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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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시(詩)는 사람을 곤궁하게 만든다 “시능궁인(詩能窮人)”이라는 말이 있다. 시가 시인을 곤궁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송나라 때 구양수는 이를 부정하고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 즉 곤궁해진 뒤에 시를 잘 짓게 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인이 영달을 누리는 경우가 별로 없고 부귀를 누리다 보면 좋은 시가 나오기 어려워지는 실제의 경험들은 이 두 말의 차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결국 시와 곤궁함은 무엇이 원인이랄 것도 없이 맞물려 있는 셈이다. 인문학 역시 사람을 곤궁하게 만든다. 드물긴 하지만 이른바 ‘역사 덕후’도 있고 여전히 철학이나 문학에 매력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사회 전반의 시선은 차갑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인문학‘도’ 필요하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할 뿐 아니라 멋있는 말로 포장하여 강조하기까지 하면서도, 자신의 자녀나 지인이 인문학을 지망하는 것은 우려스러워한다. 첨단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영달을 누리며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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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없음과 있음의 역설 자신의 집에 ‘오무헌(五無軒)’이라 써 붙인 이가 있었다.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다섯 가지 중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뜻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다섯 가지를 하늘에서 부여받았으므로 이를 실마리로 삼아 확충해 감으로써 본래의 바름을 회복하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라는 게 당시의 통념이었다. 이 다섯 가지가 없다는 말은 그저 겸양의 표현으로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이 있다. 19세기 문인 심대윤은 ‘오무’에서 “천지와 성인은 인(仁)하지 않다”고 말한 노자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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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초보운전, 그 어두움의 기억 대학생이 된 아들이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대개 그렇듯 면허가 있다고 운전을 바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운전대를 잡고 도로에 나서려면 상당한 준비와 용기가 필요하다. 우선 운전할 때 옆자리에 태우고 스스로 운전하는 것처럼 예행연습을 하게 했다. 몇 가지 일러주고 이런저런 질문에 답도 해주다 보니 잊고 있던 초보운전 시절이 떠올랐다. 손으로 핸들과 기어를 작동하면서 발은 클러치와 액셀, 브레이크를 오가느라 허둥지둥, 전방과 사이드미러를 흘끔거리는 사이에 시야는 극도로 좁아지고 등에는 진땀이 흥건해서 별것 아닌 상황에도 앞이 캄캄해지곤 하던 그때의 기억이, 수면 위로 하나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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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봄날, 무망의 풍경 낱낱의 한자를 읽을 때 그 음 앞에 뜻을 새겨 다는 것을 훈(訓)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한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기 마련인데, 한자를 익히는 초학자를 위해 편의상 ‘대표 훈’이라는 것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해를 돕기 위해 관습적으로 붙여 온 대표 훈이 오히려 이해를 방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공변될 공(公)’ ‘벼리 기(紀)’ ‘모름지기 수(須)’ ‘지게 호(戶)’ 등의 훈을 추가 설명 없이 단박에 이해하기는 어렵다. ‘망령될 망(妄)’도 그런 예의 하나다. ‘망령(妄靈)되다’는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난 데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망상(妄想), 망언(妄言), 노망(老妄), 경망(輕妄), 허망(虛妄) 등의 어휘에서 볼 수 있듯이 망(妄)은 ‘이치에 어긋나다’ ‘헛되다’ ‘속이다’ ‘함부로’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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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곧은 것만 바른 것일까 어릴 적 학교에서 주는 상장에는 늘 “품행이 방정하고”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정확한 뜻도 모른 채 “품행이 방정맞고”라고 읽으며 장난치곤 했다. ‘방정(方正)’은 예부터 사람의 품성과 행실이 곧고 바름을 칭찬하는 뜻으로 사용되어왔으니 적절한 표현이긴 하다. 