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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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암중모색의 시대, 암중모색의 인물 “손님 가시는 작은 골목에 쏟아지는 달빛, 귀뚜라미 우는 찬 섬돌마다 하얗게 내린 서리. 조식, 유정 같은 이들과 시대를 함께하니, 암중모색한들 내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김윤식이 벗들을 집에 데리고 와서 술자리를 가진 뒤에 지은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조식과 유정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뛰어난 시인이다. 밤새 술잔을 기울이던 벗들이 떠나가고 달빛만 가득한 골목을 바라보며, 그들과 주고받은 시심(詩心)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아무리 어두운 곳에서도 더듬어 찾을 수 있을 만큼 빼어난 시 벗들. 이런 이들과 같은 시대를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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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낙엽을 바라보며 비 내린 뒤 우수수 떨어진 낙엽이 거리에 쌓인다. 가을이 가는 풍경은 쓸쓸하면서 아름답다. 서거정은 뜨락 가득 떨어진 오동잎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차마 쓸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스러져 가는 노년, 고운 가을 국화보다 떨어져 뒹구는 낙엽에 더 정이 가게 된 탓이다. 스님을 배웅하며 쓴 시에서는 “단풍잎 뜨락에 가득하더니 가을바람이 다 쓸어갔네. 가벼이 떨어지는 이파리처럼 스님은 어디로 떠나시는가”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바람에 쓸려 날아가거나 흙과 섞여 돌아가면 그만이던 낙엽이, 아스팔트로 포장된 오늘의 도심에서는 누군가 쓸어 담아서 처리해야 하는 쓰레기로 전락했다. 낙엽의 낭만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다가, 그 낙엽을 치우는 분들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낙엽으로 업무량이 폭증해서 질병이 악화된 환경미화원에 대해 재판부가 업무상 재해 인정 판결을 내렸다는 보도를 접하니 막연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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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오래된 것에 끌리는 마음 꽤나 오래되어 음악으로만 기억되는 영화 <유 콜 잇 러브>에서 소르본대 학생으로 출연한 소피 마르소가 아치형의 웅장한 구조에 고풍스러운 분위기 물씬 나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1851년부터 운영되어 온 생트준비에브 도서관이다. 6세기에 세워진 수도원의 도서관을 계승해 25만권의 고서를 소장하고 있다. 수도원 도서관을 공공도서관처럼 개방한 덕분에 프랑스혁명의 열기에도 살아남아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1937년에 완공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은 우리나라 대학 최초의 독립된 도서관 건물이다. 서울시 사적으로 관리되는 고딕식 석조건물이고, 높은 천장에 길게 트인 2층 열람실은 유럽의 오래된 도서관을 연상하게 한다. 1978년 도서관 신관을 개관하면서 이곳은 한적과 귀중서의 보관 및 열람을 위한 공간으로 특화되었다. 국가 문헌을 계승한 서울대 규장각을 제외하고는 국내 대학도서관 중 가장 많은 양의 고서를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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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자리 용인시 처인구에 이 일대의 옛 이름을 딴 남곡재(南谷齋)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거하며 남곡을 자신의 호로 삼았던 고려 유신 이석지를 기리는 재실이다. 그는 고려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키며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이른바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이다. 남곡이 널리 알려진 것은 이석지의 동년 급제자인 이색의 <남곡기> 덕분이다. 이 작품은 이석지가 남곡에 사는 것이 은거인지 출사인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선비는 도리가 실현될 만한 세상을 만나면 출사하여 많은 이들과 선을 함께하고 그렇지 않으면 은거하여 홀로 선을 행해야 한다고 여겨왔기 때문에, 은거와 출사의 선택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이색은 이석지가 은거하는 것도 출사하는 것도 아니라는 의아한 답변을 내놓는다. 정치권력과 이권에서 완전히 떠나 자족적인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도심을 오가고 많은 이들을 만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은거를 부러워하면서 그의 출사를 기대하는 이색의 복잡한 심경이 읽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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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대머리와 까마귀 “다들 나를 대머리라고 부른다. 많지도 않은 나이에 벌써 정수리가 휑한데 굳이 가리려 하지 않고, 술 한 잔 걸쳤다 하면 모자를 벗어 젖히고 민머리를 드러내곤 한다. 이를 본 사람마다 대머리, 대머리, 그러기에 아예 나의 호를 대머리라는 뜻의 동두(童頭)라고 지었다. 사람들이 나의 모습 그대로 불러주는 것이니 나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옛사람에게 호(號)는 매우 중요했다. 성인이 되면 명(名)은 일상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주로 자(字)로 불리곤 했는데 이는 친지 어른이 일방적으로 지어주는 것이어서 본인의 의사를 반영하기 어렵다. 이에 비해 호는 스스로 지을 수도 있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담고 지향하는 가치를 표방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대머리를 호로 삼은 이유를 묻는 이에게 김진양은 해명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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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가르침 없는 배움 공자는 최소한의 예만 갖추면 누구나 받아들여 가르쳐주었다. 가르치기를 귀찮아하지 않는 게 자신의 장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말도 했다.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깨우쳐주지 않고, 표현하려 애쓰지 않으면 틔워주지 않으며, 한 모퉁이를 들어 말해주었을 때 다른 세 모퉁이를 미루어 생각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주지 않는다.” 가르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 공자였지만, 스스로 알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없는 이는 가르치지 않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데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 교육의 문제다. 등수를 올리기 위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배우고, 높은 학점을 얻기 위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위해 또 배운다. 정작 자신이 무엇을 알고 싶고 무엇을 표현해야 할지에는 별 관심이 없고, 배운 것을 가지고 더 생각해보려 하지도 않는다. 나의 필요가 아니라 누군가 정해놓은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지식을 쌓을 뿐이다. 