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최신기사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새해, 새에 관한 생각 새해, 신춘문예, 새롭게, 시작. 시원한 시옷들의 행진이다. 시옷 자로 횡대를 이루어 날아가는 기러기처럼 또 한 해가 출발했다. 잘록한 반지를 끼우듯 연말연시는 막혔던 곳에서 툭 트인 곳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물씬하다. 좁은 조선을 빠져나와 드넓은 요동 벌판 앞에서 그저 한바탕 울기 좋은 곳이라고만 할 수밖에 없었던 박지원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빛이 나를 찾아온다 할 일은 늘어나고 공부할 건 많아지고 따라서 생각할 것 높아지고 읽어야 할 책도 자꾸 쌓인다. 도무지 욕심만으로 다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럴 땐 주제를 좁게 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작년 주제가 풀이었으니 2026년 주제는 해로 정해볼까. 이제 병오년 새해가 출발하였으니 해에 대해 긴급하게 생각해 보기로 하자. 오각형의 별, 삼각형의 산이라고 해를 동그라미라고 잘 표현하지는 않는다. 너무 강렬하고 강력해서 사실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어 도무지 잘 모르겠는 태양이다. 그래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정작 내가 궁금한 건 해보다는 햇빛 가루, 다시 말해 빛이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작아지는 것들 시계는 12에서 무너져 1로 또 떨어지고, 이제 달력도 12에서 다시 1로 넘어간다. 작아지고서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한 달의 덧셈은 그리 큰 숫자는 아니었다. 한 해에 그래도 등대처럼 31일의 하루가 더 있어 얼마나 좋은가. 홀수의 그날은 많은 힘을 지니고 있다. 세상일 뜻대로 안 되는 줄이야 진즉에 알았지만 올해도 어김이 없다. 수월하고 탁월하고자 하는 이 어디 혼자뿐이랴. 을사년 초에 세웠던 꿈들 점점 작아지고 작아져 마침내 마지막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마지막이라고 끝은 아니다. 옛날 영화마다 마지막에 가면 점 하나 점점 커지다가 끝이라는 글자로 변신하여 화면이 끝난다. 그때 그 ‘끝’이라는 글자는 어쩌면 그리도 해골의 앙다문 이빨 같던가. 웃음과 울음이 지나간 얼굴 한번 쓰다듬고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흐트러진 골격을 다시 짜맞추고 일상을 시작하였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세밑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요즘에야 터미널이 대세지만 차부라는 말이 나는 좋다. 차 구경조차 쉽지 않았던 어린 시절. 휘발유 냄새도 황홀해서 자갈투성이의 신작로를 고르기 위해 불도저가 깡촌에 오면 꼬마들은 동네를 벗어나도록 꽁무니를 쫄쫄쫄 따라다녔다. 차부. 차의 부두라는 뜻일까. 좁은 고향에서 넓은 세상으로 멀리 떠나는 이들의 불안과 설렘이 잔뜩 고여 있는 곳.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E=mC² 혹은 자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공식인 E=mC²은 에너지와 질량이 서로 변환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이는 어떤 특정한 조건에서만 성립하는 방정식이긴 해도 결국 지하로 들어가서는, 저 흙과 이 눈이 서로 붕괴되고 삼투해서 골고루 같아지는 것처럼, 물질과 에너지는 골고루 너나들이하고, 물질을 태우면 열과 빛이 방출되듯, 결국 힘(E)은 곧 물질(m)임은 물론 나아가 빛(C)이라고 한다면 무식한 자의 헛소리인가.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어떤 고구마 어느 산, 어떤 골을 오를 때의 일. 급경사를 치고 올라 호젓한 능선을 걸을 때였다. 풍성한 치마폭 같은 게 버티고 있어 문득 길이 끊겼다. 제법 널찍한 바위를 타고 넘어야 했다. 바위가 그냥 바위인 경우는 드물다. 바위 안에는 걷잡을 수 없는 침묵이 도사리고 있지만 바위의 표면은 식물의 훌륭한 서식처이다. 각종 이끼나 지의류는 아예 바위를 거처로 삼는다. 그것들이 표시하는 무늬를 보면 우주에서 누가 적은 심오한 문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낙엽과 늙은 잠자리 일년이 두꺼운 국어사전이라면 초겨울은 격음의 시간에 해당한다. 