로’에서 선생님의 여성운동론을 돌아본 것이었다. 선생님은 평생 여성문제를 열정적으로 연구해온 동시에 여성운동에 적극 개입했다. 선생님의 업적에 대해선 사회학자 김진균이 적절히 논평한 바 있다. 김진균에 따르면, 선생님은 우리 학계에 처음으로 여성이라는 변수를 도입했고, 여성학에서도 역사적 이해를 중시해 토종이론을 만들었으며, 분단 시대의 사회학을 개척했다. 선생님의 학문 세계를 돌아볼 때 공감할 수 있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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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코로나19, 네 가지 방역을 생각한다 지난 1월 말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보고된 지 8개월이 지났다. 코로나19가 안긴 충격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에 버금갈 만하다. 경제를, 사회를, 문화를 바꿨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까닭의 하나도 정부 방역 정책에 대한 평가에 있었으니 정치까지 바꿨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예견하듯, 내년에는 백신이 상용화돼 대다수 나라들이 코로나19와 결별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시점을 누구도 특정할 수 없으니, ‘코로나 시대’ ‘위드 코로나 시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등 그 무엇으로 불리든, 코로나19 팬데믹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오늘 살펴보려는 것은 우리나라 코로나19 방역의 중간 평가다. 그 갈래는 의학적,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 방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