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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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빛나는 혼인계 “어떤 초상사진들의 기교보다 나는 여권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 전시대에 붙어 있는 증명사진이 훨씬 좋다. … 시적인 내용이 걸러진 다큐멘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카르티에 브레송) 1962년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전 국민이 재기에 안간힘을 쏟던 힘든 시기였다. 이 시대의 여성이나 어린아이들의 인권은 바닥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성들은 들에서 농사를 지어야 했고 대가족의 밥을 지어야 했고 출산과 육아는 덤으로 해야 했으며 시댁에서는 절대적 상하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라. 애조를 띤 채, 점잖고, 당당하고, 초연하고, 두렵고, 어린 표정의 여성 열 명은 혼인계의 회원들이고, 얼떨결에 따라온 소녀와 아직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는 어린 아들 하나가 함께한 모습이다. 단장을 하느라 양단저고리를 입고 있는데 간혹 무명저고리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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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잘 마시지는 못한다. 이를테면 막걸리 두 잔이면 취하는 주량인데도 모든 술을 가리지 않고 즐기는 애주가다. 커피 역시 좋아하는데 불면증 때문에 아침에 한 잔 정도로 만족한다. 나는 공동체문화를 지향하는 편이다. 그래서 사진 작업이나 내가 운영하는 공간은 공동체를 표방하며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공동체는 하루아침에 생성되는 것이 아니고 풍토와 기후와 정서가 충돌하고 융합하면서 끈끈한 연대를 이룰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제 그런 공동체는 실질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바깥세력에 의해서 점점 무너져가고 있다. 아니, 요즈음은 공동체라는 표현을 쓰는 것조차 어색해 진다고나 할까. 집단의 연대감이 너무 쉽게 뭉쳤다가 해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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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페이스 며칠 전 인감증명을 떼러 동사무소에 갔다.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사람들로 붐볐다. 담당 공무원은 지문 검사기에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라고 했다. 위아래 좌우로 돌려 봐도 지문이 일치하지 않는단다. 그렇게 열 손가락을 들고 씨름을 하고 나서야 물휴지로 지문을 닦아 보라고 하더니 간신히 엄지 지문이 통과되었다. 하마터면 나를 ‘증명’할 방법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우연히 나무의 표면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나무의 종류마다 크게 차이가 있었으며 같은 종류라도 조금씩 서로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의 피부도 그러지 않겠는가. 인종과 나이와 성별과 신분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피부는 물체의 표면을 감싸고 있는데 그 표면이란 사회와 풍파에 맞서 싸워야 하는 부분이다. 인간 세상사도 바깥의 낮은 계층부터 먼저 충돌하고 소멸한다. 나의 지문도 바깥세상과 싸우다가 나를 먼저 떠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민등록증을 갱신한 지가 20년 가까이 지났는데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의 주름진 얼굴이 이러할 때 지문인들 온전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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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가파도의 지붕 제주도 남단의 마라도나 우도에 비해 가파도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이다. 제주도에서 배로 10여분이면 닿는 거리지만 내 생각엔 아마존만큼이나 멀고 신비한 곳으로 여겨졌다. 섬을 자주 찾아다니지 않아서일 것이다. 젊은 시절에 배 멀미를 심하게 한 경험 탓도 있지만 섬은 갇혀 있는 공간이란 인식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매일 움직이고 있는 나의 공간은 참으로 협소하고 한정적이면서도 섬을 갇힌 공간으로 여기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우습기 짝이 없다. 어느새 가파도에도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있었다. 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난 후 저녁 들판에는 휘파람소리 같은 것이 지나가고 있었다. 축구장 크기만 한 섬에서 들판이라며 눈을 주다가 마주치는 곳이 바다이기에 청보리와 갯무밭의 낮은 언덕에서 바람 소리가 그렇게 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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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보리밭에 부는 바람 어느 건축가의 말에 따르면 미래의 건축은 땅에 지지대만 세운 채 높은 공중에서 살도록 설계되며, 아파트만 한 크기의 건물도 이동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땅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가 매우 비싸지만 아파트 때문에 분신자살한 사람도 없고 그럴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경남 밀양의 시골마을에서는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서 다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들이 있다. 자기네 터를 지키기 위해서 주민들이 목숨 걸며 십여 년이 훨씬 넘게 싸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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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갯무꽃 갯무꽃은 제주도의 들판과 오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무꽃이다. 개(갯)자가 들어가는 식물로는 개복숭아와 개살구, 개망초 등이 있다. 말 앞에 붙은 개(갯)의 의미는 본래 성질에서 벗어난, 즉 쓸모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 쓸모와는 상관없이 이것들이 피워내는 꽃은 더 화려하고 아름답다. 궁핍했던 시절에 붙은 이름들이지만 이제는 이것들의 야생성이 더 각광을 받는다. 많은 관광객들이 4~5월이면 갯무꽃을 보러 찾아간다. 사진가인 한 젊은 처자가 가파도라는 작은 섬에 들어가서 해녀가 되어 살고 있다. 지난해에는 어촌계장까지 맡은 자격증 있는 해녀이기도 하다. 