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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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성인에게 걸려들다 예년 같으면 술 약속이 이어질 연말인데 모든 송년모임이 취소되었다. 수도권은 5인 이상 사적 모임 집합금지가 행정명령으로 시행되고 있다. 연말연시 방역을 최대한 강화하려는 특단의 조치로 이해한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을, 반가운 이들과의 자리에 빠지기 어려운 술 이야기로 달래본다. <한서>에 의하면 술은 ‘하늘이 내린 멋진 선물(天之美祿)’이고 ‘온갖 약 가운데 으뜸(百藥之長)’이다. <시경>의 여러 시에서도 노인을 봉양할 때나 친구와 어울릴 때나 꼭 필요한 것이 술이라고 노래했다. ‘근심을 잊게 만드는 물건(忘憂物)’은 도연명이 술에 붙인 별명이다. 위나라 조조가 금주령을 내리자 술꾼들이 청주는 성인(聖人), 탁주는 현인(賢人)이라는 은어로 부르며 몰래 마시곤 했다. 당시 서막이 술을 마시다 적발되자 “성인에게 걸려들었다”며 익살을 부렸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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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참으로 억울한 시대 획수 많기로 유명한 한자 가운데 하나가 ‘鬱(울)’이다. 보기에도 빽빽한 이 글자의 뜻은 ‘잔뜩 쌓여서 꽉 막혀 있음’ ‘무성한 모양’ ‘답답함’ 등이다. 원래 갑골문은 이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숲속에 서 있는 한 사람이 엎드린 다른 사람을 짓밟는 모양이었다. 뒤에 두 사람의 모양이 부(缶)와 멱()으로 변형되었고 발음기호 역할을 하던 아래 부분이 더해졌다. 갑골문을 근거로 하면 이 글자의 앞서는 뜻은 울창함이 아니라 억울함이다. 마음의 답답함에 외부의 불공정이 더해지면 억울함이 되고 이게 쌓이면 울화가 된다. 화병이 한국어 발음대로 ‘Hwa-byung’이라는 질병으로 등재되었을 만큼 억울함은 한국 문화의 일부를 이루어 왔다. 최근 출간된 <화병의 인문학>은 전통시대에 여성과 약자만이 아니라 권력을 쥔 왕과 양반에게서도 화병이 많이 나타났다는 사실, 오늘날 다양한 사회문화 갈등에 의해 새로운 양상의 분노로 극대화하는 현상 등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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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대단함과 대견함 가장 사랑하고 기대했던 제자 안연(顔淵)이 먼저 죽자 공자(孔子)는 매우 큰 슬픔에 빠졌다. 애통함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아아!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라는 탄식만 되풀이하였다. 그런 공자에게 안연의 아버지 안로(顔路)가 찾아와서 공자가 타고 다니는 수레를 팔아 자식의 장례에 쓸 외관(外棺)을 장만해 달라고 부탁했다.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잘났든 못났든 각자 제 자식을 말하는 법이지요. 그러니 부모 된 마음으로 외관을 장만해주고 싶은 마음이 저라고 왜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아들이 죽었을 때 수레를 팔아서 외관을 사지는 않았습니다. 보잘것없지만 저도 대부(大夫)인데 수레 없이 걸어 다닐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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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변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 “오늘 아침 선봉을 걷고 바라보니, 여전한 청산에 저 푸르른 나무, 나무들.” 배에서 밤을 보낸 아침이다. 비바람을 막기 위해 덮어 놓은 선봉(船蓬)을 말아 올리니 강가의 산과 나무가 보이더라는 내용이다. 읽기만 하면 가슴이 뛰고 손발이 춤을 추게 된다고 할 정도로 수많은 이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아온 구절이다. 얼핏 범상해 보이는 시어 어디에서 그런 감동을 느낀 것일까? 위 구절은 남송의 학자 주희(朱熹)가 지은 짤막한 절구 작품의 후반부이다. 전반부를 포함한 내용 전개는 이러하다. 자그마한 배를 타고 강을 따라 흐르는데 후드득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선봉 아래로 비를 피해 들어갔지만 밤새도록 몰아치는 격한 풍랑에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설핏 스며드는 아침 햇살에 손을 뻗쳐 바깥을 내다보니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거세던 풍랑은 온데간데없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한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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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우스갯소리 잘하던 사람 공자는 육경이 모두 바른 정치를 위한 것이지만 각기 역할이 다르다고 하였다. 예경으로 절제를, 악경으로 화합을 배우며, 서경으로 사실을 말하고 시경으로 마음을 전하며, 역경으로 변화를 깨닫고 춘추로 옳음을 분별하게 한다. 공자와 육경을 들어서 거창하게 첫 마디를 던지고 나서 사마천은, “하늘의 도는 넓고도 크도다! 건네는 말이 은미한 가운데 이치에 맞는다면 이를 통해서 분란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로 이어간다. 