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슬
음악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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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여성x전기x음악’의 여섯 가지 이야기 “전자음악에서는, ‘에너지’를 다룹니다.” 다큐멘터리 <일렉트로니카 퀸즈-전자음악의 여성 선구자들> 속 이 한 구절은 내 머릿속을 오래 맴돌았다. 모든 음악을 만드는 데 에너지가 소요되기는 하겠으나 에너지를 ‘다룬다는’ 감각은 그 무엇보다도 전자음악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았다. 도시를 움직이는 에너지와 동종의 에너지로 음악을 만든다는 감각은 전자음악의 여성 선구자들에게 그 소리 이상의 것을 선사했을 것이다. <여성×전기×음악>이라는 책이 있다. 소설가이자 편집자인 함윤이와 음악가 영 다이, 위지영, 키라라, 애리, 조율, 황휘가 함께 만들었다. 번쩍이는 전기 에너지가 흐를 것만 같은 이 책을 쓴 음악가들은 비슷한 신을 오가고는 있지만 서로 제각각의 자리에서 움직이던 이들이었다. 그런 만큼 여성과 전기와 음악이라는 공통의 열쇠말에 각자가 반응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제각각이었다. 그들의 이야기와 태도, 이 거대한 키워드에 대한 의견, 삶과 음악이 관계 맺는 방식은 다른 세상처럼 달랐고, 책을 읽는 시간은 반가운 충격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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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페스티벌의 계절 이번 가을, 몇몇 페스티벌 현장에 방문했다. 시작은 10월7일 토요일에 오랜만에 찾아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었다. 이전에는 보고 싶었던 아티스트의 공연 시간에 맞춰 오갔지만 올해는 낮부터 쭉 축제 현장에 머물렀고, 공연 안팎에 소소하고 재미난 즐길거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하나는 ‘자라 체조’였다. 무대 전환이 이루어질 때마다 관객들의 스트레칭을 독려하는 이 체조는 매년 다른 음악, 다른 동작으로 꾸려져 이제는 자라섬의 중요한 전통처럼 자리잡았다고 했다. 무대 뒤편에 넓게 포진한 부스들도 축제 분위기를 더했다. 부스에는 재즈 중심의 음반 가게부터 지역의 유명 맛집들의 출장부스, 가벼운 마실거리 등이 가득했다. 물론 기억에 가장 또렷이 남은 것은 조지, 티그랑 하마시안을 비롯한 무대 위 음악가들이었지만, 이렇게 느긋하고 풍요로운 분위기라면 그저 축제를 즐기러 언제고 찾아올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올해로 20회를 맞이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축제의 한 모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 지역의 지형을 바꾸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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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앙코르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얼마 전 오랜만에 서울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바흐 음악의 권위자, 피아니스트들의 교과서, 뵈젠도르퍼라는 브랜드의 피아노를 고수하는 연주자 등 그에 관한 여러 수식어가 있지만 최근 여기에 추가된 것은 ‘즉흥적으로 연주할 곡을 결정하는 피아니스트’라는 말이다. 국제적인 음악가가 내한하면 기획사들은 보통 이들의 지난 역사와 오늘 공연을 소개하는 글을 차곡차곡 모아 책자를 만들곤 한다. 공연을 더 자세히, 더 제대로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는 이 책자에는 보통 연주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작품 이면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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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한 음악 글을 마무리하기 전, 늘 맞춤법 검사기를 돌려보곤 한다. 내가 자주 틀리는 띄어쓰기나 습관처럼 쓰는 어색한 표현을 검토하기 위해서다. 검사 결과를 자주 보다보니 애초에 고쳐 쓰게 된 것이 상당수지만 개중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아 매번 ‘빨간 펜’으로 수정 제안을 받는 단어가 있는데, 그건 ‘소리들’이라는 말이다. 이 단어에는 굳이 복수를 뜻하는 ‘~들’을 붙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 맞춤법 검사기의 설명이다. 음악들, 곡들이라는 표현은 받아들여지지만 소리들이라는 표현이 교정되는 이유는, 아마도 소리에는 단수나 복수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지만, 음악에는 단수나 복수의 개념이 통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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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마지막 ‘크루너’를 떠나보내며 지난 7월, 미국의 가수 토니 베넷이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거의 70년간 현역으로 활동했던 베넷은 94세 때도 음반을 발매할 정도로 꾸준히 노래해 온 가수였다. 