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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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송년회의 계절 “저물어가는 한 해를 알고 싶은가. 구렁으로 달려가는 뱀과 같도다. 긴 비늘이 반 넘어 들어갔으니, 가버리는 그 뜻을 누가 막으랴.” 소동파가 세밑 저녁을 보내며 지은 시의 첫 구절이다. 손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미끄러져 지나가버리는 한 해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가는 세월을 붙잡지 못해 안타까운 작가는 제야의 북소리도 새벽닭의 울음도 달갑지 않고 그저 이 저녁이 끝나지 않기만 바라지만, 그런 마음을 알 리 없는 젊은이들은 밤새 웃고 떠들며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자랑하더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신종 감염병의 대유행으로 몇 년간 자제해 왔던 온갖 모임들이 송년회(送年會)라는 이름으로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어차피 잡아둘 수 없는 시간, 반가운 이들과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서 잘 보내주자는 뜻으로 가지는 즐거운 모임이다. 자칫 과도한 술자리로 이어지기 쉽지만, 요즘은 문화공연을 함께 즐기거나 요리 경연대회로 기획하기도 하는 등 송년회의 양태도 달라지고 있다. 늘어지기 마련인 저녁 자리보다 점심 혹은 브런치 송년회가 인기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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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편하게 그림 즐기는 법 “시로는 사천, 그림으로는 겸재가 아니면 쳐주지도 않았다.” 18세기 한때 회자되던 이 말의 주인공은 사천 이병연과 겸재 정선이다. 두 사람은 시인과 화가로 이름났을 뿐 아니라 둘도 없는 평생지기로 시와 그림을 주고받았다. 정선의 유명한 금강산 그림 ‘해악전신첩’이나 한강의 경치를 그린 ‘경교명승첩’ 등이 이병연과 함께한 작품들이다. 이병연은 좋은 그림을 알아보고 소장하는 데에도 열심이었다. 동시대의 문인 조귀명은 이병연이 애지중지 수집한 그림을 곧잘 빌려다 보곤 했는데, 어느 날 그림을 돌려주면서 짤막한 글을 써 주었다. “그림을 소장하는 목적은 감상하는 데 있을 뿐이다. 감상으로 누리는 즐거움은 주인이나 객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애초에 구하여 수집하는 어려움이 없고 내내 관리하느라 노심초사 걱정할 일도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주인으로서 고생하느니 객으로서 속편한 것이 낫다. 화가는 소장자를 위해서 일하고 소장자는 감상자를 위해서 아껴둔다. 나는 감상하는 사람이다. 여름날 시원한 집 안에 앉아서 날 저물도록 그림을 펼쳐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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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수능대박을 기원하며 입동 지나서도 푸근하던 날씨가 어제 오늘 갑자기 추워졌다 싶더니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일자가 내일로 다가왔다. 대학입학전형이 다양해지기는 했지만 수능 성적이 당락에 끼치는 영향은 여전히 지대하다. 직장인의 출근 시간과 대중교통 배차 간격, 항공기 이착륙 시간까지 조정될 정도로, 수능은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진행된다. 특히 이번 수능은 코로나 확진 및 격리 대상 수험생은 물론 일반 수험생도 무증상과 유증상으로 시험장을 분리 운영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 치러진다. 언제부턴가 ‘수능대박’이 수험생을 응원하는 말로 많이 사용된다. 엿이나 초콜릿 등 합격 기원 선물이나 시험장에 늘어선 후배들의 응원 팻말 등은 물론, ‘수능대박’이라고 쓴 부적까지 유행하고 있다. ‘대박’이라는 말은 도박 용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박(博)’이 원래 윷놀이 비슷한 노름을 뜻하는 글자이고, 노름판의 판돈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노름에서 판돈보다 훨씬 큰 이득을 취하는 것을 대박이라고 부른 데에서 비롯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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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있을 수 없는 일, 있을 수 있는 일 어떻게든 다른 주제를 잡아 보려 했다. 수천 년 쌓인 고전에는 지혜로운 말, 마음 비추는 글이 무한정 있으니, 마감 시간이 닥치면 뭐라도 잡아서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뉴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며 며칠째 눈과 귀를 온통 메우고 있는 저 참혹한 시공간의 이야기들에 나까지 무언가 더 얹을 만한 이유도, 자신도 없었다. 이 짤막한 글만이라도 그 일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으로 채우고 싶었다. 그게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 칼럼을 백지로 남겨 둘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결국 그렇게 회피하고 싶었던 그 슬픔으로 메울 수밖에 없음을 다시 깨닫는다. 