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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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정치 좀비, 바이러스, 그리고 백신 “당신들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었는가? 좀비, 좀비, 좀비…” 며칠 전 헌법재판소 최후변론을 했던 윤석열을 떠올렸겠지만, 사실은 30여년 전 아일랜드 록그룹 크랜베리스가 불렀던 ‘좀비’의 후렴구이다. 종교 갈등의 틈새를 비집고 폭탄과 총을 동원한 테러가 자행되던 아일랜드의 안타까운 역사를 노래했다. 마침내 1998년 4월10일 벨파스트 평화협정으로 북아일랜드 사태는 막을 내렸지만 1969년부터 30년 동안 이어져온 피의 분쟁으로 36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곡 ‘좀비’는 1998년 노벨 평화상 수상식에 초청되어 연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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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확증편향적 신념에 대하여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사회체계이론>에서 근대사회가 여러 하위 체계들을 병렬적으로 진화시켜 온 과정을 설명한다. 그는 근대사회의 각 하위체계들인 법체계, 정치체계, 경제체계, 학문체계 등이 각각 자신만의 고유한 매체, 코드, 기능 등을 발전시켜 왔다고 본다. 예컨대 법체계와 정치체계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세계이며, 각자 서로 다른 코드를 통해 스스로를 타 체계와 구분해왔다. 법체계가 ‘합법인가 불법인가’라는 코드로 자신을 특화해왔다면 정치체계는 ‘통치하는가 통치받는가’라는 코드로 스스로를 인지한다. 요컨대 합법성과 통치성의 개념은 서로 기원이 다를뿐더러 섞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근대사회 원칙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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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중고령 세대의 정치문해력 지난주 영국의 BBC는 국회의 탄핵소추 장면을 보도하면서, 화면을 양분해 여의도와 광화문을 동시에 비추었다. 왼쪽에는 춤추며 기뻐하는 여의도의 젊은이들을 잡았고, 오른쪽에는 침묵하며 주저앉은 광화문의 중고령자들을 비추었다. 한국의 정치지형을 가르고 있는 세대 간 대치국면을 극명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50대 이하 전 연령에서 80%가 탄핵에 찬성한 반면, 60대 이상은 60%, 70대 이상은 49%만이 찬성했다. 과연 60~70대의 생각은 왜 이토록 다른 것일까? 한 가지 힌트를 지난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2주기 결과 발표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우리나라 성인(16~65세)의 언어능력 평균점수가 OECD 평균보다 낮았으며, 이것은 10년 전 시행한 1주기 언어능력 평균에 비해 24점 하락한 결과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사실이 있었다. 지난 1주기(2013년) 때 중위권이었던 한국의 성취도가 이번 조사(2023년)에선 하위권으로 떨어졌고, 그 추락 속도는 참여국 중 가장 최악이었다는 점을 솔직히 말하지 않았다. 세대별 성취도 변화를 비교해보면 충격은 더 커진다. 한국의 경우 청년층(1989~1995년생)의 성취도는 1주기에 비해 19점 낮아진 반면, 중고령층(1958~1968년생)의 성취도는 42점이나 하락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성취도가 높았던 핀란드의 경우 청년층은 30점이나 상승한 반면, 중고령층의 하락폭은 14점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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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그늘에 가려진 정책, 평생교육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불렀던 ‘사계’ 가사다. 낭만적으로 들려도 실은 1970년대 당시 자신의 몸을 갈아넣고 노동하던 젊은 여성 노동자들의 눈물과 땀을 노래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한 시대 전체가 그랬다. 경공업으로 시작한 한국경제는 대량의 나이 어린 저숙련 저임금 노동자를 집단적으로 요구했고,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청소년들의 희생에 의해 지지되었다. 국가와 기업은 이들을 ‘산업 역군’이라고 추켜세웠지만, 사실 이들은 기본적인 삶의 권리도 포기한 채 기계 앞에 붙들려 있어야 했던 어린 노동자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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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읽는 사회, 읽지 않는 사회 한 권의 소설이 주는 교육적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번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은 한국 사회를 단번에 ‘문학 학습’의 열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좋은 교사는 한 반 아이들을 공부하게 만들지만, 좋은 작가는 그 책을 읽는 한 사회를 공부하게 만든다. 인간의 학습은 삶과 역사 전체에서 일어난다. 인간은 마치 호흡하듯 숨쉬는 순간마다 뭔가를 감각하고, 생각하며, 학습한다. 새로운 학습은 오래된 관습의 틀을 쪼개며, 역사적 기억의 상처에서 새살이 돋게 만든다. 특히 문학 학습은 교육의 역사에서 그 중심핵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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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 공부 중 며칠 전 박은식의 <한국통사>를 읽었다. 여기에서 통사란 아플 통(痛), 곧 ‘한국의 아픈 역사’라는 뜻이다. 출간된 지 꽤 된 책이지만 오랫동안 손대지 않고 있다가 최근 뉴라이트 논쟁을 계기로 다시 집어들었다. 따지고 보면 선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현 정부가 나에게 역사 공부를 시켜주고 있다. 박은식은 임시정부의 2대 대통령이기도 했으며, 일찍이 한성사범학교 교관을 지낸 분이다. 그가 쓴 <한국통사>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책이며, 그 안에 살아있는 표현이 가득하다. 이 책에 갑신정변과 관련, 이런 부분이 나온다. 일본에 의지하여 개혁을 꾀하던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의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사람들은 말한다. “가히 아까운 일이다. 그러한 일류 재사(才士)가 일본인에게 팔려 그러한 큰일을 저질렀다”며, “저들 일본인이 어찌 다른 나라의 백성을 위하여 남의 아름다운 덕을 진실로 도와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겠는가. 우리의 진보는 저들에게는 불리한 것이므로 우리에게 진보하려는 기세가 있을 것 같으면 저들은 반드시 온갖 방법으로 해치려 들 것이요, 도와주려고 하겠는가. 