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경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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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작품 없지만 열기는 뜨거웠다···프리즈·키아프 개막 루이스 부르주아, 앤디 워홀, 마우리치오 카텔란, 조지 콘도, 쿠사마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3층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 2024에는 해외 대형 갤러리들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앞세워 부스를 꾸렸다. 4일 막을 올린 국내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국제 미술품 장터(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에 참여한 갤러리만 국내외 총 318개로, 해외 대형 작가들의 수십억대 작품부터 신진 작가들의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프리즈 서울엔 600억원대에 달하는 피카소의 회화(1회), 수십억원대의 샤갈의 회화(2회) 등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거장들의 작품은 없었지만, 아시아 갤러리 비중을 높이고 한국 작가의 작품을 다수 선보이는 등 아시아 지역성을 강화한 점이 눈에 띄었다. 리만머핀 갤러리는 김윤신과 이불, 서도호의 작품을 들고 나왔고, 스프루스 마거스 갤러리 이미래의 조각을, 가고시안 갤러리는 백남준의 설치작품을 선보였다.프리즈 서울에 참여한 32개국 112곳 갤러리 가운데 63%가 아시아 갤러리며 이중 31곳이 한국 갤러리다. 키아프엔 22개국 206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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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처럼, 손때 묻은 냄비에서 떠올린 ‘기억’···“식기엔 영혼과 우주가 담겨있죠” “낡은 식기를 보면 우주처럼 보입니다. 요리 자국, 스크래치 등 사용한 사람들의 흔적들이 남죠. 얼핏 보면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모두 다른 기억을 갖고 있는 다른 사물입니다. 사람마다 손금과 성격이 다르듯 식기들도 모두 다릅니다. 사람들의 기억과 영혼을 담고 있죠. 1000개의 식기를 조합해 작품을 만들면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 감정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철제 도시락통, 냄비, 그릇 등으로 쌓아 올린 거대한 두개골 모양의 설치작품, 대형 양동이에서 물처럼 쏟아져 내리는 스테인리스 식기들…. 인도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가 수보드 굽타(60)의 대표작들이다. 그는 인도인이 가장 많이 쓰는 도시락통 ‘탈리’ 등을 이용한 대규모 설치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매일같이 사용하는 식기들을 수백 개 쌓아 올려 해골이나 핵구름 형태로 만들어 친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느끼게 하며 성과 속, 일상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부처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인도 비하르주에서 태어났고, 뉴델리를 기반으로 영국, 프랑스, 미국 등에서 개인전을 열며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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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물귀신이 오염된 물을 정화한다는 신박한 상상 ‘오늘의 할 일’이라는 평범한 제목을 지어놓고선 물귀신이 아이를 ‘납치’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능청스러운 그림책이다. 하지만 물귀신이 아이를 데려가는 이유를 알고나면,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제목이 아주 시급한 이야기로 들린다. 기다란 머리채를 늘어뜨린 물귀신들의 ‘할 일’은 바로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물가에서 캔, 과자봉지 등 쓰레기를 놀이 삼아 건져올리던 아이의 나뭇가지 끝에 기다랗고 검은 물건이 걸린다. 비닐봉지인가 싶지만 바로 다음 장, 눈이 퀭한 물귀신의 머리채가 쑤욱 수면 위로 올라온다. 물귀신은 아이를 데리고 물속 나라로 간다. 물귀신은 사실 아이를 납치한 게 아니다. 갈수록 오염되는 물을 정화하느라 바쁜 물귀신 나라에 일손이 부족해 하루 동안 ‘특별채용’한 것. 아이에게 아기 물귀신들을 돌보고, 일귀신들의 휴식과 훈련을 돕고, 어린이 물귀신들과 함께 교육을 받고 노는 ‘오늘의 할 일’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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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의 캔버스가 된 국내 미술관···9월을 물들인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초가을, 미술계는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다. 국내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국제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9월4~7일)과 키아프 서울(9월4~8일) 개막하고, 국내 양대 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9월7일 개막)와 부산비엔날레(8월17일 개막)도 때맞춰 관람객을 맞이한다.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올해 가장 공들여 준비한 전시를 앞다퉈 선보이며 관람객들을 끌어들인다.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은 미술시장의 스타 작가 니콜라스 파티의 대규모 개인전 ‘더스트’를 29일 언론에 공개했다. ‘파스텔의 마법사’로 불리는 파티는 부드러운 파스텔을 이용한 감각적 색채의 초현실적 그림으로 미술시장에서 인기있는 작가다. 파티는 호암미술관 전시장 벽면을 파스텔로 칠한 대형 벽화 5점을 선보이고, 신작 회화 20점을 비롯한 73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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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도 ‘꽃’을 그린 천경자···여성 화가들이 넘어온 ‘격변의 시대’ 꽃과 여인,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풍경 속 생명력을 그려냈던 천경자 화백(1924~2015)은 전쟁의 포탄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들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보았다. 1972년 베트남전쟁 당시 정부는 천경자를 비롯해 김기창, 박서보 등 화가 10명을 베트남 전선으로 20일간 보내 한국군의 활약을 기록하게 한다. 10명의 ‘종군화가’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었던 천경자는 전쟁의 참혹함 대신 우거진 밀림, 열대꽃의 아름다움을 그려냈다. 284×185㎝ 대작 ‘꽃과 병사와 포성’엔 병사와 전차들 사이로 꽃이 뿜어낸 듯한 붉은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고통스럽고 참혹한 삶 속에서도 예술을 통해 환상과 아름다움을 좇았던 천경자의 그림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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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쓴 첫 장편으로 미 국제문학상 수상···억대 선인세에 이어 ‘겹경사’ 이미리내(41)의 장편소설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이 미국 윌리엄 사로얀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미국에서 주목받는 신진 작가에게 주는 이 문학상에 한국인이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윌리엄 사로얀 재단은 올해의 윌리엄 사로얀 국제 문학상 소설 부문에 이미리내가 선정됐다고 지난 24일 밝혔다. 