어린 자식 넷을 연달아 잃은 서른 살의 아버지 장유의 애도시를 가져다가, 도무지 쓸 수 없는 글을 힘겹게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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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숙살의 계절 “별과 달이 환하고 깨끗하며 은하수가 하늘에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사방에 사람 소리 하나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날 뿐입니다.” 10월의 어느 멋진 밤을 연상하게 하는 고즈넉한 풍경이다. 중국 송나라 때 문장가 구양수가 한밤중에 책을 읽다가 갑자기 너무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어떤 소리에 오싹해져서 아이에게 이게 무슨 소리인지 나가 보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나가서 본 풍경은 이처럼 인적 없는 맑고 푸른 가을 달밤이었고, 소리라고는 그저 나무 사이에 이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고요한 밤, 구양수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들었기에 이렇게 놀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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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섬기기 쉬운 사람 드라마에 나오는 권력자들은 날선 호통 한마디로 아랫사람을 어찌할 줄 모르게 만드는 능력을 보인다. 극적 설정을 위한 것이겠지만, 격한 감정이 실린 지적을 수시로 내리꽂는 사람을 섬기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주변 사람이 모두 리더의 기분이 어떤지, 어떻게 해야 지적받지 않을지 살피기만 하는 조직이 있다면 그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공자는 군자와 소인의 결정적인 차이 가운데 하나를 이렇게 제시했다. “군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려우며, 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쁘게 하기는 쉽다.” 말초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소인의 경우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욕망만 채워주면 되니 기쁘게 하기 쉽다. 하지만 작은 이익에도 그것이 정당한지 아닌지 따지는 군자를 기쁘게 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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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이 원래 이렇게 푸르렀는지 자꾸 쳐다보게 만드는 가을이다. 늦여름 태풍이 지나가고 찬 대륙풍이 불어오면서 지상의 먼지와 수증기가 줄어들어 생기는 자연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을 테지만, 유독 더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코로나 팬데믹의 고통에 대한 작은 보상으로 여기고 싶은 마음도 든다. 아무튼 누군가 그리워해야 할 것 같은,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이다. 하늘을 뜻하는 한자는 천(天) 이외에도 여럿이 있다.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이 있고, 땅을 덮은 지붕이라는 뜻에서 우(宇), 개(蓋) 등의 글자도 하늘의 의미로 사용된다. 둥글게 보여서 궁(穹), 원(圜)을 쓰기도 했고, 텅 비어 있어서 공(空), 허(虛), 신비하게 검고 어두워서 현(玄), 명(冥)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말 ‘하늘’의 음을 빌려 하날(漢捺), 한을(汗兒) 등으로 표기한 문헌도 있다. 그리고 여름하늘을 호(昊), 가을하늘은 민(旻)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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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수학자의 축사 한 수학자의 졸업식 축사가 회자되고 있다. 필즈상 수상자의 서울대학교 졸업식 축사이니 그럴 법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축사의 구절을 인용하며 폭넓게 호응하는 모습이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각자 삶의 자리에서 겪는 고민과 좌절의 어딘가를 만지고 위로하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게 졸업식 축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경계를 넘나드는 면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축사만큼 상투적인 말, 혹은 글이 있을까. 그래서인지 우리는 축사나 주례사를 문학에 넣지 않는다. 전통시대 한문학의 중심 장르였던 묘지문, 상소문 등의 대부분을 오늘날 문학으로 인정하기 힘든 것도 그 목적성과 상투성 때문이다. 특히 장수를 축원하는 수서(壽序)의 경우 워낙 목적이 규정하는 내용이 정해진 장르여서 당시에도 진정성을 의심받곤 했다. 하지만 그런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상투성을 벗어난 작품은 명작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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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보호와 자립 보육원 출신의 18세 청년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기사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고인은 정착지원금 대부분을 대학 기숙사비 등으로 지출하고 월 30만원의 자립수당으로 생활했다고 한다. 