수분 빠진 낙엽들은 ‘ㅊ, ㅋ, ㅌ, ㅍ’처럼 거칠고 비틀리고 꼬부라진 모양으로 지면에 깔린다. 찢어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마른 잎 밟을 때마다 자지러지는 소리가 나는 건 이 때문이다. 가지에서 툭, 떨어지는 낙엽들. 점점 추워지는 날씨도 한몫을 한다. 무른 바위 우세한 산기슭에서 잎사귀들의 순한 표정은 올봄의 일이었다. 물결처럼 출렁이던 잎들의 전성시대는 여름. 이제 모두 새우처럼 등을 굽히며 뒤틀린다. 어디 급히 지나가는 쓸쓸이라도 발견하면 다람쥐가 도토리 줍듯 데려다가 입안에 여러 개 저장하고 싶은 늦가을이었다. 세상의 포부를 잔뜩 담았다가 활짝 피었던 그 모든 꽃봉오리들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대궁 위에 꽃받침만 남았다. 이제 단풍도 지나 낙엽의 시기다. 단풍이 색이라면 낙엽은 태도 아닌가.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목포에 가면 가끔 목포 생각이 난다. 나와 목포와의 관계는 어느 야유회에서 허리춤에 손 얹고 노래하는 아버지의 빛바랜 사진에서 시작된다. ‘목포 유달산 1960.5.12’라 적힌 걸 보니 그때의 나는 부산에서 옹알이하면서 열심히 뒤집기를 배우던 시절. 그렇던 목포를 까맣게 모르다가 꽃에 입문하고 종종 드나들게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의 사진 한 장이 나를 계속 목포로 끌어당긴 것일까. 지명에 나무가 들어가는 것도 나에겐 예사롭지 않았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어떤 잠자리에 대한 명상 잠자리는 몹시도 제 머리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수평선보다 더 넓은 각도로 머리를 좌우로 돌리며, 뒤룩뒤룩 눈알을 굴리며. 물로 세수하는 것보다 더 엄청 꼼꼼히, 허공에서 마른손으로 연신 얼굴을 닦았다. 어떻게 하면 저리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허공의 한 틈을 노리는 것 같다. 근처의 새들 또한 공중으로 투신하지만 모두 제 그림자 안으로 도로 내려올 뿐이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이 계절에 유행가 부르기 산은 생각의 학교이자 고질(痼疾)을 고치는 병원이다. 한편으론 색다른 노래방이기도 하다. 술기운을 다독이며 ‘앗싸’ 기기에 네 자리 숫자를 눌러 유행가 하나 고르듯 호젓한 산길 걷다가 바람, 기온, 기분, 날씨의 네 박자에 맞춰 노래 하나를 호출한다. 어느덧 목덜미가 시큰하고 소매가 긴 옷이 그리운 계절에는 이런 노래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의 기나긴 밤 어머니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횡단, 횡단하는 나날들 매년 10월25일은 독도의날이다. 법정기념일은 아니지만 소홀히 할 수 없는 하루다. 대륙에서 홀로 떨어져 동해를 업고 위대한 높이로 솟아올라 먼발치에 일본 열도를 던져둔 독도. 이제 일본은 이런 기본적 사실을 고맙게 여기고 허튼소리 말아야 한다. 내가 만든 책을 소개하는 셈이라 퍽 조심스럽지만 작년 광복절 즈음 이 코너에 “1901년부터 2021년까지, 치열하게 전개된 120년의 근현대사를 횡단하듯 조감하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쓴 적이 있다. 충분히 고통스러운 개화-식민-독립-독재-민주-선진의 굽이굽이를 나름의 시선으로 요령 있게 요약한 다큐멘터리 북. 지난달에 완성해 <횡단 한국사>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내보냈다. 우리를 웃고 울린 역사는 깨알 같은 사건이 종횡으로 결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책에도 독도의 안녕을 기원하고 의미를 묻는 내용이 명토 박혀있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우리에게는 먼 산이 있다 손바닥은 별들의 전쟁터다. 삼성, 갤럭시, 구글, 클라우드 등등 이 바닥의 작명은 하늘에 빚진 게 많다. 휴대전화를 통해 바깥을 보니 갈수록 점점 더 별 볼 일 없어지는 세상이다. 급기야 그제는 좀 색다른 산이 등장했다. 유튜브가 한때 장애를 일으켜 영상이 재생되지 않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에 따라 “지하철에서 유튜브가 안 돼 먼 산만 바라본다”는 사태가 속출했다는 뉴스. 그렇다고 이런 먼 산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