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경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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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작 ‘서울예수’ ‘마리아와 여인숙’ 선우완 감독 별세 영화 <서울예수> <마리아와 여인숙> 등을 연출한 선우완 감독이 별세했다. 향년 76세. 26일 영화계에 따르면 선우 감독은 이날 새벽 경기 오산시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암 투병 중이었다. 1948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앙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최하원 감독의 <진짜 산나이>에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1983년 <신입사원 얄개>로 감독데뷔를 했다. 이후 방송국 PD로 활동하면서 MBC 베스트극장 ‘즐거운 우리들의 천국’, ‘초록빛 모자’, ‘세발자전거’ 등 단막극 20여편과 미니시리즈 <완장>, <남편의 여자>, <우리들의 넝쿨> 등을 제작했다. 1988년엔 올림픽 특집 사극 <춘향전>, <배비장전>, <심청전> 등을 만들기도 했다. 이미지 중심의 영상에 힘을 실은 그의 연출력이 주목을 끌어 <배비장전>은 1989년 제1회 영상음반 대상 감독상, <남편의 여자>는 1992년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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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할아버지 이발소는 반짝반짝 빛나는 나의 ‘꽃비’ 바닷가의 작은 마을, 아담한 집들 사이에 파란색 문을 단 이발소가 있다. 이발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녀이자 그림책의 화자인 ‘나’는 여름방학마다 이곳을 찾는다. 할아버지의 작은 이발소에서 나는 심심할 틈이 없다. 소란스러운 이발소는 신기하고 재미난 일 투성이다. 손님이 가고 나면 할아버지는 나의 머리카락도 싹둑싹둑 잘라준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은 ‘남자 아이’ 같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커다란 손과 귀끝을 스치는 가위소리가 좋기만 하다. 거실에서 간식을 나눠먹다 창밖으로 펼쳐진 맑은 하늘을 보면서 할머니가 문득 ‘꽃비’ 이야기를 한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봄과 가을이면, 동네 사람들이 꽃비 구경을 가자고 했어. 바다로 저무는 노을을 보고 있으면 반짝반짝 알알이 퍼지는 노을빛이 꽃비 같았거든.” 할머니는 “꽃비는 소중한 사람이 꽃이 되어 만나러 오는 거”라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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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건축물서 전시회 연 일본 화가 “전쟁·기후위기···위로를 주고 싶다” 레이코 이케무라(73)는 일본 미에현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그릴 수 있는 미래는 넓지 않았다. “반골 기질이 있던” 어린 여자아이에게, 시골마을 여성에게 주어진 자리는 작은 다다미방과 같이 좁게만 느껴졌다. 바다를 바라보며 이케무라는 넓은 세계와 미래를 꿈꿨다. 오사카의 외국어대학교에 진학해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스페인어의 음률이 마음에 들었고 그 언어로 쓰인 문학도 좋았다. 대학을 다니다 스페인으로 훌쩍 떠났고,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스위스, 독일로 기반을 옮기며 1979년 첫 개인전을 연 이후 29개국에서 500회 이상 전시를 연 성공적인 현대미술가가 됐다. 45년은 현대미술가로 성공적 커리어를 쌓아온 시간이기도 하지만, 유럽에 이주한 아시아 여성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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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m ‘단테의 신곡’과 ‘잔다르크 목소리’···뷔페의 강렬함에 빠져든다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가로 4m, 세로 2.5m의 대형 유화 ‘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 위에 붉은색 레이저가 가로선을 그었다. 그림이 벽에 수평에 맞게 걸렸는지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다. 함께 지옥에 떨어진 이의 머리를 잡고 돌로 내리치려는 사람과 손으로 이를 막으려는 사람의 배와 가슴에 붉은 실선이 선명하게 그어졌다. 대각선 방향의 벽엔 머리가 없는 중세 기사의 갑옷에서 화염과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바닥엔 흰 옷을 입은 여인이 쓰러진 듯 앉아있는 그림이 걸려 있다. 4m 폭의 유화 ‘잔다르크-목소리’다. 벽을 가득 채우는 큰 사이즈와 강렬한 그림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오는 26일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1928~1999)의 두번째 대규모 회고전 개막을 앞둔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은 막 박스에서 풀려나와 빛을 본 뷔페의 그림들과 이를 설치하기 위한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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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벽에 하얗게 새긴 호주 원주민의 계보···“조용하고 강렬했다” 5m 높이의 전시관 사방의 검은 벽이 하얀 분필로 눌러쓴 글씨로 가득 채워졌다. 어두운 전시관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하얀색 글씨들이 규모와 양에서 관람객을 압도한다. 빽빽한 글씨들의 정체는 ‘쿨린(Kullin)’ ‘쿰키(Kumki)’와 같은 이름들이다. 호주의 원주민 예술가 아키 무어(Archie Moore)는 호주 원주민의 6만5000년이 넘는 가계도를 손으로 그려넣었다. 군데 군데 블랙홀처럼 글씨가 지워진 구멍들은 학살 등 잔혹행위를 나타낸다. 무어는 호주 원주민의 숨겨지고 잊혀진 광대한 역사를 복원함으로써 현재와 과거, 미래를 연결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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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주변부에 있던 이들, 세계 미술무대 중심에 서다 세계 예술계의 중심에 세상의 가장 주변부에 위치한 이들이 섰다. 세계 최대 미술 축제이자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인공은 오랫동안 잊혀지고 소외되어 온 선주민, 이주민, 퀴어, 여성들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역사상 첫 라틴아메리카 출신 예술감독인 아드리아누 페드로자가 전시 주제를 ‘어디든 외국인이 있다(Stranieri Ovunque-Foreigners Everywhere)’로 내세웠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지만, 17일 프리뷰에서 확인한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적어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만큼은 제1세계 백인들은 관람객의 위치로 완전히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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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소리 나는 전시관, 문 닫은 이스라엘관···베니스비엔날레에 새겨진 전쟁의 상처 “저를 따라 말해 보세요(Repeat after me).” 