음악에 평생 매진한 삶이었고, 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그가 지나온 시간에는 수많은 음악과 소리가 놓여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그의 어떤 한 노래가 아니라 그의 목소리, 그가 노래할 때 부드럽게 울리는 나직한 목소리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쓰인 여러 기사들은 다양한 타이틀을 내걸며 그의 인생을 되짚었다. 재즈의 거장, 아메리칸 송북의 챔피언, 역사가 가장 사랑한 목소리 중 하나, 그리고 전설적인 ‘크루너’. 크루너란 크룬(croon)이라는 창법으로 노래하는 가수를 말한다. 크룬은 조용히 부드럽게 노래한다는 뜻의 단어로, 흥얼거리거나 자장가를 불러준다는 표현에 쓰이기도 한다. 내가 이해하기로 크루너라는 이들은 20세기에야 등장할 수 있었던 유형의 가수다. 확성장치가 없던 시절, 목소리 하나로 오페라 하우스를 쩌렁쩌렁하게 울려야 하거나 시끄러운 저잣거리에서도 눈에 띄는 목소리로 지나가던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해야 했던 이들의 목소리는 크고 선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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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다른 소리를 위한 장소들 다른 나라의 대도시를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반은 호기심, 반은 의무감에 어떤 장소들을 찾아보곤 한다. 음악을 듣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까 공연장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마음으로, 음악을 위한 장소들을 찾는 것이다. 잘 모르는 곳에 간다면 검색어는 큼지막한 것부터 시작한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밀라노 공연장’ ‘일본 오사카 콘서트홀’ 같은 말들. 이렇게 검색했을 때 상단에 나오는 결과는 대체로 나라의 지원으로 건설된 공연장으로, 보통은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데다 교통의 요지에 있고, 건물 전체를 사용한다. 이런 곳에서 내가 들을 수 있던 음악은 큰 후원단체를 확보하고 수많은 인프라가 관여해 만들어지는, ‘고전’이라 불리는 서양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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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음악을 발견하는 사람들 보통 서양음악 또는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이들은 18~19세기에서 작곡된 서유럽의 고전들을 자주 살펴보지만 내가 찾는 쪽은 그보다 더 이전이거나 이후거나 고전이 아닌 것들이다. 말하자면 위대한 고전의 역사를 형성하는 데 그다지 기여하지 않은 음악, 누군가에게 계승되지 않은 채 반짝하고 사라졌던 장르, 이름을 남기지 않고 그저 떠돌았던 어떤 음악가들, 한 작곡가의 음악 중에서도 고전의 반열에 오른 대작이 아니라 채 1분이 되지 않는 짧은 소품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고전으로서의 서양음악 위상에서 살짝 벗어나는 음악에 가깝다. 이런 어수선한 사례들을 되돌아보며 나는 명쾌한 고전의 역사가 아닌, 훨씬 흐릿하고 유연한 음악 전통으로서의 서양음악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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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스페인과 남미의 바로크 음악 음악가 윤현종에게 ‘스페인과 남미의 바로크 음악’이라는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조금 놀랐다. 바로크 음악은 유럽 땅에서 오페라와 다양한 기악 장르를 꽃피운 시기의 음악인데 ‘남미’라니. 참 낯선 조합이라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소식을 전해준 윤현종 또한 한국에서 바로크 음악을 매일같이 연주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머나먼 바다 건너, 피아노가 한국 땅에 배를 타고 들어온 것이 120여년 전의 일이었다. 선교사들은 종교와 함께 서양 음악을 전파했고, 내 외할머니의 가족들은 어느 순간 그 음악을 사랑하게 됐으며, 그런 가정에서 자란 엄마의 마음이 내게도 전해지며 나도 서양 음악을 듣고 익히며 자라게 됐다. 나는 이를 ‘서양 음악’ 혹은 ‘유럽 음악’이라 거리를 두고 말하지만 나의 삶에서 이 음악은 내 어머니들의 역사와 맞닿은 것이기도 했다. 베토벤과 나 사이의 무한한 거리, 내게 전해진 어머니들의 마음을 동시에 떠올리며 서양 음악을 내 음악이라 부를지, 타자의 음악이라 부를지를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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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음악을 닮은 글 음악에 관한 글을 쓰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 순간 음악으로부터 아주 멀어져 있는 때가 많았다. 