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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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그것도 옳을 수 있다 황희 정승은 청빈함과 엄정함, 너그러움 등의 모습으로 여러 미담에 등장한다. 그중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어린 종 둘이 다투었는데 한 종이 와서 상대의 잘못을 호소하자 황희는 “그렇지, 네 말이 옳구나”라고 다독거렸다. 잠시 후 온 다른 종에게도 황희는 “그렇구나, 네 말이 옳지”라고 동의했다. 이를 본 조카가 이의를 제기하자 황희는 “네 말도 옳구나” 하고는 읽던 글을 계속 읽었다. 이 일화를 어떤 의견이든 인정하고 받아주는 포용력으로 읽거나, 시비를 따지기보다 마음에 공감해주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또는 건성건성 대답하고 자기 할 일만 하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태도로 세상에 부합하는 기회주의자, 혹은 쉽게 속을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정치가의 면모를 발견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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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화수분을 꿈꾸며 어휘에도 운명이 있다. 한때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어휘가 어느새 까마득하게 잊히는가 하면, 잘 쓰이지 않을 것 같은 어휘가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하기도 한다. ‘화수분’이라는 어휘는 후자에 속한다. 교과서에 실려 많이 읽힌 단편 소설 ‘화수분’이 여전히 대학 입시를 위한 필독서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프로야구에서 몇몇 팀을 두고 ‘화수분 야구’라고 부르는 용례의 힘도 의외로 크다. 오랫동안 다양하게 이어진 화수분 설화는 써도 써도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를 향한 욕망의 반영이다. 이 단지가 도깨비방망이와 다른 점은, 무언가 넣어야 나온다는 것이다. 쌀을 넣으면 쌀이, 돈을 넣으면 돈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애초에 무언가 넣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땅이 화수분”이라는 말도 있다. 불로소득의 달콤한 꿈과는 거리가 멀지만, 농사만 열심히 지으면 끊임없이 소득을 안겨주는 땅, 즉 자연이야말로 화수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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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공공의 교육, 공동의 교육 유네스코는 시대의 변곡점마다 미래교육을 위한 보고서를 발간해 왔다. 작년 11월에 세 번째 보고서를 발간했고, 올해 3월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번역서가 공개되었다. 인류가 당면한 문제 앞에서 미래에 대한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보고서는 더 늦기 전에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공공재로서의 교육일 뿐 아니라 공동재로서의 교육으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했다. 공공이라는 말의 출처는 <사기>이다. 왕이 행차하는데 한 사람이 다리 밑에서 갑자기 뛰어가는 바람에 왕을 태운 마차의 말이 크게 놀랐다. 그를 겨우 벌금형에 처했다는 것을 듣고 화가 난 왕에게 장석지가 말했다. “법은 천자가 모든 사람들과 공공(公共)하는 것입니다. 법조문보다 더 무겁게 처벌한다면 법이 백성들에게 신뢰받지 못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제공되고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공공의 오래된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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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해방의 방향 천화판(天花板)은 지붕 밑을 편평하게 해서 치장한 반자를 말한다. 실내에서 보면 천장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중국에서는 외모나 능력 등이 최고치임을 인정할 때 최고봉, 혹은 이른바 ‘끝판왕’의 의미로 많이 사용한다. 그 앞에 ‘돌파’를 붙이면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한계를 돌파하여 뛰어넘는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최근 “하향돌파천화판(下向突破天花板)”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천장은 가장 높이 있는 것인데 그 천장을 아래로 돌파한다고 했으니 말부터가 모순이다. 이는 인터넷 유행어인 ‘탕핑(平)’을 설명하는 표현이다. 탕핑은 평평하게 눕는다는 뜻인데, 아무런 의욕이나 열정도 없이 축 늘어져 있는 상태로 살아가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지향을 가리킨다. 어차피 집과 차를 사고 결혼하여 아기 낳으며 소비를 즐기는 삶이 보장되지 않을 바에야, 최소한으로 벌어서 돈 적게 드는 즐거움만 추구하며 속 편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그 일부는, 일어날 여건이 안 되고 무릎 꿇기도 싫으니 드러누울 뿐이라는 소극적 저항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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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울기 좋은 자리 아기는 태어날 때 왜 우는 것일까? 