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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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새벽 라면 우리 동네 죽림집에서 끓여주는 뚝배기라면은 2500원이었는데 다른 곳에 비해 싸고 맛있었다. 깍두기와 배추김치는 덤으로 나왔다. 막걸리에 밑반찬을 푸짐하게 주는 선술집 할머니는 무릎 관절염 수술을 받은 뒤 문을 닫고 말았다. 늦게 겨우 잠이 들었는데 새벽 3시에 눈이 떠지면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안 올 때는 어둡고 칙칙한 생각들이 비집고 들어선다.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뭘 좀 먹어볼까 생각했다. 술꾼도 아닌데 얼큰한 해장국 생각이 났다. 라면 반 개에 시큼한 깍두기 국물을 넣고 끓이니 제법 시원하다. 새벽에 먹은 라면이 의외로 맛있다. 불현듯 한겨울에 길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누가 이런 따뜻한 음식을 주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아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
따뜻한 그늘 Me Escape 정윤순의 사진은 너무나 절실한 울림이 있어서 무언가 꼭 대답을 해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수년 전 교통사고로 6개월여를 병원에 입원했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매년 몇 개월씩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 병원이란 시스템 속에서 보호받고 있으니 유배나 수감생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환자에게는 격리생활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는 20년 넘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교통사고 이전에는 아름다운 풍광을 담는 사진에 익숙해 있었다고 한다. -
따뜻한 그늘 역사는 길 위에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실적인 정보를 얻기 위한 끈질긴 노력이다. 돈벌이가 되는 일이 아니니 현실적으로 쉬운 일도 아니다. 이재갑은 일제강점기 일본 규슈지역 조선인 강제동원의 흔적을 찾아서 길을 나섰다. 책 서문에서 ‘한국 근현대사에 기초한 역사와 사실을 바탕으로, 과거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변모한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박제된 과거 역사로 남겨두지 않고 현재 시점에서 되살리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가 현장을 다시 찾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에게 살아 있는 역사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자청한 것이다. -
따뜻한 그늘 장항부두 금강 하굿둑을 지나서 장항으로 들어서면 맨 먼저 장항제련소가 눈에 들어온다.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일제강점기 때 설립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한국 근대산업을 이끌어 온 종합비철금속제련소는 장항의 경제적 부침을 한눈에 보여주는 듯하다. 장항에서 민속을 기록하고 민간기록물을 수집하는 지역 연구자의 안내로 장항제련소 뒤쪽에 있는 장항 신항으로 갔다. 그날은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닷바람은 어찌나 칼날 같은지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그곳에는 붉은 망사 스타킹 같은 대형 그물이 바닥에 널려있고 외국인 노동자 서너 명이 그물을 수선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물코를 꿰고 있었다. 이들이 칼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것은 고국에 두고 온 가족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 우리에게도 고학력자들이 외국으로 나가서 가족들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했던 아픈 기억이 있지 않은가. -
따뜻한 그늘 꽃무늬 커튼 장롱 속에 오래된 이불이 맨 아래층에 깔려 있었다. 무거운 솜을 감싸고 있는 것은 알록달록한 나일론 합성 천이었고 이불 홑청은 옥양목에 작은 꽃무늬가 있는 것이었다. 이불은 버리고 홑청은 남겨두었다. 천에는 가끔 다듬잇방망이에 엇맞아 구멍이 난 곳도 있었다. 옥양목은 투박한 무명보다 발이 가늘어 인기가 있었는데 거기에 멋을 내느라 꽃무늬까지 새겨둔 것이다. 면이나 모시는 천연섬유이기 때문에 빨아서 다리는 것보다 풀을 먹여서 발로 밟거나 다듬이질을 해야 윤이 났다. 밤낮으로 여성의 노고가 더 많이 요구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