영상 속 인물이 건조하게 말한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건 사람의 언어가 아니다. 무기의 언어다. 살상의 언어다. “슈슈슈슈슈툭”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쉬이이이이이”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폴란드관에서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자신들이 사는 곳을 공격했던 무기들의 소리를 입으로 흉내내고, 이를 관람객들에게 따라할 것을 권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예술 집단(Ukrainian Open Collective)영상 작품 ‘나를 따라 말해 보세요’다. 영상 앞에는 마이크들이 설치돼 있고 관람객들은 그 앞에서 영상 속 인물이 내는 무기의 소리를 따라할 수 있다. 영상 속 인물은 자신들이 기억하는 공습 상황과 소총, 미사일 등의 소리를 건조하게 설명하고 소리를 낸다. 사람의 입으로 재현되는 무기의 소리가 반복면서 전쟁의 폭력성과 잔임함이 몸을 관통하듯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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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질투’하고 워홀이 극찬한 작가···뷔페의 세계로 한 발 더 가까이 ‘비운의 천재’ ‘피카소의 대항마’로 불렸던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1928~1999)는 행운아인 동시에 비운아였다. 피카소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추상미술이 주류를 이루던 프랑스 미술계에서 차가운 외면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2019년에야 뷔페의 회고전이 처음으로 열렸다. 앤디 워홀이 “파리에서 마지막으로 유명한 화가”라고 일컬었던 뷔페의 매력은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이 생소하지만 뛰어난 작가의 작품 세계에 매료된 관람객들은 ‘n차 관람’을 이어갔고, 15만명의 관람객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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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한복판에서 ‘사치품이 된 예술’을 비틀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세계적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매장인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지하 1층. 카페에서 에르메스의 테이블웨어에 담긴 호텔 신라 쉐프의 음식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인다. 클레어 퐁텐의 전시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면 잠시 길을 잃은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당황하지 않고 카페를 가로질러 들어가면 이국적인 문양이 찍힌 낡은 타일 바닥 위를 나뒹굴고 있는 샛노란 레몬 열매들을 만날 수 있다.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스의 예술가 집단인 클레어 퐁텐의 전시 ‘아름다움은 레디메이드(Beauty is a Ready-made)’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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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짓으로 부르는 304명의 이름···퍼런 세월에서 노란 기억으로 ‘둥둥’ 묵직한 북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마치 거인이 바다의 수면을 두드리는 것 같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9년 4월부터 2015년 3월까지 팽목항에 부는 바람소리를 BPM으로 변환한 김지영의 작품이다. 전시장 입구엔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등 한국에서 일어난 32개의 재난을 그린 그림 ‘파랑 연작’(2016~2018)이 걸려있다. 바다를 연상시키는 푸른색으로 그려진 그림들은 마치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된 한국 사회의 재난들을 켜켜이 쌓아올린 것 같다. 전시장 공간 가운데로 들어가면 하얀 방에서 홀로 춤을 추는 이의 영상을 볼 수 있다. 안무가 송주원의 ‘내 이름을 불러줘’(2024)다. 송주원은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몸으로 써낸다. 스피커에서 희생자의 이름이 한명씩 불러지면, 송주원은 몸으로 이름을 그린다. 지극한 애도의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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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베테랑 2’로 19년 만에 칸영화제 초청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2>가 칸국제영화제 무대를 밟는다. 칸영화제 집행위원회는 1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베테랑 2>를 다음 달 개막하는 제77회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했다고 밝혔다. <베테랑 2>는 류 감독의 천만 영화 <베테랑>(2015)의 속편으로 서도철 형사(황정민)와 강력범죄수사대에 닥친 새로운 위기를 그린 범죄 액션물이다. 황정밀, 오달수, 장윤주, 오대환 등 1편에 나온 배우진이 그대로 출연하며 정해인이 막내 형사로 새롭게 합류했다. 류 감독이 칸영화제 초청장을 받은 것은 2005년 <주먹이 운다> 이후 19년 만이다. <주먹이 운다>는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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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릴케가 알아본 천재 소년, 고양이를 잃고 그리다 미츄 발튀스·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윤석헌 옮김|을유문화사|124쪽|1만5000원 고양이를 잃은 열두 살 소년이 그린 그림책이다. 그런데 그 소년이 바로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발튀스다. 서문을 쓴 사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다. 지극히 화려한 컬래버레이션이다. 발튀스의 본명은 발타사르 클로소프스키 드 롤라(1908~2001)다. 발튀스는 어린 시절 애칭이었다. 발튀스 어머니의 연인이었던 릴케는 일찍이 발튀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미술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후원했다. <미츄>는 열두 살 발튀스가 반려 고양이 미츄를 잃고 슬픔에 젖어 그린 40점의 연작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본 릴케는 발튀스의 천재성을 감지하고 책으로 출간해주면서 직접 서문까지 써주었다. 화가로서 활동명을 본명 대신 애칭 발튀스로 할 것을 권한 것도 릴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