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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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영산강 우리나라의 4대 강에 속하는 영산강은 전남 담양군 병풍산을 시원(始元)으로 장성, 광주, 나주, 영산포, 함평 등을 거쳐 서해바다에 이른다. 강이 흘러가는 지역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부르기도 한다. 장성에서는 황룡강, 광주에서는 광주천, 나주에서는 지석천, 함평에서는 함평천 등으로 불리어 그 지역 사람들에겐 영산강이라는 이름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다. 나도 고향을 떠나온 이후 오랫동안 영산강이란 이름을 잊고 살았다. -
따뜻한 그늘 무덤 위에 깃든 고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들이 있다. 뱀이나 쥐 등이다. 어떤 이는 새가 무섭다고도 한다. 무덤 또한 피하고 싶어 한다. 한동안 무덤을 찍으러 전국의 야산을 오르락내리락하던 때가 있었다. ‘죽음은 무엇인가?’ 하는 따위의 철학적인 명제가 아니라 무덤이 삶의 주변과 자연에서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 따뜻한 봄날에 등을 기대고 눕는다거나, 미끄럼을 타던 날들 속에 있던 묘지는 자연의 일부였다. 작은 반원형의 둔덕에 죽음은 없었다. -
따뜻한 그늘 검은 입 들개 권도연 작가의 북한산 봉우리에 서 있는 들개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무엇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움칫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무심했던 어떤 감정이 나의 촉각을 세우게 했을까? 북한산이 가진 특징 중의 하나는 단아하면서도 우람하고 고집스러운 봉우리들이다. 정복하기는 쉽지만 마음을 쉽게 내주지 않는 냉엄함이 웅크리고 있다. 그 봉우리 위에서 사람이 사는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검은 주둥이의 들개가 서 있다. 그런 개들은 동네가 사라지면서 갈 곳이 없어졌거나, 사람의 변심으로 버림받은 유기견이다. 무심함이 특징인 길고양이들을 챙기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데, 야성의 본성을 가진 개들은 산으로 들어가서 먹을 것을 해결하게 된다.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 사고를 당하는 일이 생기면서 개의 목에 끈을 매야 하고 큰 개는 입마개를 해야 거리를 다닐 수 있다. 그동안 개가 인간에게 얼마나 충성스러운 동물이었는지가 강조되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나의 외로움과 사랑’을 선택받는 특별한 감정을 교감하는 동물이어야 한다. 이미 들개가 되어버린 짐승은 공포와 포획의 대상이 되었다. -
따뜻한 그늘 상경 올해는 코로나19에 잔병치레까지 하느라 서울 나들이가 힘들었다. 모처럼 기차를 타고 가는데 들녘의 벼가 노란빛을 띠기 시작했다. 밭에 들깨 말리는 모습이 지나가고, 잡초가 무성한 빈집의 마당도 보였다. 서울로 가까이 갈수록 벼는 더 노란빛을 띠었다. 북쪽으로 갈수록 벼가 더 누렇다는 것은 추위를 대비해서 제 스스로가 서두르는 것이리라. -
따뜻한 그늘 이노우에 코지 2018년 여름에 한영수 선생(1933~1999)과 이노우에 코지 선생(1919~1993)의 작업을 이들의 2세대가 뜻을 같이해서 서울에서 전시를 기획하고자 하는 그룹에 끼어 후쿠오카에 가게 되었다. 일본 작가는 별로 친숙하지 않아서 스기모토 히로시나 구와바라 시세이를 아는 정도였다. 사진은 서양에서 왔기에 일본 사진가로부터 특별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특히나 해방 후 일본 사진에 별 관심이 없었다. 어쨌든 이제는 서양 사진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진에 주목을 하면서 일본 사진가들의 옛날 작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
따뜻한 그늘 넘어진다는 일 얼마 전에 인도를 걷다가 내 발에 걸려서 넘어졌다. 넘어지면 우선 주위부터 돌아보게 된다. 그 꼴을 누가 봤을까봐 창피해서다. 왜 아픈 것부터 신경을 쓰지 않고 남에게 창피할까봐 신경을 쓰는 것일까. 넘어지는 것을 보고 비웃거나 조롱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누구나 넘어질 수 있는 일인 것을. 유명인사가 넘어졌다면 인간의 약점을 바라보는 느낌이 있기는 할 것 같다. ‘나도 넘어지는데 당신도 넘어질 수 있군요’라는 생각 같은 것이다. 그러나 대단한 사람도 아닌 나 같은 사람이 넘어지는 것은 창피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낭패감을 느끼며 얼른 일어서서 걸었다. 집에 돌아와서 살펴보니 무릎이 까여 상처가 나고 팔꿈치와 손바닥은 피가 맺힌 채 부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는데 자고 나니 온몸이 쑤시고 욱신거렸다. 조금 덜 넘어지려고 팔과 다리에 힘을 쓴 것이다. -
