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어떻게 정치적 주체가 되는가

김윤철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청년은 어떻게 정치적 주체가 되는가

최근 청년정치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왕성해졌다. 그것을 주제로 한 인터뷰 요청도 간간이 받고 있는데,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청년이 정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또 “당신(세대)은 청년 시절에 어떤 식으로 정치에 관여했느냐”이다. 그런 물음들에 직면해 문득 보고 싶은 사람과 기억들이 떠올랐다. 미지의 물음에 대한 답은 역사에서 찾을 수 있고, 역사를 여는 열쇠는 과거의 경험이 쥐고 있기 때문인 건가.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청년은 어떻게 정치적 주체가 되는가

보고 싶은 사람은 대학시절 1991년 5월투쟁 관련 불법집회 및 시위 주도 등을 이유로 두 번째 들어간 구치소에서 만났던 윤대경(가명)이라는 청년노동자이다. 스무 살이 채 안 되어 준수하지만 앳된 용모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그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의 조직원으로 활동하며 노태우 정권 타도와 노동자 의식화를 위한 선전물을 배포하다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필자가 수감 생활 중 서신에 대한 사전검열과 도서반입 제한 등에 항의하며 단식농성과 샤우팅 시위를 벌여 징벌을 받고 새로운 사동으로 옮겨진 후였다. 그는 자기 방 몇 칸 옆 방에 배정받은 필자에게 정겨운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먼저 다가와 건강상태를 물어봐주었다. 밧줄과 수갑에 묶인 채로 며칠을 지낸 데다 알레르기 비염이 심하게 도져 안색이 꽤나 안 좋아 그리 물었을 것이다. 당시 콜레라가 돌아 건강 악화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유독 강하게 조성되어 있기도 했다. 그는 1심에서 5년형을 받고 항소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이도 어린 데다 조직의 최말단인 자신에게 너무 과도한 형을 내린 것 아니냐며 억울해했다. 그의 말처럼 사노맹과 마찬가지로 반국가이적단체로 규정된 정파조직의 수괴급인 한 인사가 2년6개월인가를 받은 것에 비하면 분명 과한 것이었다. 그는 암 투병 중이던 어머니가 위독해져 외출을 신청했으나 거부를 당해 무척 속상해하기도 했다. 면회 오는 사람이 없어 외롭기도 하고 영치금이 들어오지 않아 수감생활에 여러모로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런 중에 아마도 두어살 형뻘이지만 같은 청년세대였던 필자가 꽤 반가운 모양이었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반가웠다. 필자에 대한 징벌소식을 듣고 사동 내 시국사범들이 동지애를 기치로 항의 단식에 들어갔는데, 저벅저벅 소리로 사동 복도를 누비는 경교대 ‘군홧발 퍼포먼스’의 위세에 눌려 단 한 끼 단식으로 막을 내렸다. 이에 필자는 적지 않게 실망했는데, 그런 마음을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젊은 벗을 만난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한 끼 단식 농성에 참여한 사동 내 시국사범 대부분이 우리보다 연장자였던 것을 두고, “하여간 아저씨들에게는 기대하면 안 된다”며 뒷담화를 하기도 했다.

최근 정치권이 보는 청년은 보호 대상이지 정치의 주체가 아니다.
결국 일개 투표자로 보는 것에 불과
누군가를 적으로 대하면 진짜 적이 되듯이
청년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대하면 진짜 주체가 되지 않을까
청년이려면 정치를 고민함에 있어, 대안적 질서의 관점에서
기성의 질서를 봐야 전체적 차원서 문제를 조망할 수 있다

요즘 청년은 소년의 동의어로 전락

우리는 함께 있는 동안 운동과 목욕 시간을 이용해 만나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교우하였다. 나누었던 대화 내용의 대부분은 3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잊힌 듯하다. 그동안 만난 적도, 소식을 들은 적도 없다. 하지만 처지도 조직도 달랐던 두 청년이 ‘그때 함께 있었다’는 느낌은 여전히 살아있다. 청년이 억압성을 높인 국가권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 생각하고 실제 그리 했던 때, 노동자와 학생이 동맹을 이루어 그리 저항하는 게 새로운 세상을 여는 참된 정치참여라고 여겼던 때라 그런 것인가.