우스갯소리 잘하는 이들의 일화를 소개한 <골계열전(滑稽列傳)>의 서두이다. 순우곤이 포악한 왕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왕이 좋아하는 수수께끼를 활용하거나 느닷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어 젖힘으로써 궁금증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직언은 상대의 마음을 닫히게 만들 뿐 아니라 때로 분란을 증폭하여 위험한 상황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골계열전>의 인물들은 과장된 표현과 엉뚱한 비약을 통해 어이없는 웃음을 끌어냄으로써 상대가 스스로 깨닫게 만듦으로써 분란을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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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우리 시대의 공과 사 훈(訓)을 제시하기 어려운 한자 가운데 하나가 공(公)이다. ‘공변될 공’이라고 새기곤 하지만 ‘공변되다’라는 우리말 어휘 역시 낯설어졌기 때문이다. 공(公)의 자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사사로움(?)을 나누는(八) 것을 가리킨다고 보는 설이 다수이다. 사(私)는 내 것을 구분하는 모양인 ‘?’로 쓰이다가 뒤에 재산을 상징하는 곡식인 ‘禾’를 더했다. <시경> <서경> 등의 경전에서부터 공과 사는 상반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오늘날처럼 공정성이 많이 거론된 때가 있었을까? 그만큼 공정성의 훼손이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연일 언론과 누리소통망을 채우는 소식을 보면 도무지 이 땅에 공정성의 원칙이 있기는 한 걸까 의심될 정도다. 공적 영역에 사적 관계들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와 있는 것도 문제이고, 사적 영역에 공적 권력들이 함부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문제다. 이런 구조에서 온라인 매체들에 공인의 사적 영역들이 무차별적으로 공개됨으로써 공정성의 문제는 더욱 민감하고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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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과정 없는 결과 맹자와 동시대 인물인 허행은 왕도 직접 농사지어서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하지 않는 왕의 창고에 곡식이 쌓여 있는 것은 백성을 해쳐서 자기 배를 불리는 일이라는 날선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대한 맹자의 반박에서 이른바 사회적 분업의 논리가 등장한다. 농사 이외에 의복과 기구를 만드는 이가 따로 있듯이 통치자와 피통치자,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구분도 필요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사짓는 사람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누군가는 여건을 조성하고 인간다움을 가르쳐야 하는데, 이 일을 농사와 병행할 수는 없다는 강변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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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가는데 하늘을 자꾸 올려다보게 되는 계절이다. 새파란 하늘, 깨끗한 구름, 눈부신 햇살, 서늘한 바람…. 여전히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이런 청명함을 누릴 수 있는 날이 1년에 얼마나 될까 싶은 마음이 들도록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기나긴 장마와 푹푹 찌는 더위에 힘겨워하던 시간이 언제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는지 모를 정도다. “여름은 벌써 가버렸나, 거리엔 어느새 서늘한 바람.” 나직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뭇잎 사이 정다운 불빛 아래 마냥 걷고 싶은 날들이다. 어떤 이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애국가 구절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공활(空豁)은 텅 비고 확 트여서 매우 넓다는 뜻이다. 옛사람들은 맑은 하늘에서 그야말로 거칠 것 하나 없이 형통한 모양을 보았다. 주역의 대축(大畜) 괘는 크나큰 하늘이 산중에 있는 모양이라 내면에 학문과 인격을 온축한 사람을 상징한다. 그 맨 위에 놓이는 양효를 천구(天衢)로 풀었는데, 이는 공활한 하늘의 모습을 사통팔달의 큰길에 비유한 말이다. 훗날 활짝 열린 벼슬길을 상징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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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말 대의명분의 시대다. 21세기는 경제와 과학이 주도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우리의 눈과 귀를 채우는 것은 대의명분을 부르짖는 말들이다. 신문과 방송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동영상 사이트로 매체의 형태는 옮겨가고 있지만 문서든 음성이든 영상이든 간에 그것의 상당 부분은 누군가의 말이다. 