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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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장항부두 금강 하굿둑을 지나서 장항으로 들어서면 맨 먼저 장항제련소가 눈에 들어온다.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일제강점기 때 설립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한국 근대산업을 이끌어 온 종합비철금속제련소는 장항의 경제적 부침을 한눈에 보여주는 듯하다. 장항에서 민속을 기록하고 민간기록물을 수집하는 지역 연구자의 안내로 장항제련소 뒤쪽에 있는 장항 신항으로 갔다. 그날은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닷바람은 어찌나 칼날 같은지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그곳에는 붉은 망사 스타킹 같은 대형 그물이 바닥에 널려있고 외국인 노동자 서너 명이 그물을 수선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물코를 꿰고 있었다. 이들이 칼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것은 고국에 두고 온 가족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 우리에게도 고학력자들이 외국으로 나가서 가족들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했던 아픈 기억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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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꽃무늬 커튼 장롱 속에 오래된 이불이 맨 아래층에 깔려 있었다. 무거운 솜을 감싸고 있는 것은 알록달록한 나일론 합성 천이었고 이불 홑청은 옥양목에 작은 꽃무늬가 있는 것이었다. 이불은 버리고 홑청은 남겨두었다. 천에는 가끔 다듬잇방망이에 엇맞아 구멍이 난 곳도 있었다. 옥양목은 투박한 무명보다 발이 가늘어 인기가 있었는데 거기에 멋을 내느라 꽃무늬까지 새겨둔 것이다. 면이나 모시는 천연섬유이기 때문에 빨아서 다리는 것보다 풀을 먹여서 발로 밟거나 다듬이질을 해야 윤이 났다. 밤낮으로 여성의 노고가 더 많이 요구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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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꽈배기 돈이 있어야 남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부자가 되어서 남을 돕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없는 푸짐보다 있는 가난이 더 났다’고 우리 할아버지도 말씀하시곤 했다. 돈 씀씀이가 헤픈 자식에 대한 경고 같은 것이었다. 가난뱅이가 누구를 도와 봤자 몇 푼이나 되겠느냐, 부자가 조금이나마 선심을 쓰면 그 액수가 많다는 뜻일 것이다.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가 길모퉁이에서 비닐 천막을 치고 꽈배기를 파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할머니 한 분이 꽈배기를 드시고 계셨다. “어서 하나 더 드시고 가세요.” 주인아주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할머니는 동네 분인 것 같은데 자나가다가 주인의 권유로 시식을 하는 중이었다. 내가 잠시 안을 들여다보자 “이것 하나 드시고 가세요. 안 사도 돼요” 하면서 꽈배기 하나를 집어준다. 나는 주저하다가 받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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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밤의 집 집이라는 개념이 아파트로 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단독주택’이라고 하면 특별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나, 가난한 서민이 사는 집을 연상하게 된다. 대개의 단독주택들은 무채색이다. 원도심의 숨통을 막아 놓고 고사시키는 도시의 변화를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원주민을 몰아내고 점령한 신대륙 정복자들처럼 거드름을 피우는 고층 아파트를 대비시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가들은 밤에 사진을 찍기도 한다. 낡은 주택가의 밤 풍경은 낮에 보이는 누추하고 볼품없는 것들로부터 자유롭다. 낡은 주택이 지닌 시간 속에는 인간의 사랑과 연민의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가로등이 비추는 골목 주택가의 모습은 침입자 혹은 탐색자에게 조금의 힌트를 준다. 지금 필사적으로 살고 싶어 하는 아파트 이전의 집이야말로 공동체의 미덕과 가족들의 희생과 배려가 담긴 곳으로 오늘날 번영의 기틀이 된 곳이라는 것을. 