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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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 공부 중 며칠 전 박은식의 <한국통사>를 읽었다. 여기에서 통사란 아플 통(痛), 곧 ‘한국의 아픈 역사’라는 뜻이다. 출간된 지 꽤 된 책이지만 오랫동안 손대지 않고 있다가 최근 뉴라이트 논쟁을 계기로 다시 집어들었다. 따지고 보면 선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현 정부가 나에게 역사 공부를 시켜주고 있다. 박은식은 임시정부의 2대 대통령이기도 했으며, 일찍이 한성사범학교 교관을 지낸 분이다. 그가 쓴 <한국통사>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책이며, 그 안에 살아있는 표현이 가득하다. 이 책에 갑신정변과 관련, 이런 부분이 나온다. 일본에 의지하여 개혁을 꾀하던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의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사람들은 말한다. “가히 아까운 일이다. 그러한 일류 재사(才士)가 일본인에게 팔려 그러한 큰일을 저질렀다”며, “저들 일본인이 어찌 다른 나라의 백성을 위하여 남의 아름다운 덕을 진실로 도와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겠는가. 우리의 진보는 저들에게는 불리한 것이므로 우리에게 진보하려는 기세가 있을 것 같으면 저들은 반드시 온갖 방법으로 해치려 들 것이요, 도와주려고 하겠는가. 우리의 젊고 영민한 선비들은 이것을 살피지 않고 저들에 의지해서 일을 이루려 하다가 그 꾐에 무너져 함정에 빠지게 되니 또한 애석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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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국가교육위원회 일파만파 지난주 SBS를 시작으로 몇몇 언론매체들은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가 수능 이원화, 고교 내신평가의 외부기관 출제, 평준화 기조 약화 등을 골자로 하는 중장기 개혁안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후 국교위는 즉시 공식 입장문을 내고 그 내용은 단지 ‘아이디어’ 수준일 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것이 13 대 8로 다수를 점하고 있는 보수 측 위원들로부터 나온 생각이라는 점, 그리고 지금까지 국교위의 의사결정이 투명성이나 사회적 합의 등 보다는 폐쇄된 논의를 통해 전개되었고, 게다가 이번에는 단체 채팅방의 짬짜미로 ‘사전 조율’까지 시도했다는 점 등은 이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한 개인 전문위원을 해촉하는 데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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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디지털 교과서 정책이 말하지 않는 사실 교육부가 내년 전면 도입을 목표로 내건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교육 전문가들은 최소한 속도라도 늦추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교육부는 좀처럼 수용하려고 들지 않는다.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이 몰고온 파장만큼이나 이번 디지털 교과서 정책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듯하다. 이 사업의 핵심은 2025학년도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영어·수학·정보 과목에 디지털 교과서를 적용하고, 이를 통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학생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화려한 수사들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에는 몇 가지 깊은 검토가 필요한 문제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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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창의적일까?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에 연동하여 ‘창의적 사고력’ 측정 결과를 발표했다. OECD 회원국을 포함한 총 64개국이 참여했는데, 전체 1위는 60점 만점 중 41점을 받은 싱가포르가 차지했고, 한국은 38점을 얻어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과 함께 2~4위 그룹으로 분류됐다. 이 결과는 다소 의외였는데, 한국의 학교들이 주로 입시준비와 문제풀이에 치중해왔다는 점에서 볼 때 기대하기 힘든 성과였다. 게다가 한국 학생들뿐 아니라 싱가포르 학생들도 자신들의 창의성이 높다는 사실이 의외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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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인구 급감, 당신의 선택은?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새 생명을 출산하고 키우는 ‘생물학적 재생산’을 수행해야 한다. 둘째, 이들이 소통하고 지식을 공유하도록 ‘문화적 재생산’을 시도해야 한다. 셋째, 이들에게 필요한 물적 재화를 공급하기 위해 ‘경제적 재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제들을 개인 입장에서 보자면 각각 출산, 교육, 직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출산은 다른 두 가지에 선행하는 필수요소이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후순위로 밀린다. 특히, 경제가 고도화되어 갈수록 일의 세계가 삶의 세계를 밀어내게 되는데, 특히, 믿을 게 인적자원밖에 없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는 교육과 직업이 출산을 밀어낸 대표적 사례이다. 한국이 0.72명인 것처럼 대만도 0.83명에 불과하며, 싱가포르도 0.84명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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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이제 그만 격노하세요 “대통령의 말 그 자체가 권력 행위이다.” 어제 경향신문이 지난 2년간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들을 집중 해부하면서 던진 말이다. 말은 곧 메시지이고 그 안에는 권력의 구조와 방법이 담겨 있다. 또한, 말은 이성적인 언표만 포함하지 않는다. 함께 표현되는 감정과 몸짓도 권력자의 중요한 메시지 표현수단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국민들의 뇌리에 박힌 가장 인상적인 대통령의 메시지는 “격노”였을 것이다. 내용 없이 화만 버럭 내는 그의 통치스타일 속에는 그만의 독특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짐은 곧 국가다”라는 절대왕조에서나 볼 수 있는 시그널이다. 그 한마디로 주변 사람들을 떨게 하고, 수습하느라 무리수를 두게 만든다. 