따뜻한 그늘 꽈배기 돈이 있어야 남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부자가 되어서 남을 돕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없는 푸짐보다 있는 가난이 더 났다’고 우리 할아버지도 말씀하시곤 했다. 돈 씀씀이가 헤픈 자식에 대한 경고 같은 것이었다. 가난뱅이가 누구를 도와 봤자 몇 푼이나 되겠느냐, 부자가 조금이나마 선심을 쓰면 그 액수가 많다는 뜻일 것이다. -
따뜻한 그늘 밤의 집 집이라는 개념이 아파트로 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단독주택’이라고 하면 특별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나, 가난한 서민이 사는 집을 연상하게 된다. 대개의 단독주택들은 무채색이다. 원도심의 숨통을 막아 놓고 고사시키는 도시의 변화를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원주민을 몰아내고 점령한 신대륙 정복자들처럼 거드름을 피우는 고층 아파트를 대비시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가들은 밤에 사진을 찍기도 한다. -
따뜻한 그늘 단풍나무와 어우러진 참나무 매일 변해가는 단풍잎의 빛깔을 바라보면서 나는 주로 오후에 산책을 한다. 해가 지면서 석양빛이 내리면 단풍잎이 투명한 색으로 변하며 붉은 루비처럼 반짝인다. 낙엽이 쌓여 신발이 푹푹 빠지는 숲길을 헤매다가 단풍으로 곱게 물든 큰 나무가 아름다워 사진을 찍었다. 거의 매년 이맘때면 늘 해오던 일이었다. 당연히 단풍나무인 줄 알고 나무 주변을 맴돌며 셔터를 누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키가 크고 우람한 참나무였다. 갈색 마른 잎이 아름다운 색깔로 물든 단풍잎으로 보였던 것은 참나무 주변을 단풍나무들이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
따뜻한 그늘 기도 ‘어머니, 오늘은 우리의 휴일, 토요일입니다./ 어머니, 일을 그만두십시오./ 여기 창가에 앉아 동화 속의 테판타르 사막이 어디인가 말해주세요.’(타고르, ‘유적의 땅’)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영원한 회귀 본능의 근원인 어머니에게 휴식을 권유하며, 그 어머니로부터 들은 테판타르 사막이 어디 있는지를 묻는다. 시원(始原)이며 죽음을 잉태한 이에게 순간이며 영원한 곳, 영광과 상처의 땅 테판타르를 묻는다. -
따뜻한 그늘 구도심 구도심이냐 신시가지냐에 따라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차이를 드러낸다. 구도심에는 주로 낡은 주택과 관공서가 있다. 관공서마저 떠나 버리면 그야말로 맥 빠진 곳이 되어버릴 것이다. 낡고 초라한 건물들 사이로 작은 골목이 이어지고, 그곳에는 이발소와 슈퍼와 색소폰 학원과 당구장이 보인다. 색소폰 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고 당구장에는 동네 노인들이 100원 내기 당구 치는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다. -
따뜻한 그늘 다큐멘터리 사진가 쿠바를 말할 때마다 낭만적이게도 불운의 혁명가 체 게바라와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떠올린다. 영화에 나오는 아프리카풍의 타악기와 노장들의 블루지한 음악이 주는 감동은 오랫동안 우리 가슴속에 남아 있다.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지배, 공산주의 혁명과 내전, 미국의 봉쇄와 적대정책, 부패한 관료들로 인한 빈부격차가 뒤섞여 얼룩져 있는 나라다. 지금도 미국과의 관계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고 국민들은 나라를 등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압박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주권을 지켜가면서 인종주의 철폐, 여성해방, 문맹추방 등 문화 수준에서 앞선 지향점을 가진 국민들이기에 이 나라가 안전하게 유지되기를 바란다. -
따뜻한 그늘 화물 운송 골목 안에 있는 전시장은 매번 작품 운반 때문에 애를 먹는다. 자동차가 들어왔다가 후진해서 나갈 수는 있지만 동네 어르신들이 싫어하는 일이어서 손수레로 운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품이 크면 애를 먹게 된다. 골목 길이는 200m 정도다. 그런데 며칠 전 시에서 갑자기 골목 바닥 교체를 한다고 굴삭기가 들어와서 공사를 시작했다. 주택가 골목의 멀쩡한 길바닥 교체가 왜 필요할까? 골목 입구에 현수막을 하나 걸어놓은 채 내용을 주민에게 알리지도 않고 길바닥을 파헤쳐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