다른 학생은 모두 집에 간 방학에 혼자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일어난 일이어서, 인근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잡힌 지 60시간이나 지난 뒤에야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만 18세에 복지시설의 보호가 종료되는 제도에 대해서는 오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작년 7월 국무회의에서 만 24세까지 보호받을 수 있고 자립수당 지급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방안이 발표되었고, 12월 법안 개정을 거쳐 올해 시행령이 의결됨으로써 6월22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고인은 개정 시행 이전에 종료 시점이 도래한 경우지만 기존 제도하에서도 대학 입학을 사유로 보호기간 연장은 가능했다. 그럼에도 본인이 퇴소를 선택한 데에는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보육원에서 지내기 어려웠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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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창부타령, 난봉가, 유람가 등에서 차차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노래에서 인상적인 도입부나 강력한 마무리에 즐겨 쓰이는 말이 있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눈앞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모처럼 만난 친구가 참으로 소중해서, 마침 익은 술맛이 기가 막혀서 던지는 탄성이며, 때로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역설적으로 내뱉는 탄식이다. 놀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는 탄성과 탄식의 바닥에는, 유한한 인생에게 주어진 시간이 영원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붉은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며 고목에는 새가 날아들지 않는다. 길어봐야 백년도 안 되는 인생은 달리는 말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막상 즐길 수 있는 날은 의외로 많지 않다. 참 상투적인 레퍼토리지만 누구도 부인하거나 벗어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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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하찮고 소중한 무명지 안중근 의사는 1909년 차가운 연해주에서 동지들과 함께 무명지 첫 마디를 자르고 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고 쓰며 투쟁을 맹세했다. 지금 남아 있는 유묵에 찍힌 손바닥 도장이 바로 이 ‘단지혈맹’의 기개를 그대로 보여주어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그런데 왜 무명지였을까? 무명지를 자르거나 피를 내서 위독한 부모님의 입에 흘려 넣음으로써 생명을 연장시켰다는 이야기는 예로부터 효자열전에 자주 나오는 대목이다. 참으로 훌륭한 효심이긴 하지만, 이 역시 왜 무명지였을까? 무명지가 심장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마음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엄지는 거벽(巨擘)이라는 표현처럼 첫째로 추대되고, 검지는 식지(食指), 두지(頭指)로, 중지는 장지(長指), 장지(將指)로, 새끼손가락도 소지(小指), 계지(季指) 등으로 불린 데 비해, 무명지(無名指)는 ‘이름도 없는 손가락’이다. 마디 하나 없어도 생활에 별로 어려움이 없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치부돼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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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그것도 옳을 수 있다 황희 정승은 청빈함과 엄정함, 너그러움 등의 모습으로 여러 미담에 등장한다. 그중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어린 종 둘이 다투었는데 한 종이 와서 상대의 잘못을 호소하자 황희는 “그렇지, 네 말이 옳구나”라고 다독거렸다. 잠시 후 온 다른 종에게도 황희는 “그렇구나, 네 말이 옳지”라고 동의했다. 이를 본 조카가 이의를 제기하자 황희는 “네 말도 옳구나” 하고는 읽던 글을 계속 읽었다. 이 일화를 어떤 의견이든 인정하고 받아주는 포용력으로 읽거나, 시비를 따지기보다 마음에 공감해주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또는 건성건성 대답하고 자기 할 일만 하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태도로 세상에 부합하는 기회주의자, 혹은 쉽게 속을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정치가의 면모를 발견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