대통령은 격노만 할 뿐, 사과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스로 군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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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과잉경쟁’ 끊기, 정치개혁만이 답 일주일 전 대만에서 규모 7.4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타이베이 모노레일이 끊어지고 TSMC 반도체 공장이 멈추었다. 대만의 지층은 필리핀 판이 유라시아 판 아래로 매년 10㎝씩 파고 들어가며, 이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쌓이면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다. 물리계에서의 스트레스 응축이 지진이라는 형태로 해소되는 것과 다르게 생명계에서의 스트레스 응축은 집단적 이상행동과 자해 및 출산 감소 등 자신의 미래적 지속 가능성을 부정하는 병리현상으로 나타난다. 스트레스로 인해서 뇌는 늘 긴장하며, 불안과 분노가 일상화된다. 유아 아동기의 스트레스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변화시키며 뇌 구조와 행동까지 바꾼다. 급기야 스트레스는 불임을 증가시키며 인구절벽의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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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전공의 집단사직은 교육문제다 최근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가려져온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난맥상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의료체계 문제는 단지 의사 수 부족, 낮은 의료수가, 필수의료 붕괴 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공성을 상실해가는 치료행위 위주의 분절된 영리체계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번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는 온 국민이 한국의료체계의 근본적 문제를 종합적으로 학습하고 그 치유 방안을 공론화할 수 있게 하는 장을 만들었다는 나름의 효과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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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데칼코마니, 한국과 대만의 교육문제 현대사에서 정치경제적으로 비슷한 경로를 걸어온 두 국가의 교육 현상은 서로 비슷할까? 이 질문에 힌트를 줄 수 있는 국가가 한국과 대만이다. 두 국가를 비교해보면 교육 문제가 결코 한 사회의 구조적 특징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대만은 인구와 국토 면적으로 볼 때 한국의 절반도 채 되지 않지만 많은 유사점을 공유한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고,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엄령 통치 아래 있었다. 한국이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바로 그해에 대만은 38년간 이어지던 계엄령을 해제하였고, 문민정부 출범과 비슷한 시기에 직선제를 통해 첫 번째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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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대학 무전공 입학을 바라보는 시각 최근 교육부는 2025학년도 대입 모집부터 일정 비율 이상을 전공자율선택(혹은 무전공)으로 선발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당해의 경우 모집정원 중 무전공 입학자 수가 20%(수도권) 혹은 25%(지방국립대)를 넘는 대학들에 대해서 대학혁신지원사업 예산 중 4426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교육부의 무전공 입학 정책은 두 가지 요구가 서로 맞물린 결과로 보인다. 하나는 학생들이 입학 후 좁은 학과 단위 안에 갇혀서 폭넓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며, 다른 하나는 교수와 학과들이 학생을 인질로 삼아서 자기 변신을 소홀히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발빠른 대학개혁을 지체시키고 있다는 의심이다. 한편에서 학생들은 점수에 맞추어 적성에도 없는 학과에 꾸역꾸역 입학한 후 전과 등의 기회를 노리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대학 차원에서 볼 때에도 새로운 수요에 따른 적절한 학과 정원 조정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다. 반면 미국의 경우 전체 학생 중 최소한 3분의 1이 졸업 이전에 전공을 변경한 경험이 있으며, 대학도 수요가 넘쳐나는 전공에 대한 증원 요구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스탠퍼드대학에서는 2000여명 입학자 가운데 컴퓨터 공학 전공자가 700명이 넘는다. 반면, 서울대학교의 동 전공자 수는 10년 전에 비해 크게 증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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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2023년 교육개혁 성과 진단 지금까지 많은 교육 변화에 대하여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여왔다. 개혁은 ‘혁명’과는 다르게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완만하고 점진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또한 주로 테크놀로지적이고 미시적인 형태의 ‘개선’보다는 확연히 구조적이고 프레임적인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50년 후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교육체제가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럴 경우 앞으로의 교육개혁은 현재의 학업성취도, 입시제도, 교육과정, 교사와 수업 등 지금까지의 관성적 개념에 의존할 수 없다. 미시적 조정만으로는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혀 다른 프레임의 밑그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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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매력적 오답’이라는 난센스 올해도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수능이 끝났다. 대통령까지 나서 킬러 문항을 없애겠다고 공언했지만, ‘매력적 오답’이라는 기상천외의 표현까지 등장시키면서 기어이 불수능을 만들었다. 재수생이 대거 등장한 이번 수능에서 적절한 변별력이 필요했다지만, 그 유탄을 고스란히 고3 ‘현역’ 수험생들이 맛봐야 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수능은 종을 울리는가? 이런 질문을 해 본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수능이 ‘좋은 수능’인가? 물론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그 기준은 미리 결정되어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대학 선발 생태계의 전반적 지향점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참에 그 방향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