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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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버스정류장을 칭송하는 궁리 버스정류장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 같은 곳이다. 하늘 아래 서성거리는 사람들, 곧 무언가 벌어지기 직전의 기운들. 막 버스에서 내린 학생(나1)이 기다리던 엄마(나2)와 가볍게 포옹한다. 작은 수첩을 들고 중얼중얼 외우는 소녀(나3)와 빵모자를 쓴 청년(나5) 외 여럿(나7-10)을 태우고 버스는 얼른 앞으로 떠난다. 옆으로 흐르는 것들이 무척 발달한 버스정류장. 전광판에는 주어 없이 토막 난 문장들이 떠다닌다. 방황하기를 좋아하는 청년(나29)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단발머리 두 소녀(나4, 나6)가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온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아저씨(나12)는 판소리 한 대목을 흥얼거리기에도 딱 알맞은 장소다. 휴대폰에 집착하는 소년(나13)은 이 풍경이 익숙하다. 공중화장실 근처 나무들의 때깔이 좋듯 버스정류장 가까이 가로수는 더 의젓하다. 이 근방을 떠도는 근심을 풍부하게 먹고 자란 덕분이다. 여기에서는 구름도 멈칫, 공손하게 흐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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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평행 우주, 평행 대통령 어제와 오늘은 평행한다. 하루 차이임에도 영원히 서로 만나지 못하는 건 이 때문이다. 과거로 건너갈 순 없고 이렇게 기억을 뒤적인다. 오래전 고등학교 지구과학 수업 시간. 선생님이 칠판에 점과 동그라미를 그렸다. 태양과 지구. 점에서 방사상으로 화살표를 죽죽 그었다. 보거라, 이렇게 햇빛이 우주에서 오는데, 그 거리가 하도 멀어서 너희들 등에 도착하는 햇살은 모두 평행하다고 간주한다! 이상하게도 이 말이 깊은 울림을 남겼다. 날씨는 누구나 공통으로 입는 공중의 옷이다. 하루 차이인데도 내일의 옷은 맞추기가 영 힘들다. 사계절에 밀착하며 살고 싶어 글쓰기에 능한 젊은 마케터와 저 절기를 짚어가면서 궁리출판 소식지에 편지를 교환하고 있다. 이렇게라도 해서 우리를 감싸고 도는 날씨 변화를 제때 껴입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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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애기향유의 꽃과 고라니의 뼈 멀리 힘겹게 온 햇빛이 잘게 부서지는 것 같아 손바닥을 한번 비벼보는 시간.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 감기 걱정도 하면서 주먹을 가볍게 쥐면 쥐꼬리 같은 햇살을 사로잡는 느낌도 있다. 인천공항 근처 오종종한 섬으로 꽃산행을 나선다. 여러 난개발 공사로 움푹줌푹한 해변가에 무량한 바다와 대치하는 낮은 산들이 특이한 지형을 이루며 귀한 꽃들을 보듬고 있다. 오늘 목표로 한 꽃은 애기향유. 계절이 겨울의 입구로 가도록 늦게까지 꽃의 자리를 유지하는 기특한 야생화다. 이런 꽃은 허공에 그냥 피어 있기보다는 지하의 누군가가 바깥으로 요량껏 툭 던져놓은 것이란 실감도 진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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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빨래에 관하여 오래전 기억. 어머니 떠나시기 직전 그래도 기력이 좋을 때 두어 달을 함께 지냈다. 파주출판단지 사무실의 원룸에서였다. 모처럼 모자간에 밥을 끓여 먹으면서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지나간 생활에 관해 어머니처럼 많이 알고 계시는 분이 또 있으랴. 어머니야말로 내 곁에 현현하는 스토리텔러이지 않은가. 기억력이 비상한 어머니는 소쿠리 들고 산딸기 따던 소녀, 멀리 덕유산으로 산나물 캐러 다니던 새색시, 시골에서의 시집살이 때 일들을 풍성히 이야기해 주신다. 어느 날엔 콩나물 재배기를 장만했다. 