지금은 도시 어느 곳에 이런 집이 남아 있으면 그곳을 뭉개서 도시 전체를 아파트화해 버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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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단풍나무와 어우러진 참나무 매일 변해가는 단풍잎의 빛깔을 바라보면서 나는 주로 오후에 산책을 한다. 해가 지면서 석양빛이 내리면 단풍잎이 투명한 색으로 변하며 붉은 루비처럼 반짝인다. 낙엽이 쌓여 신발이 푹푹 빠지는 숲길을 헤매다가 단풍으로 곱게 물든 큰 나무가 아름다워 사진을 찍었다. 거의 매년 이맘때면 늘 해오던 일이었다. 당연히 단풍나무인 줄 알고 나무 주변을 맴돌며 셔터를 누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키가 크고 우람한 참나무였다. 갈색 마른 잎이 아름다운 색깔로 물든 단풍잎으로 보였던 것은 참나무 주변을 단풍나무들이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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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기도 ‘어머니, 오늘은 우리의 휴일, 토요일입니다./ 어머니, 일을 그만두십시오./ 여기 창가에 앉아 동화 속의 테판타르 사막이 어디인가 말해주세요.’(타고르, ‘유적의 땅’)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영원한 회귀 본능의 근원인 어머니에게 휴식을 권유하며, 그 어머니로부터 들은 테판타르 사막이 어디 있는지를 묻는다. 시원(始原)이며 죽음을 잉태한 이에게 순간이며 영원한 곳, 영광과 상처의 땅 테판타르를 묻는다. 김명점은 소녀 시절에 타고르의 시를 읽고 인도를 동경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가봐야 할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인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작가가 찾아가게 된 때는 인생의 중반기에 들어서서였다. 세상은 시처럼 살 수 없고, 시만 가지고도 살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였다고 한다. 어떤 느낌이었는지 작가에게 묻자 “제가 생각했던 그대로였어요. 그곳은 무한한 물질적 욕망이 치솟는 곳인가 하면, 자아를 던지고 순간보다 영원을 생각하며 맹목적인 헌신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같았어요”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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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구도심 구도심이냐 신시가지냐에 따라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차이를 드러낸다. 구도심에는 주로 낡은 주택과 관공서가 있다. 관공서마저 떠나 버리면 그야말로 맥 빠진 곳이 되어버릴 것이다. 낡고 초라한 건물들 사이로 작은 골목이 이어지고, 그곳에는 이발소와 슈퍼와 색소폰 학원과 당구장이 보인다. 색소폰 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고 당구장에는 동네 노인들이 100원 내기 당구 치는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다. 대부분 노인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것으로 알고 있는 구도심에는 그래도 사람 사는 모습이 남아 있다. 콩나물 국밥집 입구에는 작은 화단이 붙어 있고, 때로는 채송화나 봉숭아 모종을 나누어 가기도 한다. 어쩌다 보니 버스 종점에 젊은이가 차린 커피 로스팅 가게가 들어서 있다. 그 집이 눈에 뜨일 정도로 주변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하나둘씩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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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다큐멘터리 사진가 쿠바를 말할 때마다 낭만적이게도 불운의 혁명가 체 게바라와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떠올린다. 영화에 나오는 아프리카풍의 타악기와 노장들의 블루지한 음악이 주는 감동은 오랫동안 우리 가슴속에 남아 있다.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지배, 공산주의 혁명과 내전, 미국의 봉쇄와 적대정책, 부패한 관료들로 인한 빈부격차가 뒤섞여 얼룩져 있는 나라다. 지금도 미국과의 관계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고 국민들은 나라를 등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압박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주권을 지켜가면서 인종주의 철폐, 여성해방, 문맹추방 등 문화 수준에서 앞선 지향점을 가진 국민들이기에 이 나라가 안전하게 유지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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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화물 운송 골목 안에 있는 전시장은 매번 작품 운반 때문에 애를 먹는다. 