음악 경험을 글로 바꾸는 과정에서 군더더기를 덜어낸답시고 온갖 형용사와 수식어들을 하나씩 지우다 보면 결국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가를 다루는 문장들만 남곤 했다. 분명 음악을 듣고 느낀 바를 충실히 기록하자는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글을 다듬다 보면 어쩐지 바삭하고 건조한 문장들만 남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글은 실제 음악과는 딴판이었다. 정적 속에서 음악의 뼈대를 더듬어 보려는 글 말고, 음악만큼 활기 넘치는 글, 그리고 음악의 소란함을 닮은 멋진 글들을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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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정년이, 왕자가 사라진 시대의 왕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매란국극단’ 단원들의 실루엣이 보이고, 그들이 노래를 시작하자나는 속절없이 감동을 받아버렸다. 상상 속 목소리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고 노래하고 웃고 우는 그들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본 것만으로도 어쩐지 울컥하게 되는 것이었다. <정년이>는 네이버에서 연재된 웹툰으로 1950년대, 소리 하나 믿고 상경한 목포 소녀 정년이가 ‘매란국극단’이라는 여성국극단에 들어가며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야기는 꿰고 있었지만, 막상 이를 국립극장에서 공연으로 보는 일은 조금 생경했다. 저 시대의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무대에 올라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을 극장에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보지 못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과거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일은 반갑고도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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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스스로를 시험하는 음악 한동안 즉흥음악을 자주 들으러 다녔다. 그건 연주목록이 있는 공연을 보러 갈 때와는 다른 긴장감을 주는 일이었다. 빼곡한 계획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체화된 기억과 감각을 섬세히 살피며 음악을 만드는 일. 연습한 것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현재에만 벌어질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처음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정말로 모르는 음악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지만, 듣다 보니 즉흥연주에서도 나름의 패턴과 관습을 찾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매번 대단히 다른 것을 듣게 되지는 않았고, 긴장감도 조금은 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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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이야기 만들기 지난 연말, 음악가 동료들과 작은 타악기를 연주하며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려 했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림책을 만들고, 그 그림책 안에 연주를 위한 기호를 그려 넣어,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잘 어울리는 소리를 연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이야기에 짧은 연주를 곁들여보는 접근이 가능한지 실험해 보는 정도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연주를 틈틈이 집어넣을 수 있을 만한 느슨한 이야기가 필요했다. 소리 구성이야 늘 해왔지만 이야기 구성이라고는 경험이 없던 우리는 아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 뼈대를 만들어 어떻게든 살을 붙여봤다. 이야기라면 주인공이 있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는 음악을 넣을 자리가 필요하니까 소리를 좋아하는 캐릭터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소리내는 것을 좋아하지만 너무 조용한 호숫가에 살던 개구리 ‘차차’가 심심한 마음을 달래고자 밖으로 나서고, 위험에 처한 동물들을 만나며 크고 작은 소리를 내게 된다는 내용을 만들었다. 필요한 장면이 만들어지긴 했는데 ‘이야기가 이렇게 만들어져도 되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