어머니의 지도를 받으며 한쪽 구석에서 직접 키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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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문 앞에서 만난 ‘동학’ 파주출판단지의 이웃인 교하는 交河다. 사귈 교, 물 하. 두 개의 물이 서로 교차하는 곳이다. 문명이 발생하기에 좋은 장소이겠다. 가끔 교하도서관에 간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문을 통과한다. 예전 문은 여닫이가 많았지만 요즘은 미닫이가 대세다. 이런 문은 밀어야 하는가, 당겨야 하는가. 나의 경우 대부분 먼저 밀어본다. 가지는 것에 익숙한, 무엇이든 당겨 내 소유로 만들려는 아귀다툼에 익숙한 손으로서는 다소 이례적인 동작이겠다. 이제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으니 얼른 저곳으로 나가겠다는 몸짓이 은연중에 표현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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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지난여름 매미의 몰락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듯(윌리엄 블레이크), 난파 직전의 조각배 같아도 인류를 다 싣고 거뜬하게 시간의 바다를 항행하는 게 한 편의 시(詩)다. 술과 음악에 휩싸여 일생을 보낸 김종삼(1921~1984)은 단 몇 줄의 시행에 염결한 여백을 절벽처럼 세워놓는 풀잎 같은 시인이다. 피아노 건반보다 훨씬 짧은 시, ‘대화’의 전문을 읽는다. “두이노城 안팎을 나무다리가 되어서/ 다니고 있었다 소리가 난다// 간혹// 죽은 친지들이 보이다가 날이 밝았다/ 모차르트 동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에게 인간의 죽음이 뭐냐고/ 묻는 이에게 모차르트를 못듣게 된다고/ 모두 모두 평화하냐고 모두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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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심학산으로 초대한 버니지아 울프 근래 이래저래 읽은 글 중에는 시나 소설, 울화통 터지는 기사, 가끔 흥얼거린 가사도 있지만 젖은 낙엽처럼 나의 심층에 오래 묵혀 있던 어떤 완고한 생각의 딱지를 긁어낼 만큼 폐부를 깊숙하게 찌른 산문이 있다. 오랜 동안, 시간을 잃어버리며 나는 사람의 상태를 유지해 왔다. 무려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몸은 반투과성의 특수한 막에 둘러싸여 그 신진대사를 영위하는 중이다. 나무 공부하러 산에도 제법 다닌다. 산이 좋아 산에 가지만 나는 자연과의 분리, 사물들과의 구별을 철저하게 해왔다. 모름지기 내 위주로 생각을 해왔고 뱀이나 벌레 하나 속옷으로 뛰어들까 겁을 먹었다. 언제나 한결같이 제자리를 지키는 깔딱고개의 눈으로 나를 보자면 참 이기적인 놈이라 여길 게 틀림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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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교대역에서 혼자 한글날을 기념하다 지하철 3호선 교대역은 한때 약속장소로 뻔질나게 이용했던 곳이다. 인정 없는 사각형들의 단조로운 지형지물들이라 추억이 고일 장소는 아니다. 어릴 적 시골과 비슷했더라면 모처럼 이곳에서 퇴적된 흔적을 찾느라 약속 시간에 짐짓 늦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도시란 그런 곳이 아니다. 뱀을 보고 놀랄 일도, 송아지한테 장난칠 일도 없다. 지하도가 길게 똬리를 튼 교대역은 증명사진보다 엄청나게 큰 법률가들의 광고판이 제 세상인 듯 활개 치는 곳일 뿐. 생활의 근거를 옮긴 뒤 물길 끊긴 우각호 같은 교대역이다. 그런데 지난주 합천 황매산 꽃산행 마치고 귀경하여 남부터미널을 지나 환승하느라 실로 오랜만에 잠시 체류하게 되었다. 무척 붐비는 교대역에서 옛날 동작을 되살려 물살 가르는 쉬리처럼 지름길로 잽싸게 움직이려다가 그만 마음을 탁 놓아버렸다. 사흘 후면 한글날, 그걸 알았으니 교대역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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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비행기에 대한 명상 아마 비행기를 처음 본 건 시골의 비탈진 밭에서였을 것이다. 