하지만 더 쉽고 좋은 말도 많은데 마치 바꿀 수 없는 원칙이기라도 한 것처럼 천편일률 이 표현만 써온 데에서, 권위주의 시대의 그늘마저 느껴진다. 바르고 곧아서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반듯함. 이런 유가의 이상적 인간형을 함축하는 글자가 직(直)이다. 당나라 때 문인 유종원의 <참곡궤문>은 팔꿈치와 등을 기대고 앉는 기물인 궤(궤)의 모양이 반듯하지 않고 굽어 있다고 해서 베어버린다는 내용이다. 자신이 곧고 바르면 굽실대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곡학아세하며 남의 비위나 맞추는 세태를 사물에 빗대어 통렬히 비판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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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어찌할까, 어찌할까 공자는 말 잘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속은 강하고 굳세면서 겉은 질박하고 어눌한 ‘강의목눌(剛毅木訥)’이 이상적인 인격에 가깝다고 했다. 말은 더듬거려도 행동은 재빠르고자 하는 사람을 높게 평가하고, 화려한 언변을 갖추고 보기 좋은 표정을 잘 짓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이 드물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자가 이렇게 경계한 것은, 실천보다 말을 앞세우고 속을 채우기도 전에 겉부터 꾸미려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궁극적으로 높인 것은 속과 겉이 모두 훌륭한 사람이다. 내실도 알차게 갖추고 언변과 매너도 세련된 ‘문질빈빈(文質彬彬)’이야말로 공자가 지향한 경지였다. 실제로 공자 자신은 어눌하기는커녕 매우 적절하고 아름다운 말을 구사하는 사람이었고, 필요에 따라 언어의 묘미를 제대로 발휘하고 즐길 줄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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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 연말부터 설 연휴까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수도 없이 주고받아 왔다. 복(福)이라는 글자가 희생을 바치는 제단과 술 단지를 그려놓은 것이므로, 노력으로 이루는 결실이라기보다 신적인 존재에게 빌어서 받는 행운이라는 의미가 애초부터 담겨 있다. ‘복’자를 거꾸로 걸어놓는 것은 ‘거꾸로 도(倒)’가 ‘이를 도(到)’와 음이 같아서인데, 여기에서도 복이란 가만히 있어도 이르는 것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상대가 누구든, 내가 그를 위해 해줄 게 없다 하더라도,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만큼은 넉넉하게 던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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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솥을 기억하며 솥과 냄비의 차이는 무엇일까? 솥은 옆면을 둘러 날개가 있고 냄비는 양쪽에 손잡이가 달렸다는 생김새가 먼저 떠오른다. 무쇠, 구리 등으로 주조하는 솥은 두툼하고 무거운데 냄비는 양은으로 만들어서 얄팍하다는 차이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신소재로 만든 1인용 밥솥이 나오는가 하면 무쇠로 만든 큼직한 냄비가 인기를 끌기도 한다. ‘솥 정(鼎)’이 원래 양쪽에 귀가 달린 솥의 생김새를 그린 것이므로 손잡이 있는 게 냄비라고 하기도 적절치 않다. 냄비는 작은 놋쇠 솥을 가리키는 한자 ‘과(鍋)’의 일본어 발음인 ‘나베’가 우리말로 넘어와 ‘남비’를 거쳐 변화한 어휘다. 양은으로 만든 솥이 신문물로 널리 쓰이면서 기존의 솥과 구분해서 냄비라는 어휘도 함께 통용된 셈이다. 부엌의 변화로 크고 무거운 솥은 별로 쓰이지 않게 되었다. 솥의 장점을 살린 압력밥솥, 별미로 먹는 돌솥비빔밥, 혹은 솥뚜껑삼겹살처럼 변형된 용도로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오랜 시간 끓이는 가마솥은 시골집에서도 대개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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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다시 돌아온 계묘년 문익점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공민왕을 폐하려는 데에 맞서다가 강남 지역으로 유배되었고, 귀국길에 목화씨를 몰래 가지고 들어와 고려에 보급시켰다고 알려져 왔다. 그의 행적에 대한 고려사 열전의 기록은 이와 상당히 다르지만, 조선 초기부터 이미 미화하고 가필되기 시작한 이야기가 여러 기록에 담기며 점차 사실로 여겨지게 되었다. 