엄마 뱃속에서 양수에 둘러싸여 탯줄로 산소를 공급받다가 갑자기 자신의 입과 폐로 호흡을 해야 하는 변화 때문에 운다는 설명이 일반적이다. 눈과 귀로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빛과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서 우는 것이라는 말도 그럴 법하다. 그런데 연암 박지원은 마음이 시원해서 우는 것이라고 했다. 좁고 캄캄한 엄마 뱃속에서 답답하게 웅크리고 지내다가 넓고 환한 세상에 나온 것이 하도 시원해서 참된 소리를 마음껏 지르는 것이다. 박지원은 사신단의 일원으로 중국에 가다가 처음 요동 벌판을 마주하고서 “아! 울기 좋은 자리로구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별안간 울고 싶다는 말에 일행이 그 까닭을 묻자, 박지원은 울음의 철학을 펼친다. 사람은 슬플 때만 우는 게 아니다. 기쁨, 분노, 사랑, 미움 등의 감정 역시 극에 달하면 저절로 울음에 이른다. 지극한 감정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울음보다 더 빠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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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거꾸로 선 세상 유몽인이 수경당(水鏡堂)을 제재로 누정기를 썼다. 거울처럼 맑은 물을 뜻하는 수경은 매우 맑고 깨끗한 인품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이를 통해 수경당의 주인을 칭송하는 내용을 담을 법도 한데, 유몽인은 그저 풍경 묘사만으로 작품 전체를 채웠다. 한강에 배 띄우고 앉아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흥겹게 놀다 보니 취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꿈속처럼 펼쳐진다고 하면서, 그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양편 언덕이 거꾸로 걸려 있고 산봉우리가 아래를 향했다. 사람도 소와 말도 모두 물구나무서서 걸어가며, 새는 배를 위로 젖히고 날아간다. 정자 하나가 있는데 섬돌이 위에, 기와지붕은 아래에 있으며, 현판의 글씨 역시 뒤집혀 있다. 그런데 가벼운 바람이 문득 불어오자 풍경이 이리저리 흩어지며 사라져 버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든 유몽인의 눈에 제자리를 되찾은 만물이 펼쳐졌는데, 거기 수경당이라는 현판이 걸린 정자가 있었다. “뱃사공에게 물어보니 이대엽의 정자라고 한다.” 묘사 뒤에 이 한마디 말을 덧붙이는 것으로 작품을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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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아무 탈도 없는 일들 “공적 관계인 남들도 지적하지 않는데 사적으로 가까운 아버지만 왜 이렇게 저를 탓하시는 겁니까?” “사적인 관계니까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기를 바라는 거란다. 참으로 슬프구나. 세상에 가까운 사람이 없어지면 경계해줄 사람도 없게 될 거다. 내가 죽은 이후에야 너는 내 말을 알게 되겠구나.” 아들은 나가서 투덜거렸다. “늙은이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맨날 하지 말라고만 한다니까?” 15세기 문인 강희맹이 자신의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이야기 형식에 담아 우회적으로 쓴 글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야기 속의 아들이 범한 잘못은 시장의 간이 오줌통에 상습적으로 소변을 본 일이었다. 오가는 상인들이 급할 때 사용하는 시설이어서 양반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아들은 오히려 친구들에게 큰소리를 쳤다. “이런 겁쟁이들! 뭐가 두려워서 이 편리한 걸 사용 안 해? 날 봐. 맨날 쓰는데 아무 탈도 없잖아.” 아버지가 그러다가 화를 당할 것이라고 경계하자, 아들은 대꾸했다. “너무 급해서 한 번 사용해 봤는데 참 편리하더라구요. 그 뒤로 늘 사용했는데 처음에 한 마디 하던 사람들도 그냥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도 말리지 않던데요? 근데 무슨 화를 당한단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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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기쁘고 즐거운 봄날 한글은 표음문자다. 글자의 모양 자체에는 어떤 의미나 형상이 담겨 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어 화자로서 글자만 봐도 무언가 강렬하게 떠오르게 하는 글자들이 있다. ‘꽃’이라는 글자가 대표적이다. 굳이 멋진 캘리그래피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꽃은 꽃을 떠올리게 한다. 언제 거기 그 나무가 있었던가 싶었던 자리 여기저기에서 거짓말처럼 툭툭 망울을 터뜨리는 꽃을 발견하며 새삼 생명의 기쁨을 느끼는 계절이다. ‘기쁨’이라는 글자도 그렇다. 보기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가게 한다. 기쁘다는 뜻의 한자 열(悅)은 태(兌)에서 왔다. 입 모양인 ‘口’ 위에 찍은 ‘八’이 웃을 때 잡히는 입주름이고 아래의 ‘’은 사람을 뜻한다. 웃고 있는 사람의 입 모양을 강조한 글자다. <논어> 첫 장을 공자는 기쁨으로 시작했다. 