어머니와 형들과 함께 두둑 따라 감자 캐다가 무슨 낌새가 있어 하늘을 쳐다보니 서울 쪽으로 급히 달려가는 전봇대 사이로 두더지처럼 똥구멍으로 하얀 연기를 뱉으며 ‘뱅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쳇, 저 뱅기. 저거 한번 타보는 날 있을까. 야, 뱅기 타면 출세한 것 아이가. 그렇게 깔깔깔 웃어주다가 시무룩하다가 나도 모르게 나는 푹, 자랐다. 모처럼 비행기 타는 날. 비행기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본다. 저 날씬한 동체만큼 인간의 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드물리라. 펄펄 끓는 솥 같은 캐리어 하나씩 안고 공항에서 시끄럽던 승객들. 이제 탑승해서는 좀 조용하다. 이윽고 이륙. 아무것도 없는 공중이라고 마냥 빈 건 아니다. 벼락과 천둥이 대기하고 공중의 구름은 충분히 자갈밭이다. 울퉁불퉁 호시게 나는 뱅기. 띵띵띵, 소리 끝에 승무원의 다급한 목소리. 승객 여러분 지금 우리 비행기는 난기류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동을 삼가주시고 안전벨트를 꼭 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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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입술의 얼룩과 추락의 해부 한자는 한 자다. 품사 하나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군처럼 행동하면서 여러 뜻을 거느린다. 한 한자에 하나를 더하면 보통의 단어가 되고, 하나만 더 추가하면 본인의 이름처럼 세 글자가 된다. 여기에 하나를 보태면 사자성어, 다시 하나를 붙이면 오언율시, 둘을 얹으면 칠언절구의 그윽한 한시의 세계다. 여기에 몇 글자와 더 어울리면 동양 고전의 심오한 문장들. 이렇게 산술적으로 더해나가면 쉽게 넘는 계단이 될까. 과연 그럴까. 초등학생 시절, 자유교양경시대회라고 하는 고전읽기에서 처음 <논어 이야기>를 접했다. 이때 읽은 깜냥을 논어의 전부로 생각한 게 병통이었다. 그러다가 불혹의 나이도 지나 문득 범 앞의 하룻강아지인 줄을 깨닫고 <논어>를 찬찬히 읽었다. 당시 부모님을 막 여읜 때이기도 해서 여러 글귀에서 많은 위로와 뒤늦은 후회를 함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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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추석 밥상 앞에서 지역구마다 국회의원들 다른 것이야 진즉에 알았지만 지역마다 식당의 풍경도 미세하게 좀 다른 것 같다. 강남구 신사동에서 10여년을 삐댄 적이 있다. 점심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으니, 어쨌든 식당을 이용했다. 요즘은 대개 입식이지만, 그땐 엉덩이를 위한 방석도 준비된 좌식의 방이 많았다. 홀을 비롯해 웬만한 벽에는 큼지막한 액자가 걸렸는데, 일견 인상적인 게 수두룩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하나, “사나운 파도가 유능한 뱃사공을 만든다.” 주로 횟집, 설렁탕집 등 서너 군데서 본 것 같은데, 어쩐지 신사동을 떠나고 저 글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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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중력의 날에 영화 ‘그래비티’를 보았다 자연법칙은 자연에는 없다, 과학 교과서에나 있을 뿐. 숫자와 기호로 외운 공식에 맞춰 자연은 행동하는 것 같다. 사과는 줍기 좋게 아래로 떨어진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심은 쪽으로 나와준다. 내 마음의 운율을 정확하게 달래주는 자연의 마음. 보이지 않아도 이 세상을 지그시 누르는 중력은 말 그대로 무거운 힘이다. 우리는 누구나 참을 수 있을 만큼의 무게를 지니고 산다. 세상 만물은 제 무게로 인해 있는 곳에 움푹, 깊은 자리를 만든다. 중력이 사라진 무중력 공간에서의 동작을 상상해 보라. 중력을 이겨야 한 발짝이라도 꼼짝할 수 있는 것. 무거움은 힘들게도 하지만 가능하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