따뜻한 그늘 알밤 벌써 알밤을 줍는 계절이 왔다. 가까운 산 초입에서 평소에는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숲길로 들어섰다. 철조망이 쳐 있는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묘지 하나가 보인다. 묘지는 철조망이 끝나는 곳에 밤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전망도 그런대로 훤하고 햇빛도 살짝살짝 비친다. 주변에 밤송이가 여기저기 수북했다. 할아버지 한 분이 검은 봉지와 막대기 하나를 들고 그 앞으로 지나갔다. 이미 여럿이 다 뒤지고 간 것이다. 그래도 밤나무 아래에는 한두 개쯤 숨어 있기 마련이다. 주변을 샅샅이 뒤져서 몇 개를 주웠다. 이래가지고서야 다람쥐는 뭘 먹고 살겠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긴 다람쥐는 숨겨놓고 잊어버려서 못 찾아 먹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밤이 싹이 트고 또 자라나보다. 돌아서려는데 밤송이가 툭 하고 떨어졌다. 예쁜 밤 두 개를 얻었다. 맘을 고쳐먹고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밤송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모처럼 멍 때리고 앉아 있는 시간이 좋았다. 잠시 후 이번에는 뒤쪽에서 가볍게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낙엽 사이에서 작은 밤 서너 개를 주었다. 밤 줍는 일은 여간 재미가 있는 게 아니다. 시장에서 한 되만 사도 충분히 먹지만 산에서 주운 알밤은 더 달고 맛있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산에 있는 알밤을 다 찾아 먹는 것은 동물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
따뜻한 그늘 GOD is LOVE 몇 해 전부터 매일 아침 8시에 성경 한 구절을 보내는 목사님이 있다. 그것을 읽는 날도 있고 무심히 지나가는 날도 있다. 목사님은 사진을 잘 찍는 분이어서 교회에서 열리는 전시에 다녀 온 적도 있다. 친정어머니를 비롯해서 형제들이 다 독실한 기독교인임에도 나는 무신론자에 속한다. 올케는 내 생일에 자기도 못 들고 다니는 비싼 성경책을 여러 번 보내곤 했다. -
녹색세상 대선 후보들, 강점을 보여줘 김연아,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버락 오바마, 타이거 우즈….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에게는 모두 코치가 있다. 코치는 흔히 스포츠 세계에서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요즘엔 성과를 높이기 위해 많은 기업이나 조직에서 경영자를 위한 코칭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코치’의 어원은 헝가리의 도시 코치(Kocs)에서 개발된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에서 유래했다는데, 코칭받는 사람과 코치 사이의 파트너십을 통해 개인은 물론 조직의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통상 코치들은 코칭받는 사람이 가진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고 강점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스타 플레이어의 코치가 바뀌었다는 것 자체가 뉴스가 되곤 한다. 그만큼 강점을 가려내고 상황에 맞게 발휘하게 해주는 코치의 역량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강점을 키우는 것과 약점을 보완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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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길 굽이굽이 강을 따라가다 보니 띄엄띄엄 인가가 보이고 늦여름 가로수 길의 벚나무 잎은 벌써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십여년 전에 정미소를 찍으러 다닐 때는 길은 좁았지만 버스 왕래도 많았고, 길가에 붙어 있던 동네가게 앞에는 사람들도 제법 모였다. 전북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정미소’ ‘이발소’ ‘근대화상회’ 등을 찍으러 다니느라고 이쪽 지방의 국도 변천사를 꿰고 있다. -
따뜻한 그늘 빅브러더 “요새도 이 짓을 해서 밥 먹고 사요?” 옆집 할아버지가 와서 묻는다. 시작할 때부터 잔뜩 의아심을 가진 얼굴로 찾아와 골목 안에서 전시장을 연다고 하니 어떻게 먹고사느냐고 걱정이었다. ‘자본주의 세상에’라는 말에 몇 번 강조가 들어가 있었다. 그이의 걱정만큼이나 어려운 시간이 10년 가까이 흐르면서 골목사람들과 나름 어울려 지내고 있는데, 오늘은 또 다른 일로 찾아오셨다. 지난번에 일본 작가 전시를 한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필시 건넛집 할아버지의 의견까지 덧붙여서 오신 것이리라. “일본 것 사지도 말고 일본 가지도 않는다고 안 허든가요? 그런디 일본 사람 전시를 혀요?” -
따뜻한 그늘 꼼뿌레샤 대도시는 정글 같아서 누가 더 높고 큰 건물을 많이 차지하느냐에 혈안이 되어 있는 곳이다. 사진가는 그 정글의 탐색자로서 역할을 한다. 그곳은 누가 얼마나 더 치열하게 파괴적이며 공격적인지 경쟁을 하는 곳이다. 누추한 집들을 뭉개버리고, 그곳에 콘크리트와 철근이 엮이면서 높은 건물이 세워진다. 어제의 천장이 오늘은 바닥이 되면서 위로 거침없이 솟아오른다. 그곳에 노동자들이 붙어서 일을 한다. 붙어서라는 어감이 좋지 않으나 노동자는 여전히 그런 여건에서 일을 한다. 85년 전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의 컨베이어 앞에서 쉴 새 없이 나사를 돌리는 노동자나 지금의 노동자나 입장이 별로 다를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