심사위원들은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에 대해 “강하고도 약한 인간 본성에 관한 아름답고도 복합적인 스토리”라고 평했다. 이들은 “인물들이 매우 매력적이면서도 복잡해 그들의 미스터리를 급히 파헤치고 싶은 욕구가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키지만, 서정적이면서 기억을 환기하는 문장들은 한쪽 한쪽 천천히 작품을 음미하고 싶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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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은폐된 폭력이 배설물처럼 드러날 때 라틴아메리카 작가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의 소설은 강렬하다. 밖으로 쏟아나온 내장과 피, 배설물이 가득하다. 우리가 가장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을 밖으로 분출하면서, 사회 속 은폐된 폭력과 착취를 드러내 보인다. 내장이나 피, 배설물이 원래 있어야 할 곳이 가장 내밀한 신체의 내부인 것처럼, 암푸에로가 폭로하고자 하는 장소는 사회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장소, 바로 가족이다. 소설집의 포문을 여는 ‘경매’는 암푸에로가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보여주는 듯 강렬하다. 주인공은 투계꾼인 아빠를 따라 투계장에서 지낸다. 투계장 주변의 남자들은 주인공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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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그린 ‘8m짜리 성모 마리아’ 현대미술의 각축장인 비엔날레와 출가한 불교 수행자인 스님의 관계는 멀어 보인다. 하지만 2024 부산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2024 부산비엔날레 메인 전시장인 부산현대미술관 1층 전시장 입구엔 8m 높이의 대형 성모마리아와 관음보살 그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파란 옷을 입은 성모마리아는 왼쪽에서, 붉은 옷을 입은 관음보살이 오른쪽에서 서로를 마주본다. 송천 스님의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다. “진리란 어둠에서 밝은 곳으로 인도하는 구원자 같은 존재입니다. 진리는 마리아이기도 하고 관음보살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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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그림 속 300년 전 ‘삼각관계’?···“그림이 살아 움직여요” 마을의 부자 최대감이 연회를 열고, 평소 점찍어놨던 기생 춘홍을 부른다. 양반들이 기생과 어울려 유흥을 즐기는 연회장에 춘홍이 들어서자, 최대감은 한눈에 반하고 만다. 최대감은 유곽을 찾아가 춘홍에게 수청을 들라하지만, 춘홍의 표정은 차갑기만 하다. 춘홍에겐 사랑을 약속한 정인이 있었다. 정인 이난은 공부를 하러 산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춘홍은 집요하게 수청을 요구하는 최대감과 불확실한 이난과의 사랑 때문에 흔들린다. 춘홍은 이난을 찾아 산으로 향하고, 같은 시간 이난은 춘홍을 찾아 마을로 향한다. 두 사람의 발길은 안타깝게 엇갈리고 만다. 해가 진 이후에야 마침내 마주하게 된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 밤하늘에 눈썹달이 떠오른다. 바로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 속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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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해 위에 지어진 ‘완벽한 집’···서도호의 거대하고 치밀한 상상 천으로 만들어진 섬세하고 아름다운 한옥집을 기대했다면 조금 당황할지도 모른다. 서도호의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뒤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밝은 주황색 구명복이다. 콘센트까지 섬세하게 천으로 재현한 집과 투박한 구명복은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이지만 서도호에겐 하나로 연결돼 있다.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뻗어 나온 무한한 상상과 사유의 가지 중 하나다. 서울에서 미국 뉴욕으로, 영국 런던으로 삶의 기반을 옮겨온 서도호는 이주의 경험을 통해 집과 공간이 개인과 맺는 관계에 대해 천착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천으로 만든 집이 차곡차곡 접어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 ‘이동하는 집’이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면, 구명복은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작은 대피소’라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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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터널 속 무지갯빛 고리 지나···별들과 함께 달리면 50번 고속도로 환상 여행 강전희 글·그림|진선아이|76쪽|2만5000원 바다를 보기 위해 구비구비 산맥을 통과해 동해로 향하는 영동 고속도로(50번 고속도로)를 달려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끝없이 이어진 터널, 고속도로를 호위하듯 둘러싼 웅장한 산맥들은 도시와 일상을 벗어나 다른 세계로 향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50번 고속도로 환상 여행>은 일상에서 이탈한 감각을 기묘한 판타지로 그려낸 작품이다. 가족은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조용히 집을 나서 고속도로를 달린다. 한밤의 고속도로는 지루한 공간이 될 수 있지만, 작가에겐 신비롭고 으스스한 상상을 펼치기에 더없이 좋은 무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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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함께 인생 2막을…‘도슨트 아카데미’ 전시를 관람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미술에 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림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을 찾아 강연을 듣거나 제2막 인생으로 도슨트(전시 해설사)를 꿈꾸는 중년층도 생겨나고 있다. 한국예술전시기획사협회와 경향신문이 ‘50+세대’를 위한 ‘경향 시니어 도슨트 아카데미’ 과정을 마련했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중년층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강사로는 현재 미술계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나선다. 미술관을 직접 운영하는 뮤지엄 관장부터 대형 전시에서 ‘N차 관람’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유명 도슨트,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아트페어 감독, 미디어 아티스트, 철학과 교수, 이미지메이킹 전문가까지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