우리의 젊고 영민한 선비들은 이것을 살피지 않고 저들에 의지해서 일을 이루려 하다가 그 꾐에 무너져 함정에 빠지게 되니 또한 애석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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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국가교육위원회 일파만파 지난주 SBS를 시작으로 몇몇 언론매체들은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가 수능 이원화, 고교 내신평가의 외부기관 출제, 평준화 기조 약화 등을 골자로 하는 중장기 개혁안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후 국교위는 즉시 공식 입장문을 내고 그 내용은 단지 ‘아이디어’ 수준일 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것이 13 대 8로 다수를 점하고 있는 보수 측 위원들로부터 나온 생각이라는 점, 그리고 지금까지 국교위의 의사결정이 투명성이나 사회적 합의 등 보다는 폐쇄된 논의를 통해 전개되었고, 게다가 이번에는 단체 채팅방의 짬짜미로 ‘사전 조율’까지 시도했다는 점 등은 이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한 개인 전문위원을 해촉하는 데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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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디지털 교과서 정책이 말하지 않는 사실 교육부가 내년 전면 도입을 목표로 내건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교육 전문가들은 최소한 속도라도 늦추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교육부는 좀처럼 수용하려고 들지 않는다.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이 몰고온 파장만큼이나 이번 디지털 교과서 정책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듯하다. 이 사업의 핵심은 2025학년도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영어·수학·정보 과목에 디지털 교과서를 적용하고, 이를 통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학생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화려한 수사들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에는 몇 가지 깊은 검토가 필요한 문제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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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창의적일까?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에 연동하여 ‘창의적 사고력’ 측정 결과를 발표했다. OECD 회원국을 포함한 총 64개국이 참여했는데, 전체 1위는 60점 만점 중 41점을 받은 싱가포르가 차지했고, 한국은 38점을 얻어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과 함께 2~4위 그룹으로 분류됐다. 이 결과는 다소 의외였는데, 한국의 학교들이 주로 입시준비와 문제풀이에 치중해왔다는 점에서 볼 때 기대하기 힘든 성과였다. 게다가 한국 학생들뿐 아니라 싱가포르 학생들도 자신들의 창의성이 높다는 사실이 의외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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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인구 급감, 당신의 선택은?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새 생명을 출산하고 키우는 ‘생물학적 재생산’을 수행해야 한다. 둘째, 이들이 소통하고 지식을 공유하도록 ‘문화적 재생산’을 시도해야 한다. 셋째, 이들에게 필요한 물적 재화를 공급하기 위해 ‘경제적 재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제들을 개인 입장에서 보자면 각각 출산, 교육, 직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출산은 다른 두 가지에 선행하는 필수요소이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후순위로 밀린다. 특히, 경제가 고도화되어 갈수록 일의 세계가 삶의 세계를 밀어내게 되는데, 특히, 믿을 게 인적자원밖에 없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는 교육과 직업이 출산을 밀어낸 대표적 사례이다. 한국이 0.72명인 것처럼 대만도 0.83명에 불과하며, 싱가포르도 0.84명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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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이제 그만 격노하세요 “대통령의 말 그 자체가 권력 행위이다.” 어제 경향신문이 지난 2년간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들을 집중 해부하면서 던진 말이다. 말은 곧 메시지이고 그 안에는 권력의 구조와 방법이 담겨 있다. 또한, 말은 이성적인 언표만 포함하지 않는다. 함께 표현되는 감정과 몸짓도 권력자의 중요한 메시지 표현수단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국민들의 뇌리에 박힌 가장 인상적인 대통령의 메시지는 “격노”였을 것이다. 내용 없이 화만 버럭 내는 그의 통치스타일 속에는 그만의 독특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짐은 곧 국가다”라는 절대왕조에서나 볼 수 있는 시그널이다. 그 한마디로 주변 사람들을 떨게 하고, 수습하느라 무리수를 두게 만든다. 대통령은 격노만 할 뿐, 사과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스로 군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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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과잉경쟁’ 끊기, 정치개혁만이 답 일주일 전 대만에서 규모 7.4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타이베이 모노레일이 끊어지고 TSMC 반도체 공장이 멈추었다. 대만의 지층은 필리핀 판이 유라시아 판 아래로 매년 10㎝씩 파고 들어가며, 이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쌓이면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다. 물리계에서의 스트레스 응축이 지진이라는 형태로 해소되는 것과 다르게 생명계에서의 스트레스 응축은 집단적 이상행동과 자해 및 출산 감소 등 자신의 미래적 지속 가능성을 부정하는 병리현상으로 나타난다. 스트레스로 인해서 뇌는 늘 긴장하며, 불안과 분노가 일상화된다. 유아 아동기의 스트레스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변화시키며 뇌 구조와 행동까지 바꾼다. 급기야 스트레스는 불임을 증가시키며 인구절벽의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