가르침이 있을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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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오래된 것을 향한 시선 새로운 어휘가 워낙 많이 등장하는 시대라서 다 따라가기는 어렵지만, 한자로 이루어진 신조어의 경우 더 관심이 가곤 한다. 한문을 공부하고 가르치다 보니 생긴 일종의 직업병이다. 얼마 전 방송 자막에서 ‘노포’라는 낯선 어휘를 발견하고는, 맥락상 오래된 가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늙을 로(老)’를 사용하여 새로 만든 어휘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노포(老鋪)는 신조어가 아니라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라는 뜻으로 국어사전에 등록된 어휘이고,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 많은 이들에게 그리 낯선 어휘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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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웃음의 올림픽 운동경기 중에 웃음을 보이면 정신상태가 해이하다는 말을 듣던 때가 있었다. 친구끼리 즐기자고 하는 경기에서도 실수가 멋쩍어 살짝 웃기라도 하면 핀잔을 받곤 했다. 비록 잘 못하더라도 비장한 표정으로 악착같이 뛰어다녀야 인정받았다. 운동은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하는 거라는 신화가 강요되던 시대, 국가대항 경기에서 웃음을 보이는 것이 금기시된 것은 당연하다. 1986년 아시안게임이 낳은 스포츠 영웅 중에 “라면만 먹고 뛰었다”고 알려진 임춘애 선수가 있다. 인터뷰 내용이 와전, 확대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지긴 했지만, 지독하게 어려운 여건을 딛고 일어나 헝그리 정신의 투혼으로 극적인 승리를 이루어내는 스토리에 열광한 당시 많은 이들의 욕망이 투영된 결과다. 모든 경기에는 배수의 진을 친 전쟁터 같은 비장감이 감돌았다. 웃음은 결과가 나온 뒤 메달 색깔에 따라 허락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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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창의는 어디에서 오는가 요즘 모 방송사의 밴드 경연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출연자 뒷이야기와 탈락자 선정 과정 등으로 시간을 과도하게 끌던 다른 경연 프로그램과 달리, 매회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무대로 시청자의 채널을 장시간 고정시키고 있다. 어디서 이런 보물들이 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기량이 뛰어난 출연자들을 보며, 이들이 그동안 들였을 시간을 떠올린다. 음악으로 창의와 개성을 표출하기 위해서는 악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지고 놀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포정의 칼이 뼈와 근육 사이의 공간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것이 오랜 시간 숙련한 기술 덕분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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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자가격리의 시간 하나의 질병이 사람들의 삶을 속속들이 바꾸어 놓고 있다. 우리 일상의 산물인 언어에도 변화가 오고 있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신조어의 출현이다. 온택트, 집관, 차박 등 영어를 가져오거나 우리말을 축약해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공식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자가격리’ 역시 코로나19 이전에는 못 보던 어휘다.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았으니 ‘자가 격리’라고 띄어 써야 맞겠지만 대부분의 국가기관과 언론매체에서 띄어쓰기 없이 사용할 정도로 자가격리는 시민권을 얻은 어휘가 되었다. ‘자가(自家)’라는 어휘가 ‘자기의 집’과 ‘자기 자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고 자가격리가 주로 ‘자기의 집’에 머물며 이루어지기 때문에 혼동의 여지도 있지만, 자가격리의 자가는 ‘자기 자체’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이미 사용되어 온 자가 진단, 자가 치료 등에서 가(家)가 집의 의미를 지닌 실사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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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말없이 살 수 없다면 공자가 주나라 태묘에 가서 쇠로 만든 동상을 보았는데, 그 입이 세 겹으로 꿰매어져 있었다. “경계할지어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다.” 그 동상의 등에 새겨진 글귀다. 말 때문에 자신을 망치고 남을 그르치는 이들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왔다. 묵재, 묵와, 묵헌, 묵암, 묵계, 묵옹…. 말없음을 뜻하는 묵(默)을 자신의 호로 삼은 이들이 그렇게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홍계희가 거실 이름을 ‘무언재(無言齋)’라 붙이고 오원에게 기문을 부탁했다. 오원은 오래 묵혀 두었다가 이렇게 권면했다. 사람에게 말은 매우 중요하다.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하는 폐단뿐 아니라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폐단도 크다. 공자가 민자건을 칭찬한 것은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적절한 때 이치에 맞는 말만 했기 때문이다. 말이 때와 이치에 늘 맞는 경지에 이르면 말없음을 굳이 지향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마음이다. 말은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인데 마음은 다스리지 않은 채 말없음만 추구한다면 물의 근원은 넘치도록 놓아두고 지류만 틀어막는 꼴이다. 아무리 입을 막고 어금니를 깨물며 입을 꿰맨다 해도 결과는 허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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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익숙함을 경계하다 조선 후기 문인 홍길주가 오랜 지인인 상득용에게 축하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축하하는 이유가 이상하다. 상득용이 말에서 떨어진 일을 축하한다는 것이다. 뼈가 어긋나고 인대가 늘어나서 꼼짝 못하고 드러누운 채 종일 신음만 내뱉고 있는 이에게 축하 편지라니. 찰과상으로 흉측해진 상득용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지지 않았을까? 사리에 어긋난 일임을 잘 알면서도 홍길주는 자신이 축하하는 이유를 써내려갔다. 상득용은 무인이다. 말을 자기 몸처럼 다루며 능수능란하게 타는 것으로 이름이 났으며 본인도 말 타는 능력만큼은 자부하곤 했다. 홍길주는 바로 이 익숙함이야말로 낭패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였다. 말 타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더라면 고삐를 부여잡고 안장에 바짝 앉아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갔을 테니 크게 떨어질 일이 없었을 것이다. 워낙 익숙했기에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한밤중에 험한 길을 내달리다가 낭패를 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