사적이고 말랑말랑한 재미를 추구하는 흐름과 함께 탄생한 새로운 매체들이 옳고 그름을 주장하는 공적이고 강경한 말들의 확산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토론을 통해 정의를 찾아가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문제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도 넘은 표현, 특정인을 매도하기 위한 의도가 담긴 말이 범람한다는 점이다. 일상에선 쉽사리 입에 옮기기 어려운 험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는 심리의 이면엔, 자신과 거리가 있는 문제이니 말해도 굳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게다가 그것이 대의명분에 부합하는 옳은 말이라고 확신하면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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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아름다운 신념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여러 기념행사들이 대폭 축소되었다. 한국전쟁 70주년, 4·19혁명 60주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 등이 그렇게 지나갔다. 생존의 문제 앞에서 지난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코로나19로 인해 주어진 성찰의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10년 단위로 무언가를 기리는 관습을 따르자면 안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도 올해 우리가 기억할 만한 역사다. 안중근 의사를 기억할 때마다 놀라우면서 의아한 것은 뤼순 감옥 간수 지바 도시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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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매미 소리 가득한 날에 조선시대 문집에는 편지가 의외로 많이 실려 있다. 이황의 문집은 59권인데 그 가운데 37권이 편지이고, 송시열의 경우 259권 중 108권에 달한다. 이는 주자학의 영향력이 강해진 16세기 이후 인물들의 문집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주희의 문집 121권 중 58권이 편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황이 그 일부를 발췌하여 <주자서절요>를 편집함으로써 후대 문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 편지선집의 간행으로 조선은 본격적인 주자학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조 임금 역시 주희의 편지를 매우 좋아해 <주서백선>을 편찬하였다. 그는 수천 편의 편지 가운데 여조겸에게 보낸 짧은 편지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였다. “며칠 사이 매미 소리가 더욱 맑습니다. 들을 때마다 그대의 높은 기상을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이 편지의 전문이다. 이황이 <주자서절요>를 편집할 때 별 내용도 없는 이 편지를 왜 넣는지 의문을 제기한 제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학문과 경세를 논한 장편의 편지들보다 때로는 단 몇 마디의 짧은 편지가 마음을 울리기도 하는 법. 조선 선비들은 ‘선성익청(蟬聲益淸)’이라는 구절을 부채에 써서 선물하며 벗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표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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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연대가 필요한 이유 박시제중(博施濟衆)이라는 말이 있다. 널리 사랑을 베풀어서 많은 이들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인(仁)하다고 인정할 만한지 묻는 제자에게 공자는 “어찌 인에 그치겠는가? 성(聖)의 경지에 오른 것이 분명하다. 요임금 순임금이라도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점이 문제라고 여기셨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내 눈앞의 문제들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나와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기란 예나 지금이나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홍수나 지진 등 특정 지역의 이재민을 구제하는 일과 달리, 너나없이 생업과 일상에 지장을 받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누군가를 돕기 위해 나의 것을 내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다행히 우리나라가 비교적 방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긴 하지만, 이 시점에 더 어려운 국가들을 위해 수천만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데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