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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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Fine Dust 1960년대는 고학력자들이 서독에 광부로, 간호사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고 있던 때였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그룹 미팅이라는 것을 처음 나갔는데 군대를 제대하고 복귀한 아저씨 같은 대학생이 섞여 있었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그는 어눌한 어조로 ‘환경 연구’를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가 결국 그가 딱하게 여겨졌다.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그런 일을 한다고 할까? 아무튼 그의 얼굴은 잊었지만 그때 들었던 그 생경한 단어 ‘환경’이라는 말이 이렇게 빨리 절망스러운 화두가 될 줄은 몰랐다. 당시에는 의식주만 해결되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겠다 싶은 시대였다. 이제 환경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위협적인 요소의 근원이 되고 있다. -
따뜻한 그늘 골목길 아파트가 선호의 대상이 되면서 골목길은 동네의 풍경 안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심지어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시작한 도시재생 사업이 빠른 시간에 성과를 이루려는 생각 때문에 옛 골목의 정서와 시간을 지워버리는 경우가 있다. 낡은 마을에 예술가들이 정착하게 되는 것은 좀 남루하더라도 옛 흔적이 남아 있는 것에서 의미를 찾으며 비교적 집값이 싸기 때문이다. 삶의 흔적을 하나둘 복원해 나가면서 주민들과 부딪치기도 하고 화합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다보면 어느새 소문이 나서 관광지로 변하고 집값은 오른다. -
따뜻한 그늘 자두꽃 배시시 웃는 것이 아니라 화들짝, 그러나 소란스럽지 않게 뒷산을 환희 밝혀주는 자두꽃이 있는 과수원 쪽으로 들어섰다. 길이 난 곳이 아니라서 덤불을 헤쳐가며 아침 꽃향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자리한 동물원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드림랜드가 들어서면서 주말에는 바이킹이나 청룡열차를 타면서 ‘캬악- 캬악-’ 하는 함성소리가 이 작은 과수원 마을의 지붕 위로 퍼져오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기괴한 소음에 속하는 것이지만 곧이어 산 위로 골짜기 아래로 사라지고 말 것이기에 마을 사람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
따뜻한 그늘 빛나는 혼인계 “어떤 초상사진들의 기교보다 나는 여권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 전시대에 붙어 있는 증명사진이 훨씬 좋다. … 시적인 내용이 걸러진 다큐멘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카르티에 브레송) 1962년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전 국민이 재기에 안간힘을 쏟던 힘든 시기였다. 이 시대의 여성이나 어린아이들의 인권은 바닥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성들은 들에서 농사를 지어야 했고 대가족의 밥을 지어야 했고 출산과 육아는 덤으로 해야 했으며 시댁에서는 절대적 상하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
따뜻한 그늘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잘 마시지는 못한다. 이를테면 막걸리 두 잔이면 취하는 주량인데도 모든 술을 가리지 않고 즐기는 애주가다. 커피 역시 좋아하는데 불면증 때문에 아침에 한 잔 정도로 만족한다. 나는 공동체문화를 지향하는 편이다. 그래서 사진 작업이나 내가 운영하는 공간은 공동체를 표방하며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공동체는 하루아침에 생성되는 것이 아니고 풍토와 기후와 정서가 충돌하고 융합하면서 끈끈한 연대를 이룰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제 그런 공동체는 실질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바깥세력에 의해서 점점 무너져가고 있다. 아니, 요즈음은 공동체라는 표현을 쓰는 것조차 어색해 진다고나 할까. 집단의 연대감이 너무 쉽게 뭉쳤다가 해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
