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최신기사
-
송혁기의 책상물림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 동아시아의 전근대 학술사는 경전 해석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전의 반열에 오르게 된 몇몇 텍스트에 대한 주석이 시대마다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른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오래된 지향을 따라, 새로운 저술보다는 경전에 대한 풀이와 부연의 방식으로 자신의 학문 견해와 시대 인식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경전 해석의 계보에는 다양하고 치열한 이견과 논쟁이 담겨 있다. -
송혁기의 책상물림 미래형 도서관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를 상징하는 건물은 높이 50m에 달하는 거대한 돔으로 덮여 있다. 1994년 난데없이 자동차 한 대가 그 돔 위에 올라앉은 이후, 해커스(hackers)를 자칭하는 학생들의 기발한 장난이 이어졌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모형이 출현하더니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로 변신하기도 했다. 기물 파괴 등의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지만 대학 본부는 이들을 공식 홈페이지에 올려 두었다. 학생들의 발칙한 상상력을 오히려 권장하는 모양새다. -
송혁기의 책상물림 체면이 사라진 사회 시대 변화와 함께 사용 빈도가 줄어든 어휘 가운데 ‘체면(體面)’이라는 말이 있다. ‘남을 대하는 도리’라는 사전적인 뜻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런데 “체면이 깎이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등 부정적인 용례가 대부분이다. “체면이 서다”는 말도 겨우 낭패를 면했다는 수세적인 긍정에 불과하다. 체면이 서도록 일부러 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체면치레’ 역시 기분 좋게 쓰는 말은 아니다. -
송혁기의 책상물림 경쟁의 축제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종반을 향해가고 있다. 아시안게임은 금메달 482개를 걸어놓고 누가 많이 따내는지 개인별, 국가별로 ‘경쟁’하는 운동회다. ‘경(競)’은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며 쫓는 모양으로 각축(角逐)의 의미를 표현했다. 각 사람이 머리에 이고 있는 무언가가 후대에는 입으로 부는 악기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여겨지기도 했다. 몸싸움이 말싸움으로 변해간 셈이다. ‘쟁(爭)’은 물건 하나를 두고 위아래의 두 손이 서로 빼앗으려 움켜쥔 모양이다. -
송혁기의 책상물림 식물 칼럼 이 지면에 글을 올린 지 9년째다. 격주로 쓰는 작은 칼럼이지만 쉬지 않고 올리기란 쉽지 않다. 연재를 마칠 적절한 때를 놓친 채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지금 필자는 실크로드 길을 따라 파미르고원과 타클라마칸사막을 다니고 있다. 하지만 여행 중에도 마감 일자는 어김없이 이르고, 쿠차의 낯선 호텔 방에서 노트북을 켜고 앉을 수밖에 없다. 족쇄도 이런 족쇄가 없다. -
송혁기의 책상물림 49일을 지내고 49재(齋)는 불교의 장례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고인이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나도록 기도하는 의례를 7일째마다 시행하는데, 이를 7회까지 하는 것은 이 49일 동안 다음 생을 받을 연이 정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연원은 불교에 있지만 49재는 고인의 영혼을 보내드리는 날로 일반화되었다. 지난 4일에 열린 49재 역시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였지만, 그 추모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했다. -
송혁기의 책상물림 좋은 연설문, 멋진 연설문 연설문은 문학일까? 서정·서사·극·교술의 네 가지 갈래를 문학으로 다루는 교육에서 연설문은 이른바 ‘비문학’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서구 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수사학은 변론술에서 출발했다. 동아시아 역시 왕 앞에서 세 치 혀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했던 전국시대 유세객들은 이미 연설의 기술을 고도로 추구했고, 이후 문학의 핵심적인 갈래로 발전해왔다. -
송혁기의 책상물림 찌는 듯한 더위를 이기는 법 폭염경보 문자가 연일 울린다. 염(炎) 앞에 폭(暴)을 더한 말에서부터 더위가 전달된다. 서(暑)와 열(熱) 앞에 혹(酷), 극(極), 고(苦) 등을 붙인 어휘들을 떠올리면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이들이 견뎌내기 힘든 더위를 겪으며 살아왔는지 느껴진다. 거기에 증(蒸)을 더하면 펄펄 끓는 찜통 속에 들어앉아 있는 듯하다. 입추가 8일이었다. 말복보다 며칠 앞서 입추를 둔 것은 극한 상황에서 희망을 보라는 뜻일까? 조선시대 문인 장유는 입추가 지났는데 한여름보다 심한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하면서 200자 고시를 지었다. -
송혁기의 책상물림 배움의 여유, 일의 여유 <천자문>은 중복 없는 한자로 각운과 대구도 맞추면서 의미를 살려 지은 4언고시다.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용이 좋고 암송에 유용해서 오랫동안 초학자용 교재로 사용되었다. 천자문은 많은 수량의 사물에 순서를 매기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한양도성에는 1번 천(天)에서 97번 조(弔)까지 구역의 순서가 천자문으로 적혀 있다. 십진법이 아닌 천진법인 셈인데, 그만큼 많은 이들이 외우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송혁기의 책상물림 장모님의 시집을 엮으며 “잘못도 없고 잘함도 없는지라 술과 음식 마련할 생각뿐이니 부모 걱정 끼칠 일 없겠네.” 아들은 귀하게, 딸은 천하게 길러야 한다는 관념을 문자 그대로 표방한 시인 ‘사간(斯干)’의 일부다. 공자의 명성으로 경전의 반열에 오른 <시경>에 실려 전한다. 여자는 잘못된 일은 물론 잘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는 이 가혹한 요구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할 여자가 두각을 드러내면 불길하다고 여기는 오랜 전통이 되었다. -
송혁기의 책상물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볼일을 보고 나서 물을 내리다가 멈칫할 때가 있다. 간단한 조작 하나로 오물이 말끔하게 씻겨 내려가고 깨끗한 물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엄청난 사람들이 곳곳에서 흘려보내는 이 하수들이 어떻게 처리될지 걱정스럽기도 해서다. 그다음의 과정을 모르는 우리의 눈에는 편리한 조작과 깔끔한 결과만 보일 뿐이다. 지정된 봉투에 담아 수거장에 내놓기만 하면 눈앞에서 곧 사라져 버리는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비용만 내면 그다음의 과정은 볼 필요도 없이 처리되는 게 당연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
송혁기의 책상물림 고단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 “아내가 제 손 잡고 잠든 날이었습니다/ 고단했던가 봅니다/ 곧바로 아내의 손에서 힘이 풀렸습니다” 윤병무 시인의 ‘고단(孤單)’이라는 시의 첫 연이다. 다음 연에서 시인은 삶의 고단함으로 힘이 풀리는 손을 보며 문득 별세(別世)의 순간을 떠올린다. 제목에 한자를 병기한 데에서 ‘지쳐서 피곤하다’는 뜻과 ‘단출하고 외롭다’는 뜻을 겸하여 담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