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경쟁’ 끊기, 정치개혁만이 답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일주일 전 대만에서 규모 7.4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타이베이 모노레일이 끊어지고 TSMC 반도체 공장이 멈추었다. 대만의 지층은 필리핀 판이 유라시아 판 아래로 매년 10㎝씩 파고 들어가며, 이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쌓이면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다.

물리계에서의 스트레스 응축이 지진이라는 형태로 해소되는 것과 다르게 생명계에서의 스트레스 응축은 집단적 이상행동과 자해 및 출산 감소 등 자신의 미래적 지속 가능성을 부정하는 병리현상으로 나타난다. 스트레스로 인해서 뇌는 늘 긴장하며, 불안과 분노가 일상화된다. 유아 아동기의 스트레스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변화시키며 뇌 구조와 행동까지 바꾼다. 급기야 스트레스는 불임을 증가시키며 인구절벽의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한국인을 괴롭히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과잉경쟁일 것이다. 남을 의식하는 비교의식과 과잉경쟁으로 인해 언제 터질지 모를 사회적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응축되어 가고 있다. 모바일과 소셜미디어를 달고 살면서 사람들은 상시적으로 비교문화에 노출된다. 값비싼 음식과 자동차 사진들을 올리고, 대놓고 남들에게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뉴스에서는 누가 대박을 쳤는지를 쉴 새 없이 보도한다. 상실감의 시대이다.

이 과정에서 ‘성공’ 개념도 지나치게 부풀려졌다. 이제 자녀를 인서울 대학에 보내고, 외제차를 타며, 고급 아파트 단지에 사는 것이 일종의 ‘성공의 표준’이 되었고 ‘보통’으로 사는 것이 곧 ‘실패’로 인식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한국인들의 웰빙 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으로 떨어졌고, OECD에서 발표하는 세계 행복 순위에서도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늘 꼴찌에 가까운 순위를 차지한다. 그러는 사이에 청년들은 미래를 내려놓는다.

물론 비교와 경쟁의 스트레스는 심리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금수저와 흙수저 논쟁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러한 비교의식은 계층 양극화를 반영하는 그림자일 뿐이다. 진실하고 실존적인 인간상이 설 자리가 사라진다.

이러한 과잉경쟁문화의 출발점이 바로 학교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OECD의 2018년 PISA조사에서 세계 여러 나라 15세 학생들이 학교에서 느끼는 협동과 경쟁문화의 정도를 비교하였는데, 여기에서 한국 학생들이 느끼는 경쟁우위 문화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훨씬 강도가 높았다. 한국을 능가한 국가는 싱가포르뿐이었다.

사실, 우리 청년층은 과잉경쟁을 체화하며 성장해왔다.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경쟁과 압박에 찌든 세대이다. 늘 어깨와 목이 뻐근하며, 뭔가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듯하며, 경쟁에 뒤처지면 어쩌나 걱정한다.

그런데 청년들은 경쟁중심사회의 구조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사회가 기본적으로 불평등하며 계층이동의 길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 냉소적일뿐더러 그 체계를 뒤집으려는 적극적 저항에 관심이 없다. 이들은 사회개혁보다는 기존 질서에 대한 공정성 보완에 더 집착한다. 공정성은 현재 그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생존의 룰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재 상황에서 공정성은 더 정밀하고 가중화된 경쟁을 유발할 뿐이다. 마치 대학입시를 더 공정하게 만들려고 하면 할수록 그 구조가 왜곡되는 것과 같다.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더라도 사회계층이동을 위한 기회 통로가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려 스트레스가 더욱 높아지는 영원한 악무한의 순환이 계속될 뿐이다. 이것이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헬조선’ 혹은 디스토피아 모습이다.

덴마크나 핀란드가 행복한 나라 1위인 것은 모두 부자여서가 아니다. 경쟁보다 협동을 가치있게 생각하고, 나의 존재성이 남과 비교되지 않으며, 남보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을 자제하고, 실패하고 조금 못살아도 그 자체가 의미 있는 도전으로 평가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투명한 정치지형이 그런 사회를 가능하게 만든다.

이제 우리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 비교와 경쟁이라는 담론을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학습된 무기력화’를 버리고, 삶의 목표를 경쟁지향성에서 공존과 지속 가능성으로 전환하는 사회적 대전환의 공론화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사회문화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진보적인 정치지형 및 대화가 가능한 공론화 장이 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미래세대인 10~20대가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들의 투표율이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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