따뜻한 그늘 페이스 며칠 전 인감증명을 떼러 동사무소에 갔다.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사람들로 붐볐다. 담당 공무원은 지문 검사기에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라고 했다. 위아래 좌우로 돌려 봐도 지문이 일치하지 않는단다. 그렇게 열 손가락을 들고 씨름을 하고 나서야 물휴지로 지문을 닦아 보라고 하더니 간신히 엄지 지문이 통과되었다. 하마터면 나를 ‘증명’할 방법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따뜻한 그늘 가파도의 지붕 제주도 남단의 마라도나 우도에 비해 가파도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이다. 제주도에서 배로 10여분이면 닿는 거리지만 내 생각엔 아마존만큼이나 멀고 신비한 곳으로 여겨졌다. 섬을 자주 찾아다니지 않아서일 것이다. 젊은 시절에 배 멀미를 심하게 한 경험 탓도 있지만 섬은 갇혀 있는 공간이란 인식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매일 움직이고 있는 나의 공간은 참으로 협소하고 한정적이면서도 섬을 갇힌 공간으로 여기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우습기 짝이 없다. -
따뜻한 그늘 보리밭에 부는 바람 어느 건축가의 말에 따르면 미래의 건축은 땅에 지지대만 세운 채 높은 공중에서 살도록 설계되며, 아파트만 한 크기의 건물도 이동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땅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가 매우 비싸지만 아파트 때문에 분신자살한 사람도 없고 그럴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경남 밀양의 시골마을에서는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서 다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들이 있다. 자기네 터를 지키기 위해서 주민들이 목숨 걸며 십여 년이 훨씬 넘게 싸워왔다. -
따뜻한 그늘 갯무꽃 갯무꽃은 제주도의 들판과 오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무꽃이다. 개(갯)자가 들어가는 식물로는 개복숭아와 개살구, 개망초 등이 있다. 말 앞에 붙은 개(갯)의 의미는 본래 성질에서 벗어난, 즉 쓸모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 쓸모와는 상관없이 이것들이 피워내는 꽃은 더 화려하고 아름답다. 궁핍했던 시절에 붙은 이름들이지만 이제는 이것들의 야생성이 더 각광을 받는다. 많은 관광객들이 4~5월이면 갯무꽃을 보러 찾아간다. -
따뜻한 그늘 어떤 지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주변에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럴 땐 ‘세상일이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몇 번이나 마음을 다스려보지만 그래도 안 될 때는 ‘에잇, 못된 것들!’ 하고 돌이라도 던져보고 싶어진다. 상대가 꼭 맞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기보다는 내 마음을 위로하는 최소한의 분풀이다. 그런데 이 돌을 던지는 일이 점차 단순한 분풀이를 넘어서 정의와 공정과 자유를 위한 처절한 저항이 되기도 한다. 민중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수단으로 불의에 맞서 싸워왔던 수많은 돌팔매질이 있었지 않은가. -
따뜻한 그늘 응시 몇해 전에 ‘삼천 원의 식사’ 전시를 했는데, 서민들이 값싼 가격으로 쉽게 사고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나 생필품을 가게 주인과 함께 찍은 사진전이었다. 한 젊은 사진가가 말하기를 ‘자기는 여태까지 식당에 들어가서 주인이 내놓는 음식만 보았지 사람의 얼굴을 잘 보지 않았다’고 했다. 이 고백에는 자기가 필요한 것은 음식이었지 사람이 아니었고 타인과의 멋쩍은 응시는 그만큼 불편했다는 의미가 동시에 들어있다. -
따뜻한 그늘 존재의 순환 이원철 사진가는 존재의 순환(Circle of Being)이라는 연작을 통해서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 왕릉과 나무의 밤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능이라고 하지만 무섭지 않고 오히려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둔덕은 그 자체가 어떤 목적물이 아니라 바로 자연인 것같이 오묘하고 신비로움마저 느끼게 된다. 보편적이지 않은 것, 일테면 보통사람들의 무덤처럼 한시적이거나 주관적이 아닌 것들은 슬픔이나 고통보다는 흥미의 대상이 된다. 객관적인 역사로 관리되어 유물이나 사료로서 인정을 받기에 그렇다. 무덤이 바라보이는 아파트는 살기 싫어하지만 왕릉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것을 낭만으로 생각한다. 다른 나라 묘지들처럼 을씨년스럽지도 않고 밝은 곳에 있어 자연과 잘 어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