문익점의 실제 행적이 어떠했든, 목화씨를 붓두껍에 숨겨 왔다는 일화가 사실이든 윤색이든, 심지어 삼국시대 유물에서 면직물의 흔적이 일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목화의 보급에 기여한 그의 공로는 부인될 수 없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지고 들어왔고 장인 정천익과 함께 이를 우리 토양에 맞게 대량으로 재배하여 활용하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에 목면이 일반화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복 생활사는 문익점의 목화씨 도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363년, 계묘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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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송년회의 계절 “저물어가는 한 해를 알고 싶은가. 구렁으로 달려가는 뱀과 같도다. 긴 비늘이 반 넘어 들어갔으니, 가버리는 그 뜻을 누가 막으랴.” 소동파가 세밑 저녁을 보내며 지은 시의 첫 구절이다. 손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미끄러져 지나가버리는 한 해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가는 세월을 붙잡지 못해 안타까운 작가는 제야의 북소리도 새벽닭의 울음도 달갑지 않고 그저 이 저녁이 끝나지 않기만 바라지만, 그런 마음을 알 리 없는 젊은이들은 밤새 웃고 떠들며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자랑하더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신종 감염병의 대유행으로 몇 년간 자제해 왔던 온갖 모임들이 송년회(送年會)라는 이름으로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어차피 잡아둘 수 없는 시간, 반가운 이들과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서 잘 보내주자는 뜻으로 가지는 즐거운 모임이다. 자칫 과도한 술자리로 이어지기 쉽지만, 요즘은 문화공연을 함께 즐기거나 요리 경연대회로 기획하기도 하는 등 송년회의 양태도 달라지고 있다. 늘어지기 마련인 저녁 자리보다 점심 혹은 브런치 송년회가 인기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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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편하게 그림 즐기는 법 “시로는 사천, 그림으로는 겸재가 아니면 쳐주지도 않았다.” 18세기 한때 회자되던 이 말의 주인공은 사천 이병연과 겸재 정선이다. 두 사람은 시인과 화가로 이름났을 뿐 아니라 둘도 없는 평생지기로 시와 그림을 주고받았다. 정선의 유명한 금강산 그림 ‘해악전신첩’이나 한강의 경치를 그린 ‘경교명승첩’ 등이 이병연과 함께한 작품들이다. 이병연은 좋은 그림을 알아보고 소장하는 데에도 열심이었다. 동시대의 문인 조귀명은 이병연이 애지중지 수집한 그림을 곧잘 빌려다 보곤 했는데, 어느 날 그림을 돌려주면서 짤막한 글을 써 주었다. “그림을 소장하는 목적은 감상하는 데 있을 뿐이다. 감상으로 누리는 즐거움은 주인이나 객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애초에 구하여 수집하는 어려움이 없고 내내 관리하느라 노심초사 걱정할 일도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주인으로서 고생하느니 객으로서 속편한 것이 낫다. 화가는 소장자를 위해서 일하고 소장자는 감상자를 위해서 아껴둔다. 나는 감상하는 사람이다. 여름날 시원한 집 안에 앉아서 날 저물도록 그림을 펼쳐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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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수능대박을 기원하며 입동 지나서도 푸근하던 날씨가 어제 오늘 갑자기 추워졌다 싶더니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일자가 내일로 다가왔다. 대학입학전형이 다양해지기는 했지만 수능 성적이 당락에 끼치는 영향은 여전히 지대하다. 직장인의 출근 시간과 대중교통 배차 간격, 항공기 이착륙 시간까지 조정될 정도로, 수능은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진행된다. 특히 이번 수능은 코로나 확진 및 격리 대상 수험생은 물론 일반 수험생도 무증상과 유증상으로 시험장을 분리 운영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 치러진다. 언제부턴가 ‘수능대박’이 수험생을 응원하는 말로 많이 사용된다. 엿이나 초콜릿 등 합격 기원 선물이나 시험장에 늘어선 후배들의 응원 팻말 등은 물론, ‘수능대박’이라고 쓴 부적까지 유행하고 있다. ‘대박’이라는 말은 도박 용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박(博)’이 원래 윷놀이 비슷한 노름을 뜻하는 글자이고, 노름판의 판돈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노름에서 판돈보다 훨씬 큰 이득을 취하는 것을 대박이라고 부른 데에서 비롯한 표현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