처음 몇 해는 젊은이의 객기이거나 사진의 소재를 얻기 위한 일일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10년 가까운 시간을 해녀 할망들과 함께 물질을 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배로 10분 거리이지만 제주도 사람들조차 ‘가파도?’ 하면서 낯설어한단다. 면적이 약 0.84㎢로 부두에서 남쪽 끝으로 20분이면 걸어서 닫는 거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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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어떤 지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주변에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럴 땐 ‘세상일이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몇 번이나 마음을 다스려보지만 그래도 안 될 때는 ‘에잇, 못된 것들!’ 하고 돌이라도 던져보고 싶어진다. 상대가 꼭 맞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기보다는 내 마음을 위로하는 최소한의 분풀이다. 그런데 이 돌을 던지는 일이 점차 단순한 분풀이를 넘어서 정의와 공정과 자유를 위한 처절한 저항이 되기도 한다. 민중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수단으로 불의에 맞서 싸워왔던 수많은 돌팔매질이 있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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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응시 몇해 전에 ‘삼천 원의 식사’ 전시를 했는데, 서민들이 값싼 가격으로 쉽게 사고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나 생필품을 가게 주인과 함께 찍은 사진전이었다. 한 젊은 사진가가 말하기를 ‘자기는 여태까지 식당에 들어가서 주인이 내놓는 음식만 보았지 사람의 얼굴을 잘 보지 않았다’고 했다. 이 고백에는 자기가 필요한 것은 음식이었지 사람이 아니었고 타인과의 멋쩍은 응시는 그만큼 불편했다는 의미가 동시에 들어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식당 분위기나 주인과 종업원의 인상도 살피고 주방 속까지 훑어보면서 뭔가 더한 친숙함을 만들어 내고자 했던 옛날 사람들의 습관이 떠오르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요즈음이다 보니 얼굴을 자세히 볼 수도 없거니와 사람의 눈을 바로 쳐다볼 일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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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존재의 순환 이원철 사진가는 존재의 순환(Circle of Being)이라는 연작을 통해서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 왕릉과 나무의 밤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능이라고 하지만 무섭지 않고 오히려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둔덕은 그 자체가 어떤 목적물이 아니라 바로 자연인 것같이 오묘하고 신비로움마저 느끼게 된다. 보편적이지 않은 것, 일테면 보통사람들의 무덤처럼 한시적이거나 주관적이 아닌 것들은 슬픔이나 고통보다는 흥미의 대상이 된다. 객관적인 역사로 관리되어 유물이나 사료로서 인정을 받기에 그렇다. 무덤이 바라보이는 아파트는 살기 싫어하지만 왕릉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것을 낭만으로 생각한다. 다른 나라 묘지들처럼 을씨년스럽지도 않고 밝은 곳에 있어 자연과 잘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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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새벽 라면 우리 동네 죽림집에서 끓여주는 뚝배기라면은 2500원이었는데 다른 곳에 비해 싸고 맛있었다. 깍두기와 배추김치는 덤으로 나왔다. 막걸리에 밑반찬을 푸짐하게 주는 선술집 할머니는 무릎 관절염 수술을 받은 뒤 문을 닫고 말았다. 늦게 겨우 잠이 들었는데 새벽 3시에 눈이 떠지면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안 올 때는 어둡고 칙칙한 생각들이 비집고 들어선다.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뭘 좀 먹어볼까 생각했다. 술꾼도 아닌데 얼큰한 해장국 생각이 났다. 라면 반 개에 시큼한 깍두기 국물을 넣고 끓이니 제법 시원하다. 새벽에 먹은 라면이 의외로 맛있다. 불현듯 한겨울에 길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누가 이런 따뜻한 음식을 주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아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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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Me Escape 정윤순의 사진은 너무나 절실한 울림이 있어서 무언가 꼭 대답을 해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수년 전 교통사고로 6개월여를 병원에 입원했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매년 몇 개월씩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 병원이란 시스템 속에서 보호받고 있으니 유배나 수감생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환자에게는 격리생활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는 20년 넘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교통사고 이전에는 아름다운 풍광을 담는 사진에 익숙해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그 지긋지긋한 병원 침대를 홍수 뒤의 서해바다로 끌고 나온 것이다. 끌고 나온 것은 침대만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까지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Me, Escape’는 ‘나는 탈출하고 싶다’일까, ‘나로부터 탈출하고 싶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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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역사는 길 위에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실적인 정보를 얻기 위한 끈질긴 노력이다. 돈벌이가 되는 일이 아니니 현실적으로 쉬운 일도 아니다. 이재갑은 일제강점기 일본 규슈지역 조선인 강제동원의 흔적을 찾아서 길을 나섰다. 책 서문에서 ‘한국 근현대사에 기초한 역사와 사실을 바탕으로, 과거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변모한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박제된 과거 역사로 남겨두지 않고 현재 시점에서 되살리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가 현장을 다시 찾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에게 살아 있는 역사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자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