배우고 수시로 익히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고, 마음 맞는 벗과 만나는 일이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하면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고 이러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의 길을 가는 것이 진정한 군자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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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임금과 대통령 “이후 대조선국 군주와 대미국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 및 그 인민은 각각 영원히 화평하고 우애 있게 지낸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관의 첫 문장이다. ‘백리새천덕’은 ‘프레지던트’의 중국어 음차이다. 우두머리 백(伯), 다스릴 리(理)에 옥새와 하늘의 덕을 조합하여 의미도 담았다. 그 외에 두인, 방장 등이 번역어로 혼용되다가 중국에서는 ‘총통’으로 일반화되었다. ‘대통령’은 1850년대 일본 문헌에서부터 보인다. 기존 한자어 통령을 활용한 신조어다. 조선의 이헌영은 <일사집략>에 대통령이라는 말을 쓰면서 “국왕을 이른다”는 설명을 붙였다. 대통령을 임금과 같은 의미로 이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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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끝과 시작, 변화와 지속 ‘지속가능발전’이라는 화두를 던진 유엔의 공식 보고서가 나온 게 1987년이다. 그로부터 근 30년이 지난 2015년에는 17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채택해서 이를 이행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로 결의했다. 각 국가와 기업이 상호의존성을 절실하게 인식하고 이 목표들의 수행이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확신을 가지지 않고서는 이 공동의 목표 역시 이상적인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변함없이 늘 지속된다는 뜻을 지닌 한자 항(恒)은 <주역>의 64괘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항괘가 형통하여 이롭게 되려면 변하고 통하여 때를 따라 오래가야 한다는 것이 항괘의 주된 메시지이다. 고정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해와 달이 뜨고 지듯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 변화해야 오래갈 수 있다. 항이라는 한자 오른쪽 부분 亘(긍)의 위아래 두 선이 하늘과 땅을, 가운데가 달을 의미한다고 설명되어 온 것도 천지자연의 쉼 없는 운행에서 지속가능성의 의미를 유추해온 전통과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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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이름의 운명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다. 발음이 안 좋거나 촌스럽게 느껴져서, 혹은 사주성명학을 근거로 운명을 바꿔 보려고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여러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개명을 단행하는 분들에게는 그만큼 절실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개명의 이유 중에 비교적 공감이 쉽게 가는 것은, 널리 알려진 흉악범과 이름이 같은 경우다.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명(名)이 따로 있지만 평상시에는 늘 자(字)로 불리던 시절, 조재우라는 인물은 성년이 되면서 회지(會之)라는 자를 받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말들이 많았다. 송나라 때 간신으로 유명한 진회의 자가 회지였기 때문이다. 전도유망한 스물세 살의 젊은이로서 평생 간신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조재우는 집안 어른인 조귀명을 찾아 상의했다. 그런데 조귀명은 자를 바꾸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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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위언과 위행 “위언은 산림에서 나오고, 높은 행적 책 속엔 드무네. 산인은 원래 강직하니 후학이 감히 따를 수 있을까.” 어우 유몽인이 남명 조식을 기리며 쓴 시이다. 여기서 위언이란 조식이 올린 상소문에서 당시 수렴청정으로 권세를 휘두르던 문정왕후를 가리켜 “깊은 궁궐의 한 과부에 불과하다”고 표현한 것을 말한다. 이를 본 명종이 격노하여 불경죄로 처벌하려 한 것도 당연하다. 공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위언과 위행을 하며, 나라에 도가 없으면 위행은 하되 말은 공손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위언(危言)과 위행(危行)은 위험을 무릅쓰고 준엄하게 하는 말과 행동이다. 의와 명분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초개와 같이 버려야 마땅하다는 것이 유가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설득시키지 못할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행동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실효가 중요한데, 그러기도 전에 말 때문에 화를 입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타산의 보신주의와는 다르다. 어떤 상황에도 위행만큼은 변함없이 실천해야 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