자동차가 들어왔다가 후진해서 나갈 수는 있지만 동네 어르신들이 싫어하는 일이어서 손수레로 운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품이 크면 애를 먹게 된다. 골목 길이는 200m 정도다. 그런데 며칠 전 시에서 갑자기 골목 바닥 교체를 한다고 굴삭기가 들어와서 공사를 시작했다. 주택가 골목의 멀쩡한 길바닥 교체가 왜 필요할까? 골목 입구에 현수막을 하나 걸어놓은 채 내용을 주민에게 알리지도 않고 길바닥을 파헤쳐놓았다. 이 때문에 전시장은 사람이 다니기 힘들어서 며칠 관람객을 받지 못했다. 오늘은 작품을 서울로 철수해가는 날인데 비가 쏟아졌다. 일산에서 내려왔다는 화물차는 부부가 타고 왔다. 골목길이 질퍽하니 손수레를 쓸 수도 없어서 작품을 비닐에 싸서 나르게 되었다. 젊지 않은 부부는 힘들어하는 내색 없이 왔다 갔다 수차례를 했다. 대개의 화물차 기사분들은 골목길 운송을 꺼려서 요금을 더 얹어 주지만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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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영산강 우리나라의 4대 강에 속하는 영산강은 전남 담양군 병풍산을 시원(始元)으로 장성, 광주, 나주, 영산포, 함평 등을 거쳐 서해바다에 이른다. 강이 흘러가는 지역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부르기도 한다. 장성에서는 황룡강, 광주에서는 광주천, 나주에서는 지석천, 함평에서는 함평천 등으로 불리어 그 지역 사람들에겐 영산강이라는 이름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다. 나도 고향을 떠나온 이후 오랫동안 영산강이란 이름을 잊고 살았다. 최근에서야 어머니를 통해 내가 광주천 옆에서 태어나 거기에서 한국동란을 겪었고 세 살 때 평야 깊숙한 작은 동네로 이사 갔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각별한 애정을 남긴 할머니는 나의 유년기에 돌아가셨다. 긴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찾아갔더니 내가 태어난 곳은 강이 넓혀지고 새 다리가 만들어지면서 언덕으로 내려앉아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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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무덤 위에 깃든 고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들이 있다. 뱀이나 쥐 등이다. 어떤 이는 새가 무섭다고도 한다. 무덤 또한 피하고 싶어 한다. 한동안 무덤을 찍으러 전국의 야산을 오르락내리락하던 때가 있었다. ‘죽음은 무엇인가?’ 하는 따위의 철학적인 명제가 아니라 무덤이 삶의 주변과 자연에서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 따뜻한 봄날에 등을 기대고 눕는다거나, 미끄럼을 타던 날들 속에 있던 묘지는 자연의 일부였다. 작은 반원형의 둔덕에 죽음은 없었다. 열 살 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죽음의 실체는 없었다. 떠들썩한 장례식과 행렬이 있었다. 죽음이 그렇게 가버리고 나면 긴 시간 그리움만 남는다. 지금도 나는 반원형의 묘지에서 돋아나는 새순과 뜨거운 여름날 살짝살짝 드리우는 나무 그늘과 싸락눈이 내리는 풍경 앞에서 종종 서 있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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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검은 입 들개 권도연 작가의 북한산 봉우리에 서 있는 들개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무엇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움칫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무심했던 어떤 감정이 나의 촉각을 세우게 했을까? 북한산이 가진 특징 중의 하나는 단아하면서도 우람하고 고집스러운 봉우리들이다. 정복하기는 쉽지만 마음을 쉽게 내주지 않는 냉엄함이 웅크리고 있다. 그 봉우리 위에서 사람이 사는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검은 주둥이의 들개가 서 있다. 그런 개들은 동네가 사라지면서 갈 곳이 없어졌거나, 사람의 변심으로 버림받은 유기견이다. 무심함이 특징인 길고양이들을 챙기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데, 야성의 본성을 가진 개들은 산으로 들어가서 먹을 것을 해결하게 된다.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 사고를 당하는 일이 생기면서 개의 목에 끈을 매야 하고 큰 개는 입마개를 해야 거리를 다닐 수 있다. 그동안 개가 인간에게 얼마나 충성스러운 동물이었는지가 강조되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나의 외로움과 사랑’을 선택받는 특별한 감정을 교감하는 동물이어야 한다. 이미 들개가 되어버린 짐승은 공포와 포획의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