최근 정치권의 핵심 화두이기도 한 -기성 정당들이 모두 지지를 호소하는- 청년에는 두 가지가 없다. 하나는 윤대경 같은 노동자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이다. 꽤 신기한 일이다. 김용균처럼 일터에서 생명을 잃는 청년노동자들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데도 그러니 말이다. 역사적 어원의 측면에서 볼 때, 청년이라는 말에는 천대받고 괄시받는 노동자의 의미가 약한 것은 사실이다. 서구사회나 동양에서나 청년이라는 말이 등장해 쓰이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다. 이전에는 청년이라는 말보다 소년이라는 말이 훨씬 일반적이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근대 산업문명이 꽃피던 때이다. 청년은 바로 그 꽃이 핀 이후 시대의 주역, 즉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갈 문명의 새로운 담지자 혹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원기왕성한 역동적 주체를 의미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젊음의 좋음’이 극화된 용어가 청년인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미천하고 어둡다고 여겨지는 노동과 죽음이 스며들 틈새는 애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용어의 원래 의미와 현실은 같지 않다. 어떤 지위냐의 문제가 있으나 청년세대의 대부분은 노동을 해야 생을 유지할 수 있다. 부모 등 보호자가 최종 대부자로서의 경제적 자원과 역량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만 예외가 가능하다. 그런데도 노동자로 조명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의 의미와 이미지가 고학력층, 즉 청년‘대학생’으로 좁혀져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어원의 의미에 기대어 보자면 이는 그릇된 용례가 아닐 수 있다. 청년에는 교육을 받아 계몽된 주체로서 지적 역량을 보유했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생으로 좁혀 볼 때에도 지금의 청년이란 말에 죽음이 담겨져 있지 않은 것은 몰역사적이다. 한국의 민주화는 청년대학생의 죽음에 기댄 바 크기 때문이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는 물론이고, 1987년 6월항쟁을 가능케 했던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을 떠올려보라. 4·19혁명과 박정희 유신독재 반대운동 때는 또 어떤가. 소리 소문 없이 의문과 의혹을 남기고 사라져간 무명의 청년대학생도 만만치 않다.

대안적 질서관엔 이념·세력 있어야

필자가 윤대경을 만난 때는 1991년 5월투쟁이라 불리는 사건이 막을 내린 직후였다. 1991년 5월투쟁은 노태우 정권 시기 내내 한국 민주주의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갈등이 청년들의 연이은 죽음을 동반해 비극적 방식으로 폭발한 사건이다. 청년대학생들의 죽음은 국가의 억압성을 강화해 군부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한다는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지만, 이를 막아낼 변혁세력의 힘은 점차 미약해지는 시점에서 일어났다. 우파·보수세력의 ‘민주주의=선거 게임’ 인식이 자리를 잡은 데다 3저 호황국면이 막을 내려 경제위기론이 득세하면서 노동의 자기 몫 찾기 등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결국 명지대생 강경대와 성균관대생 김귀정처럼 시위 도중 진압경찰의 폭력에 목숨을 잃은 이들이 나왔고, 전남대 박승희처럼 분신으로 스스로 목숨을 내놓은 이들도 나왔다. 이들 죽음이 끌어간 1991년 5월투쟁은 군부 권위주의 계승세력과 강경파의 입지를 좁히는 데 기여했다.

민주화에 기여했든, 안 했든 청년이라는 말에서 노동과 죽음을 걷어내는 것은 온당하다. 그럼에도 윤대경 같은 구속노동운동가와 죽음의 의미가 역사적 사실로 포함되어 있음을 거론한 것은 청년의 삶의 현실이 여전히 부당한 노동과 억울한 죽음의 목책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정치권을 위시로 한 기성세대의 시각과 담론이 청년에게서 결기, 헌신, 희생 같은 것을 거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이 내놓는 청년담론과 공약을 보면 청년은 대체로 ‘보호의 대상’이다. 어린 사람을 뜻하는 소년의 동의어로 전락했다고나 할까. 기성세대든 청년세대든 그런 시각을 가져서는 청년은 결코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캐스팅보트를 쥐었다하고 정치 효능감을 경험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런 관점은 청년을 결국 일개 투표자로 보는 것에 불과하다.

소년이 아닌 청년이려면 정치를 고민함에 있어 대안적 질서, 즉 ‘유토피아의 관점’에서 기성의 질서를 봐야 한다. 그래야 문제와 문제 간의 연관성-연계성-연결성을 포착해 전체 차원에서 문제를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안적 질서의 관점을 가지려면 지향하는 가치와 규범을 추려 이념화해야 한다. 그래야 평가의 기준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또 이념이 있어야 공통의 인식과 행동을 바탕으로 한 세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혹은 그 미덕이라 할 연대와 협력의 관계 형성도 이념에 기초해 무엇을 위한 희생과 헌신과 행동인지가 선명히 드러날 때 가능해진다.

한 끼 단식에나 그칠 아저씨가 청년들에게 과제를 내주려는 게 아니다. 필자는 지금의 청년이 그런 실천을 할 수 있는 존재라 여기고 보고 대하는 게 청년이 정치적 주체가 되는 길이라는 말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적으로 대하면 진짜 적이 되듯이, 청년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대하면 진짜 주체가 되지 않겠는가.

■김윤철

경희대 교수 및 실천교육센터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세계와 시민’ ‘정치의 인문학적 탐색’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 ‘시민과 세계’ 편집위원,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노회찬정치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정당> <헬조선 3년상> 등의 저서와 ‘노동존중 정치와 노회찬의 6411정신’ ‘한국 불평등 민주주의의 정치사적 기원’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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